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차는 7시 10분에 떠나고]
맞춰둔 알람보다 한 시간이 먼저 눈이 떠졌다. 새벽 4시 반...
눈을 감고라도 더 누워 있을까도 잠깐 생각했다.
오늘 산행을 위해서라도 그러나 그러고 싶지가 않다.
정 힘들면 혹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잠깐 눈이라도 붙여볼까...
지난밤의 충격에 가까운 비보에 뒤척이다가 마지막 본 시간이 새벽 1시 30분인 이였던...
비몽사몽이다.
우선 냉장고에 넣어둔 먹거리부터 D 팩에 담고 최종 배낭 패킹을 완성하고
폰을 보니 파주 형님의 출발 알림이 뜬다.
잠들어 있는 아내에게 마음속 인사를 전하고 언제나 나를 주시하는 내 곁의
껌딱지 콩떡이는 아빠를 며칠간 못 볼 걸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그 큰 꼬리로 풍차를 돌리며
종아리를 핥아 준다.
“엄마랑 엉아들이랑 잘 놀고 있어... 아빠 갔다 올게...”
유난히도 오늘따라 그 큰 눈망울이 슬퍼 보이는 건 지금의 내 마음을 콩떡이는 알고 있기 때문일 거란 생각이다.
묵직한 배낭의 무게에도 집 나섬의 발걸음은 항상 가벼웠는데 마음 한편이 무겁다.
7시 10분 용산발 구례구행 13호 객차 10열에 A석, B석이 좌표다.
일찍 나선길에 시간적 여유가 많다.
올라선 기차역 대합실에는 그 이른 시간에도 빈자리를 찾기 어렵다.
다만 나와 같은 큰 배낭을 맨 산객이 적을 뿐이다.
휴가 기간이긴 하지만 날씨의 영향이 크리란 생각이 먼저 든다.
평소 아침은 꼭 먹는 식습관인지라 주변을 둘러보니 빵집 뚜레쥬르가 보인다.
형님도 도착시간이 다 되었고 해서 전화를 넣어본다.
식사는 하셨어요?
부고는 접하셨지요?
도착 5분 전이라는 짧은 인사로 마무리하고 샌드위치와 커피를 주문했다.
세트 메뉴가 할인인지 몰랐는데 샌드위치가 반값이다.
아침을 다 드시고 커피까지 다 드셨다고 극구 사양하시던 전화 내용을
그대로 믿고 막상 형님 얼굴을 뵈니 사양은 겸손의 미덕이란 예의일 뿐...
바로 가서 형님의 아,아를 한 잔 더 주문한다.
그새 줄이 늘었다.
외모는 근사한 중년인데 주문하는 뽐세는 순 시정잡배보다 못한 어떤
한심한 작자의 작태도 보며... 딸뻘인 여자 알바생에게 반말 주문과 빨리 달라며 카드로
유리 진열장을 계속 탁탁 두들기는 작태라니... 차시간에 쫒기나?
그래도 이건 좀 ...에이 나잇값좀 해라...
니 딸이라면 그렇게 하겠니 이 한심한 작자야...
형님만 밖에서 안 계셨어도.
기차 시간만 여유가 있었어도...
넌 그렇게 살다 가라.
우리 형이 그토록 원했을 오늘을 넌 그렇게 시작하니...
내 오지랖이란...
우리 집 큰놈도 고3 대입 시험 후 KFC 알바를 하며 저런 유의 쓰레기들을
겪었던 경험담이 확 와 닿는 순간이었다.
플랫폼으로 내려서는 입구가 쉽게 눈에 안 들어온다.
너무 오랜만의 기차여행이어서 그런가...
엘베를 타고 내려서니 몇 발짝 안 가서 바로 13호 객차 정차 라인이 선명하다.
파주 형님은 급히도 남은 커피를 마시곤 쓰레기통에 넣어버리고
여유 있게 객차 안에서 더 만끽하려던 나도 덩달아 빨대를 빠르게 빤다.
순방향으로 꼼꼼히 잘 티켓팅을 했는데 순간 진행 방향이 헷갈린다.
잘못 끊었나?
아니란다.잘했단다.
잠을 설친 탓이려니...
잠시 정신줄이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바로 광명역에 도착한다는 안내 맨트가 나온다.
숙경네 내외가 탈 차례다.
변 서방이 특유의 커다란 덩치에 큰 배낭을 매고 들어서고 거목?나무에 매미가 붙듯
자그마한 체구의 숙경이 남편 옆에 착 붙어서 들어선다.
