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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할렐루야 오늘도 거룩한 주의 날 성전에 나와 예배드리는 저와 여러분의 삶과 가정 가운데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우리 앞뒤 좌우 계신 분들과 사랑의 고백, 축복의 인사를 나눕니다.
주님 안에서 사랑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어느 날 한 농부가 자신의 수확물 중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호박을 하나님께 드려야겠다 그렇게 결심을 했습니다. 그 농부에게 이 호박은 사실 너무나 귀하고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그래 그래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데 가장 귀한 것으로 드려야지.
그러한 마음으로 기쁘게 성전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런데 성전으로 가는 길에 한 친구가 묻습니다.
너 친구 그 호박이 너에게 가장 소중한 것 아닌가 너 그 호박을 어디로 가져가는 건가?
내가 하나님께 드리려고 하네.
야 그거 드리고 나면 너의 삶에 지장이 있을 텐데
그러자 그 이야기를 들은 이 농부가 살짝 고민을 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다시 한 번 대답하게 되는 것이죠.
이 호박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내가 기꺼이 하나님께 드릴 것이네. 분명히 하나님께서 또 공급하실 거라 나는 확신하네.
그렇습니다. 사실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분 그분이 하나님이시다. 이 고백은 사실 이 농부만의 고백은 아닐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고백.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건강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삶의 터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살아갈 힘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고백들을 할 수 있는 것이 믿음의 사람들이겠죠.
오늘 우리는 아브라함이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순종과 헌신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야기는 우리가 사실 너무나 많이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다시 한 번 이 이야기를 되새기면서 예배와 관련돼서 예배가 무엇인지 좀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첫 번째 아브라함의 이 예배는 순종의 예배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아들 내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내가 내게 일러준 땅 모리아로 가서 그 아들을 번제로 드려라.
여러분 이 명령이 나에게 선포되어졌을 때 여러분들은 어떻게 반영하시겠어요?사실 인간적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매우 어려운 요청이지 여러분 아브라함에게 있어 이삭은 어떤 아들입니까? 실제적으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약속의 성취였습니다. 그것이 가장 소중한 것이었고 두 번째 낳을 수 없었던 상황 100세에 낳은 아들 그래서 그의 인생에 있어서 어쩌면 가장 귀한 아들이었죠.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자 의문을 갖고 질문을 한다든지 아니면 시간을 지연시킨다든지 이런 어떤 액션을 취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는 순간 즉시 즉각적으로 순종했다는 것이죠. 그래서 3절에 보면 바로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하신 그 길을 향해서 갔다는 거예요.
우리 3절 한번 읽어보실까요?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나귀의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죄에 쓸 나무를 쪼개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주신 곳으로 가더니
이렇게 아브라함은 사실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즉시 순종으로 반응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 아브라함에게 있어서의 순종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죠. 여러분 이 순종이라는 것은 예배의 기본 자세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모습을 통해서 예배라는 것이 순서에 따라 행해지는 의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순종이라는 것은요. 사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따라가는 것을 순종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참된 예배라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에 내 뜻을 내려놓는 시간 그것이 바로 예배이며 순종이라는 거예요.
사무엘상 15장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아말렉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멸하라 그렇게 명령을 하셨어요. 모든 소유를 다 전멸시키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울은요. 아악과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기름진 것들을 남겨버렸어요. 그리고 이 사실을 안 사무엘은 사울에게 말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이야기하시는 그 말씀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물론 사울은 그 좋아 보이는 것을 어떻게 핑계로 대었습니까? 이거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려고 내가 일부러 놔둔 것이다라고 이야기했지만,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라고 가르쳐 주었다는 것입니다. 즉 형식적인 예배보다 순종이 중요함을 강조해 준 사건인 것이죠.
사울은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부분적 순종을 한 것이죠. 즉 불완전한 순종을 했다는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십니까? 온전한 순종을 원하고 계신다는 거죠. 마태복음 26장에 보시면 예수님께서요. 십자가를 짊어지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시죠.
