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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엽, 중국은 아편전쟁, 애로우호 사건, 태평천국의 난 등 내우외환이 거듭되는 속에 유럽 제국주의 열강들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의 동쪽 지역까지 국제적 대립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당시 상황에서는 동양이 서양세력으로부터 벗어날 가망이 없었다. 그대로 두면 인종도 문화도 모조리 말살되고 뿌리채 뽑힐 위기에 놓여 있었다. 극동의 약소국가 조선도 예외가 아니었다.
중국의 의화단 사건 후 부동항 확보를 위한 러시아의 진출은 점점 노골화되어, 조선에까지 야수의 손길을 뻗어왔다. 이에 조선도 서양에 먹히느냐 마느냐가 경각에 달려 있었다. 상제님께서는 조선이 서양으로 넘어기면 인종이 다르므로 차별과 학대가 심하여 살아날 수 없을 것이요(道典5:177), 만약 서양으로 넘어가면 다시 되찾을 수 있는 날이 없으리라.(道典5:164)고 당시 상황을 말씀하셨다.
본래 서양 제국주의는 백인우월주의를 바탕에 깔고 있었기 때문에 타민족의 인종과 문화를 철저하게 파괴했던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16세기 스페인의 침략을 받은 아메리카 대륙의 아즈텍, 잉카문명은 지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상제님께서는 서양 제국주의 세력을 동양으로부터 몰아내기 위해 내세웠던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道典 5:177) “조선을 서양으로 넘기면 인종이 다르므로 차별과 학대가 심하여 살아날 수 없을 것이요, 청국으로 넘기면 그 민중이 우둔하여 뒷감당을 못할 것이요, 일본은 임진란 후로 도술신명(道術神明)들 사이에 척이 맺혀 있으니 그들에게 넘겨주어야 척이 풀릴지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일본을 도와 잠시 천하통일(天下統一)의 기운과 일월대명(日月大明)의 기운을 붙여 주어 천하에 역사를 하게 하리라. 그러나 그들에게 한 가지 못 줄 것이 있으니 곧 어질 인(仁) 자라. 만일 어질 인仁 자까지 붙여 주면 천하는 다 저희들의 소유가 되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어질 인(仁) 자는 너희들에게 붙여 주리니 다른 것은 다 빼앗겨도 어질 인(仁) 자는 뺏기지 말라"하시니라
道典 5:164] 조선이 서양에 넘어가면 다시 올 날 없으리라
정미(丁未 : 道紀 37, 1907)년에 하루는 전주 용머리고개에서 공사를 행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조선 강토가 서양으로 둥둥 떠 넘어가는구나.” 하시고 성도들에게 물으시기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하시니, 김공선(金公先)이 아뢰기를 “운세(運勢)가 부득이하면 일본에 의탁하는 것이 좋은 방편일 듯하옵니다.” 하거늘, 말씀하시기를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지역별로 동양에 붙여 두면 다시 올 날이 있으리라. 그러나 만약 서양으로 가면 다시 올 날이 없으리라.” 하시니라.
道典 5:166) 동양에서 서양 세력을 몰아내고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한 약소국을 건지려면 서양 열강 사이에 싸움을 일으켜야 하리라.
道典 5:166) 하루는 원일, 경원과 함께 관왕묘에 가시어 관운장(關雲長)에게 천명을 내리시며 공사를 행하시니라. 이 때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동양에서 서양 세력을 몰아내고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한 약소국을 건지려면 서양 열강 사이에 싸움을 일으켜야 하리라"하시니라.
道典 5:166) 관운장에게 세계 대전쟁의 천명을 내리심
정미(丁未 : 道紀 37, 1907)년 4월에 신원일을 데리고 태인 관왕묘 제원(關王廟 祭員) 신경원(辛京元)의 집에 머무르실 때, 하루는 원일, 경원과 함께 관왕묘에 가시어 관운장(關雲長)에게 천명을 내리시며 공사를 행하시니라. 이 때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동양에서 서양 세력을 몰아내고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한 약소국을 건지려면 서양 열강 사이에 싸움을 일으켜야 하리라.
관운장이 조선에 와서 극진한 공대를 받았으니 그 보답으로 당연히 공사에 진력 협조함이 옳으리라.” 하시고, 양지에 글을 써서 불사르시며 관운장을 초혼하시니 경원은 처음 보는 일이므로 이상히 생각하니라.
이 때 자못 엄숙한 가운데 상제님께서 세계대세의 위급함을 설하시고 서양에 가서 대전쟁을 일으키라는 천명을 내리시거늘, 관운장이 감히 거역할 수는 없으나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아 머뭇거리는지라
8 상제님께서 노기를 띠시며 “때가 때이니만큼 네가 나서야 하나니 네가 언제까지 옥경삼문(玉京三門)의 수문장 노릇이나 하려느냐!” 하고 엄중히 꾸짖으시니라.
道典 5:401) 전주 김준찬의 집에 계실 때 김덕찬과 김낙범 등이 모시니라. 하루는 낙범에게 물으시기를 “관왕묘에 치성이 있느냐?” 하시니 낙범이 “있나이다.” 하고 대답하거늘, 말씀하시기를 “관운장이 지금 이 지방에 있지 않고 서양에 가서 큰 난리를 일으키고 있나니 치성은 헛된 일이니라.” 하시니라.
관운장은 의리와 용맹의 표상으로 그의 대인대의(大仁大義)를 기려 역대 왕조에서 거룩할 성(聖), 임금 제(帝), 임금 군(君) 자(字)를 놓아 성제군(聖帝君)으로 추앙해 왔다. 우리 민족이 관운장을 경애하여 잘 받들어 주어 관운장이 삼보조선(三保朝鮮)한다는 말이 전해 온다.
道典 5:53) 49일 동남풍 공사
상제님께서 전주에 계실 때 천지대신문을 열고 날마다 공사를 행하시며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제갈량의 전무후무한 재주라 함은 남병산(南屛山)에서 칠일칠야(七日七夜) 동안 동남풍을 빌어 적벽화전(赤壁火戰)에 성공함을 말함이 아니더냐. 이제 49일 동안 동남풍을 빌어 와야 하리라. 이 동남풍으로 밀려드는 서양의 기세를 물리쳐야 동양을 구할 수 있으리라.” 하시고, 성도 서너 명을 거느리고 남고산성(南固山城)으로 가시어 만경대(萬景臺)에서 49일 동남풍 공사를 행하시니라.
이 때 장대에 종이를 달아 세우시고 글을 써서 읽으신 뒤에 성도들로 하여금 그 자리에 서 있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제갈량이 제단을 쌓고 7일 동안 밤낮으로 공을 들여 동남풍을 불렸다 하니 이는 우스운 일이니라. 공들이는 동안에 일이 그릇되면 어찌하겠느냐.” 하시니라.
이어 상제님께서 “너희들은 바람이 불거든 오라.” 하시고 남고사(南固寺)로 들어가시매, 과연 조금 후에 동남풍이 크게 부는지라 성도들이 들어가 아뢰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차길피흉(此吉彼凶)이로다.” 하시고 산성을 내려오시니라.
그 후 상제님께서 49일을 한 도수로 계속하여 동남풍을 불리실 때, 미처 기한이 다 차기도 전에 먼 곳에서 한 여인이 찾아와 자식의 병을 고쳐 주십사 애걸하거늘, 상제님께서 공사에 전심하고 계시므로 병욱이 상제님께 아뢰지 못하고 돌려보내니, 그 여인이 한을 품고 돌아가매 갑자기 동남풍이 그치는지라, 상제님께서 이 사실을 아시고 급히 그 여인에게 사람을 보내어 공사에 전심하심으로 인해 미처 대답지 못한 사실을 말하여 안심하게 하시고, 곧 자식의 병을 고쳐 주시니 즉시 바람이 다시 일어나거늘 “한 사람의 원한이 능히 천지 기운을 막는다.” 하시니라. 그 뒤로 과연 일러전쟁이 일어나더니 일본 군사가 승세를 타고 해륙전에서 연속하여 러시아를 물리치니라.
49일 동남풍 공사: 당시 해전의 주역이었던 일본군 아끼야마(秋山) 중장은 세 번이나 꿈에서 발틱 함대가 대한해협을 통과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하며, 해전 당일에는 동남풍이 불어서 전략을 유리하게 전개하였다 한다. 일본인들은 이 바람을 자기들의 민족신이 도와준 것으로 알고 가미가제(神風)라 부른다.
※ 다음 이야기는 아끼야마 중장이 들려 준 러일전쟁의 비화(秘話)
일본 함대가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러시아 발틱 함대와 결전을 치르려 할 때의 이야기다. “잊어버리지도 않습니다. 1905년 5월 24일 한밤중이었습니다. 너무나 피곤해서 저는 사관실로 가서 의자에 주저앉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잠들어버리고 방안에는 저혼자 였습니다. 두 눈을 감고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저도 모르게 그만 잠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눈앞에 이상한 장면이 보였습니다.
쓰시마 해협의 전경이 눈앞에 보이고 발틱 함대가 두 줄로 줄지어 천천히 오고 있는 것이 아주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이젠 됐구나’ 하고 생각한 순간, 저는 번득 제 정신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영몽을 꾼 것은 이것으로 두 번째였으므로 저는 곧 이것은 틀림없이 신(神)의 계시라고 직감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되었구나,
발틱 함대는 두 줄로 늘어선 채 반드시 쓰시마 해협으로 들어온다, 여기에 대항하려면 어떻게 하면 된다는 계획이 곧 머리에 떠올랐던 것입니다. 드디어 27일 새벽이 되자, 무전으로 적의 함대가 접근해오고 있다는 소식이 전달되었습니다. 이리하여 그 유명한 대해전이 벌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놀랍게도 적의 함대의 배열은 사흘 전에 꿈에서 본 것과 조금도 다른 데가 없었습니다. 첫눈에 적의 함대를 본 순간, 저는 기쁘다고 할까 신기하다고 할까 고맙다고 할까 정말 뭐라고 형용키 어려운 기분이었습니다. 어쨌든 저로서는 일러전쟁 중에 두 번이나 거듭해서 이런 이상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막상 전쟁 보고서를 쓰려고 붓을 들었을 때는 자연이 ‘천우신조(天佑神助)에 의하여…’ 하고 서두를 쓰는 도리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었던 것이며 절대로 과장해서 쓴 것은 아니었습니다.” 출처: 아사노 키즈지로(淺野和三郞)의 동룡(冬龍)호웅의 『심령과학』(서음출판사, 1994)
道典 2:21) 이 세상은 신명조화(神明造化)가 아니고서는 고쳐 낼 도리가 없느니라. 옛적에는 판이 작고 일이 간단하여 한 가지 신통한 재주만 있으면 능히 난국을 바로잡을 수 있었거니와 이제는 판이 워낙 크고 복잡한 시대를 당하여 신통변화와 천지조화가 아니고서는 능히 난국을 바로잡지 못하느니라. 이제 병든 하늘과 땅을 바로잡으려면 모든 법을 합하여 써야 하느니라.
道典 4:7) 지난 임진왜란에 정란(靖亂)의 책임을 ‘최 풍헌(崔風憲)이 맡았으면 사흘 일에 지나지 못하고, 진묵(震黙)이 맡았으면 석 달을 넘기지 않고, 송구봉(宋龜峯)이 맡았으면 여덟 달 만에 끌렀으리라.’ 하니, 이는 선도와 불도와 유도의 법술(法術)이 서로 다름을 이름이라. 옛적에는 판이 작고 일이 간단하여 한 가지만 따로 쓸지라도 능히 난국을 바로잡을 수 있었으나 이제는 판이 넓고 일이 복잡하므로 모든 법을 합하여 쓰지 않고는 능히 혼란을 바로잡지 못하느니라.
道典 4:115) 姜太公이 用七十二候하여 使鬼神如奴之하고, 張子房이 用三十六計하여 使鬼神如友之하고, 諸葛亮은 用八陣圖하여 使鬼神如師之하니라
강태공은 칠십이후를 써서 귀신을 종처럼 부렸고, 장자방은 삼십육계를 써서 귀신을 친구처럼 부렸으며, 제갈량은 팔진도를 써서 귀신을 군사처럼 부렸느니라. 하루는 성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지금은 귀신이 사람의 법을 쥐고 있으나 앞세상에는 사람이 귀신의 법을 쥐게 되느니라.
道典 5:23) 계묘(癸卯 : 道紀 33, 1903)년 3월에 이제 조선 신명을 서양으로 보내어 역사(役事)케 하리라.” 하시니라. 이에 한 성도가 “조선 신명에게 서양을 맡기심은 무슨 까닭입니까?”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조선 신명을 서양으로 보내어 천지에 전쟁을 붙이는 일꾼으로 쓰려 하노라.” 하시니라
道典 5:166) 동양에서 서양 세력을 몰아내고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한 약소국을 건지려면 서양 열강 사이에 싸움을 일으켜야 하리라.
※ 서양 제국주의 세력들이 아시아, 아프리카의 약소 국가들을 식민지로 삼기 위해 잔악한 맹수처럼 달려들어 각축전을 벌이던 당시의 동양의 위급한 상황을 상제님께서는 누란累卵의 위기라고 말씀하였다.
道典 2:58) 조선의 대신명을 서양으로 보내심
계묘(癸卯 : 道紀 33, 1903)년 3월에 상제님께서 대공사를 행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제는 병든 천지를 바로잡아야 하느니라. 조선의 대신명(大神明)을 서양으로 보내 큰 난리를 일으켜, 선천의 악폐(惡弊)와 상극의 기세를 속히 거두어서 선경세계를 건설하리니, 장차 동서양을 비빔밥 비비듯 하리라.” 하시니라.
道典 5:7) 상씨름으로 판을 마치리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현하대세가 씨름판과 같으니 애기판과 총각판이 지난 뒤에 상씨름으로 판을 마치리라.” 하시고, 종이에 태극 형상의 선을 그리시며 “이것이 삼팔선이니라.” 하시니라.
여신女神 문화는 연구가 그런대로 되었다. 그 유적이 전 세계 수천 곳에 있고 우리나라에도 수백 군데에 있다. ‘매직Magic’이라는 언어도 마고에서 유래했다. 인간이 빛의 세계를 자유로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것이 본래 마술인데 이것은 마고 할머니의 조화법이다.
道典 5:7) 상씨름으로 판을 마치리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현하대세가 씨름판과 같으니 애기판과 총각판이 지난 뒤에 상씨름으로 판을 마치리라.” 하시고, 종이에 태극 형상의 선을 그리시며 “이것이 삼팔선이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씨름판대는 조선의 삼팔선에 두고 세계 상씨름판을 붙이리라. 만국재판소를 조선에 두노니 씨름판에 소가 나가면 판을 걷게 되리라.
인류 문화 속에서『도전(道典)』은 불경, 성경, 사서삼경처럼 경經이라는 언어를 붙일 수가 없다. 상제님은 이 도의 주재자, 절대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상제님의 진리 말씀을 성편한 책은 경經이라고 부를 수가 없고, 도경이라고 할 수도 없다. 도道의 원전原典, 『도전(道典)』이다.
道典 5:7) 상씨름으로 판을 마치리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현하대세가 씨름판과 같으니 애기판과 총각판이 지난 뒤에 상씨름으로 판을 마치리라.” 하시고, 종이에 태극 형상의 선을 그리시며 “이것이 삼팔선이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씨름판대는 조선의 삼팔선에 두고 세계 상씨름판을 붙이리라. 만국재판소를 조선에 두노니 씨름판에 소가 나가면 판을 걷게 되리라. 세속에 가구(假九)라는 노름판이 있어서 열다섯 수(數)가 차면 판몰이를 하는 것이 곧 후천에 이루어질 비밀을 세간에 누설(漏泄)한 것이니 내가 천지공사에 이것을 취하여 쓰노라.” 하시니라.
애기판: 조선을 두고 일러전쟁을 붙여(영국·프랑스가 훈수) 러시아의 세력을 몰아내신 공사이다. 이 공사에 의해 조화정부의 제1차 발현인 국제연맹이 1920년에 창설되었다.
총각판: 일본과 중국이 주역이 되고, 독일과 소련이 훈수한 중일전쟁(1937)으로 총각판의 서막이 올랐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이 발발하고 국제연합(1945)이 발족되었다.
상씨름: 남조선 도수에 의해 전개되는 남북한 대결 구도를 말한다. 남북한의 상씨름은 인류사의 상극의 모든 문제를 가름하는 최후·최상의 대결구도라는 의미와 역사성을 갖는다. 인류사의 총체적인 문제가 남조선 도수에 얽혀 있다.
씨름판에 소가 나가면: 1998년 6월 16일부터 세 차례에 걸쳐 1,501마리의 소가 판문점을 넘어 북한으로 갔다. 세계 상씨름의 무대인 삼팔선에 소가 나간 것은 상씨름판을 걷게 될 최후의 대결전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열다섯 수(數)가 차면 판몰이를 하는 것이: 우주1년을 지속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천지조화의 본원은 도서관(圖書館)이라는 말의 어원인 하도(河圖, 대우주가 펼쳐진 조판도)와 낙서(洛書, 상극의 질서로 인간과 만물을 키우는 우주 봄여름 조판도)의 중앙 ‘5·10土’이다. 음양 ‘5·10土’의 5수와 10수가 변화를 일으킬 가장 큰 수는 50(5×10(분열), 15( 5+10(통일)이다. 즉, 열다섯 수가 찬다는 것은 그 도수가 일으킬 수 있는 변화의 가장 큰 수인 50이 되면 판몰이 곧, 도세를 만회한다는 뜻이다.