얼굴엔 만연의 미소가 가득하다.
본인들의 자리에 착석하기도 전에 양손 가득히 들고 온 캔 커피며 풋사과와 참외가
담긴 과일 봉지까지 덥석 건낸다.
아마도 본인들의 아침 식사 거리로 우리 들것까지 더 챙겼으리라...
그 살가운 배려와 나눔에 감동 한 스푼 추가다.
거 봐라...무게는 단지 질량의 숫자일 뿐 마음 씀의 무게는 담으면 담을수록 더 가벼워진다.
진정한 나눔과 배려를 아는 친구들이다.
꼭 2차 백두까지 연줄을 찾아 올라가지 않더라도 지금의 내 옆에서 매달 이틀 이상은
꼭 보는 변 서방과 숙경은 더 잘 챙겨야 할 보물들이다.
가끔보는 어쩌다 동행도 소중하지만 매달 매번 희생과 봉사를 표 내지 않고 묵묵히 잘하고 있는 뭘 좀 아는 동생들이니까.
산사랑 회장으로 불암산 시산제 행사를 진행할 때의 기억이다.
회원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데 보태라며 자기는 원주에 있기에 마음만 보탠다며
오랜 시간 일과 육아로 산사랑을 잠시 떠나 있었지만, 띠 모임 우사랑 친구 편에 보내온
찬조금은 아주 요긴히 고맙게 잘 쓰였었다.
잘 쓸 줄 아는 멋진 친구다.
그 후로도 다른 사랑방 모임에서 자주 함께 여행도 하고 산행도 하며 그렇게 친분을 더 쌓았고
숙경이 모친상을 치를 때는 빈소가 차려진 원주까지 회원들의 마음을 대신해서 대표로 직접 전달하기도 했었다.
본인이 잘하는 것과 잘못하는 것 부족한 것과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을 분명히 잘 알고 있는 친구다.
부창부수라고 남편이 먼저일 수도 있고 아내가 나중일 수도 있지만 난 숙경과의 인연이 먼저이니 숙경이 더 편한 게 사실이다.
서해랑과의 인연도 그렇다.
어쩌다 남편까지 앞장세우고 이제는 다음 달이면 꼭 1년이다.
좋은 인연에 감사하고 한 살이라고 더 먹은 우리들이 잘해야 이 모임 이 산악회가 더 잘될 것은 자명하다.
일부의 잘못에 실망하고 그것이 전부인 양 낙인론으로 치부되어 단절되고 반목 된 게 사실이고
전성기는 지났다고는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런 저력과 훌륭한 재원들이 아직도 충분하다고 본다.
가능성을 믿고 어린 동생들에게 격려와 성원을 보내준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가 더 잘 되는 것일 거다.
파주 형님의 배낭 무게는 가늠해 봤으니, 이번에는 숙경네 배낭을 받아 들고 선반에 올려줘 본다.
생각했던 거보단 묵직하다.
아마도 넣다 보니 더 넣게 되었으리라...
다행히 기차 선반 폭이 넓다.
여유롭고 한가로운 편안한 여행길이다.
빠르고 쾌적하다.
옆자리의 파주 형님은 자리에 착석한 후 단 한 번도 미동 없이 눈을 감고 계신다.
무거운 배낭에서 명상록을 꺼내 들었다.
그 옛날 코엘류의 연금술사를 세석산장에서 하루를 보내며 읽었던 기억을 더듬어
왠지 책 한 권은 내 지적 사치에 맞을 것만 같아서였나?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책이지...머리엔 잘 안 들어온다.
명상을 위한 독서가 아니다.
멍하니 먼 산을 보는 게 편하다.
정확히 2시간 30분 후인 9시 40분에 구례구역 플랫폼에 우리를 내려 주었다.
4시간이 넘게 걸리던 길을 말이다.
택시가 없다.
아니 딱 1대가 서 있다.
기차에서 내려서며 형님께 약간의 시간을 좀 끌어 달라고? 했고 주변에서
근심과 걱정을 긴 한숨 속에 내 뿜으며 긴장을 풀고서는 서 있던 그 택시로 갔다.
성삼재 가실래요?
얼마예요?
가신다고... 4만5천원이라고...
근데 형님이 안 나오신다.
조금 기다리면 나오시겠지.
택시 기사가 성화다. 두 명인 줄 알았는데 4명이냐고?
한 분은 어디 가셨냐고. 들어가서 빨리 나오라고 해보라고. 보통 성화가 아니다.
