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전공과 시험이 없는 학교
세인트존스에 없는 것이 또 있다.
전공과 시험이다.
전공이 없다는 것부터 살펴보자.
보통의 대학에는 다양한 학과가 있고 학생들은 2학년쯤부터 자신의 전공을 결정한다.
하지만 세인트존스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전공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인트존스 학생, 즉 조니들Johnnies은 전공을 정하느라 머리를 싸맬 필요도, 전공을 이수하기 위한 수업을 들을 필요도 없다.
"4년간 대학에서 공부를 하는데 전공이 없다"는 말을 들으면 '그럼 학생들은 뭘 공부하는 거지?' 하는 의문이 먼저 든다.
세인트존스에서 4년 동안 배울 것들은 이미 다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수업을 선택할 권한은 없다.
따라서 세인트존스에 들어온다는 것은 4년 동안 수학, 과학, 음악, 언어, 철학 분야의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공부를 하겠다는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세인트존스만의 전공
전공 없이 학교에서 짜놓은 수업을 듣는 것에는 장단점이 있다.
제일 큰 단점은 원하지 않는 공부를 해야 할 수도, 듣기 싫은 수업을 들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과학 실험 수업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해도 잘 안 되고 어려웠다.
그렇더라도 보통은 무언가를 모르겠으면 알고 싶어지고 질문하고 싶은 것들도 생기는데 과학 분야만큼은 그냥 아예 관심이 없었다.
때문에 일주일에 세 번, 특히 그 세 번 중 한 번은 연속 세 시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을 들이는 과학 실험 수업은 나에게 고문과도 같았다.
또 다른 단점은 수업 스케줄을 개인이 정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각 학년별로 들어야 할 수업들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 아예 수업 스케줄을 짜준다.
적당한 비율로 다양한 학생들을 골고루 섞기 위해서다.
그러다 보니 일주일 스케줄을 내 의지대로 결정하지 못하는 불편함이 생긴다.
당연히 장점도 있다.
우선 기본적으로 수강 신청 스트레스가 없다.
매 학기가 시작되기 전, 머리를 싸매고 수강신청안내서를 보며 어떻게 원하는 대로 수강신청을 할 것인지, 그 모든 것을 성공적으로 해내기 위해서 언제 피시방에 가서 미친 듯이 클릭을 해야 하는지 같은 은근히 짜증나는 고민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
이건 정말 꽤 큰 즐거움이었다.
나는 학교 다니는 내내 다른 대학에 다니던 언니들의 수강 신청에 대한 고충을 한 귀로 흘려들을 수 있었다.
또 다른 장점 하나는 4년간의 커리큘럼이 같다 보니 학교에 있는 어느 누구와도 공부에 대한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1학년들이 지금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어떤 책을 읽으며 어떤 점을 힘들어하는지 등의 고민들을, 그 과정을 겪은 2, 3, 4학년 선배들은 물론 학교 관계자들까지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누구와도 상담이 가능하다.
당연히 학년이 올라가면 학생 스스로가 후배들의 고민을 똑같이 들어주고 좋은 조언을 해줄 수 있다.
이렇게 선후배 간에 누구와도 쉽게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건 상당히 큰 장점이다.
심지어 홈커밍(동창회) 행사에 온 1960년대 졸업생 할머니와도 대화가 가능할 정도다.
읽는 책들은 조금씩 바뀌더라도 대체적인 커리큘럼과 흐름은 비슷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가장 중요한 장점은 스스로도 몰랐던 가능성 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니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수학을 싫어했고 제일 자신 없었던 과목 역시 수학이었다.
그래서 4년간 세인트존스에서 수학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걸 알았을 때 좌절하기도 했다.
대학에 가면 수학과는 영원히 작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인트존스에서 배웠던 수학은 완전히 새로웠고, 수업을 들으면서 나도 수학을 잘할 수 있디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인트존스에서 공부하면서 내가 가장 좋아하게 된 수업이 바로 수학일 정도다.