道典 2:21) 이 세상은 신명조화(神明造化)가 아니고서는 고쳐 낼 도리가 없느니라. 옛적에는 판이 작고 일이 간단하여 한 가지 신통한 재주만 있으면 능히 난국을 바로잡을 수 있었거니와 이제는 판이 워낙 크고 복잡한 시대를 당하여 신통변화와 천지조화가 아니고서는 능히 난국을 바로잡지 못하느니라. 이제 병든 하늘과 땅을 바로잡으려면 모든 법을 합하여 써야 하느니라.
道典 4:7) 지난 임진왜란에 정란(靖亂)의 책임을 ‘최 풍헌(崔風憲)이 맡았으면 사흘 일에 지나지 못하고, 진묵(震黙)이 맡았으면 석 달을 넘기지 않고, 송구봉(宋龜峯)이 맡았으면 여덟 달 만에 끌렀으리라.’ 하니, 이는 선도와 불도와 유도의 법술(法術)이 서로 다름을 이름이라. 옛적에는 판이 작고 일이 간단하여 한 가지만 따로 쓸지라도 능히 난국을 바로잡을 수 있었으나 이제는 판이 넓고 일이 복잡하므로 모든 법을 합하여 쓰지 않고는 능히 혼란을 바로잡지 못하느니라.
道典 4:115) 姜太公이 用七十二候하여 使鬼神如奴之하고, 張子房이 用三十六計하여 使鬼神如友之하고, 諸葛亮은 用八陣圖하여 使鬼神如師之하니라
강태공은 칠십이후를 써서 귀신을 종처럼 부렸고, 장자방은 삼십육계를 써서 귀신을 친구처럼 부렸으며, 제갈량은 팔진도를 써서 귀신을 군사처럼 부렸느니라. 하루는 성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지금은 귀신이 사람의 법을 쥐고 있으나 앞세상에는 사람이 귀신의 법을 쥐게 되느니라.
道典 5:23) 계묘(癸卯 : 道紀 33, 1903)년 3월에 이제 조선 신명을 서양으로 보내어 역사(役事)케 하리라.” 하시니라. 이에 한 성도가 “조선 신명에게 서양을 맡기심은 무슨 까닭입니까?”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조선 신명을 서양으로 보내어 천지에 전쟁을 붙이는 일꾼으로 쓰려 하노라.” 하시니라
道典 5:166) 동양에서 서양 세력을 몰아내고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한 약소국을 건지려면 서양 열강 사이에 싸움을 일으켜야 하리라.
※ 서양 제국주의 세력들이 아시아, 아프리카의 약소 국가들을 식민지로 삼기 위해 잔악한 맹수처럼 달려들어 각축전을 벌이던 당시의 동양의 위급한 상황을 상제님께서는 누란累卵의 위기라고 말씀하였다.
道典 2:58) 조선의 대신명을 서양으로 보내심
계묘(癸卯 : 道紀 33, 1903)년 3월에 상제님께서 대공사를 행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제는 병든 천지를 바로잡아야 하느니라. 조선의 대신명(大神明)을 서양으로 보내 큰 난리를 일으켜, 선천의 악폐(惡弊)와 상극의 기세를 속히 거두어서 선경세계를 건설하리니, 장차 동서양을 비빔밥 비비듯 하리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는 일본을 내세워 서양제국주의 세력을 동양에서 몰라내기 위한 공사를 집행하게 되는데 그것은 러일전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러일전쟁에 이어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친 뒤 조선과 동양은 마침내 서양제국주의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서양 강대국들을 1차 세계대전이라는 자중지란에 몰아넣음으로써 그 힘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강대국이 강제로 병합한 약소국들이 해방되었다. 그 결과 러시아, 오스트리아,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속국 중 상당수가 1차 세계대전 후에 독립을 쟁취하였다. 힘의 논리로 약소국을 짓밟고 세력 팽창에 열을 올리던 제국주의 열강의 기세가 한풀 꺾이면서 동서양 사이에 세력 균형을 이루기 시작한 것이다.
※ 출처: 20세기 대사건들) 1900년 1월 1일 유럽 지도자들의 눈에는 세상이 그런데로 잘 돌아가고 있는 듯이 보였다. 유럽 대륙에는 30년 동안이나 평화가 유지되고 있었고 생활수준의 향상과 강대국간의 복잡한 동맹관계에 힘입어 앞으로도 평화는 지속될 듯이 보였다. 더우기 유럽은 세계의 확고 부동한 지배자 였다.
힘의 절정에 달해 있었다. 그러나 국제 정치의 지평선상에는 변화의 징조가 분명히 나타나고 있었다. 20세기를 접어들 무렵 유럽 국가가 아닌 2개의 국가가 세계적 강국으로 급속히 떠올랐다. 그것은 미국과 일본이었다. 출처: 20세기 대사건들
※ 네루(Jawaharlal Nehru,1889~1964): 19세기는 매우 흥미있는 시기다.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이 쏟아져 나온 기계문명이 급속히 발달한 시대였다... 유럽은 전세계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지위에 올라 있었다. 아시아는 유럽의 공격에 저항을 했지만 유럽의 군대가 갖고있는 새로운 무기의 위력과 성능 앞에서는 절망어린 탄식과 함께 무릎을 굻고 말았다.
아시아 여러나라에서는 군사적으로나 산업기술면에서 유럽에 완전히 뒤떨어진 것을 깨닫고 절망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20세기초 아시아의 정신에 커다란 영향을 준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러시아제국이 일본에게 패배한 일이었다.
아시아의 작은 일본이 유럽 최강국중의 하나를 이겼다는 것은 아시아에 있어서 이것은 기쁘고 신기한 일이었다. 일본은 서양의 침략과 맞서 싸울 아시아의 챔피언으로 떠올라 한동안은 동양의 큰 인기를 모았다. 아시아의 작은 일본이 유럽 최강국중의 하나를 이겼다는 것은 아시아에 있어서 이것은 기쁘고 신기한 일이었다. 일본은 서양의 침략과 맞서 싸울 아시아의 챔피언으로 떠올라 한동안은 동양의 큰 인기를 모았다.(Jawaharlal Nehru,1889~1964)
道典 2:31) 전명숙(전봉준장군)의 동(動)은 곧 천하의 난을 동케 하였느니라. 최수운은 내 세상이 올 것을 알렸고, 김일부는 내 세상이 오는 이치를 밝혔으며, 전명숙(전봉준)은 내 세상의 앞길을 열었느니라.
동학혁명의 발발 후 조선 정부는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하자 일본군이 따라 들어오면서 이 땅에서 청일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청일전쟁 10년 후에 다시 러일 전쟁이 발발하고 일본이 승리하게 된다. 이 러일 전쟁으로 일본이 제국주의 국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고, 아시아를 지배하려는 남하정책(南下政策)의 꿈이 좌절된 러시아는 팽창의 방향을 서쪽으로 터키와 발칸반도(Balkan peninsula)로 돌리게 되어 후일 서양세력들끼리 충돌하는 1차 세계대전(以西制西)의 불씨를 뿌리는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道典 2:31) 전명숙(전봉준장군)의 동(動)은 곧 천하의 난을 동케 하였느니라. 최수운은 내 세상이 올 것을 알렸고, 김일부는 내 세상이 오는 이치를 밝혔으며, 전명숙(전봉준)은 내 세상의 앞길을 열었느니라.
최수운은 내 세상이 올 것을 알렸고:
김일부는 내 세상이 오는 이치를 밝혔으며:
전명숙(전봉준)은 내 세상의 앞길을 열었느니라:
道典 2:31) 전명숙(전봉준장군)의 동(動)은 곧 천하의 난을 동케 하였느니라. 최수운은 내 세상이 올 것을 알렸고, 김일부는 내 세상이 오는 이치를 밝혔으며, 전명숙(전봉준)은 내 세상의 앞길을 열었느니라.
동학혁명의 발발 후 조선 정부는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하자 일본군이 따라 들어오면서 이 땅에서 청일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청일전쟁 10년 후에 다시 러일 전쟁이 발발하고 일본이 승리하게 된다. 이 러일 전쟁으로 일본이 제국주의 국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고, 아시아를 지배하려는 남하정책(南下政策)의 꿈이 좌절된 러시아는 팽창의 방향을 서쪽으로 터키와 발칸반도(Balkan peninsula)로 돌리게 되어 후일 서양세력들끼리 충돌하는 1차 세계대전(以西制西)의 불씨를 뿌리는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道典 2:31) 나는 정세(靖世)를 맡았노라
1 황제(黃帝)가 난(亂)을 지으므로 치우(蚩尤)가 큰 안개를 지어 이를 평정하였나니
2 난을 지은 사람이 있어야 다스리는 사람이 있느니라.
3 최수운은 동세(動世)를 맡았고 나는 정세(靖世)를 맡았나니
4 전명숙의 동(動)은 곧 천하의 난을 동케 하였느니라.
5 최수운은 내 세상이 올 것을 알렸고, 김일부는 내 세상이 오는 이치를 밝혔으며, 전명숙(전봉준)은 내 세상의 앞길을 열었느니라.
6 수운가사는 수운이 노래한 것이나, 나의 일을 노래한 것이니라.
7 일부가 내 일 한 가지는 하였느니라.
※ 전명숙(全明淑)은 전봉준장군의 자(字)이다.
道典5편118장) “조선은 원래 일본을 지도하던 선생국이었나니 배은망덕(背恩忘德)은 신도(神道)에서 허락하지 않으므로 저희들에게 일시의 영유(領有)는 될지언정 영원히 영유하지는 못하리라.”
道典5편52장) 조선 사람이 들어서 죽고 산다.
또 말씀하시기를 “일본 사람이 뭐 한다고 해도 조선 사람 가운데 조조 간신이 있어서 그놈들이 좌지우지하지, 일본 사람이 이 조선에 대해 무엇을 아느냐? 조선놈이 다 시켜서 그러는 것이다. 조선 사람이 들어서 죽고 산다.” 하시니라.
道典5:120] 해복혈(蟹伏穴) 기운을 일본 국운에 붙이심
병오(1906)년에 하루는 공사를 보시며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충청도 대흥(大興)에 해복혈(蟹伏穴)이 있으니 그 기운을 걷어 일본 국운에 붙이리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게(蟹)들이 구멍 밖으로 나와 각기 이리저리 헤매며 돌아다니다가는 사람에게 짓밟히거나 잡혀 죽기 쉽고, 게가 나온 빈 구멍을 막으면 게는 하릴없이 돌아들지 못하고 길이 막혀 오도가도 못하게 되나니 게의 집은 헛구멍이 되느니라." 하시니라
※ 게 구멍: 1945년 일본군은 대부분 본토에서 빠져 나와, 만주와 남태평양 등 여러 전선에 분산 배치되어 있었다. 그것이 마치 욱일기(旭日旗)와 흡사하여, 게가 자기 집에서 나와 사방으로 뻗어 있는 형상이었다. 이 성구는 일본이 패망하는 상황을 공사로 처결하신 내용이다.
일본이 성공치 못하는 이유
道典 5편295) 일본의 강렬한 땅기운을 제어해 주심
상제님께서 하루는 저녁 어스름 무렵이 다 되어 성도들을 데리고 태인(泰仁) 신방죽(神濠) 쇠부리깐에 가시니라. 상제님께서 한 성도에게 부를 그려 주시며 명하시기를 “불무간에서 불을 붙여다가 한 방향으로 사르라.” 하시거늘
그 성도가 명하신 대로 하였더니 상제님께서 “천기를 보라.” 하시니라. 이에 성도들이 하늘을 보니 산마루에 불빛이 반짝반짝하며 동쪽으로 돌아가거늘 상제님께서 큰 소리로 말씀하시기를 “신의 조화가 빠르긴 빠르도다!” 하시니라.
며칠 후에 상제님께서 “소식이 이렇게 둔해서야 쓰겠느냐.” 하시고 갑칠에게 명하시어 “전주 김병욱에게 가서 세상 소문을 들어 오라.” 하시므로
갑칠이 병욱의 집에 이르니 때마침 ‘일본 신호(神戶)에 큰 화재가 일어나서 피해가 많다.’ 하거늘, 갑칠이 돌아와 그대로 아뢰니 말씀하시기를 “일본은 너무 강렬한 지기(地氣)가 모여 있어 그 민족성이 사납고 탐욕이 많으며 침략열이 강한지라.
조선이 예로부터 그들의 침노(侵擄)를 받아 편한 날이 적었나니 그 지기를 뽑아 버려야 조선도 장차 편할 것이요 저희들도 또한 뒷날 안전을 누리리라. 그러므로 내가 그 지기를 뽑아 버리기 위해 전날 신방죽 공사를 본 것인데 신방죽과 어음(語音)이 같은 신호에서 화재가 일어난 것은 장래에 그 지기가 크게 뽑혀질 징조니라.” 하시니라. 참조: 고베 [神戶(신호)]
道典 5:52) 말씀하시기를 “일본 사람이 뭐 한다고 해도 조선 사람 가운데 조조 간신이 있어서 그놈들이 좌지우지하지, 일본 사람이 이 조선에 대해 무엇을 아느냐?
조선놈이 다 시켜서 그러는 것이다. 조선 사람이 들어서 죽고 산다.” 하시니라.
道典5:118] 조선은 원래 일본을 지도하던 선생국이었나니 배은망덕(背恩忘德)은 신도(神道)에서 허락하지 않으므로 저희들에게 일시의 영유(領有)는 될지언정 영원히 영유하지는 못하리라.
道典5:119] 일본 사람이 미국과 싸우는 것은 배사율(背師律)을 범하는 것이므로 장광(長廣) 팔십 리가 불바다가 되어 참혹히 망하리라.
상제님의 동방 땅 강세 선포
최수운선생은 ‘인간으로 강세하시는 상제님이신 천주님’을 모시라는 시천주(侍天主) 시대를 선언하였다. 이는 온 인류에게 후천 개벽세계를 여는 대도, 곧 무극대도(無極大道)가 조선 땅에서 나올 것을 선포하였다. 그가 비록 상제님의 천명은 다 이루지 못하였으나 5년 동안 상제님의 동방 땅 조선 강세와 후천개벽으로 열리는 새 세계를 천하에 알렸으니 그 장엄한 인류구원의 외침은 바로 이러하다.
“한울님이 내 몸 내서 아국운수 보전하네.” “호천금궐 상제님을 네가 어찌 알까 보냐.” “만고 없는 무극대도 이 세상에 날 것이니, 너는 또한 연천(年淺)해서 억조창생 많은 사람 태평곡 격양가(擊壤歌)를 불구에 볼 것이니 이 세상 무극대도 전지무궁 아닐런가.” “어화 세상 사람들아 무극지운(無極之運) 닥친 줄을 너희 어찌 알까 보냐.”시천주(侍天主) “열석 자 지극하면 만권시서 무엇하며…”.“무극대도 닦아 내니 오만년지 운수로다.” “십이제국 괴질운수 다시 개벽 아닐런가.”『용담유사(龍潭遺詞)』
1894년 갑오년 정월에 고부 군수 조병갑(趙秉甲)의 악정과 토색질에 분개한 농민들이 전봉준을 두령으로 하여 배들평의 말목장터에서 봉기하였다. 3월 20일에 무장(茂長)에서 기포(起包)한 동학 농민군은 백산으로 본진을 옮기고 전봉준을 동도대장(東徒大將)으로 추대한 뒤 호남창의대장소(湖南倡義大將所)의 깃발을 올렸다.
이에 전라도 감영의 관군이 동학군 본진을 향해 진군하매 황토현(黃土峴)에서 양 진영이 맞닥뜨려 대치하니 이 때 태인 강삼리(江三里)에 사는 열여섯 살 소년 문남용(文湳瀧)과 정읍 대흥리에 사는 열다섯 살 소년 차경석(車京石)이, 각기 접주인 중형(仲兄) 문선명(文善明)과 아버지 차치구(車致九)를 따라 이 전투에 참가하니라.
차경석(車京石, 1880∼1936): 본관 연안(延安). 자(字) 윤홍(輪洪), 호는 월곡(月谷). 동학 접주였던 차치구의 장남으로 슬하에 3남 5녀를 두었다.
道典 3:180) 5월 17일에 상제님께서 형렬의 집을 떠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길이 길행(吉行)이라. 한 사람을 만나려 함이니 장차 네게 알리리라.” 하시고, 용암리(龍岩里) 물방앗간에 머무르시다가 그 앞 주막에서 정읍 사람 차경석(車京石)을 만나시니 당년 28세로 구척장신에 용모가 준수한 젊은이라. 원래 경석은 동학 신도로서 일찍이 일진회 전북 총대(總代)를 지낸 일이 있더니, 이 날은 재산 문제로 송사하러 정읍에서 전주로 가는 길이더라.
경석이 용암리 주막에서 점심을 먹고 떠나려 할 즈음 상제님께서 대삿갓에 풀대님 차림으로 김자현 등 두어 사람을 데리고 들어오시거늘
경석이 상제님을 뵈니 의표(儀表)는 소탈한 가운데 씩씩한 기운을 띠시고, 언어동지(言語動止)는 순진하고 꾸밈이 없으시며 안광(眼光)이 사람을 쏘는 듯하여 감히 똑바로 볼 수가 없더라.
사람을 대하여 정겹게 말씀을 나누시면 마치 봄바람이 온 들에 가득 찬 듯하고, 일의 사리를 밝히심에는 대하(大河)가 물결치듯 풀어 놓으시고, 말씀의 운치는 너그럽고 크시어 천둥이 구르는 듯하며 모든 행동하심이 호호탕탕하여 폭 잡을 수가 없는지라. 경석이 절로 마음이 끌리고 상제님의 기품에 취해 말씀을 청하니, 상제님께서 온화하게 대답하시고 술을 드시다가 닭국 한 그릇을 경석에게 권하시니라.
경석이 받으매 어디선가 벌 한 마리가 날아와 국에 빠지거늘 경석이 수저를 멈추고 혹 상서롭지 못한 일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벌은 규모 있는 벌레니라.” 하시니라.