이 시간이면 구례 터미널까지 한 번 더 갔다 왔다 할 시간이라나 뭐라나...
쎈 기사분을 만났다.
아니나 다를까 성삼재까지 오르는 그 30여 분간 단 한시도 그치지 않고 연신
쏟아내는 말!말!말! 귀에서 피 나는 줄...
나도 개인택시를 해 봤지만 이건 좀 심했다.
창문도 못 닫게 하고 에어컨은 언감생심 트렁크에 배낭 싣고 내릴 때도 범퍼에
기스난다고 성화고. 정부 시책에는 왜 그리 반골이던지 그중 그나마 다행인 것이
그나마 운전이라도 제대로 해서지 기사님 눈치를 보며 어르고 달래며 달렸다.
켜지도 않고 달리던 미터기를 보며 웃돈 5천 원을 더해서 오만원권 한 장을 건내니
영수증 대신 자신의 명함 한 장을 준다.
다음에도 다시 찾아 달란다.
아~제발요...
오르던 성삼재 길이 5공 때의 치적이란 것도 그 기사분을 통해 들었다.
이번 여름 유난히 폭염과 폭우가 잦아서인지 곳곳이 공사 중이며 교행하는 길이 많다.
구름도 쉬어 가는 성삼재 그 너른 주차장 한켠에 내려섰다.
너 얼마 만이더냐.
낯선 듯 낯익은 듯 드디어 지리산 품에 첫발을 디뎠다.
비가 그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촉촉하고 차가운 기운이 서늘하기까지 하다.
아~ 이 얼마나 그리웠던 감촉인가.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살짝 등골과 이마의 땀을 살짝 씻기운다.
시원하다.
살 것 같다.
드디어 왔다.
그래 이 기분이지.
유난히 어렵고 우여곡절이 많았던 이번 산행...
아마도 앞으로는 더 말도 탈도 많아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 없는
평화로움 그 자체다.
그 옛날 새벽에 라면을 끓여 먹던 화장실은 포크레인으로 다 깔아뭉개고 신축 중이고
없던 커피숍과 편의점이 들어서 있었고 공단 직원들과 작업 인부들만이 분주히
저마다의 일들을 해내고 있다.
채비와 정비시간이다.
신었던 샌들을 등산화로 갈아신고 모자를 바꿔 쓰고 팔토시를 했다.
형님은 썬크림이 또 바뀌었다.
이번에는 쿠션 타입에서 스틱 타입이다.
딸 부잣집은 챙김이 다르다.
숙경 내외가 앞장서 먼저 걷는다.
어느 쪽으로 오르던가 방향감 상실이다.
이게 바로 이상과 현실이리라.
임도로 가다가 오른쪽 꺾자마자 바로 산길 계단 길로 갔던 기억을 알려주고는
천천히 걸어본다.
우리와 같은 산객들 몇이 삼삼오오 앞뒤로 걸으며 지리산에 든다.
구례에서 일차 전화 통화를 했던 민호에게서 연락이 온다.
주능선은 입산 통제가 계속 발효중이니 노고단 산장에서 일단 점심을 먹고
다시 상황을 보고 이야길 해보자고 한다.
이래저래 자기 일도 바쁜데 우리 일행의 이동과 산행에 길라잡이를 자처한다.
지인찬스 1.2.3중 처음의 1이 1인자의 1처럼 처음이자 마지막 찬스로 산행 내내 유효했다.
한적한 임도를 고즈녁히 올랐다.
땀도 나지 않는 서늘함이 좋았다.
날은 잔뜩 흐렸지만, 간간이 부는 바람에 산 중턱에 걸린 가스 구름만이 이리저리 흐트러지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 예정된 길로 이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날씨가 더 드라마틱한 풍광을 보여 주는 법인데...
구름에 가리웠다가 다시 바람에 일렁이며 살포시 보여 주고는 다시 냉큼 언제 그랬냐는 듯
홀연히 자취를 감추는 그런 앙탈과 조바심을 넘나드는 호기심 가득한 설렘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으나 바램은 잠시 스치는 바람일 뿐.
현실은 언제나 냉정한 법.
실로 몇 년 만에 다시 보는 노고단 산장이던가.
옛 모습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현대식 건물에 옛 취사장 자리는 온데간데없고 여기도 또 큰 규모로 화장실 공사가 한창이다.
화장실이 그렇게 부족했나?
등산객 증가 수보다는 관광객 수가 많이 늘어난 탓일 거라 짐작을 해본다.