만약 내가 수업을 선택할 수 있었다면 수학을 선택했을까?
절대 그랬을 리 없다.
나는 가장 먼저 모든 수학 수업을 내 수강 신청 리스트에서 제거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수업 선택의 자유가 없다는 점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이제 또 다른 궁금증이 생긴다.
전공이 없다면 학위는 어떻게 딸까?
사실 이건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세인트존스를 졸업 하면 받게 되는 학위는 'Bachelor of Arts'인데 인문학(교양학) 학사 학위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또 대학원 진학이나 취업을 위해 지원서를 작성할 때 전공을 기입하는 칸이 있으면, '철학' 그리고 '수학과 과학의 역사'를 복수전공 했다고 쓰긴 하는데 그 자체에 별로 의미를 두지 않는다.
대신 필요에 따라 세인트존스는 어떤 커리큘럼을 가진 특별한 학교인지 학교에 대한 설명을 따로 첨부하기도 한다.
수업이 곧 시험
세인트존스에는 시험도 없다.
시험이 없다니!
초.중.고 내내 학생들을 따라다니며 괴롭히던 시험이 존재하지 않는 학교라니, 얼마나 즐거울까!
사실 그렇다.
나는 세인트존스에 오기 전 커뮤니티 칼리지 community college(편입을 준비하거나 기술을 배우는 2년제 대학교)를 다닐 때도 시험 기간이 되면 은근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공부했다.
하지만 세인트존스에서 지낸 4년의 대학 생활 동안, 단 한 번도 시험 스트레스를 받으며 공식을 암기할 필요가 없었다.
조니만이 누릴 수 있 는 정말 대단한 특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험이 없으니까 대학 생활 자체가 천국이겠구나!' 하고 생각하면 정말 큰 착각이다.
시험이 없다는 것의 의미는 정말 시험이 없다는 말도 되지만 동시에 매일매일의 수업이 시험이라는 말도 되기 때문이다.
사실 시험 없는 학교는 있을 수 없다.
세인트존스에는 보통 대학들에 있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없을 뿐이다.
그런 정기적인 시험이 없기 때문에 '시험 기간' 동안 벼락치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매일매일의 수업을 잘 준비해 가야 하고 수업 시간에 내가 열심히 배우고 있다는 것을 토론을 통해 드러내야만 한다.
세인트존스는 매일매일의 수업과 토론, 에세이를 통해 학생이 잘 배우고 있는지를 검사하고 평가한다.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와는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다.
벼락치기 공부에 익숙했던 나는 처음에는 매일 꾸준히 공부해야 한다는 게 힘들었다.
구멍 뚫린 항아리에 물을 붓고 있는 듯한, 절대로 끝나지 않을 일을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세인트존스에서는 매번 전 수업을 이해해야 그다음 수업 때 토론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수업을 가지 않거나 한두 번 이해 를 못 하면 그 어려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점점 토론 내용과 멀어지게 되고, 당연히 토론에 끼지 못하게 된다.
그렇기에 수업에서 뒤처지면 안 된다는 두려움이 아주 컸다.
그래서 매일 조금이라도 열심히 공부했고 만약 오늘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다음 수업에서 전날 수업에 대해 다시 질문하면서 따라가려고 노력했다.
듣기에는 참 이상적인 공부 같아 보일지 몰라도 공부를 하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정말 큰 스트레스다.
또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는 없지만 매 학기 한 번씩 중요한 세미나 에세이를 제출해야 했는데, 이게 시험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세미나 에세이는 가장 중요한 리포트이자 한 학기 배움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써야 했기 때문이다.
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 중에서
세인트존스를 소개합니다
조한별 지음
첫댓글 100권 독서, 토론, 에세이 진정한 지성인을 키우는 대학이네요^^
부러우면 지는건데,
그래도 부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