경석이 여쭈기를 “무슨 업을 하십니까?” 하니 웃으며 말씀하시기를 “의원 노릇을 하노라.” 하시고, 경석이 다시 “어느 곳에 머무르십니까?”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나는 동역객(東亦客) 서역객(西亦客) 천지무가객(天地無家客)이로다.” 하시니라. 대저 경석이 상제님의 거주지를 여쭌 것은 뒷날 찾아뵈려 한 것인데 이렇게 말씀하시니 다시 찾기가 어렵겠으므로 떠나지 않기로 결심하고, 이왕에 상제님의 지식을 시험하고자 하여 다시 “어떻게 하면 인권(人權)을 많이 얻을 수 있습니까?” 하고 여쭈니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폐일언(蔽一言)하고 욕속부달(欲速不達)이니라.” 하시니라. 이에 경석이 아뢰기를 “자세한 뜻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상제님께서 일러 말씀하시기를 “사람 기르기가 누에 기르기와 같아서 일찍 내이나 늦게 내이나 먹이만 도수에 맞게 하면 올릴 때에는 다 같이 오르게 되나니, 이르고 늦음이 사람의 공력에 있느니라.” 하시니라.『보천교연혁사』
道典 3:181) 경석의 이번 전주 길은 세무관과 송사할 일이 있어 서류를 가지고 가는 길이더니 경석이 서류를 내어 보이며 여쭈기를
“세 사람이 모이면 관장(官長)의 공사를 처결한다.’ 하오니 청컨대 이 일이 어떻게 될지 판단하여 주십시오.” 하거늘, 상제님께서 그 서류를 소리내어 읽으신 뒤에 말씀하시기를 “이 송사는 그대에게 유리하리라. 그러나 이 송사로 인하여 피고(被告)의 열한 식구는 살길을 잃게 되리니, 일의 곡직(曲直)을 불문하고 대인으로서는 차마 할 일이 아니니라. 남아가 반드시 활인지기(活人之氣)를 띨 것이요, 살기(殺氣)를 띰은 옳지 못하니라.” 하시니라.
이에 경석이 크게 감복하여 말하기를 “선생님의 말씀이 지당하오니 이 길을 작파하겠습니다.” 하고 즉시 그 서류를 불사르니라. 이 때 경석은 동학 신도로서 손병희를 따르다가 그 처사에 불만을 품고 다시 길을 바꾸려던 참이라. 이 날 상제님을 뵙고 모든 거동이 범속과 다름을 이상히 여겨 떠나지 않고 날이 저물기를 기다려 상제님의 뒤를 따라가니 곧 용암리 물방앗간이라. 경석이 상제님의 말씀을 들을수록 마음이 끌리어 그 자리에서 상제님을 모시겠다고 간청하되 상제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네가 나를 따르려면
상제님께서 숙소를 김치경(金致京)의 용암리 물방앗간에 정하시니 음식이며 잠자리며 모든 것이 누추하기 이를 데 없어 여느 사람도 견디기 어려워하는데, 경석이 이러한 고초를 겪으면서도 떠나지 아니하고 상제님을 ‘정읍의 자기 집으로 모시겠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진노하시어 큰 소리로 꾸짖으시기를 “나는 너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노라. 어서 내 앞에서 썩 물러가라, 이놈아!” 하시니라.
김치경(金致京, ?∼1921): 본관 경주. 부인 박씨와의 사이에 사유(士有, 1895년생) 등 2남 2녀를 두었다.
상제님께서 경석이 떠나지 않음을 괴로워하시며 수차 물러가기를 재촉하시되, 경석이 듣지 않고 계속 자기 집으로 함께 가시기를 간청하니 그 때마다 혹 성을 내시고 욕을 하시며 쫓아내기도 하시는데, 경석이 보기에는 그러한 모든 일이 더욱 범상치 않을 뿐 아니라. 수운가사(水雲歌詞)에 있는 ‘여광여취(如狂如醉) 저 양반을 간 곳마다 따라가서 지질한 그 고생을 뉘로 대해 그 말하며’ 하는 구절이 생각나매, 떠나지 않고 열흘 동안을 머물면서 제자가 되기를 굳이 청하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이르시기를 “네가 나를 따르려면 모든 일을 전폐하고 오직 내가 가르치는 바에만 일심(一心)하여야 할지니, 이제 돌아가서 모든 일을 정리하고 6월 초하룻날 다시 이곳으로 찾아오라.” 하시니라.
경석이 비로소 하직하고 집에 돌아와 아우들을 모아 놓고 상제님을 만난 일과 전주 송사를 작파한 일을 말하며, “너희들, 사람 생명이 크냐, 돈이 크냐? 나는 사람을 죽일 수가 없어 그냥 돌아왔노라. 이제 나는 선생님을 따라 사람 살리는 공부를 하려 하노라.” 하고 아우들을 설득하더니, 드디어 모든 일을 정리하고 6월 초하룻날에 다시 용암리에 와서 상제님을 뵙고 정읍으로 가시기를 간청하니라.
네가 나를 길물로 끌어들이는구나
이 날 밤에 상제님께서 풀밭에서 주무시다가 닭이 운 뒤에 일어나시어 말씀하시기를 “잘못 풀밭에 누웠구나. 왜 일찍 깨우지 않았느냐.”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돌 위에서 주무시기도 하고 들판의 농부들과 한가로이 말씀을 나누기도 하시니 경석이 뒤따르며 지성으로 모시니라.
상제님께서 계속 경석의 추종을 불허하시다가 사흘 동안을 지내신 뒤에야 비로소 허락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일찍이 목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고생하다가 겨우 헤어나 발목물에 서 있는데, 네가 다시 나를 깊은 길물로 끌어들이는구나.”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일진회가 일어난 뒤로 삿갓을 쓰시다가 이 날부터 의관을 갖추시고 경석을 데리고 물방앗간을 떠나 정읍으로 가시니라.
이 때 원평에 이르시어 군중을 향해 말씀하시기를 “이 길은 남조선(南朝鮮) 뱃길이니 짐을 채워야 떠나리라.” 하시고, 한 주점에 들어가시어 모든 행인을 불러 술을 나누어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길은 성인(聖人) 다섯을 낳는 길이로다.” 하시니 사람들은 그 뜻을 알지 못하더라.
다시 길을 떠나시며 말씀하시기를 “대진(大陣)은 하루에 30리씩 가느니라.” 하시니, 경석이 명을 받들고 일정을 헤아려 고부 솔안(松內) 최씨 재실에 사는 친구 박공우(朴公又)에게로 상제님을 모시거늘, 공우 또한 동학 신도로서 마침 49일 동안 기도하는 중이더라.
박공우(朴公又, 1876∼1940): 본관 밀양(密陽). 호 인암(仁庵). 세 명의 부인과 혼인하여 5남 5녀를 두었다. 키가 180cm 가 넘었으며 풍채가 당당하였고, 음성은 사방에 울릴 정도로 웅장하였다. 배포가 크고 뚝심이 좋았으며, 상제님께서는 특히 그의 의로움을 높이 평가하셨다. 원평에서 65세로 작고하였다.
道典 3:185) 내가 이르는 곳을 천지에 알려야
이튿날 상제님께서 솔안을 떠나 정읍 대흥리(大興里)로 가실 때 공우를 돌아보시며 말씀하시기를 “만날 사람 만났을 적에….” 하시니
공우가 문득 동학가사에 있는 ‘만나기만 만나 보면 너의 집안 운수로다.’라는 구절이 깨달아져 그 즉시 상제님을 따라나서니라. 이 날 대흥리 경석의 집에 이르시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르는 곳을 천지에 알려야 하리라.” 하시고
글을 써서 서쪽 벽에 붙이시니 갑자기 우레가 크게 일어나거늘 “빠르기도 하다.” 하시고 그 글을 떼어 무릎 밑에 넣으시니 우레가 곧 그치는지라. 공우는 크게 놀라 감복하고, 마을 사람들은 대낮에 난데없이 우렛소리가 크게 일어나므로 이상히 여기니라.
우레를 거두시고 경석에게 물으시기를 “지난 갑오년 겨울에 이 집에서 세 사람이 동맹한 일이 있었느냐?” 하시니 경석이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하거늘, 다시 “그 일로 인하여 모해자의 밀고로 너의 부친이 해를 입었느냐?” 하고 물으시니 경석이 울먹이며 “그러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니라. 상제님께서 또 물어 말씀하시기를 “너의 형제들이 그 모해자에게 큰 원한을 품어 복수하기를 도모하느냐?” 하시니, 경석이 아뢰기를 “자식의 도리로 어찌 복수할 마음을 갖지 아니하겠습니까?” 하거늘
이에 상제님께서 일러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복수할 마음을 품고 있음을 너의 부친이 크게 걱정하여 나에게 고하니 너희들은 마음을 돌리라. 이제는 악을 선으로 갚아야 할 때니라. 만일 악을 악으로 갚으면 되풀이 되풀이로 후천에 악의 씨를 뿌리는 것이 되느니라. 너희들이 나를 따르려면 먼저 그 마음을 버려야 할지니 잘 생각하라.” 하시고, “너희들은 선을 행하고 공을 세우라.” 하시니라.
이에 경석이 세 아우를 데리고 별실에 들어가 서로 위로하며 그 원한을 풀기로 언약하고 그대로 아뢰니, 말씀하시기를 “그러면 뜰 밑에 짚을 펴고 청수 한 동이를 모셔 놓고, 그 청수를 향하여 너의 부친을 대한 듯이 마음을 돌렸음을 고백하라.” 하시니라. 이에 경석이 명하신 대로 행하니 사형제가 설움이 북받쳐서 청수동이 앞에서 크게 울거늘, 상제님께서 이르시기를 “너의 부친이 너무 슬피 우는 것을 오히려 불쾌히 여기니 그만 그치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이로부터 한동안 대흥리 차경석의 집에 머무르시며 공사를 행하시니라.
천지신명들이 상제님을 알현할 때
상제님께서 9년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행하시는 동안 경석과 공우가 신안(神眼)이 열리어 보니, 천지신명들이 상제님께 배알할 때는 반드시 반천무지(攀天撫地)식으로 사배(四拜)를 올리고 상제님께서는 읍(揖)으로 대하시니라.
반천무지(攀天撫地) 사배(四拜): 한민족이 천제를 올리기 시작한 상고시대부터 행하던 예법으로 하늘을 받들고, 땅을 어루만지는 절법으로 하느님을 받드는 최상의 예법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합덕하는 이치가 담겨 있다. 천지 조화기운을 받아 내리고 천지이법과 하나 되기 위해 사배를 드리는 것이다.
道典 3:186) 차경석의 집안은 아버지 차치구(車致九)가 일찍이 동학을 믿어 갑오년에 동학군을 거느리고 혁명에 참가하였다가 불의에 패망하여 죽음을 당한 이후로 가세가 기울어 형편이 빈한하더니, 상제님을 모실 무렵에는 끼니조차 잇기 어려워 경석의 제수가 한 동네에 잘사는 신(申)씨네에서 밥품을 파니라.
차치구(車致九, 1851∼1894): 갑오년 동학혁명 당시 정읍에서 5천여 명을 거느리고 기포한 동학군의 지도자. 전봉준이 태인 전투를 끝으로 부하 십여 명을 데리고 순창 피노리에 가서 몸을 숨길 때 동행하였다.
차치구(車致九)의 죽음: 차치구는 피노리에서 정읍 입암면 국사봉으로 피신했으나 관군이 친구 부인을 통해 피신처를 알아내자 스스로 붙잡혀 당시 흥덕 군수 윤석진에 의해 죽음을 당하였다.
차경석의 아우 윤칠(輪七)은 근동(近洞)에서 주먹대장으로 유명한데 어려운 형편에 상제님까지 모시게 됨을 싫어하여 “동학한다고 집안이 망했는데 또 이상한 사람을 끌어들여 집안을 아주 망치려 한다.” 하고 불평을 하며 돌아다니거늘, 경석이 생각하되 자기가 청하여 모신 마당에 공궤(供饋)가 조악함도 민망하거니와 아우의 무례로 인하여 상제님을 뵙기가 더욱 송구스럽더라.
차윤칠(車輪七, 1884∼1920): 족보명 병국(炳國). 부인 김해 김씨 사이에 1남 용민(鏞民)을 두었다.
경석의 아내 이정숙(李貞淑, 1887∼1955): 본관 전주. 부 용길(龍吉)과 모 이씨의 2녀. 담양 출생. 집안사람이 동학 관계로 알게 된 경석을 중매하여 15세(1901)에 경석과 혼인하였다.
道典 5:204) 25일 새벽이 되매 성도들을 정좌케 하시고 각기 종이 한 조각씩을 나누어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후천 음양 도수를 보려 하니 각자 마음에 있는 대로 점 하나에 아내 하나씩 표하여 점쳐 들이라.” 하시고, 점 찍은 표를 함에 넣게 하시어 상제님께서 손으로 휘저어 한 장씩 뽑으시니 경석은 열두 점이요, 응종은 두 점이요, 경수는 석 점이요, 내성은 여덟 점이요, 공신은 한 점이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홉 점은 없으니 일남구녀란 말을 알 수 없도다.” 하시고, 경석에게 물으시기를 “너는 웬 아내를 열둘이나 원하느냐?” 하시니
차경석이 대답하기를 “십이제국에 한 명씩 두고 달마다 한 나라씩 순유하면 남아 행락(行樂)의 극치일까 하옵니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말이 그럴 듯하도다.” 하시니라.
道典 5:178) 전봉준 해원(解寃) 공사
1 이튿날 농바우를 떠나 피노리 이화춘(李化春)의 집에 이르시어 성도들로 하여금 누렁개 한 마리를 잡고 술 한 동이를 받아 오게 하신 뒤에
2 “뒷산 솔밭에서 가장 큰 소나무 한 그루를 베어 오라.” 하시고 “남방(南方) 황토(黃土)를 파 오라.” 하시니라.
3 또 백지 석 장을 청(靑), 홍(紅), 황(黃) 삼색으로 물들여 그 가장자리를 서로 이어 붙인 다음 베어 온 소나무 윗가지에 달아매시고
4 다른 백지 석 장에 각기 시천주주(侍天主呪)를 쓰시어 황토를 조금씩 싸서 소나무에 함께 내려 다신 뒤에 집 앞에 세우시니 마치 깃대와 같은지라
5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전명숙이 이곳에서 잡혔는데 사명기(司命旗)가 없어 한을 품었나니 이제 기를 세워 해원시키려 하노라.
6 또 개장국은 세상에서 먹는 음식인데 도가에서는 먹지 않았으므로 이 또한 한이 붙어 있나니
7 이제 이 국을 먹는 것은 해원 겸 개정(改政)하려 함이로다.” 하시고 성도들과 나누어 잡수신 뒤에
8 화춘에게 명하시어 돈 서른석 냥을 준비하게 하시고 모든 물품을 둔 곳에 같이 두게 하시니라.
9 공사를 마치신 후 성도들을 모두 돌려보내시고 오직 공신만 머물게 하시니라.
전명숙(전봉준)이 이곳에서 잡혔는데: 태인에서 입암산성을 거쳐 12월 2일 순창 쌍치면 피노리까지 와 숨어 있던 전봉준은 부하 김경천의 밀고로 체포되었다.
사명기(司命旗)가 없어 한을 품었나니: 사명기는 임금이 각 영의 대장에게 내리는 지휘기다. 백의한사인 전명숙에게 사명기가 있을 리 만무하다. 인간 삶의 무대인 역사 현실에 뛰어드신 인존천주님께서 직접 사명기를 내려 주시는 이 의식은, 기존의 동학과 전명숙에 대한 일체의 편견과 오해를 불식케 한다.
道典 4:16) 영원한 화평의 바탕, 해원(解寃)
1 이제 예로부터 쌓여 온 원(寃)을 풀어 그로부터 생긴 모든 불상사를 소멸하여야 영원한 화평을 이루리로다.
2 선천에는 상극의 이치가 인간 사물을 맡았으므로 모든 인사가 도의(道義)에 어그러져서
3 원한이 맺히고 쌓여 삼계에 넘치매 마침내 살기(殺氣)가 터져 나와 세상에 모든 참혹한 재앙을 일으키나니
4 그러므로 이제 천지도수(天地度數)를 뜯어고치고
5 신도(神道)를 바로잡아 만고의 원을 풀며
6 상생의 도(道)로써 선경의 운수를 열고
7 조화정부를 세워 함이 없는 다스림과 말 없는 가르침으로 백성을 교화하여 세상을 고치리라.
道典 2:24) 이 때는 해원시대(解寃時代)
이 때는 해원시대(解寃時代)라. 이제 앞으로 모든 참혹한 일이 생겨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신명을 조화(調和)하여 만고의 원을 끄르고
상생의 도로써 조화도장(造化道場)을 열어 만고에 없는 선경세계를 세우고자 하노라.
인류의 원한의 뿌리, 요임금의 아들 단주
이제 원한의 역사의 뿌리인 당요(唐堯)의 아들 단주(丹朱)가 품은 깊은 원(寃)을 끄르면, 그로부터 수천 년 동안 쌓여 내려온 모든 원한의 마디와 고가 풀릴지라. 대저 당요가 그 아들 단주를 불초(不肖)하다 하여 천하를 맡기지 않고 그의 두 딸과 천하를 순(舜)에게 전하여 주니
단주의 깊은 원을 그 누가 만분의 하나라도 풀어 주리오. 마침내 순이 창오(蒼梧)에서 죽고 두 왕비는 소상강(瀟湘江)에 빠져 죽었느니라.
그러므로 단주 해원을 첫머리로 하여 천지대세를 해원의 노정으로 나아가게 하노라. 이제 사람도 이름 없는 사람이 기세(氣勢)를 얻고, 땅도 이름 없는 땅에 길운(吉運)이 돌아오느니라.