서울서 오던 심야 기차 편도 이제는 KTX로 자리를 내주며 생활패턴도 이동 교통편도
모든 것이 그걸 기준으로 바뀌며 변모 중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난 지금껏 노고단에서는 한 번도 자본 적이 없다.
그런데 앞으로는 주능선 종주를 할라치면 자주자주 접할 건 같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노고단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될 날도 오겠지란 생각도 해본다.
오늘 점심은 식단표대로 비화식이다.
불을 쓰지 않는... 엄밀히 말해 뜨거운 물을 부어야 하니(순수 찬물로 데우는 것도 있다고 함)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형님이 내 것까지 준비해 주셨고 숙경 내외도 같은 메뉴다.
그런대로 간편히 먹기에는 좋았다.
식수 보충하던 곳도 눈에 안 보이고 급한 대로 화장실 세면대에서 받아서 물을 끓였는데
나중에 보니 잔반통 옆에 큰 식수 밸브가 수도 형태로 되어져 있었다.
(신축공사 중인 화장실 앞쪽)
산장에서의 식사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몇 컷 찍은 후 바로 노고단 정상으로 향한다.
항상 이 길을 걸으며 느꼈었던 가파름이 생경하다.
산길에 박아 놓은 돌들 사이로 이름 모를 풀꽃들이 흙과 돌을 끼고 앉고 사뿐히
밟아 달라고 눈인사를 한다.
미끄러질까 봐 더 꽉꽉 밟았다.
식사를 마친 후 민호와 통화를 해서 어찌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도 다 된 상태긴 하나
무리를 하면서 까지는 마음에 내키지도 않고 그럴 필요성도 못 느낀다.
그 마음만 충분히 받았고 민호와 친분이 있던 후배 직원들의 따뜻하고 정감어린 안내 덕에
노고단 휴식년제 구간 정상까지 구름 속의 산책을 편하게 다녀왔다.
나무데크로 잘 닦여진 산책길이 구름 속에 보였다가는 채 1초도 안 돼서 다시 사라지고 보여 주기를 반복하는 노고단 그 천상의 화원길은 딱 영화 “구름 속의 산책”이었다.
올라갔을 때의 남자 직원과 교대 근무로 온 여직원 간에 업무 인수인계가 안 된 바람에
덕분에 우리 팀은 직원들로부터 음료며 다과를 대접받았다.
미안하기가 여간 불편할 정도였다.
고생하고 봉사하시는 분들께 도움은 못 드리고 민폐만 드린 꼴이고 보면... 반성합니다.
민호도 일정을 빨리 끝내고 올 테니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 대중교통편과 시간과 방법을
일일이 알려준다,
어쩌면 이런 것도 다 이미 미리 예견된 수순일 거란 생각도 든다.
애초에 산행후 나와 파주 형님은 1박을 더 해서라도 민호는 보고 가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아니 적어도 난 그랬다.
26년 이상을 알고 지냈으며 지리산을 함께 다녔었고 이 산을 더 잘 알려준 친구이지 않은가. 이랬던 저랬던 지간에 여기까지 내려와서... 그것도 우리들의 친형님 같았던 치성형님의 상중에 빈소인 서울까지도 갈 마음이었을 텐데 우리들은 내려와 있고 여러 생각 중 특유의 빠른 판단도 했으리라 여겨진다.
나도 만나면 할 이야기가 너무도 많다.
그러나 말을 아끼고 많이 듣자로 마음을 바꿔 먹는다.
이건 필연 중의 필연이다.
다시 원점 회귀로 성삼재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
이번에는 전부 임도로만 내려가 본다.
항상 편한 길이란 이정표를 따라 산길로만 다녀봤지 언제 또 이 임도로 와 보겠냐도 싶다.
비 온 뒤의 청량함과 서늘함이 구름 속 촉촉함으로 발걸음은 가벼웠다.
서울 같았으면 비 온 뒤라도 바로 습도가 높아서 더 더웠을 텐데...
다시금 돌아온 성삼재에는 이미 많은 행락객 복장과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로 북적인다.
버스 시간표를 알아보니 1시간 40분 정도로 꽤 많은 시간적 여유가 있다.
쎈스 빠른 변 서방(숙경의 부군으로 명실상부 서해랑길을 좌지우지하는 실세의 총무다)이
제로 콜라가 아닌 제로 알콜 맥주로 기분을 돋운다.
망중한이다.