하나님 아버지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합니다. 실제 여러분 십자가의 그 사건은 인간에게 있어서 매우 고통스러운 현장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그 고통을 이길 수 있는 순종의 힘을 달라고 기도했다는 것이죠. 결국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게 되었고, 이 순종을 통해서 온 인류가 구원을 받는 놀라운 축복의 은총이 임하게 된 것이죠.
여러분 예배는 단순한 형식이나 감정의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순종임을 깨닫는 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예배는 무엇인가? 순종이다. 성경의 인물들을 자세히 보십시오. 어떤 인물은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축복을 누리며 삽니다.
그러나 어떤 인물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서 결국 하나님과 멀어지는 인물들도 존재한다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예배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예배인지 오늘 살펴보시고 저와 여러분들의 예배가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온전한 예배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순종을 요구하셨고 아브라함은 순종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을 면밀히 살펴보면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에서 시작되었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을 때 인간의 생각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겠죠.
여러분 같으면 이해가 되십니까? 이해가 안 되잖아요. 하지만 그에게서 이해되지 않는 것보다 더 큰 은혜가 있었다는 거예요. 그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선하시고 신실하시 그래 내가 이해되지 않는 한 부분이 있지만 그러나 분명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이 있다라는 확신 이것이 순종할 수 있는 자리로 나아가게 했다는 것이죠. 즉 그것을 우리는 믿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약속을 이루시는 분 이 믿음을 가지고 나아갔기에 그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즉각적으로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5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이렇게 두 종하고 같이 가잖아요.
그 종 두 명에게 이야기하길 너희는 여기 잠깐 있어라. 우리가 함께 가서 예배드리고 함께 돌아오겠다. 둘이 가서 예배드리고 둘이 돌아오겠다는 이야기.
사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둘이 올라가서 한 명은 재단에 드리고 한 명만 와야죠. 그런데 두 종 사환에게 너희들 여기 기다려라 우리가 함께 가서 예배드리고 함께 돌아오겠다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의 삶의 주관자임을 확실히 믿는다면 순종이라는 것은 사실 자연스러운 결과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죠. 사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뜻에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렇죠 그래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하잖아요. 왜 이 길을 가야 하는지, 왜 이 고난이 나에게 주어졌는지 의문을 가질 때가 있다는 것이죠.
여러분 혹여라도 그 뜻을 다 알지 못하더라도 저와 여러분들이 그 뜻보다 하나님을 더 신뢰하는 믿음이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이해되지 않지만 순종할 수 있는 지혜,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이 나타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나아갈 때에 결국 하나님의 일하심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순종을 헛되이 보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졌을 때에 이해되지 않더라도 여러분 그것에 묻고 따지는 자가 아니라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않고 그저 믿음으로 순종할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여러분 베드로가 그물을 내릴 때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라. 밤이 맞도록 수고해서 내가 그물을 내렸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이 대낮에 무슨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합니까라고 말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 베드로가 말씀에 의지해서 다른 표현이 없습니다. 말씀에 의지해서 내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그렇게 순종했더니 그물이 찢어지는 정도의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것이 순종의 모습이라는 여러분 이 순종을 다시 한 번 더 묵상하면요. 그래서 때로는 이 순종에는 희생이 요구된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요 이삭을 데리고 오리아 땅으로 이동하는 길 여러분 단순한 여정인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죠.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 시간이었겠죠. 성경에 보면 3일이라는 시간을 그가 걷게 됩니다. 함께 걸어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계속해서 갈등이 오지 않았겠어요 내가 이 길을 걸어가지만 이 아들을 어떻게 드려야 할까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이 그를 사로잡았을 것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그의 생각과 판단들은 점점 지워지기 시작하는 것이죠.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예배라는 것은 나의 편안함이나 나의 유익을 구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거예요. 예배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나를 온전히 내어드리는 시간 그것이 바로 예배라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순종이라는 것은 나의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결단에서 시작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의 순종을 정리해 드립니다. 순종은요. 예배의 가장 기본적인 태도라는 사실이죠. 그리고 이 순종은 믿음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임과 동시에 희생을 동반한다.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예배자로 설 때에 먼저는 믿음으로 순종하시고 또한 그 가운데 우리가 희생해야 될 것이 있다면 기쁨과 감사함으로 희생하며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참 예배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두 번째 아브라함의 예배는 헌신의 예배였다라는 거예요.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나귀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준비했어요? 이삭에게 번제와 쓸 나무를 챙겨서 그에게 짊어주었어요. 그리고 모리아 땅을 향해서 걸어갑니다.