道典 3:251) 이 때는 해원시대(解寃時代)라
1 하루는 공우를 데리고 태인 돌창이 주막에 들르시어 경어로써 술을 청해 잡수시고
2 공우에게 “술을 청해 먹으라.” 하시거늘 공우는 습관대로 낮은말로 술을 청해 먹으니
3 상제님께서 이르시기를 “이 때는 해원(解寃)시대라.
4 상놈의 운수니 반상(班常)의 구별과 직업의 귀천(貴賤)을 가리지 아니하여야 속히 좋은 세상이 되리니 이 뒤로는 그런 언습(言習)을 버릴지어다.” 하시니라.
道典 3:272) 성도들을 평하심
1 10월에 약방에 계실 때 하루는 모든 성도들에게 “각기 소원을 써 오라.” 하시어 낱낱이 살피시니 대개 ‘출장입상(出將入相)’이 많은지라
2 상제님께서 웃으며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나를 만나서 해원하지 못하면 한이 되리라.” 하시니라.
道典 2:136) “이 때는 해원시대라. 남녀의 분별을 틔워 각기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풀어 놓았으나, 이 뒤에는 건곤(乾坤)의 위차(位次)를 바로잡아 예법을 다시 세우리라.” 하시니라.
道典 6:133) 하루는 글을 쓰시니 이러하니라.
充者는 慾也라
충자 욕야
以惡充者도 成功하고 以善充者도 成功하니라
이악충자 성공 이선충자 성공
채운다는 것은 욕심이라.
악으로 채우는 자도 성공(자기 충족)하고
선으로 채우는 자도 성공(자기 충족)하느니라.
양이 적은 자에게 지나치게 많이 주면 배 터져 죽고, 양이 큰 자에게 너무 적게 주면 곯아 죽나니
각기 기국(器局)에 맞추어 주리라.
道典 4:14) 신농씨와 태공의 큰 은혜
1 신농씨(神農氏)가 농사짓는 법과 의술로 천하 만세를 윤택하게 하였고 태공(太公)이 병법과 정치로써 천하 만세에 은혜를 주었나니
2 이제 하늘과 땅이 성공하는 가을철을 맞아 천지간의 모든 신들이 그들을 높이 받들어 모시느니라.
주자를 칭찬하심
3 유가(儒家)의 인물들이 흠이 많으나 주회암(朱晦庵)은 흠잡을 데가 없느니라.
진묵대사를 선경 건설에 역사케 하심
4 진묵이 천상에 올라가 온갖 묘법(妙法)을 배워 내려 좋은 세상을 꾸미려 하다가
5 김봉곡에게 참혹히 죽은 뒤에 원을 품고 동양의 도통신을 거느리고 서양에 건너가서 문명 개발에 역사(役事)하였나니
6 이제 그를 해원시켜 고국으로 돌아와 선경 건설에 역사하게 하리라.
道典 4:116) 장수 해원 공사
1 하루는 무주에서 전주로 오실 때 진안 봉촌(鎭安 鳳村)에 있는 어느 산의 한 무덤 앞에서 호연을 안고 앉으시어 주문을 읽으시니 갑자기 무덤이 들썩들썩하거늘
2 호연이 “아이고, 저기서 무엇 나오네.” 하고 계속 지켜보니 관운장과 같이 생긴 장수가 흙을 떨며 나오더라.
3 잠시 후 장수가 자리에 앉으니 상제님께서 “괜찮으니 누워 있거라.
4 이 다음에 때가 되어 우리가 일을 할 때는 죽었다 말고 혼이라도 애를 써라. 그리하면 네 원을 풀어 주마.” 하시니라.
5 이에 장수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드니 다시 말씀하시기를 “아무리 죽었다 해도 넌들 몸뚱이에 쓸개가 없을 것이냐?
6 네 부하들이 다 죽은 것을 애석하게 여겨 한을 품지 말아라.” 하시니 장수가 도로 벌떡 드러눕거늘 땅을 다시 다독거려서 덮어 주시니라.
7 하루는 호연에게 말씀하시기를 “일이 되면 너도나도, 죽었던 송장도 다 일어난다.
8 장수들이 나오는데 그 가운데에 인자가 있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4:126) 먹장난하다 한 맺고 죽은 신명을 위로하심
1 하루는 경석에게 “검은 두루마기를 가져오라.” 하여 입으시고, 또 속옷을 벗으시고 긴 수건으로 허리를 매신 뒤에
2 여러 성도들에게 물으시기를 “이리하면 일본 사람과 같으냐?” 하시니 모두 대답하기를 “같습니다.” 하니라.
3 이에 다시 벗으시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려서 서당에 다닐 때에 한 아이와 더불어 먹장난을 하였는데, 그 아이가 지고 울며 돌아가서는 다시 오지 않고 다른 서당에 다니다가 그 후에 병들어 죽었거늘
4 그 신명이 그 일로 원한을 품었다가 이제 나에게 와서 해원시켜 주기를 원하므로 ‘어떻게 하면 해원이 되겠느냐?’ 물으니
5 그 신명이 내가 일본옷을 싫어하는 줄 알고 ‘일본옷을 입으라.’ 하므로 내가 이제 그 신명을 위로함이로다.” 하시니라.
道典 8:32) 이치 없는 법은 없다
1 하루는 상제님께서 어느 마을을 지나시는데 한 집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거늘
2 정작 제사 받는 신명은 마당을 겉돌고 다른 신명이 들어가 제사상을 받고 있는지라
3 상제님께서 그 신명을 부르시어 “저 사람의 날인데 어찌 네가 먹느냐?” 하시니
4 그가 답하기를 “저 사람이 살아생전에 저의 재산을 모두 탕진시킨 채 갚지 못하였는데
5 죽어서도 그 은혜를 갚지 아니하니 오늘은 비록 자기 날이라고 하나 저의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하니라.
6 후에 상제님께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세상에 이치 없는 법은 없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4:145) 천지신명이 신농씨와 태공의 은혜에 보답한다
1 신농씨가 온갖 풀을 맛보아 의약을 짓고 농사짓는 법과 백곡을 정함으로써 천하가 그 은택(恩澤)을 입어 왔으나
2 그 공덕을 앙모하여 보답하지 않고 간혹 의원가에 ‘신농유업(神農遺業)’이라 써 붙일 뿐이며
3 강태공이 제잔금폭(除殘禁暴)의 묘략과 부국강병(富國强兵)의 술법을 전수함으로부터 천하가 그 덕으로 대업을 이루었으되
4 그 은덕을 보답지 않고 다만 디딜방아에 동티막이로 ‘경신년 모월 모일 강태공 조작(姜太公造作)’이라 써 붙일 뿐이니 어찌 도의(道義)에 합당하리오.
5 또한 강태공이 십 년 경영으로 삼천육백 개의 낚시를 벌였음이 어찌 한갓 주(周)나라를 일으켜 봉작(封爵)을 얻기 위함이었으랴.
6 이를 널리 후세에 전하려 하였음이니라.
7 이제 해원시대를 당하여 모든 신명이 신농씨와 태공의 은혜에 보답하게 되리라.
강태공(姜太公, 서기전 1122 ~서기전 1249): 이름은 상(尙). 신농의 후손으로 주(周)나라 문왕(文王)을 보필하여 천하를 통일하고 제(齊)나라를 봉작 받았으며, 신교(神敎) 문화를 중국 문화에 뿌리내리는 데 일조하였다.
강태공이 제잔금폭(除殘禁暴)의 묘략: 악을 제거하고 포악함을 금지함.
경신년 모월 모일 강태공 조작(姜太公造作)’이라 써 붙일 뿐이니: 강태공이 태어났다고 하는 연월일시. 예로부터 잡신을 물리친다는 제살(除煞)의 한 풍속으로 디딜방아에 이 글을 붙였는데 이는 금극목(金克木)의 원리로, 강한 금기(金氣)를 지닌 경금(庚金)과 신금(申金)으로써 목기(木氣)에 의한 동티를 막으려는 것이었다.
道典 4:19) 선경(仙境)을 세우려면
1 천지를 개벽하여 선경을 세우려면 먼저 천지도수를 조정(調整)하고
2 해원으로써 만고신명(萬古神明)을 조화하며
3 대지강산(大地江山)의 정기(精氣)를 통일해야 하느니라.
지운(地運) 통일은 부모산으로부터
4 전주 모악산(母岳山)은 순창 회문산(回文山)과 서로 마주서서 부모산이 되었나니
5 부모가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모든 가족을 양육 통솔하는 것과 같이 지운(地運)을 통일하려면 부모산으로부터 비롯해야 할지라.
6 그러므로 이제 모악산으로 주장을 삼고 회문산을 응기(應氣)시켜 산하의 기령(氣靈)을 통일할 것이니라.
후천 선경시대를 여는 사명당(四明堂) 발음 공사
7 또 수운의 글에 ‘산하대운(山河大運)이 진귀차도(盡歸此道)라.’ 하고
8 궁을가에 ‘사명당(四明堂)이 갱생(更生)하니 승평시대(昇平時代) 불원(不遠)이라.’ 하였음과 같이
9 사명당을 응기시켜 오선위기(五仙圍碁)로 천하의 시비를 끄르며
10 호승예불(胡僧禮佛)로 천하의 앉은판을 짓고
11 군신봉조(群臣奉朝)로 천하의 인금(人金)을 내며
12 선녀직금(仙女織錦)으로 천하 창생에게 비단옷을 입히리니
13 이로써 밑자리를 정하여 산하대운을 돌려 발음(發蔭)케 하리라.
모악산과 회문산은 간동방(艮東方)의 부모산이자 후천 새천지의 부모산이다.
궁을가에 ‘사명당(四明堂)이 갱생(更生)하니 사명당: 지구의 지기가 최종적으로 응축되어 있는 곳으로, 오선위기·선녀직금·호승예불·군신봉조의 4대 혈처(穴處)를 말한다. 소우주인 인간의 몸에 천지기운이 그대로 내려와 기혈이 운행하듯, 거대한 영적 생명체인 땅에도 기령의 혈맥이 흐르고 있으며 이는 신도(神道)와 함께 변화의 근본 요인(要因)이 된다. 상제님께서는 이러한 땅 속의 기령을 취해 인류사를 바로잡는 동력(動力)으로 쓰셨다. 이 사명당 기운이 발동되면서 유불선 기독교의 이상이 실현된다.
오선위기. 다섯 신선이 바둑판을 에워싸고 있는 형국.
호승예불. 늙은 중이 예불 올리는 형국.
군신봉조. 신하들이 왕명을 받드는 형국.
선녀직금. 선녀가 비단을 짜는 형국.
道典 2:30) 마테오 리치 대성사의 큰 공덕
1 이마두(利瑪竇)는 세계에 많은 공덕을 끼친 사람이라. 현 해원시대에 신명계의 주벽(主壁)이 되나니 이를 아는 자는 마땅히 경홀치 말지어다.
2 그러나 그 공덕을 은미(隱微) 중에 끼쳤으므로 세계는 이를 알지 못하느니라.
3 서양 사람 이마두가 동양에 와서 천국을 건설하려고 여러 가지 계획을 내었으나 쉽게 모든 적폐(積弊)를 고쳐 이상을 실현하기 어려우므로 마침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4 다만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틔워 예로부터 각기 지경(地境)을 지켜 서로 넘나들지 못하던 신명들로 하여금 거침없이 넘나들게 하고
5 그가 죽은 뒤에는 동양의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돌아가서 다시 천국을 건설하려 하였나니
6 이로부터 지하신(地下神)이 천상에 올라가 모든 기묘한 법을 받아 내려 사람에게 ‘알음귀’를 열어 주어
7 세상의 모든 학술과 정교한 기계를 발명케 하여 천국의 모형을 본떴나니 이것이 바로 현대의 문명이라.
8 서양의 문명이기(文明利器)는 천상 문명을 본받은 것이니라.
하늘의 모든 신성과 부처와 보살이 하소연하므로
9 그러나 이 문명은 다만 물질과 사리(事理)에만 정통하였을 뿐이요, 도리어 인류의 교만과 잔포(殘暴)를 길러 내어 천지를 흔들며 자연을 정복하려는 기세로 모든 죄악을 꺼림 없이 범행하니
10 신도(神道)의 권위가 떨어지고 삼계(三界)가 혼란하여 천도와 인사가 도수를 어기는지라
11 이마두가 원시의 모든 신성(神聖)과 불타와 보살들과 더불어 인류와 신명계의 큰 겁액(劫厄)을 구천(九天)에 있는 나에게 하소연하므로
12 내가 서양 대법국 천개탑에 내려와 이마두를 데리고 삼계를 둘러보며 천하를 대순(大巡)하다가 이 동토(東土)에 그쳐
13 중 진표(眞表)가 석가모니의 당래불(當來佛) 찬탄설게(讚歎說偈)에 의거하여 당래의 소식을 깨닫고 지심기원(至心祈願)하여 오던 모악산 금산사 미륵금상에 임하여 30년을 지내면서
14 최수운(崔水雲)에게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내려 대도를 세우게 하였더니
15 수운이 능히 유교의 테 밖에 벗어나 진법을 들춰내어 신도(神道)와 인문(人文)의 푯대를 지으며 대도의 참빛을 열지 못하므로
16 드디어 갑자(甲子 : 道紀前 7, 1864)년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고 신미(辛未 : 道紀 1, 1871)년에 스스로 이 세상에 내려왔나니
17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수운가사(水雲歌詞)에서 말하는 ‘상제’는 곧 나를 이름이니라.
이마두.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 이탈리아 예수회 선교사로 중국에 가톨릭을 뿌리내린 인물. 별호를 서방의 현사(賢士)라는 뜻에서 ‘서태(西泰)’라 하고 이름은 마테오의 음사인 ‘마두(瑪竇)’, 성은 리치를 본떠 ‘리(利)’라 하였다. ‘리’는 벼(禾)를 칼(刀)로 추수한다는 의미가 있으며 ‘동서양 문화를 통합하여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문명신. 문명 발전에 사역한 종교가, 과학자, 철인, 학자 등의 신명.
현대의 문명. 일반적으로 근대 문명은 르네상스와 산업혁명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보는데, 산업혁명을 신명계에서 주도한 분이 이마두 대성사와 진묵대사이다.
물질과 사리에만. 근대 이후 서양의 과학기술 문명은 인류의 편익과 복리증진에 지대한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이 문명은 정신과 물질의 이분법적 사고, 인간중심주의, 물질주의, 그리고 ‘도구적 이성’에 근거함으로써 천지만물에 깃들어 있는 신성을 제거해 버리고 자본주의 및 제국주의와 결합하여 오늘날 인간과 자연을 파괴로 치닫게 하는 대재앙을 초래하고 있다.
신성. 인류 문명사에 큰 덕을 베푼 실존 인물들과 그들의 영신(靈神).
서양 대법국 천개탑에 내려와. 상제님께서는 서양 근대문명을 연 이마두 대성사의 공덕을 인정하시어 서양 문명과 기독교 문화의 뿌리인 로마에 먼저 들르신 것이다.
道典 2:55) 나를 생각하는 사람이 내 사람
1 하루는 김갑칠(金甲七)이 여쭈기를 “저와 같이 용렬하고 천하기 그지없는 자도 다가오는 선경세계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까?” 하니
2 상제님께서 문득 안색을 바꾸시어 큰 소리로 말씀하시기를 “갑칠아, 그게 무슨 말이냐. 이 때는 해원시대니라.
3 이제 해원시대를 맞아 도(道)를 전하는 것을 빈천한 사람으로부터 시작하느니라.” 하시고
4 또 말씀하시기를 “부귀한 자는 자만자족하여 그 명리(名利)를 증대하기에 몰두하여 딴 생각이 나지 않으리니 어느 겨를에 나에게 생각이 미치리오.
5 오직 빈궁한 자라야 제 신세를 제가 생각하여 도성덕립(道成德立)을 하루바삐 기다리며 운수 조일 때마다 나를 생각하리니 그들이 곧 내 사람이니라.” 하시니라.
김갑칠(金甲七, 1881∼1942). 본관 안동. 갑칠은 도명, 호는 우사장(雨師丈). 부 기윤과 모 황씨 사이의 차남. 김형렬 성도의 종제(4촌)이며 김준상 성도의 동생이다. 키는 그리 크지 않고 수염도 얼마 나지 않은 용모였다.
道典 4:59) 정음정양의 남녀동권 세계를 개벽하심
1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때는 해원시대라.
2 몇천 년 동안 깊이깊이 갇혀 남자의 완롱(玩弄)거리와 사역(使役)거리에 지나지 못하던 여자의 원(寃)을 풀어 정음정양(正陰正陽)으로 건곤(乾坤)을 짓게 하려니와
3 이 뒤로는 예법을 다시 꾸며 여자의 말을 듣지 않고는 함부로 남자의 권리를 행치 못하게 하리라.” 하시니라.
4 하루는 상제님께서 공사를 보신 후에 ‘대장부(大丈夫) 대장부(大丈婦)’라 써서 불사르시니라.
5 또 하루는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부인들이 천하사를 하려고 공을 들이니, 그로 인하여 후천이 부녀자의 세상이 되려 하네.” 하시고
6 한참 계시다가 무릎을 탁 치시며 “그러면 그렇지, 큰일이야 남자가 해야지.” 하시니라.
7 또 말씀하시기를 “판대까지야 여자에게 주겠느냐. 판대야 남자가 쥐지.” 하시니라.