바로 앞 만복대를 바라보며 백두대간의 마루금 이야기며 서북 주능선과 태극종주때의 기억도 되살려가며 옛 산행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형님의 평교사 시절 중학생 40여 명을 넘게 인솔하여 지리산을 종주했던 이야기는 지금에야
전설처럼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당시의 그 실행력과 학부모들의 반응과 우리 산사랑 회원들의
마음까지를 모두 헤아렸다면 아마도... 참으로 엄청난 일을 해낸 것이다.
가능성 제로를... 콜라도 아니고...
그건 아마도 오늘날의 형님이 계실 수 있게 해준 일화이지 아닐까 싶다.
오후 5시 55분 낯익은 구례 터미널이 눈앞에 보인다.
성삼재(1인당 5천원 버스카드 가능)에서 우리를 싣고 온 버스는 화개장터로 향하는 쌍계사 행 버스 옆에 이쁘게 주차했다.
일행들을 대합실로 안내해 놓고 매표소에서 화개장터행 표 4매를 끊었다.(1인당 1천원 군내 시내버스임) 바로 6시 출발 쌍계사행 버스를 바로 타면 된단다.
좋다. 이럴 때가 바로 또 여행의 소소한 기쁨을 느낄 때다.
초행 지의 대중교통을 이렇게 시간에 딱딱 맞게 잘도 갈아타다니...복이다. 복이로세~
손님은 우리 일행 4명과 중년의 아주머니 2분이 전부다.
평일 오후고 방학 기간이라서 그런지 손님이 없다.
화개장터까지 아주머니 한 분(그것도 서로 아는 지역민들이라 이야길 하던 중 내릴 곳을 지나쳐서) 만 내려주곤 논스톱으로 달린다.
섬진강물이 많이 불었다.
형님은 연신 기사분과 승객분에게 이것저것을 물으신다.
신이 나신 모양이다.
강을 끼고 한참을 시원한 드라이브를 한다.
꽤나 긴 거리다.(택시로는 구례에서 민호네 악양집까지는 7만원~8만원 소요)
관찰력 좋으신 형님은 도로의 폭이 넓어짐까지도 감지하신다.
내 눈에는 그저 놀라울 따름...
민호의 이야기로는 찬반양론과 슬로우 라이프에는 역행된 거라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잘 닦여진 길로 우리들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강가의 화개장터 터미널에
잘 정차했다.
고맙습니다. 기사님과 아주머니...
오늘 밤 민호와 함께 나눌 막걸리도 사야겠기에 그 옛날 맛보았던 상황버섯 막걸리는 어디서
사야 하냐며 전화를 넣었더니...이건 뭐... 또 한번의 생각지도 않은 기쁨을 준다.
자기도 지금 일 일찍 끝내고 화개에 막 들어왔으니 5분에서 10분만 기다리면 우릴 태우러 온단다.
꺄~ 이런 기쁜 소식을!
이러니 양 민호를 찾지... 사람들이...
막걸리와 물 몇 병을 사고는 잠시 개울 건너 화개장을 보며 있노라니 반가운 얼굴이 차에서 내린다.
꼭 1년하고 한 달 만이다.
작년 7월 태균형과 형주형 혼삿날(같은 날 같은 식장 시간대만 앞뒤) 보고 이제 봤으니...
외모는 안 변했다.
강렬한 눈빛은 아직도 살아있네.
개인의 취향으로 턱수염을 좀 길렀다.
오랜 친구의 얼굴을 보는 그 순간 하루의 피곤함과 긴장이 확 풀리며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확 펴진다.
이래서 사람은 보고 싶은 사람은 보고 살아야 하는 법인가 보다.
사실 이제야 이야기지만 내가 산사랑의 회장에 나서던 날 민호는 날 걱정해서 그 멀리 서울까지 와서는 내 걱정을 참 많이 해주었었다.
그날 밤늦도록 아니 다음 날 새벽까지 꽤나 많은 술을 마신 거로 기억한다.
과한 술자리로 언쟁이 생기고 몸싸움까지...이때도 치성형님이 옆에 계셨었고...
그 후로 한동안 소원해 진 게 사실이다.
그때의 사과와 화해를 작년 결혼식 뒤풀이 때 한 것이고 보면 참 어지간도 했다.
이글을 이제 와서 쓰는 이유는 그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그만큼 간절하고 절실했고 이제는 다 지난 일이고 걱정했던 것보다는 다 잘됐으니
말 못 할 것도 없겠다 싶어서다.
