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설날의 단상
유옹 송창재
그저 연휴여서 신나는 휴일이겠지만
그래도 설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예전 이맘때면
은행에는 빳빳한 신권의 지폐로 구권을 교환하기 위해서 드나드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오늘 시내에 나간 김에 은행에 들렀더니 역시 그런 풍경들은 볼 수가 없었다.
지금은 카드들을 많이 사용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이나 연세드신 어르신들은 아직도 빠닥거리는 현금을 선호하시는 지라
혹시나 했더니!
역시 예상대로였다.
한편 허전하고 또 한편으로는 편안해서 좋았다.
명절이 가까워지면
어른은 어른으로
아이는 아이답게 설날이 기다려 졌지만
어떤 때는 심적으로 은근히 부담스럽기도 했었다.
어른들은 없는 살림에 새해 첫 명절이라고 조상들께 차례를 모시느라 색다른 음식들이라도 장만을 해야 되고 또 아침에 어린 식솔들로 부터 예쁜 세배를 받고 덕담과 함께 조금이라도 세뱃돈을 주어야 한다는 어떤 부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요즘은 화폐의 명목 단위가 높아져
예전의 우리처럼 정으로만 설날을 보낼 수가 없어
어중간히 자란 조카손주들을 보면 주머니가 가벼운 나로서는 눈치가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없던 그 시절
어린 아이들이 그 추웠던 겨울에 아랫도리가 눈 속에 푹 빠져 고드름이 맺히도록 세배를 다닌 이유는
명절이라고 몇 푼의 동 전이라도 생기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윗 어른들을 찾아뵙고 새해 인사를 드리라고 마구 내 몰지만 사실은 어른들의 심정도 아이들에게 용돈도 줄 수 없었던 형편에 그래도 명절이라고 인사도 드리고 용돈도 얻어 쓰게하려는 어떤 숨겨진 목적도 있지 않았을까?
물론 아이들은 그렇게 추워도 얼음이 꽁꽁 언 논을 건너고 밭을 지나서 친척들을 찾아뵙고 세배도 드리며 몇푼의 용돈을 얻어 오기도 했다.
사실은 염불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더 많았으니까.
나는 그랬다
집에 돌아오면 동생들과 오늘 얻었던 새뱃 돈이 얼마나 되는지 호주머니를 다 털어서 서로 비교해 보며 웃고 울고 했었다.
몇 푼 못 받은 동생들에게는 아버지나 어머니가
동생들보다 더 먼 곳까지 세배를 다녀서 당연히 수입이 많은 형님 누나에게 조금씩 나누어 쓰라고 하셨다
이제 어른이 되어 용돈을 줘야하는 입장이 되어 보니까
부모들이 우리들에게 명절을 핑계삼아 가르쳤던 예의나 도덕은 물론이고 우리들 모르게 가족들의 우애를 기르고 있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설날이고 추석이고 우리의 명절이라고 찾게되면
마치 구닥다리의 꼰대처럼 취급을 받는 경우가 된 것같다.
이중과세 금지의 취지가 어떻고, 그것의 좋고 나쁘고 옳고 그름을 떠나
요즘처럼 가족구조의 완만한 변화과정도 거치지도 않고 순식간에 일반화 되어버린 핵가족도 아닌 단일가족의 가족 구조에서는,
많은 경우에는 한 대 아래의 가족들은 서로 얼굴도 모르고 사는 세상에서
식솔들이 모여 얼굴이라도 볼 기회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데 몇해 전에는
그것이나마 공식적으로 국가에서 가족들이 모이는 것을 규제했다.
이른바 코로나 사태였다.
연초부터 창궐하여
온통 사회를 공포 분위기로 몰아 넣어
고무줄 늘이듯이 사회적 긴장감을 늘이고 줄이고 하더니 급기야는 설에는 5인 이상의 회합을 금지 당하는 경우가 생기고 말았었다.
그러니 낡은 고향에 마지못해 인사하러 와서 하룻밤 자고 훌쩍 떠나던 애들 조차도
연휴에 불과하던 설날에 외국나들이도 못 가고, 그렇다고 고향에도 안 가고
그야말로 아무런 정신적 부담없이 단세포가족의 단촐함을 만끽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래도
우애가 돈독한 가족들은
두번, 세번으로 파트를 나누어 토너먼트로
만나기로 하였다고 연락이 오기도 했었다.
그런데 언제든지 덕 보는 이가 있으면 손해보는 이도 있듯이, 그때 설날의 최대의 피해자는 세뱃돈을 수금할 수금 장부를 적어놓고 코로나가 끝나면 학교에 가서 신나게 군것질하며 한껏 부를 과시하려 했던 천진한 어린 애들로써, 꿈이 산산히 깨어져 사업이 망했고
나처럼
가벼운 주머니때문에
쓸데없이 가슴이 무거워 체증을 느끼며 애들 오기 전에 살짝 어디 바닷가로 피신해서 겨울바다나 보고 있을까 하고 째째한 생각을 했던 중이었는데,
손주들이 전화라도 해주면
설날인데 세배하러 오지 그러느냐고
당당하게 큰 소리를 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역시 세상은 음양의 조화가 있어 이번 한 달은 분위기있는 카페에 가서 테이크 아웃 하지 않고
텅빈 구석자리에서
차 한잔이라도 마실 수 있겠다 했었다.
아니다.
굳은 세뱃돈으로 조그만 포구에가서
글감이라도 얻는다는 핑계로 민박이라도 하고 올까?
이것은 코로나 덕인가?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몇년이 지난 지금도
새해세배를 오겠다며 안부를 묻는 전화가 반가우면서도 그냥 전화로 세배하기로 하자고 너스레를 떨고나서 한편으로는 허전하게 텅 비어 버리는 마음은 단지 세뱃돈의 궁색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갈수록 설날의 도피처를 찾을 수고를 덜으니 좋기도 하지만 그 핑계로 작은 포구의 민박집 아랫목이 더 그리워지니 변덕스러운 허전함때문일까?
손주녀석들이 이 글을 읽으면 할배에게 내년부터는 지들이 용돈이라도 보내 주겠지? ㅎㅎ
가난한 늙은 글쟁이는 어쩔수 없는 것이란다.
왜 허전한지.
첫댓글 설날이 다가오지만 결혼한지 10년째인 자식에게 손자가 안생기니 마음 한구석은 언제나 쓸쓸하다. 자식들 어릴 때는 설날이 가까우면 신권을 바꾸어 지갑속에 준비하여 놓았었는데 세뱃돈을 나눠어줄 조카, 손자도 몇 안되니 올해는 신권을 바꾸지 않았다. 설날이 다가와도 즐겁기보다는 더 쓸쓸한 건 나이탓일까?
요즘은 다른시각으로 보면 고유의미의 가족이 파괴되는 현상들이 보이죠.
나이든 사람들의 시각으로는 더욱 심각하여
많이 외롭거든요!
설 잘보내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