이 여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그 모습이 삶으로 그대로 표현되어지는 것이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하신 예배를 온전히 드리기 위해서 하나씩 하나씩 준비했다는 것이죠. 따라서 여러분 준비라는 것 자체가 헌신이라는 거예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지시한 땅 모리아 땅을 향해 가는 그 길은요 짧은 길이 아니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사흘이라는 시간이 걸린 그러 시간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여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묵상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집중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참된 예배는 미리 준비되어지고 그 준비되어지는 과정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이 헌신의 예배가 드려질 때에 형식에 불과하지 않는 정말 온전한 예배가 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과 시간의 헌신을 준비케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일을 보낼 때 그냥 와서 주일 딱 1시간 예배드리고 가는 것이 아니죠. 여기 와서 딱 앉아서 예배드리고 갔다. 그래서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 동안 주일을 준비하고 기도하면서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내가 헌신되어질 것인가 시간을 집중시키고 마음을 집중시킵니다. 그러한 헌신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마음과 정성을 다해 드리는 예배라는 것은 바로 이 주의를 준비하는 그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 일주일 동안 아무 생각 없다가 주일날 와서 예배드리는 게 이것은 준비된 예배라고 할 수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우리에게 오늘 이 거룩한 주일이 우리의 삶에 참 주인 되심을 기억하고 한 주 동안 주의를 기다리고 묵상하며 기도하며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여러분 아브라함이 번제의 나무를 준비하며 이삭에게 메인 그 장면들을 한번 떠올려보십시오.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예배드리기 위해서 철저하게 또한 세심하게 준비한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헌신은 구체적인 행동, 즉 우리에게 희생적 행동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주일날 다른 데 가지 않고 이 자리에 나오는 것도 우리의 희생 아니겠어요? 우리의 삶을 우리의 시간을 들이는 그러한 과정인 것이죠. 따라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이 과정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죠. 나의 편안함이나 계획을 내려놓는 그러한 시간이며 하나님의 뜻을 집중하는 시간을 위해서 준비합니다.
이처럼 헌신은요. 희생을 포함한다는 그런데 여러분 이 헌신의 과정 속에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믿음을 기초로 한다는 거예요. 헌신도 내가 헌신하겠노라 해서 헌신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우리의 믿음이 기초가 되어질 때 헌신의 자리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죠.
우리 8절 말씀을 한번 보실까요? 8절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지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여기에 보니까 하나님이 자기를 위해서 친히 준비하시리라는 믿음의 고백이 있었다는 거예요. 이 고백이 있었기 때문에 아들과 함께 재단에 쓸 나무를 가지고 그곳을 향해서 갈 수가 있었다는 것이죠. 헌신의 이 중심에는 분명한 믿음이 있었음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 헌신은요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공급하신다는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하는 것이 헌신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의 헌신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드려질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오늘 찬양의 한 사람이라는 제목 같아요. 한 사람을 통해서 일하신다. 바로 이것이 바로 헌신의 모습이죠.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는 것이 보여지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헌신이 필요하다는 열왕기상 17장에 보시면 사르밧 과부의 헌신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엘리아 시대에 가뭄이 왔습니다.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사르밭에 사는 과부에게로 찾아가라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 과부는요. 과음으로 인해서 이제 가진 것이 다 동나고 없어졌어요.
야 어떻게 하나 이제 아들과 이 기름 조금과 밀가루 한 줌 있는데 이거 먹고 우리 그냥 죽어야겠다. 더 이상 살 길이 없다.
그러고 있던 찰나에 엘리야가 와서 이야기합니다.
나에게 떡 한 조각을 달라.