道典 5:195) 후천 오만년 첫 공사
1 하루는 공우에게 이르시기를 “후천 오만년 첫 공사를 행하려 하노니 너는 잘 생각하여 가장 중대한 것을 들어 말하라.” 하시니
2 공우가 “지식이 없어 아뢸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며 사양하다가 이윽고 여쭈기를
3 “선천에는 청춘소부(靑春少婦)가 수절한다 하여 공방을 지켜 적막히 늙어 버리는 것이 옳지 않사오니
4 후천에는 이 폐단을 없애시어 젊은 과부는 젊은 홀아비를, 늙은 과부는 늙은 홀아비를 각기 가려서
5 일가와 친구를 모두 청하여 잔치를 베풀고, 예를 갖추어 개가하게 하는 것이 옳을 줄 아옵니다.” 하매
6 상제님께서 무릎을 치며 칭찬하시기를 “네가 아니면 이 공사를 보지 못하겠으므로 네게 맡겼더니 잘 처결하였도다.
7 이제 결정한 이 공사가 오만 년을 내려가리라.” 하시니라.
8 공우가 다시 아뢰기를 “바라옵건대 다가오는 선경낙원에서는 수모와 천대를 받는 농사꾼을 해원시켜 주옵소서.” 하니
9 상제님께서 “좋구나! 공우가 참으로 대공사를 잘 행하였도다.
10 후천에는 농민을 상등 사람으로 만들 것이니라.” 하고 크게 칭찬하시니라.
道典 4:28) 모든 역신(逆神)을 별자리로 붙여 보내심
이 때는 해원(解寃)시대라. 사람도 이름나지 않은 사람이 기세를 얻고 땅도 이름 없는 땅이 기운을 얻느니라.
2 나는 동서양의 만고역신(萬古逆神)을 거느리느니라.
3 원래 역신은 시대와 기회가 지은 바라. 역신이 경천위지(經天緯地)의 재능으로 천하를 바로잡아 건지려는 큰 뜻을 품었으나
4 시세가 이롭지 못하므로 그 회포(懷抱)를 이루지 못하고 멸족의 화(禍)를 당하여 천추에 원귀가 되어 떠돌거늘
5 세상 사람들은 사리(事理)를 잘 알지 못하고 그들을 미워하여 ‘역적놈’이라 평하며 일상용어에 모든 죄악의 머리로 일컬으니 어찌 원통치 않겠느냐.
6 그러므로 이제 모든 역신을 만물 가운데 시비(是非)가 없는 별자리(星宿)로 붙여 보내느니라.
7 하늘도 명천(明天)과 노천(老天)의 시비가 있고, 땅도 후박(厚薄)의 시비가 있고, 날도 수한(水旱)의 시비가 있고, 때도 한서(寒暑)의 시비가 있으나
8 오직 성수(星宿)에는 그런 시비가 없느니라.
道典 4:30) 요순에 얽힌 역사의 진실
세상에서 우순(虞舜)을 대효(大孝)라 일러 오나 순은 천하의 대불효니라. 그 부친 고수(高叟)의 악명이 반만년 동안이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하였으니 어찌 한스럽지 않으리오. 세상에서 요순지치(堯舜之治)를 일러 왔으나 9년 홍수는 곧 창생의 눈물로 일어났나니, 요(堯)는 천하를 무력으로 쳐서 얻었고, 형벌(刑罰)은 순(舜)으로부터 나왔느니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요(堯)의 아들 단주가 불초(不肖)하였다.’는 말이 반만년이나 전해 내려오니 만고의 원한 가운데 단주의 원한이 가장 크니라. 정말로 단주가 불초하였다면 조정의 신하들이 단주를 계명(啓明)하다고 천거하였겠느냐. 만족(蠻族)과 이족(夷族)의 오랑캐 칭호를 폐하자는 주장이 어찌 말이 많고 남과 다투기를 좋아하는 것이겠느냐?
단주의 원한: 삶의 진실이 왜곡되는 것이 원한의 가장 큰 뿌리가 된다는 말씀이다. 역사 왜곡을 바로잡는 문제의 중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道典 4:17) 뿌리 깊은 단주의 원한
무릇 머리를 들면 조리(條理)가 펴짐과 같이 천륜을 해(害)한 기록의 시초이자 원(寃)의 역사의 처음인 당요(唐堯)의 아들 단주(丹朱)의 깊은 원을 풀면, 그 뒤로 수천 년 동안 쌓여 내려온 모든 원의 마디와 고가 풀리게 될지라. 대저 당요가 단주를 불초히 여겨 두 딸을 우순(虞舜)에게 보내고 천하를 전하니 단주가 깊은 원을 품은지라.
마침내 그 분울(憤鬱)한 기운의 충동으로 우순이 창오(蒼梧)에서 죽고 두 왕비가 소상강(瀟湘江)에 빠져 죽는 참혹한 일이 일어났나니, 이로 말미암아 원의 뿌리가 깊이 박히게 되고 시대가 지남에 따라 모든 원이 덧붙어서 드디어 천지에 가득 차 세상을 폭파하기에 이르렀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단주 해원을 첫머리로 하고,
또 천하를 건지려는 큰 뜻을 품었으나 시세(時勢)가 이롭지 못하여 구족(九族)이 멸하는 참화를 당해 철천의 한(恨)을 머금고 의탁할 곳 없이 천고(千古)에 떠도는 모든 만고역신(萬古逆神)을 그 다음으로 하여 각기 원통함과 억울함을 풀고, 혹은 행위를 바로 살펴 곡해를 바로잡으며, 혹은 의탁할 곳을 붙여 영원히 안정을 얻게 함이 곧 선경을 건설하는 첫걸음이니라.
천륜을 해(害)한 기록의 시초: 단주의 원한은 천륜이 파괴된 원한으로서 역사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는 의미에서 가장 큰 원한이다.
만고역신. 선천 인류사에 쌓여 온 역신을 통칭하는 말.
道典 4:31) 만고원신 해원 공사
1 상제님께서 이어 말씀하시기를 “요순시대에 단주가 세상을 다스렸다면 시골 구석구석까지 바른 다스림과 교화가 두루 미치고
2 요복(要服)과 황복(荒服)의 구별이 없고 오랑캐의 이름도 없어지며, 만리가 지척같이 되어 천하가 한집안이 되었을 것이니 요와 순의 도는 오히려 좁은 것이니라.
3 단주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깊은 한을 품어 순이 창오에서 죽고 두 왕비가 소상강에 빠져 죽는 참상이 일어났나니
4 이로부터 천하의 크고 작은 모든 원한이 쌓여서 마침내 큰 화를 빚어내어 세상을 진멸할 지경에 이르렀느니라.
5 그러므로 먼저 단주의 깊은 원한을 풀어 주어야 그 뒤로 쌓여 내려온 만고의 원한이 다 매듭 풀리듯 하느니라.
6 이제 단주를 자미원(紫微垣)에 위(位)케 하여 다가오는 선경세계에서 세운(世運)을 통할(統轄)하게 하느니라.” 하시니라.
단주를 자미원(紫微垣)에 위(位)케 하여 자미원. 동양에서는 북쪽 하늘을 중심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의 벽을 세 개의 경계로 나누어 자미원(紫微垣), 태미원(太微垣), 천시원(天市垣)으로 구분하였다. 자미원은 옥황상제가 거하시는 자미성(북극성)과 그 궁궐인 자미궁을 지키는 장군과 신하 별들로 이루어져 있다. 자미원 아래로 하늘나라 정부종합청사 격인 태미원이 있고 그 옆에 일반 백성이 사는 하늘나라의 도시, 혹은 시장 격인 천시원이 있다.
道典 4:18) 지방신(地方神)과 지운(地運)을 통일하심
1 대개 예로부터 각 지방에 나뉘어 살고 있는 모든 족속들의 분란쟁투는 각 지방신(地方神)과 지운(地運)이 서로 통일되지 못한 까닭이라.
2 그러므로 이제 각 지방신과 지운을 통일케 함이 인류 화평의 원동력이 되느니라.
모든 문화의 진액을 뽑아 모으심
3 또 모든 족속들이 각각 색다른 생활 경험으로 유전된 특수한 사상으로 각기 문화를 지어내어 그 마주치는 기회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큰 시비를 이루나니
4 그러므로 각 족속의 모든 문화의 진액을 뽑아 모아 후천문명의 기초를 정하느니라.
지방신(地方神): 각 지방의 주재신. 지방신의 범위와 위격은 다양한데, 한 나라 전체 및 민족의 시조나 민족 통합의 개창자까지 포함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여호와도 유대족의 지방신이다.
각 족속의 모든 문화의 진액을 뽑아 모아: 이 한 구절의 말씀에서 증산 상제님께서 여신 무극대도의 새 문화 성격을 이해할 수 있다.
道典 4:19) 선경을 세우려면
1 천지를 개벽하여 선경을 세우려면 먼저 천지도수를 조정(調整)하고
2 해원으로써 만고신명(萬古神明)을 조화하며
3 대지강산(大地江山)의 정기(精氣)를 통일해야 하느니라.
지운(地運) 통일은 부모산으로부터
4 전주 모악산(母岳山)은 순창 회문산(回文山)과 서로 마주서서 부모산이 되었나니
5 부모가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모든 가족을 양육 통솔하는 것과 같이 지운(地運)을 통일하려면 부모산으로부터 비롯해야 할지라.
6 그러므로 이제 모악산으로 주장을 삼고 회문산을 응기(應氣)시켜 산하의 기령(氣靈)을 통일할 것이니라.
道典 4:20) 단주해원 도수는 오선위기(五仙圍碁)로부터
1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회문산에 오선위기가 있나니 바둑은 당요가 창시하여 단주에게 전수하였느니라.
2 그러므로 단주의 해원은 오선위기로부터 비롯되나니 천하의 대운이 이로부터 열리느니라.” 하시고
3 다시 말씀하시기를 “이로써 또한 조선의 시비를 푸느니라.” 하시니라.
오선위기(五仙圍碁): 전북 순창군 구림면과 임실군 덕치면에 걸친 회문산(830m). 다섯 신선이 바둑판을 에워싼 오선위기의 형국이며, 24혈(穴)이 있다.
道典 5:7) 상씨름으로 판을 마치리라
1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현하대세가 씨름판과 같으니 애기판과 총각판이 지난 뒤에 상씨름으로 판을 마치리라.” 하시고
2 종이에 태극 형상의 선을 그리시며 “이것이 삼팔선이니라.” 하시니라.
3 또 말씀하시기를 “씨름판대는 조선의 삼팔선에 두고 세계 상씨름판을 붙이리라.
4 만국재판소를 조선에 두노니 씨름판에 소가 나가면 판을 걷게 되리라.
5 세속에 가구(假九)라는 노름판이 있어서 열다섯 수(數)가 차면 판몰이를 하는 것이 곧 후천에 이루어질 비밀을 세간에 누설(漏泄)한 것이니
6 내가 천지공사에 이것을 취하여 쓰노라.” 하시니라.
애기판: 조선을 두고 일러전쟁을 붙여(영국·프랑스가 훈수) 러시아의 세력을 몰아내신 공사이다. 이 공사에 의해 조화정부의 제1차 발현인 국제연맹이 1920년에 창설되었다.
총각판: 일본과 중국이 주역이 되고, 독일과 소련이 훈수한 중일전쟁(1937)으로 총각판의 서막이 올랐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이 발발하고 국제연합(1945)이 발족되었다.
상씨름: 남조선 도수에 의해 전개되는 남북한 대결 구도를 말한다. 남북한의 상씨름은 인류사의 상극의 모든 문제를 가름하는 최후·최상의 대결구도라는 의미와 역사성을 갖는다. 인류사의 총체적인 문제가 남조선 도수에 얽혀 있다.
씨름판에 소가 나가면: 1998년 6월 16일부터 세 차례에 걸쳐 1,501마리의 소가 판문점을 넘어 북한으로 갔다. 세계 상씨름의 무대인 삼팔선에 소가 나간 것은 상씨름판을 걷게 될 최후의 대결전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열다섯 수(數)가 차면 판몰이를 하는 것이: 우주1년을 지속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천지조화의 본원은 도서관(圖書館)이라는 말의 어원인 하도(河圖, 대우주가 펼쳐진 조판도)와 낙서(洛書, 상극의 질서로 인간과 만물을 키우는 우주 봄여름 조판도)의 중앙 ‘5·10土’이다. 음양 ‘5·10土’의 5수와 10수가 변화를 일으킬 가장 큰 수는 50(5×10(분열), 15( 5+10(통일)이다. 즉, 열다섯 수가 찬다는 것은 그 도수가 일으킬 수 있는 변화의 가장 큰 수인 50이 되면 판몰이 곧, 도세를 만회한다는 뜻이다.
道典 4:138) 진묵대사의 참혹한 죽음과 서양문명 개척
1 전주 서방산(西方山) 봉서사(鳳棲寺) 아래에 계실 때 하루는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2 “김봉곡(金鳳谷)이 시기심이 많더니 하루는 진묵(震黙)이 봉곡에게서 성리대전(性理大全)을 빌려 가면서
3 봉곡이 곧 후회하여 찾아올 줄 알고 걸어가면서 한 권씩 보고는 길가에 버려 봉서사 산문(山門) 어귀에 이르기까지 다 보고 버렸느니라.
4 봉곡이 책을 빌려 준 뒤에 곧 뉘우쳐 생각하기를 ‘진묵은 불법을 통한 자인데 만일 유도(儒道)까지 정통하면 대적하지 못하게 될 것이요, 또 불법이 크게 흥왕하여지고 유교는 쇠퇴하여지리라.’ 하고
5 급히 사람을 보내어 그 책을 도로 찾아오게 하니, 그 사람이 뒤쫓아가면서 길가에 이따금 한 권씩 버려진 책을 거두어 왔느니라.
6 그 뒤에 진묵이 봉곡에게 가니 봉곡이 빌려 간 책을 돌려달라고 하거늘
7 진묵이 ‘그 책은 쓸데없는 것이므로 다 버렸노라.’ 하니 봉곡이 크게 노하는지라
8 진묵이 말하기를 ‘내가 외우리니 기록하라.’ 하고 외우는데 한 글자도 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천하를 크게 문명케 하고자 하였더니
9 봉곡이 이로부터 더욱 시기하더니, 그 뒤에 진묵이 상좌(上佐)에게 단단히 이르기를 ‘내가 8일을 기한으로 하여 시해(尸解)로 천상에 다녀올 것이니 절대로 방문을 열지 말라.’ 하고 떠나거늘
10 하루는 봉곡이 봉서사로부터 서기가 하늘로 뻗친 것을 보고 ‘내가 저 기운을 받으면 진묵을 능가할 수 있으리라.’ 하며 즉시 봉서사로 올라갔느니라.
11 봉곡이 서기가 뻗치는 법당 앞에 당도하여 진묵을 찾으매 상좌가 나와서 ‘대사님이 출타하신 지 얼마 안 됩니다.’ 하니
12 봉곡이 ‘옳거니, 법당의 서기를 이 참에 받아야겠다.’ 하고 ‘법당 문을 열라.’ 하매 상좌가 ‘대사님께서 자물쇠를 가지고 가셨습니다.’ 하거늘
13 봉곡이 큰 소리로 호령하며 기어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니 뜻밖에 진묵이 앉아 있고 그의 몸에서 서기가 뻗치더라.
14 봉곡이 잠시 당황하다가 문득 진묵이 시해로 어디론가 갔음을 알아차리고 ‘서기를 못 받을 바에는 차라리 돌아오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15 상좌에게 ‘어찌 시체를 방에 숨겨 두고 혹세무민하느냐! 중은 죽으면 화장을 해야 하느니라.’ 하며
16 마침내 마당에 나무를 쌓고 진묵의 시신을 화장하니 어린 상좌가 울면서 말리거늘 봉곡은 도리어 화를 내며 상좌를 내쳤느니라.
17 이 때 마침 진묵이 돌아와 공중에서 외쳐 말하기를 ‘너와 내가 아무 원수진 일이 없는데 어찌 이러느냐!’ 하니 상좌가 진묵의 소리를 듣고 통곡하거늘
18 봉곡이 ‘저것은 요귀(妖鬼)의 소리니라. 듣지 말고 손가락뼈 한 마디, 수염 한 올도 남김없이 잘 태워야 하느니라.’ 하며 일일이 다 태워 버리니
19 진묵이 다급한 음성으로 상좌에게 ‘손톱이라도 찾아 보라.’ 하는데 봉곡이 상좌를 꼼짝도 못하게 하며 ‘손톱도 까마귀가 물고 날아갔다.’ 하는지라
20 진묵이 소리쳐 말하기를 ‘내가 각 지방 문화의 정수를 거두어 모아 천하를 크게 문명케 하고자 하였으나
21 이제 봉곡의 질투로 인하여 대사(大事)를 그르치게 되었으니 어찌 한스럽지 않으리오.
22 나는 이제 이 땅을 떠나려니와 봉곡의 자손은 대대로 호미질을 면치 못하리라.’ 하고
23 동양의 도통신(道通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갔느니라.” 하시니라.
봉서사. 전북 완주군 용진면 간중리 종남산(終南山)과 서방산(西方山)의 계곡에 위치한 절. 서방산이 봉(鳳)의 형상을 하고 깃을 드린다 하여 봉서사라 하였다. 진묵대사가 출가한 곳으로 유명하다.
김봉곡(金鳳谷, 1575~1661). 이름은 동준(東準). 자는 이식(而式), 봉곡은 호. 조선 선조 때의 유학자.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에게 수학하였고, 병자호란 때 화의(和議)가 이루어지자 비분강개하여 숨어 살면서 『계몽도설(啓蒙圖說)』, 『심성서언(心性緖言)』 등을 저술했다.
성리대전. 명나라 영락제(永樂帝)의 명을 받아 호광(胡廣) 등 42명의 학자가 사상적 통일을 도모하기 위해 성리설에 관한 이론을 집대성한 책.
상좌. 사승(師僧)의 대를 이을 여러 제자 가운데 높은 사람을 뜻하나 여기서는 행자(行者)를 말한다.