이런 민호와는 애증이라면 애증이고 비 온 후의 땅 굳음으로 간직할 그 무엇이 아직
존재함을 믿기에 이런 시간을 이런 수고를 부탁하고 받아준 것이 아닐까를 생각해 본다.
오늘 밤 난 말을 줄이고 아껴야 할 또 다른 이유에서도 말이다.
평사리 최참판댁을 지나서도 한참을 더 들어간다.
민호의 현주소 지리산 농원 푯말이 보인다.
그새 큰집 한 채가 더 생겼다.
목수로 일을 계속했어도 대성했었을. 저 집도 직접 지었으리라!
이제는 팬션운영까지...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귀촌 초기에 감 농사 소작부터 어느 집 반 별장지기 때부터 내가 민호를 처음 본 그 홍제동 신혼집과 안산의 태권도 도장 운영을 접고 뜻한바 펼치기 위해 이곳 악양으로 내려온 초기의
모습이다.
수 많은 고민과 주변의 반대와 좌절을 무릅쓰고 안 해 본거 없이 다 해봤을 그 정신력과 추진력에 감동 자체다.
강해서 살아남은 게 아니라 살아남았으니 강해져 있는 전형이라 하겠다.
숙경 내외에게 마침 오늘 비게 된 방을 내주고 그 앞 정자에 자리를 잡는다.
평사리가 한눈에 내려다 뵈는 “전망 좋은 정자”다.
처음 이 자리를 보여줬을때가 여긴 논이였다.
지리산 어느 줄기를 타고 내린 산 중턱의 다랭이 논쯤으로 기억되어진다.
그 말 못 할 사연과 피땀을 생각해 보면 그건 아는 사람들만이 알 거란 거 밖에는...
내일은 대구의 규학이가 지리산 멤버들과 온단다.
그 옛날 함께 지리산엘 다녔고 해파랑길 초기에도 함께 했었던 대구 형제들...
이제 정년이 다가왔으려나?
아직도 민호의 왕성한 활동과 인맥이 살아있음을 방증한다.
의리... 사나이... 저산넘어…시를 읊는다 하면 아직 양 민호다.
예정대로라면 반야봉에 올랐다가 지금쯤 연하천 산장에서 하루의 산행을 마치고
준비해 온 저녁 먹거리를 꺼낼 차례지만 장소가 바뀌고 +1이 생겼다.
산행이란 그런 법 예정에 없던 것도 있던 것도 더 생기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게
바로 산행이지.그것도 종주의 산행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넉넉히 준비하길 잘했다.
밥도 하고 야채도 썰고 준비해 온 불고기도 굽고 술도 따른다.
숙경과는 많은 인연은 아니었고 특히나 남편인 변 서방과는 거의 초면인지라
어색할 법도 한데 넉살 좋은 변 서방과 공중전과 수중전까지 치른 민호에게는
그저 친구와 형님의 동생들쯤으로 봐주면 되리라.
몇 순배의 잔이 돌고 돌아가신 치성형님 이야기가 나오고
내일의 산행을 위해 숙경네와 형님은 먼저 들어가 주무시고
민호의 큰아들이 늦은 퇴근을 하고 인사를 한 후에 들어가고 그렇게 밤은 깊고
우리 둘만의 취중 진담은 계속되었다.
사간 술이 바닥이 날쯤 민호는 또 시를 읊다가는 못내 서럽게도 목 놓아 울고 만다.
나도 따라 운 것 같다.
돌아가신 치성형님이 옆자리에 계신 것만 같았고 사실 시작 전 형님도 함께하신다고 생각하고 그도 그럴 것이, 마음속에 남아 저마다 다 모셔 놓고 시작을 하자고 했으니 말이다.
치성형님 바쁘셨죠?
그 시간에는 KTX도 없는데 서울과 악양을 넘나드신 거 맞죠?
같은 시각 빈소가 차려진 서울에서도 똑같은 추모의 시간이 있었으리라.
치성형을 기억하고 함께 했던 정회형,인화형,형주형,상웅형,순자누나,미농회장...그외에 다 같은 마음이였으리라.
산행을 마치고 서울로 도착해서는 제일 먼저 인화형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질 않고 정회형에게서 치성형님의 그간의 사연과 문상갔던 이야길 들을 수 있었다.
역시나 지병을 앓고 계셨다.
그것도 당뇨 합병증이란...평소 그렇게 건강히 산행을 잘하시던 형님이기에 믿기지 않는
석연찮음이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다.
-(하편으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