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조지훈(趙芝薰) · 박두진(朴斗鎭) 등과 3인시집 『청록집(靑鹿集)』을 발행하여 해방 시단에 큰 수확을 안겨주었다.
(청록파)
1939년 창간된 문예지 『문장』을 통해 등단한 박목월 · 조지훈 · 박두진 등 3명의 시인을 지칭하는 문학유파.
내용
1946년 세 시인이 공저한 시집 ≪청록집 靑鹿集≫이 을유문화사(乙酉文化社)에서 간행되었는데, 이 시집의 이름에 의거하여 ‘청록파’라고 부르게 되었다.
세 시인은 각기 시적 지향이나 표현의 기교나 율조를 달리하고 있으나, 자연을 제재로 하고 자연의 본성을 통하여 인간적 염원과 가치를 성취시키려는 시 창조의 태도는 공통되고 있다.
서정주(徐廷柱)는 이러한 공통점에 근거하여 ‘자연파(自然派)’라고 호칭한 바 있다. 이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광복 직전의 일제치하에서 쓰여진 것으로서 시사적으로 중요한 의의가 있다.
박목월의 향토적 서정에는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의 의식이 살아 있으며, 이를 통하여 일제 말기 한국인의 정신적 동질성을 통합하려고 한 가치를 인정할 수 있다. 그의 민요풍의 시형식도 그러한 민족적 전통에 근거하고 있다.
조지훈의 전아한 고전적 취미도 한국인의 역사적·문화적 인식을 일깨우는 뜻이 있으며, 민족의 문화적 동질성을 환기시킴으로써 일제치하의 민족의 굴욕을 극복하려 한 의미를 지닌다.
그의 시에서 저항적 요소가 보이고 있음도 그러한 정신적 자세와 연결되고 있다. 박두진에 있어서 자연인식은 원시적 건강성과 함께 강렬한 의지의 상징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그의 기독교적 신앙에서 빚어진 의연하고 당당한 의로움의 생활신념과 관계되고 있다.
<향현>에서 보이는 ‘침묵의 산에서 불길이 치솟는 심상’을 표현한 것은 바로 그러한 신앙에 근거하여 일제시대의 민족적 수치를 극복하려는 기세를 읊은 것이라고 평가된다.
일제 말기의 단말마적인 국어말살정책의 상황하에서 우리말로써 펴낸 이 시집은, 민족의 역사적·문화적 동질성을 드높인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1930년대 말에 출발하는 그의 초기 시들은 향토적 서정에 민요적 율조가 가미된 짤막한 서정시들로 독특한 전통적 시풍을 이루고 있다. 그의 향토적 서정은 시인과 자연과의 교감에서 얻어진 특유의 것이면서도 보편적인 향수의 미감을 아울러 담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청록집』 · 『산도화』 등에서 잘 나타난다.
6 · 25사변을 겪으면서 이러한 시적 경향도 변하기 시작하여 1959년에 간행된 『난(蘭) · 기타』와 1964년의 『청담』에 이르면 현실에 대한 관심들이 시 속에서 표출되고 있다.
인간의 운명이나 사물의 본성에 관한 깊은 통찰을 보이고 있으며, 주로 시의 소재를 가족이나 생활 주변에서 택하여, 담담하고 소박하게 생활사상(生活事象)을 읊고 있다.
1967년에 간행된 장시집 『어머니』는 어머니에 대한 찬미를 노래한 것으로 시인의 기독교적인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
1968년의 『경상도의 가랑잎』부터는 현실인식이 더욱 심화되어 소재가 생활 주변에서 역사적 · 사회적 현실로 확대되었으며, 사물의 본질을 추구하려는 사념적 관념성을 보이기 시작한다.
1973년의 『사력질(砂礫質)』에서는 사물의 본질이 해명되면서도 냉철한 통찰에 의하여 사물의 본질의 해명에 내재하여 있는 근원적인 한계성과 비극성이 천명되고 있다. 그것은 지상적인 삶이나 존재의 일반적인 한계성과 통하는 의미다.
수필 분야에서도 일가의 경지를 이루어, 『구름의 서정』(1956), 『토요일의 밤하늘』(1958), 『행복의 얼굴』(1964) 등이 있으며, 『보랏빛 소묘(素描)』(1959)는 자작시 해설로서 그의 시작 방법과 시세계를 알 수 있는 좋은 책으로 평가되고 있다.
시사적(詩史的)인 면에서 김소월(金素月)과 김영랑(金永郎)을 잇는 향토적 서정성을 심화시켰으면서도, 애국적인 사상을 기저에 깔고 있으며, 민요조를 개성 있게 수용하여 재창조한 대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작품세계
정지용은 목월의 시를 높이 평가하며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북에는 소월이 있었거니 남에는 박목월이가 날 만하다. 소월이 툭툭 불거지는 삭주귀성조(朔州龜城調)는 지금 읽어도 좋더니 목월이 못지않아 아기자기 섬세한 맛이 좋아. 민요풍에서 시에 발전하기까지 목월의 고심이 더 크다. 소월이 천재적이요, 독창적이었던 것이 신경 감각 묘사까지 미치기에는 너무나 “민요”에 시종하고 말았더니 목월이 요적(謠的) 뎃상 연습에서 시까지의 콤포지션에는 요(謠)가 머뭇거리고 있다. 요적 수사(修辭)를 충분히 정리하고 나면 목월의 시가 바로 한국시이다.
정지용, <문장>(1940. 9)
부정적 평가
목월의 시는 80년대를 기점으로 비판을 받는 경향이 강해지는데, 이는 그의 시가 가진 특유의 여린 서정성과 내면성 때문이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는 그의 시는 부정적으로 읽힐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당시에 본격적으로 유입된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탈권위주의를 표방하는 시대적 경향은 당시 상당한 문학적 권위를 인정받던 목월의 시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긍정적 측면
한편 목월의 시는 그 특유의 서정성을 바탕으로 한 순수 시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그의 시에 보이는 미학적인 측면은 한국의 현대 시문학을 풍성하게 해주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시 후기작에는 그가 주목하지 않았던 일상의 삶에 대한 성찰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그의 유명한 작품인 〈가정〉은 시인이며 동시에 한 가정의 가장이 하는 고민의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
기독교적 색채
목월의 시문학의 한 축이 토속적이고 서정적인 면이라면, 다른 한 축은 기독교 신앙에 기반을 둔 절대자에 대한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유고시집인 《크고 부드러운 손》에는 절대자에 의존하는 모습이 두드러지게 등장하고 있다. 또한 그의 시에는 어머니의 신앙과 관계된 추억들이 간혹 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