138장 진묵에 관한 기록은 조선 후기에 초의(草衣) 스님이 지은 『진묵대사유적고』와 『한국구비문학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79~1987)가 대표적인데, 본문 내용은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실린 것과 같다. 상제님께서 구전되어 오는 내용을 사실로 인정해 주신 것이다.
봉곡의 자손은 대대로 호미질을 면치 못하리라. 이 구절은 진묵대사의 천하를 크게 문명코자 한 대의를 꺾어 버린 봉곡에 대한 천지신명의응징이다. 봉곡이 살던 완주군 용진면 간중리 봉서골은 1924년에 저수지가 되었는데, 이는 상제님께서 진묵을 해원시키기 위해 봉곡이 살던 마을을 물에 잠기게 하신 것이다.
道典 4:14) 신농씨와 태공의 큰 은혜
1 신농씨(神農氏)가 농사짓는 법과 의술로 천하 만세를 윤택하게 하였고 태공(太公)이 병법과 정치로써 천하 만세에 은혜를 주었나니
2 이제 하늘과 땅이 성공하는 가을철을 맞아 천지간의 모든 신들이 그들을 높이 받들어 모시느니라.
주자를 칭찬하심
3 유가(儒家)의 인물들이 흠이 많으나 주회암(朱晦庵)은 흠잡을 데가 없느니라.
진묵대사를 선경 건설에 역사케 하심
4 진묵이 천상에 올라가 온갖 묘법(妙法)을 배워 내려 좋은 세상을 꾸미려 하다가
5 김봉곡에게 참혹히 죽은 뒤에 원을 품고 동양의 도통신을 거느리고 서양에 건너가서 문명 개발에 역사(役事)하였나니
6 이제 그를 해원시켜 고국으로 돌아와 선경 건설에 역사하게 하리라.
道典 6:103) 후천선경 건설의 대문명신, 진묵대사 귀국 공사
1 기유년 정월 초이튿날 대흥리에서 제수를 준비하여 성대하게 차리시고
2 성도들로 하여금 목욕재계하고 정성을 다하여 고축(告祝)하게 하시니 이러하니라.
3 祝 文
축 문
維歲次己酉正月二日昭告
유세차기유정월이일소고
化被草木賴及萬方
화피초목뢰급만방
魂返本國勿施睚眦伏祝
혼반본국물시애자복축
南無阿彌陀佛
나무아미타불
축문
기유년 정월 이일에 밝게 고하노라.
덕화는 초목에 이르기까지 입지 않음이 없고
이로움은 온누리에 미치었도다.
혼(魂)이 본국에 되돌아오니
조금도 원망치 말기를 엎드려 축원하노라.
나무아미타불
4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진묵이 봉곡에게 죽음을 당하고 동방의 도통신(道統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가 서양의 문명을 열었나니
5 이제 다시 진묵을 동토로 불러와서 선경을 건설하는 데 역사하게 하리라.” 하시니라.
6 또 말씀하시기를 “내 세상에 진묵의 소임이 막중하니 장차 천하 사람들의 공경을 받으리라.” 하시고 진묵대사 초혼(招魂) 공사를 처결하시니라.
7 이 때 여러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진묵의 혼이 도통신을 데리고 넘어온다.” 하시며 하늘을 바라보시는데
8 구름이 무수히 많은 사람 모양을 이루어 하늘 서쪽에서 동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완연하더라.
道典 2:10) 주지 박금곡의 소원
1 하루는 금곡이 아뢰기를 “제가 평생 이 절에 주지로 있게 해 주옵소서.” 하고 청하니 상제님께서 이를 허락하시니라.
2 금곡이 다시 아뢰기를 “저의 일을 말씀해 주사이다.” 하니
3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전생이 월광대사(月光大師)인 바 그 후신(後身)으로 대원사에 오게 되었느니라. 그대가 할 일은 이 절을 중수하는 것이니라.” 하시니라.
4 금곡이 다시 간절히 여쭈기를 “구십 세까지만 살게 해 주옵소서.” 하거늘
5 이도 허락하시며 “네가 죽을 때에는 본병이 도져서 죽으리라.” 하시니라.
6 금곡이 또 아뢰기를 “대원사에 감나무가 많으나 감이 하나도 열지 않으니 감이 잘 열도록 해 주옵소서.” 하니
7 “이는 진묵이 원한을 품은 연고라. 명년부터는 감이 잘 열리리라.” 하시거늘 과연 그 후로 감이 풍성하게 열리니라.
8 그 후 금곡은 한평생 대원사 주지로 있다가 93세가 되매 다친 허리가 재발하여 죽으니라.
진묵의 원한. 진묵이 수왕암에서 공부할 때 대원사에 내려와 밥을 얻어먹었는데, 진묵이 공밥 먹는 것을 싫어한 중들의 괄시가 심했던 탓에 그 후 300년 동안 대원사에는 진묵의 식한(食恨)이 붙었다고 한다.
93세. 道紀 76년(1946) 2월 3일 93세로 입적. 입적하기 전날 대원사를 일일이 살펴보았다고 한다.
道典 2:5) 공부하실 때의 이적
1 사람들의 근접을 일절 금하고 공부하시던 어느 날 밤, 비바람이 대작하고 불칼이 내리치는 가운데 크게 호령하시는 소리가 들리거늘
2 금곡이 이튿날 아침에 나가 보고 상제님께 아뢰기를 “칠성각에 봉안(奉安)된 진묵대사(震黙大師)의 영정(影幀)이 마당에 떨어져 있고 칠성각의 방향이 옆으로 틀어져 있습니다.” 하니
3 상제님께서 “그러냐.” 하고 답하시는 순간 당우(堂宇)의 방향이 원래대로 돌아오니라.
진묵대사(震默大師, 1562∼1633). 본명 일옥(一玉). 전라도 만경현 불거촌(佛居村, 현재 만경읍 화포리)에서 출생. 법력이 출중하여 석가불의 화현(化現)으로 인식될 정도였으며 유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道典 4:7) 모든 법을 합하여 쓰심
1 지난 임진왜란에 정란(靖亂)의 책임을 ‘최 풍헌(崔風憲)이 맡았으면 사흘 일에 지나지 못하고
2 진묵(震黙)이 맡았으면 석 달을 넘기지 않고
3 송구봉(宋龜峯)이 맡았으면 여덟 달 만에 끌렀으리라.’ 하니
4 이는 선도와 불도와 유도의 법술(法術)이 서로 다름을 이름이라.
5 옛적에는 판이 작고 일이 간단하여 한 가지만 따로 쓸지라도 능히 난국을 바로잡을 수 있었으나
6 이제는 판이 넓고 일이 복잡하므로 모든 법을 합하여 쓰지 않고는 능히 혼란을 바로잡지 못하느니라.
송구봉(宋龜峯, 1534~1599). 본관은 여산(礪山). 본명은 익필(翼弼), 호는 구봉, 현승(玄繩). 자는 운장(雲長). 학식이 뛰어나 율곡(栗谷), 우계(牛溪) 등과 교유하였고 사계(沙溪), 신독재(愼獨齋) 등의 걸출한 학자들을 길러냈으며 당대 8문장가의 하나로 꼽혔다. 그러나 서얼 출신이었으므로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버렸다.
道典 4:115) 귀신을 뜻대로 부리는 조화
1 무신년 여름에 대흥리에서 공사를 보실 때 종이에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 이러하니라.
2 姜太公이 用七十二候하여 使鬼神如奴之하고
강태공 용칠십이후 사귀신여노지
張子房이 用三十六計하여 使鬼神如友之하고
장자방 용삼십육계 사귀신여우지
諸葛亮은 用八陣圖하여 使鬼神如師之하니라
제갈량 용팔진도 사귀신여사지
강태공은 칠십이후를 써서 귀신을 종처럼 부렸고
장자방은 삼십육계를 써서 귀신을 친구처럼 부렸으며
제갈량은 팔진도를 써서 귀신을 군사처럼 부렸느니라.
사람이 귀신의 법을 쥔다
3 하루는 성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지금은 귀신이 사람의 법을 쥐고 있으나 앞세상에는 사람이 귀신의 법을 쥐게 되느니라.
4 그러니 어서 부지런히 닦으라.” 하시니라.
道典 5:204) 1907년 정미년 12월 25일 새벽이 되매 성도들을 정좌케 하시고 각기 종이 한 조각씩을 나누어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2 “후천 음양 도수를 보려 하니 각자 마음에 있는 대로 점 하나에 아내 하나씩 표하여 점쳐 들이라.” 하시고
3 점 찍은 표를 함에 넣게 하시어 상제님께서 손으로 휘저어 한 장씩 뽑으시니
4 경석은 열두 점이요, 응종은 두 점이요, 경수는 석 점이요, 내성은 여덟 점이요, 공신은 한 점이라.
5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홉 점은 없으니 일남구녀란 말을 알 수 없도다.” 하시고
6 경석에게 물으시기를 “너는 웬 아내를 열둘이나 원하느냐?” 하시니
7 경석이 대답하기를 “십이제국에 한 명씩 두고 달마다 한 나라씩 순유하면 남아 행락(行樂)의 극치일까 하옵니다.” 하거늘
8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말이 그럴 듯하도다.” 하시니라.
동학군들이 시천주(侍天主) 조화정(造化定) 영세불망만사지(永世不忘萬事知)"라는 주문을 부르며, 상제님을 부르짖다 약 30만 명의 동학군들이 죽었기 때문에 차경석이라는 인물에게 약 30만의 동학 신명들이 붙어 원한을 풀 수 있도록 하였다. 보천교의 역사의 이면에는 동학신명들이 붙어 약 600만 명을 일으킨 것이다.
道典 5:205) 지난 갑오년에 동학 신도들이 여러 만 명 학살되어 모두 지극히 원통한 원귀(寃鬼)가 되어 우주간에 나붓거리는지라
원래 동학은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주창하였으나 때가 때인 만큼 안으로는 불량하고 겉으로만 꾸며대는 일이 되고 말았나니
다만 후천 일을 부르짖었음에 지나지 못함이라. 마음으로 각기 왕후장상(王侯將相)을 바라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릇 죽은 자가 수만 명이니
그 신명들을 해원시켜 주지 않으면 후천에 역도(逆度)에 걸려 반역과 화란이 자주 일어나 정사(政事)를 못 하게 되리라.
道典 5:205) 지난 갑오년에 동학 신도들이 여러 만 명 학살되어 모두 지극히 원통한 원귀(寃鬼)가 되어 우주간에 나붓거리는지라
원래 동학은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주창하였으나 때가 때인 만큼 안으로는 불량하고 겉으로만 꾸며대는 일이 되고 말았나니
다만 후천 일을 부르짖었음에 지나지 못함이라. 마음으로 각기 왕후장상(王侯將相)을 바라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릇 죽은 자가 수만 명이니
그 신명들을 해원시켜 주지 않으면 후천에 역도(逆度)에 걸려 반역과 화란이 자주 일어나 정사(政事)를 못 하게 되리라. 그러므로 이제 그 신명들을 해원시키려고 원혼을 통솔할 자를 정하려는 중인데 경석이 십이제국을 말하니 이는 스스로 청함이라. 이제 경석에게 동학 역신 해원의 삼태육경(三台六卿) 도수를 붙이리라.” 하시고
“그 부친이 동학 접주로 그릇 죽었고 경석도 또한 동학 총대(總代)였으니 오늘부터는 동학 때 한 맺힌 신명들을 전부 경석에게 붙여 보내어 이 자리에서 왕후장상의 해원이 되게 하리라.” 하시니라.
道典 5:205) 동학 역신 해원 공사
1 공신이 여러 성도들을 돌려보낸 뒤에 상제님께서 공신, 경수, 응종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2 “경석이 성경신(誠敬信)이 지극하므로 달리 써 볼까 하였으나 제가 스스로 청하니 어찌할 수 없는 일이로다.
3 지난 갑오년에 동학 신도들이 여러 만 명 학살되어 모두 지극히 원통한 원귀(寃鬼)가 되어 우주간에 나붓거리는지라
4 원래 동학은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주창하였으나 때가 때인 만큼 안으로는 불량하고 겉으로만 꾸며대는 일이 되고 말았나니
5 다만 후천 일을 부르짖었음에 지나지 못함이라.
6 마음으로 각기 왕후장상(王侯將相)을 바라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릇 죽은 자가 수만 명이니
7 그 신명들을 해원시켜 주지 않으면 후천에 역도(逆度)에 걸려 반역과 화란이 자주 일어나 정사(政事)를 못 하게 되리라.
8 그러므로 이제 그 신명들을 해원시키려고 원혼을 통솔할 자를 정하려는 중인데 경석이 십이제국을 말하니 이는 스스로 청함이라.
9 이제 경석에게 동학 역신 해원의 삼태육경(三台六卿) 도수를 붙이리라.” 하시고
10 “그 부친이 동학 접주로 그릇 죽었고 경석도 또한 동학 총대(總代)였으니 오늘부터는 동학 때 한 맺힌 신명들을 전부 경석에게 붙여 보내어 이 자리에서 왕후장상의 해원이 되게 하리라.” 하시니라.
11 또 말씀하시기를 “춘치자명(春雉自鳴)의 설화(說話)를 들어 보라.
12 배짱이 그만하면 능히 그 책임을 감당하리니 뒷날 두고 보라.
13 경석이 금전도 무수히 소비할 것이요, 사람을 모으는 것도 갑오년보다 훨씬 많게 될 것이니라.
14 경석에게 밥주걱을 맡겼나니 경석은 제왕(帝王)만큼 먹고 지내리라.
15 이렇게 풀어놓아야 후천에 아무 일도 없으리라.” 하시고
16 두루마리에 글을 써서 대공사를 처결하시며 외인의 출입을 금하시니라.
삼태육경. 삼정승과 육조판서.
왜 상제님께서는 동학 신명을 차경석 성도에게 붙여 해원케 하셨는가?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을 노래하며 후천개벽을 학수고대한 동학혁명의 종군자들이 바로 상제님의 무극대운을 부르짖은 일꾼들이기 때문이다. 이에 상제님께서 몸소 그들의 원한을 초기 증산도 도운 개척의 운로에 붙여 해소시키셨다.
춘치자명(春雉自鳴)의 설화(說話)를 들어 보라. 춘치자명. 봄꿩이 제 스스로 운다는 뜻으로, 시키거나 요구하지도 않는데 제가 스스로 나서서 손해를 보거나 죽음을 당한다는 말이다.
道典 2:17) 선천은 상극(相克)의 운
1 선천은 상극(相克)의 운(運)이라
2 상극의 이치가 인간과 만물을 맡아 하늘과 땅에 전란(戰亂)이 그칠 새 없었나니
3 그리하여 천하를 원한으로 가득 채우므로
4 이제 이 상극의 운을 끝맺으려 하매 큰 화액(禍厄)이 함께 일어나서 인간 세상이 멸망당하게 되었느니라.
5 상극의 원한이 폭발하면 우주가 무너져 내리느니라.
6 이에 천지신명이 이를 근심하고 불쌍히 여겨 구원해 주고자 하였으되 아무 방책이 없으므로
7 구천(九天)에 있는 나에게 호소하여 오매 내가 이를 차마 물리치지 못하고 이 세상에 내려오게 되었느니라.
8 그러므로 이제 내가 큰 화를 작은 화로써 막아 다스리고 조화선경(造化仙境)을 열려 하노라.
道典 4:16) 선천에는 상극의 이치가 인간 사물을 맡았으므로 모든 인사가 도의(道義)에 어그러져서
3 원한이 맺히고 쌓여 삼계에 넘치매 마침내 살기(殺氣)가 터져 나와 세상에 모든 참혹한 재앙을 일으키나니
4 그러므로 이제 천지도수(天地度數)를 뜯어고치고
5 신도(神道)를 바로잡아 만고의 원을 풀며
6 상생의 도(道)로써 선경의 운수를 열고
7 조화정부를 세워 함이 없는 다스림과 말 없는 가르침으로 백성을 교화하여 세상을 고치리라.
道典 2:43) 지금은 온 천하가 가을 운수의 시작으로 들어서고 있느니라.
2 내가 하늘과 땅을 뜯어고쳐 후천을 개벽하고 천하의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후천선경의 무량대운(無量大運)을 열려 하나니
3 너희들은 오직 정의(正義)와 일심(一心)에 힘써 만세의 큰복을 구하라.
4 이 때는 천지성공 시대(天地成功時代)니라.
5 천지신명이 나의 명을 받들어 가을 운의 대의(大義)로써 불의를 숙청하고 의로운 사람을 은밀히 도와주나니
6 악한 자는 가을에 지는 낙엽같이 떨어져 멸망할 것이요, 참된 자는 온갖 과실이 가을에 결실함과 같으리라.
7 그러므로 이제 만물의 생명이 다 새로워지고 만복(萬福)이 다시 시작되느니라.
道典 2:26)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부모를 경애하지 않으면 천지를 섬기기 어려우니라.
5 천지는 억조창생의 부모요, 부모는 자녀의 천지니라.
6 자손이 선령(先靈)을 박대하면 선령도 자손을 박대하느니라.
7 예수는 선령신들이 반대하므로 천지공정에 참여치 못하리라.
8 이제 인종 씨를 추리는 후천 가을운수를 맞아 선령신을 박대하는 자들은 모두 살아남기 어려우리라.” 하시고
9 또 말씀하시기를 “조상은 아니 위하고 나를 위한다 함은 부당하나니 조상의 제사를 극진히 받들라.
10 사람이 조상에게서 몸을 받은 은혜로 조상 제사를 지내는 것은 천지의 덕에 합하느니라.”
道典 5:206)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1 이 공사를 시작하실 때 성도들에게 “각기 새 옷을 지어 입으라.” 하시더니
2 이 날 성도들로 하여금 모두 새 옷으로 갈아입게 하시고
3 상제님께서는 좋은 통량갓에 새로 지은 일광단(日光緞) 두루마기와 무문모초(無紋毛綃) 바지저고리로 의관을 정제하시어 의식을 집행하시니
4 마치 천자가 묘당(廟堂)에 임어한 모습처럼 장엄하더라.
5 이 때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천자피금(天子被擒) 도수에 걸렸으니 만약 나의 권능으로 이를 물리치면 만세토록 억조창생에게 헤아릴 수 없는 영향을 미치리라.
6 내가 세상에 온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천하의 백성들을 위함이니 내가 이제 스스로 그 운수를 받으리라.” 하시니라.
내가 천자피금(天子被擒) 도수에 걸렸으니, 천자피금 도수. 증산 상제님의 천하사 성사재인(成事在人) 도수度數로 후천선경 건설의 지도자와 일꾼 내시는 공사를 집행하신 것이다.
道典 5:208) 천하사 일꾼의 심법
1 이어 천지대신문을 여시고 사람 수효를 삼십삼천 수(三十三天數)로 채우신 뒤에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2 “이제 만일 일을 당하여 순검이나 병정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겁을 내어 도망할 마음이 있는 자는 다 돌아가라.
3 열 사람이 있다가 한 사람만 도망하여도 아홉 사람은 그 해를 입어 죽게 되리니
4 도망할 마음을 두는 자는 미리 돌아가고, 마음을 지켜 도망하지 않을 자는 굳은 다짐을 해 두라.
5 천하사(天下事)를 하는 자는 위태로움에 들어서서 편안함을 얻고, 죽음에 들어서서 삶을 얻는 것이니
6 일을 하는 자는 화지진(火地晉)도 해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7 이에 성도들이 “삼가 마음을 굳게 지켜 변함이 없겠나이다.” 하고 다짐하니 남은 사람은 모두 스물한 명이더라.
8 이 때 성도들은 상제님의 조화권능을 익히 알고 있으므로 혹은 ‘선생님이 계신데 무엇이 무서우리오.’ 생각하고
9 혹은 ‘무슨 화란이 있으리오. 이는 필시 우리들을 시험하는 말씀일 것이라.’고 생각하니라.
道典 5:209) 천자가 여기 계신데
1 상제님께서 성도들에게 “경칩절(驚蟄節)이 언제냐?” 하고 물으시니
2 성도들이 “2월 초나흗날입니다.” 하고 아뢰거늘 “경칩절에 일을 알게 되리라.” 하시니라.
3 이 때 상제님께서 미처 말씀을 마치지 아니하셨는데 면장 양 모(梁某)와 이장이 세금을 받으러 오거늘
4 상제님께서 그들을 향하여 큰 소리로 꾸짖으시기를 “천자(天子)가 여기 계신데 누가 감히 세금을 받으러 오느냐!” 하시고
5 “내가 천지공사를 행하여 천하를 바로잡으려 하나니 너는 어찌 그런 음모에 참여하느냐.” 하시니
6 두 사람이 깜짝 놀라 돌아가서 ‘와룡리에 십수 명이 모여 대사(大事)를 경영한다.’고 고부경찰서에 고발하매 순사 네 명이 나와서 비밀리에 조사하니라.
7 이에 상제님께서 김형렬, 김자현, 문공신, 박장근, 이화춘 등 스물한 명을 모아 놓으시고
8 형렬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자현과 함께 공신의 집에 있으라. 나는 신경수의 집에 가 있을 것이니라.” 하시고
9 구르멧산(雲山) 너머 운산리 경수의 집으로 옮기시며 다시 형렬에게 말씀하시기를
10 “순검들이 와서 나의 거처를 묻거든 숨기지 말고 사실대로 바르게 고하라.” 하시니 모두 이상하게 생각하니라.
11 이날 밤 상제님께서 경수의 집에 가시어 멀리 칠보 쪽을 쳐다보시며 “건너올 텐데 안 온다. 올 텐데 안 온다.” 하시고 한참 동안 누군가를 기다리시는 듯하더라.
道典 5:210) 새벽에 무장 순검들이 들이닥침
1 이 날 저녁에 신경수의 집에서는 상제님의 명(命)에 따라 공신과 여러 사람들이 초저녁부터 윗방에서 불을 끄고 자고, 상제님께서는 아랫방에서 주무시니라.
2 26일 새벽이 되자 백낙두(白樂斗)를 비롯하여 무장한 순검 수십 명이 공신의 집을 에워싸고 형렬과 자현 등 여러 사람을 결박한 뒤에 상제님의 처소를 묻거늘
3 성도들이 비로소 상제님의 말씀을 깨닫고 신경수의 집에 계심을 바른대로 고하니라.
4 이에 순검들이 상제님 계신 곳으로 들이닥치더니 총대로 문을 푹 쑤시며 “이놈들 나오라!” 하고 소리치거늘
5 상제님께서 들어온 총대를 마주잡으시고 “총 놓으라.” 하시니 순검이 순간 기세에 눌려 “그대가 놓으시오.” 하는지라
6 상제님께서 큰 소리로 말씀하시기를 “이놈이 말귀도 못 알아듣는다. 어서 총을 놓으라!” 하시니라.
7 이렇게 한참 실랑이를 하는데 한 순검이 공신을 찾거늘 공신이 대답하고 나서니 곧 포박하고, 이어서 상제님과 여러 사람들을 의병 혐의로 모두 포박하니라.
8 이 때 순검들이 윗목에 놓여 있는 돈을 보고 도둑질을 했다 하여 무명 몇 필과 함께 압수하니라.
9 날이 밝자 순검들이 상제님 일행을 고부경찰서로 끌고 가거늘 상제님께서 자현에게 말씀하시기를
10 “이 소식이 집에 들어가면 금번 서울서 과거 급제했다는 소식만큼이나 즐거워할까. 가족들은 하여튼지 자네는 그 소식으로 알고 있으라.” 하시니라.
무명 몇 필과 함께 압수하니라. 압수하니라. 당시 압수당한 물건의 목록은 다액의 한전(韓錢), 일본제 여행 가죽 가방, 다량의 서류, 목면(木棉), 금건(金巾, 옥양목) 등이다.<「폭도에 관한 편책」, 전라남북도 경무국 편>
道典 5:211) 꼭 바른말만 하라
1 이 날 상제님과 성도들이 체포되니 그 소문이 원근에 자자하여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거늘
2 여러 성도의 가족들이 통곡하며 ‘이번 화액으로 반드시 죽으리라.’는 패설(悖說)을 뱉기도 하고 화액에 걸린 성도들도 상제님을 원망하니라.
3 이 때 상제님께서 여러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이 시대는 거짓말하는 자를 없이하는 시대니 꼭 바른말만 하라.” 하시고
4 순검들에게 이르시기를 “그대들은 상관의 명령을 받고 왔으니 거짓말 말고 본 대로 말하라.” 하시니라.
道典 5:212) 천지가 다 내 것이다
1 운산리를 떠난 일행이 칠성(七星)바위를 지나 수금(水金)을 거쳐 다내(月乃)에 이르니 상제님께서 순검 대장을 불러
2 “그대들도 배고프고 우리도 배가 고프니 여기서 요기나 하고 가지 않으려느냐?
3 우리는 이왕 잡혀가는 몸, 그 돈은 다 내 돈이니 내가 그대보고 사란 말 않고 내가 사겠노라.” 하시거늘
4 순검들도 저녁내 잠을 못 자고 아침 또한 못 먹었는지라 대장이 이를 허락하고 포승줄을 풀어 주니라.
5 이에 주막 주인을 불러 큰 통돼지 두 마리와 술 몇 동이를 준비시켜 모두 배불리 먹이시고 다시 길을 떠나실 때
6 상제님께서 갑자기 벌떡 일어서시더니 하늘을 향해 양손을 크게 벌리시며 “천지가 다 내 것이다!” 하고 큰 소리로 외치시니라.
7 일행이 황토현(黃土峴)을 지나 두승산 하늘재(天峙)를 넘어 고부 장터에 이르니
8 옷을 번듯하게 입고 끌려가는 상제님의 행렬을 보고 장꾼들이 서로 말하기를
9 “고부는 장차 쏘가 되리라. 저런 큰 인물들이 잡혀갔으니 어찌 무사하기를 바라리오.” 하며 불안히 여기거늘
10 대저 이 때는 각처에서 의병이 일어나므로 인심이 소동하여 실로 공포 시대를 이루었더라.
道典 5:213) 천하사에 뜻하는 자 어찌 별로히 있으리오
1 경찰서에 이르니 수사관이 성도들에게 “병기를 가졌느냐?” 하고 묻거늘
2 모두 없다고 대답하니 즉시 여러 사람을 구류간(拘留間)에 가두고 공신은 모든 것을 볼 수 있도록 임시 막간 문턱에 앉혀 놓으니라.
3 이어 순검들이 상제님의 상투를 풀어 대들보에 매달고 옷을 다 벗긴 뒤에 십여 명이 사방에 늘어서서 죽검으로 사정없이 옥체를 후려치며 묻기를
4 “네가 대장이냐? 관리는 몇 명이나 죽였으며, 일본 사람은 몇 명이나 죽였느냐?” 하매
5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를 의병으로 알고 묻는 말이냐?” 하시니 순검이 “그러하다.” 하니라.
6 이에 말씀하시기를 “의병을 일으키려면 깊숙한 산중에 모일 것이거늘 어찌 태인 읍내에서 오 리 안에 들 하나 떨어져 사람들이 날마다 왕래하는 번잡한 곳에서 의병을 일으키리오.” 하시고
7 물으시기를 “그대들이 묻는 의병이란 것은 무엇을 이름이냐?” 하시니
8 순검이 말하기를 “이씨 왕가를 위하여 일본에 저항하는 것을 이름이라.” 하는지라
9 말씀하시기를 “그러면 그대들이 그릇 알았도다. 우리는 그런 일을 아니하노라.” 하시니라.
10 순검이 다시 묻기를 “그러면 무슨 일로 모였느냐?” 하거늘
11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혼란복멸(覆滅)에 처한 천지를 뜯어고쳐 새 세상을 열고
12 대비겁(大否劫)에 싸인 사람과 신명을 널리 건져 각기 안락을 누리게 하려는 모임이로다.” 하시니라.
13 이에 통역순검 문형로(文亨魯)가 놀라 말하기를 “어찌 감히 그런 대담한 말을 하느냐!” 하거늘
14 말씀하시기를 “사람마다 지혜가 부족하고 도략(韜略)이 없으므로 천하사를 도모치 못하나니 천하사에 뜻하는 자 어찌 별로히 있으리오.
15 그대가 만일 도략과 자비가 있다면 어찌 가만히 앉아서 볼 때리오.” 하시니라.
나는 천하를 갖고 흔든다
16 이에 순검들이 계속하여 심문하며 “네가 누군데 감히 그런 말을 하느냐?” 하니 상제님께서 큰 소리로 “나는 강 천자(姜天子)다!” 하시매
17 “어찌 강 천자냐?” 하니 “너희가 나를 강 천자라 하니 강 천자이니라. 나는 천하를 갖고 흔든다.” 하시거늘
18 형렬과 자현은 이 말씀을 듣고 혼비백산하여 “이제 우리는 다 죽었다.” 하고
19 성도들 가운데 누군가는 “저, 죽일 놈 보게.” 하며 욕을 하니라.
道典 5:214) 천지역군에게 닥칠 큰 화액을 대속하심
1 이 때 순검들이 상제님의 옥체를 죽검으로 사정없이 후려치며 갖은 욕을 보이는데
2 공신이 보니 상제님의 가슴이 갑자기 20세 처녀의 젖가슴처럼 부풀거늘 순검들도 놀라 매질을 멈추니라.
3 잠시 후 다시 혹독한 매질이 계속되매 상제님께서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고 안구가 튀어나온 채 혀를 물고 혼절하시거늘
4 순검들이 비로소 상제님을 대들보에서 내려 구류간으로 옮기니라.
5 이어서 순검이 “집주인이 누구냐?” 하매 공신이 “내가 주인이다.” 하고 나서자 박 권임(權任)이 공신에게 다가와 “이놈도 같은 놈이다.” 하며 구둣발로 앞가슴을 걷어차거늘
6 공신이 마음 속으로 ‘나도 저렇게 맞으면 죽으리라.’ 생각하고 일부러 난간으로 떨어져 짐짓 기절한 체하니
7 문 총순(總巡)이 박 권임을 꾸짖으며 말하기를 “죄의 유무를 결정하지도 못하였는데 어찌 그다지 혹독히 다루느냐.” 하고 공신에게 고채를 채워서 구류간에 넣어 여러 사람과 함께 가두니라.
8 이어 다른 사람도 낱낱이 신문하거늘 대답이 한결같지 못하여 혹은 ‘도를 배우기 위하여 따랐다.’ 하고 혹은 ‘속임을 당하여 따랐다.’ 하니 신문을 마친 뒤에 모두 옥에 가두니라.
일본 공주를 해원시키려 함이라
9 이 때 상제님의 옥체는 피가 낭자하게 흐르고 만신창이가 되시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라.
10 상제님께서 옷도 입지 못하시고 겨우 몸만 가리신 채 밤을 새우시거늘
11 이튿날 성도들이 상제님의 옥체를 살피니 거짓말처럼 상처가 깨끗이 나아 있고, 용안은 화기(和氣)가 충만하여 평소와 같으시더라.
12 이 뒤에 상제님께서 공신에게 이르시기를 “이는 일본 공주를 해원시키려 함이니라.” 하시고
13 “지난 임진난리에 사명당이 일본에 가서 인피 삼백 장을 받아 오려 하였나니 그 때 일본 공주가 ‘나 먼저 벗기라.’ 하고 자결하였느니라.
14 그 죽은 혼령이 원귀가 되어 내가 죽은 뒤에 너희를 죽이려고 헌병을 이끌고 왔나니 내가 해원시켜 그 도수를 때웠노라.” 하시니라.
이 때 상제님 옥체는 머리가 매달린 채로 공중에 떠 계신 상태였다. 문공신 성도의 아들 문복환의 증언에 의하면, 일본 순검들이 상제님을 대들보에 매달고 고문을 할 때 ‘마치 명태를 매달아 놓고 돌려치듯’ 때렸다고 한다.
총순과 권임. 조선 후기의 경찰 직명.
고채. 차꼬. 긴 나무토막으로 두 발목을 고정시켜 중죄인을 가둘 때 쓰는 형구.
일본 공주가 자결하였느니라. 사명당이 1604년에 일본에 사신으로 건너가서 왜왕과 담판하여, 전란 때 잡혀간 3천여 명의 동포를 데리고 귀국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왜왕의 항복을 받고 매년 인피(人皮) 300장과 불알 서 말씩을 조공하도록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道典 5:215) 너희가 혈심을 갖지 못해 장상신이 응하지 않노라
1 일전에 상제님께서 이번 화액에 쓰기 위하여 약간의 돈을 준비하신 뒤에 갑칠에게 명하시어 ‘경석에게 전하라.’ 하시더니
2 갑칠의 심부름 맡은 사람이 화란을 틈타 그 돈을 훔쳐 도망하는 것을 갑칠이 쫓아가서 되찾아 경석에게 전하매
3 경석이 그 돈으로 옷과 침구와 음식 등을 준비하여 옥중으로 들여보내니라.
4 그믐날 저녁에 우레와 번개가 크게 일어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는 서양에서 천자신(天子神)이 넘어옴이니라.” 하시고
5 또 말씀하시기를 “이제 천자신은 넘어왔으나 너희들이 혈심을 가지지 못하였으므로 장상신(將相神)이 응하지 아니하노라.” 하시니라.
道典 5:216) 대공사를 처결함이니라
1 무신(戊申 : 道紀 38, 1908)년 설날 모질게 추운 날씨에 눈비가 많이 내리며 우레와 번개가 크게 일어나거늘
2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는 대공사(大公事)를 처결함이니라.” 하시니라.
道典 5:217) 공신이 죽으면 우리가 다 죽을 것이니
1 이 때 공신은 구둣발에 채인 곳이 크게 결리며 열이 심하게 나고 몸이 으슬으슬 떨려 매우 위독하거늘
2 간수가 들어와 고채를 끌러 주고 상제님의 고채도 끌러 드리니라.
3 상제님께서 여러 사람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이제 만일 공신이 죽으면 우리가 다 죽을 것이니 인곽(人槨)을 써서 낫게 해야 하리라.” 하시더니
4 마침 아침밥이 들어오거늘 상제님께서 “음식에 독이 있으니 먹지 말라.” 하시고 밥그릇마다 그 위 공중에 무슨 글자를 쓰신 뒤에 다 드시고는
5 그릇을 물리며 말씀하시기를 “인곽을 써야 하리니 모두 일어서라.” 하시고
6 좌우로 일곱 사람씩, 위로 두 사람 아래로 한 사람을 서게 하시어 널과 같이 만드신 뒤에 공신을 그 가운데에 눕히시니라.
道典 5:218) 그래야 네가 사느니라
1 이 때 구류간에 바람을 통하게 하는 작은 구멍이 있어 그 구멍에 종가리 한 개를 두고 오줌을 받아내는데
2 마침 그 종가리에 오줌과 오줌 찌꺼기가 반쯤 괴어 있는지라
3 상제님께서 종가리를 손에 들고 인곽 안에 누워 있는 공신을 일으켜 세우시고
4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으시며 친히 종가리에 있는 오줌 찌꺼기를 손으로 훑어 세 모금을 드시더니
5 그 나머지를 공신에게 주시며 명하시기를 “공신아, 이것을 마시라.” 하시니라.
6 공신이 순간 크게 감동하여 생각하기를 ‘선생님은 나를 살리기 위해 이 더러운 것을 얼굴빛 하나 변치 않고 잡수셨는데
7 내가 어찌 마시지 못하리오.’ 하고 받아 마시매 오장이 뒤집히는 듯하거늘
8 억지로 참으니 말씀하시기를 “참지 말고 올라오는 대로 다 토하라. 그래야 네가 사느니라.” 하시는지라
9 공신이 비로소 깨닫고 토하니 그 뒤로 땀이 많이 나며 열이 내리고 결리던 곳이 나으니라.
道典 5:219) 점점 더 원망하는 종도들
1 여러 날이 지날수록 인심이 동요하며 상제님을 원망하는 사람이 늘어나거늘
2 상제님께서 일러 말씀하시기를 “대저 인생이 일사(一死)면 도무사(都無事)라 하나니 죽어도 원망은 말라.” 하시고
3 또 공신에게 이르시기를 “일을 하려다가 이루지 못하고 죽을지라도 원통히 여기지는 말라.
4 죽을지라도 곱게 죽는 것이 좋으니라. 너는 자식이라도 있으니 한이 없으리라.” 하시니라.
5 이에 상제님께서 천지를 개벽하여 선경을 열어 각기 영화를 누리게 해 주실 것으로 믿었던 성도들은 더욱 두려워하여
6 그 중 몇 사람은 “저런 말을 하는 것은 이런 화액에 능히 대처할 권능이 없음을 스스로 드러냄이라.
7 우리가 믿었던 그의 권능은 한낱 무용의 믿음이요, 다만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삿된 일로 우리를 사지(死地)에 몰아넣은 것에 지나지 못함이라.” 하고 크게 원망을 하니라.
道典 5:220) 비록 십만 대중이 이러한 화액에 걸려도
1 운곡(雲谷)에 사는 노씨(盧氏)는 평소에 형렬과 자현을 잘 아는 사이로 고부경찰서 총순(總巡)과 이종간이라.
2 이 때 노씨가 편지를 써서 김태옥(金太玉)을 고부로 보내니 태옥이 고부에 가서 죽마고우인 옥사장 김검암(金劒岩)에게 그 편지를 보여 주며 말하기를
3 “형렬과 자현은 나의 친족이니 면회도 시켜 주고 이왕이면 두 사람을 좋은 방으로 옮겨 주오.” 하고 청하거늘
4 검암이 두 사람의 방을 옮겨 주려 하매 형렬이 그 간수에게 청하여 상제님도 옮겨 드리게 하니라.
5 상제님께서 형렬과 자현을 보시고 “속언에 세 사람이 모이면 관장(官長)의 공사를 처결한다 하니
6 우리 세 사람이 모였으니 천하사를 도모하자.” 하시매 두 사람이 아무런 대답을 못 하거늘
7 상제님께서 “왜 복이 무거워서 대답을 못 하느냐?” 하시고 “금일 천지공사를 세 사람이 결정한다.” 하시니라.
8 또 자현에게 조용히 이르시기를 “비록 십만 대중이 이러한 화액에 걸려도 털끝 하나 상함이 없이 다 끌러 내리니 안심하라.” 하시니라.
道典 5:221) 성도들의 석방
1 이 뒤로 경관이 아무리 조사하여도 의병의 증거가 나오지 않고
2 또한 사람들이 ‘선생님은 신의(神醫)로서, 부모나 처자의 병을 낫게 해 주신 은혜를 잊지 못하여 설날을 맞아 세찬(歲饌)을 드리러 왔다.’ 하며 혹은 ‘공신의 친척으로서 인사차 왔을 따름이라.’ 하므로
3 마침내 정월 10일에 사람들을 석방하며 이르기를 “지금은 비상시라 단체로 모일 때가 아니니 이 뒤로는 특히 주의하라.” 하니라.
道典 5:223) 천자를 도모하는 자는 다 죽으리라
1 며칠 후에 공신은 석방하였으나 상제님의 말씀은 한낱 ‘광인의 미친 소리’라 하여 상제님을 구류간에 홀로 감금해 두더니
2 38일 만인 무신년 2월 4일 만물이 싹트는 경칩절(驚蟄節)에 석방하니라.
3 이 때 차경석과 안내성이 돈 120냥을 가지고 와서 새 옷을 지어 드리려 하거늘 그만두게 하시고는
4 압수당한 돈과 무명을 찾아 순검과 빈궁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고 술을 사 주시기도 하니라.
5 고부에서 사흘을 머무르신 뒤에 와룡리 황응종의 집으로 가시니 차경석이 따르거늘
6 이 때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천자를 도모하는 자는 다 죽으리라.” 하시고
7 “꿈만 꾸는 자도 죽으리라.” 하시니라.
8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곳에서 죽으면 땅에서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9 이후 경석을 데리고 손바래기 본댁으로 가셨다가 김성연의 주막에서 술을 잡수시고 대흥리로 가시니라.
道典 5:224) 화액에 참여한 사람들
1 이 화액에 참여한 사람은 김형렬, 김자현, 문공신, 공신의 형 학철(學哲), 당질 수암(首岩), 매부 허성희(許聖喜)와
2 김광수(金光洙), 김공빈(金工彬), 김 참봉(金參奉), 이화춘(李化春), 박장근(朴壯根) 등이요, 그 외 열 명은 성명이 밝혀지지 않으니라.
3 그 가운데 허성희는 수금되었을 때 불평하는 사람들을 잘 효유하여 진정시키기에 많은 노력을 하였다 하거늘
4 이 화액을 겪은 뒤로 형렬과 자현 등은 여전히 상제님을 받들고
5 나머지 사람은 모두 흩어져 “선경(仙境)세계를 열어 평생 영화와 복락을 누리게 해 준다고 하더니 그 말에 속아 자칫 죽을 뻔했다.” 하며 상제님을 심히 원망하더라.
이화춘, 박장근의 배신과 최후
6 경찰서에 수금되었을 때 박장근, 이화춘 등은 상제님을 심히 원망하며 불경한 말을 하더니
7 2월 초에 상제님께서 대흥리 차경석의 집에 계실 때 이화춘이 오거늘
8 상제님께서 이르시기를 “사람이 비록 불길 속으로 들어갈지라도 더욱 마음을 굳게 하여 본심을 지키고 의리를 존중하여야 하거늘 너는 어찌 그렇듯 무례하게 불의를 감행하느냐.
9 이 뒤로는 깊이 참회하여 모든 일에 의리를 지켜 나의 가르치는 바를 잘 따르라. 그렇지 않으면 신명을 그르치리라.” 하시니라.
10 또 일러 말씀하시기를 “네가 지금 돌아가거든 방문을 굳게 닫고 출입을 폐하되 문구멍을 뚫어 밥을 들여 먹고 대소변도 받아내며 보름을 지낼지어다.
11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 화를 당하리니 부디 명심하여 잊지 말라.” 하며 여러 번 이르시거늘 화춘이 명을 받고 물러가는데
12 내성에게 명하시어 화춘을 다시 불러 이르시기를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믿지 아니하여 비록 죽는 일을 당할지라도 나를 원망치 말라.” 하시니 화춘이 대답하고 물러가니라.
道典 5:225) 귀신으로나 좋은 곳에 가게 하리라
1 다음 날 상제님께서 세수하시다가 문득 말씀하시기를 “시체 썩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하시더니
2 이윽고 화춘의 집 사람이 급히 와서 화춘이 밖에 나갔다가 의병에게 총살당함을 아뢰거늘
3 한숨을 쉬시며 “귀신으로나 좋은 곳에 가게 하리라.” 하시고 글을 써서 불사르신 뒤
4 심부름꾼에게 이르시기를 “시체는 단단히 묶지 말고 널에 넣되 널덮개도 단단히 잠그지 말고 양지쪽에 외빈하여 비바람이나 가리게 하라.” 하시니라.
귀한 것이 인망이니라
5 이어 탄식하며 말씀하시기를 “박장근도 또한 죽으리라. 그 성질을 고치기 어려우니 어찌할 수 없노라.” 하시거늘
6 경석과 내성이 함께 여쭈기를 “그 위인이 성질은 몹시 사납고 포악하나 여러 달 동안 닦아 온 정성을 살피시어 그 죽음을 면케 하여 주옵소서.” 하니라.
7 이에 말씀하시기를 “귀한 것이 인망(人望)이니라. 인망이 그러하니 다른 도리를 생각하여 보리라.” 하시고 다시 “생명은 보전케 하리라.” 하시니라.
8 그 뒤에 장근이 의병에게 맞아서 다리가 부러지니라.
道典 5:226) 신천지의 참주인 진주노름의 독조사 도수
1 공신이 출옥한 뒤에 하루는 고부 주막 주인이 공신의 집에 와서 느닷없이 공신 앞으로 달아 둔 밥값을 내놓으라며 살림살이를 차압해 가거늘
2 상제님께서 출옥하시면 압수당한 돈과 무명을 찾아 외상을 갚아 주실 줄 믿었던 공신은
3 큰 돈을 내고도 다시 수저 하나 남김없이 살림살이를 차압당하매 크게 불평을 품고 있더니
4 얼마 후 상제님께서 집에 찾아오시매 지난 일을 낱낱이 헤어 아뢰며 불쾌한 어조로 폭담을 하니라.
5 이 때 상제님께서 고개를 숙인 채 듣고 계시다가 공신에게 “이제 말 다했느냐?” 하시니 공신이 분이 풀리지 않은 얼굴로 “다 했지요.” 하거늘
6 말씀하시기를 “네 말을 들으니 그렇겠도다. 내가 순창 농바우에서 사흘 동안 머물며 너를 처음 만난 뒤로 네가 여러 가지 큰 공사에 참관하여 너에게 이윤(伊尹) 도수를 붙인 바 있고
7 고부 도수를 보려 하나 가히 감당해 낼 만한 사람이 없으므로 네게 주인을 정하여 독조사 도수를 붙였노라.
8 진주(眞主)노름에 독조사라는 것이 있어 남의 돈은 따 보지 못하고 제 돈만 잃어 바닥이 난 뒤에 개평을 뜯어 새벽녘에 회복하는 수가 있으니 같은 끗수에 말수가 먹느니라.
9 네가 고부에서도 밥값을 말한 일이 있었으나 그 돈을 쓰면 독조사가 아니니라.
10 만일 네가 꼭 돈이 있어야 되겠으면 내가 주마. 그러나 그리하면 그 도수는 다른 사람에게 옮겨야 하느니라.” 하시니
11 공신이 ‘어차피 돈은 쓴 것인데 도수까지 남한테 뺏긴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생각하여 여쭈기를 “일이 그와 같을진대 그만두시옵소서.” 하니라.
진주(眞主)노름에 독조사라는 것이 있어, 진주노름에 독조사. 진주는 상제님의 참일꾼 추수자(대두목)로서, 증산 상제님의 광구창생의 대업을 실현하는 ‘참 주인’이다. ‘독조사’란 오직 제 것으로 사람을 살리고 상제님의 도판을 개척해서 인재를 기르는 지도자의 길을 말씀하신 것이다. 반드시 자자손손 자신의 청춘, 재산, 정성을 전부 다 바쳐서 무에서 유를 개척하여 창업을 실현하는 것이 진주의 사명이요 독조사의 사명이다.
바닥이 난 뒤에 개평을 뜯어 새벽녘에 회복하는 수가 있으니, 새벽녘에 회복하는 수. 이는 증산 상제님 어천 이후 크게 세 차례에 걸친 증산도 도운 대부흥의 도수 과정에서, 제2변을 직접 개척한 지도자가 모든 것을 정리하고 다시 제3변 부흥시대를 열어 도세(道勢)를 만회함으로써 대개벽기 광구천하의 의통성업을 완수하는 것을 말한다.
道典 5:227) 화둔(火遁) 공사를 준비하심
1 그 후 대흥리로부터 태인 신경원(辛京元)의 집에 이르시어 한 달 동안 머무르실 때 신경원, 최창조, 김경학, 최내경이 상제님을 모시니라.
2 상제님께서 백암리 김경학의 집과 최창조의 집 양가를 왕래하시며 광찬의 양모(養母) 성복제(成服祭)를 창조의 집에서 거행케 하시니라.
3 하루는 상제님께서 신경원의 집에 계실 때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4 “천지에 변산처럼 커다란 불덩이가 있으니 그 불덩이가 나타나 구르면 너희들이 어떻게 살겠느냐.” 하시며
5 誰識南方埋火家
수식남방매화가
라 글을 쓰신 뒤에 창조에게 명하시기를
6 “돼지 한 마리를 잡아 계란으로 저냐를 부쳐서 대그릇에 담아 깨끗한 곳에 두라.” 하시고
7 이어 “내 옷 한 벌을 지어 두라. 장차 쓸 곳이 있노라.” 하시니 창조가 대답하고 돌아가서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8 그 뒤에 상제님께서 구릿골로 가시니라.
道典 5:228) 죽어서야 쓰겠느냐
1 얼마 후 공신이 발에 채인 곳이 재발하여 마당 출입도 못하게 되거늘
2 응종을 구릿골로 보내어 상제님께 아뢰니 “그리 내비둬라, 죽게 냅둬.” 하시는지라
3 돌아와 그대로 전하매 공신이 다시 심사가 나서 아무 약도 쓰지 않고 있더니
4 병세가 점점 위중해져서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게 되니라.
5 응종이 민망히 여겨 다시 상제님을 찾아가 뵈니 “공신의 병세가 어떠하더냐?” 하시거늘
6 응종이 대답하기를 “드러누워 움직이지 못하옵니다.” 하니라.
7 이에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죽어서야 쓰겠느냐. 찹쌀밥 아홉 때를 지어 먹으라 하라.” 하시니
8 응종이 돌아가 명하신 대로 전하매 그대로 하여 곧 완쾌하니라.
道典 5:229) 천지의 화액 불 기운을 묻는 화둔(火遁) 공사
1 무신년 3월에 구릿골에 머무르실 때 창조가 사람을 보내어 아뢰기를
2 “돼지고기로 전을 부쳐 둔 것이 다 썩었사오니 어찌합니까?” 하거늘
3 상제님께서 “좀 기다리라.” 하시더니 그 후에 형렬에게 명하시기를
4 “태인에 가서 신경원과 최내경을 데리고 새울 창조의 집에 가서 이르되
5 ‘일찍이 준비하여 둔 옷 한 벌을 세 사람이 한 가지씩 나누어 입고 돼지 한 마리를 잡아서 삶은 다음
6 오늘 저녁에 인적이 그치기를 기다려 한 사람은 그 집 정문 밖에 사람 하나 엎드릴 만한 작은 구덩이를 파고
7 그 앞에 청수 한 그릇과 화로를 놓은 다음 깨끗한 그릇에 호주(胡酒)와 문어와 삶은 돼지고기를 담고 그 위를 두부로 덮어서 구덩이 속에 넣은 뒤에
8 또 한 사람은 돼지고기 전을 한 점씩 들어 청수와 화로 위로 계속하여 넘기되 남은 한 사람이 그것을 받아서 구덩이 속에 다 넣은 다음 흙으로 덮으라.’고 자세히 일러 주고 빨리 돌아오라.” 하시니라.
9 이에 형렬이 명을 받들어 태인에 가서 일일이 지휘한 뒤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니
10 맑은 밤하늘에 갑자기 검은 구름이 몰려와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이 캄캄해지며 큰비가 쏟아지고 천둥과 번개가 크게 일어나니라.
11 상제님께서 형렬에게 물으시기를 “이 때쯤 일을 행하겠느냐?” 하시니 대답하기를 “행할 때가 꼭 되었습니다.” 하거늘
12 말씀하시기를 “만일 변산 같은 불덩이를 그냥 두면 전 세계가 재가 될 것이니라.
13 그러므로 내가 이제 그 불을 묻었노라.” 하시니라.
道典 5:232) 문공신의 불의를 경계하심
1 여름에 문공신이 구릿골에 와서 상제님을 뵙거늘 꾸짖어 경계하시기를
2 “네가 만일 허물을 뉘우쳐 전습(前習)을 고치지 아니하면 장차 어떠한 난경을 당할지 모르리라.
3 내가 만세의 억조창생을 위하여 그 운수를 순리로 받았으나 천지간의 모든 신명들은 혹 내 몸이 다칠까 걱정하고
4 혹 내가 마음 상할까 두려워하여 그림자처럼 나를 따르며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나니
5 너는 어찌 감히 나의 덕(德)을 해하느냐.
6 내가 너를 버리면 너는 성명(性命)을 보전키 어려우리라.
7 공신아! 천지에 사죄하고 나에게 돌아와서 영화를 구하라.
8 나는 너를 버려 내 덕을 상하려 하지 않노라.” 하시고
9 자현을 불러 말씀하시기를 “네가 공신의 집에 가서 여러 날 숙식하였으니 공신을 네 집에 데려다가 잘 대접하라.” 하시니라.
10 이후 자현이 그 분부를 잊어버리고 지냈더니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잘못했도다.
11 이 뒤로는 대접하려 해도 만날 기회가 없으리라.” 하시거늘 과연 그 뒤로는 서로 만나지 못하니라.
道典 3:187) 경석아, 집을 크게 짓지는 말아라
1 상제님께서 대흥리에 머무르실 때 경석을 데리고 네 차례 비룡산(飛龍山)에 오르시어 공사를 행하시니라.
2 그 뒤에 경석의 집 벽에
千古春秋阿房宮이요 萬方日月銅雀臺라
천고춘추아방궁 만방일월동작대
3 라고 써 붙이시며 경석으로 하여금 마음에 간직하여 잊지 않게 하시고
4 또 경계하여 말씀하시기를 “경석아, 집을 크게 짓지는 말아라. 그러면 네가 죽게 되느니라.” 하시니라.
5 하루는 상제님께서 형렬에게 말씀하시기를 “정읍이 대창(大昌)하되 잠농지운(蠶農之運)이라. 누에는 집만 지으면 죽나니 집만 끝이 나면 죽으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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