여러분 마지막 남은 거 하나 이제 아들하고 먹고 죽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그들에게 와서 요구한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그 떡 한 조각을 나에게 베풀라 하십니다. 모르겠어요. 사르바 바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결국에 간을 떼먹지 그런 생각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가진 것이 정말 아무것도 없는 이것 끝으로 마지막 인생을 달리하려고 하는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면 너희들에게 기름과 밀가루가 가뭄이 끝날 때까지 응하지 않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주셨다. 결국 이 과부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그리고 자신들의 마지막 식량이었던 그것을 엘리야의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리게 됐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면 결국 어떻게 됩니까? 그 옆 가뭄이 끝날 때까지 즉 비가 오는 그때까지 하나님의 약속대로 가르통과 기름통에 마르지 않는 은혜가 있었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이라는 헌신은 내가 가진 것을 하나님께 먼저 드리는 결단에서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가진 것이 거의 없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먼저 드렸다는 거예요. 이렇게 헌신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셨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놀라운 축복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이로 볼 때 헌신은 하나님께서 공급하심을 신뢰하는 믿음에서 시작된답니다. 아 하나님께서 채우실 것이야. 내가 이 헌신을 통해서 나의 시간도 깨워지고 나의 물질도 깨워지고 나의 삶에 어떤 영향들이 있을 터이지만, 그러나 이 헌신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것들로 채우시고 역사하실 것이라는 믿음에서 기초가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헌신은 단지 엘리야를 돕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엘리야를 돕고 그의 가정 가운데 풍성함으로 채워지는 놀라운 결과를 만나게 된 것이죠. 그런 측면에서 여러분 주일성수와 11조라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의 고백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헌신의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죠.
주일날 거룩하게 지키는 사람 하나님께서 복 주시겠다라고 분명히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 창세기 2장 3절 말씀을 한번 읽어보실까요? 같이 읽습니다.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라
안식일을 복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56장 2절은 말합니다. 이 말씀도 같이 읽습니다.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의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하지 아니하여야 하리니 이와 같이 하는 사람, 이와 같이 굳게 잡는 사람은 복이 있느니라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만드셨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사람 복되게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에요. 물론 세상 이 주일이 가장 즐겁게 놀 수 있는 좋은 날이겠죠.
그러나 여러분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과 가장 즐겁게 교제할 수 있는 예배의 자리의 시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시고, 저와 여러분들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복되게 하신 이 날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그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십일조도 마찬가지죠. 이미 약속의 말씀을 주셨어요. 말라기서 3장 8절에서 10절 말씀 우리 함께 읽어보십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안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묻지 아니하나 보라.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외면하고 등졌던 모든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이야기합니다. 그중에 하나가 그들의 재물의 문제였어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왜 도둑질하냐 하나님 우리가 언제 도둑질했습니까? 너희가 드려야 될 마땅한 십일조와 봉헌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만군의 여호와의 하나님을 의지하고 십일조를 해보아라. 이 온전한 11조가 너희의 창고에 부어지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신 거예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은혜인 것이죠. 우리도 자신의 상황과 환경에 따라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우리는 신앙의 여정을 걸어가면서 내 상황과 환경에 따라 결정할 때가 많아요. 오늘은 주일인데 뭐가 있어서 안 오늘은 뭐 때문에 안 돼 내 상황이잖아요.
그러나 하나님과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이죠. 십일조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의 것을 나에게 다 주셨다.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드리는 이 모습 이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신앙의 기초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처럼 또한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에 따라 믿음으로 헌신할 수 있는 귀하고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아브라함의 헌신을 정리해 보면 헌신이라는 것은 예배를 준비하는 것이고 더불어서 희생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에 기초가 된다 믿음의 기초가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아브라함과 같이 시간과 가장 귀한 것을 준비하는 헌신의 예배자가 되시기를 다시 한 번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세 번째는요. 아브라함의 예배는 만남의 예배였다는 것입니다. 11절에서 14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이제 아주 축복의 시간을 주는데, 아브라함이 이삭을 눕혀놓고 그렇게 재단에 드리려고 하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그것을 멈추게 하죠.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무엇을 발견하게 합니까? 숫양을 발견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사건은 예배가 단순히 우리의 행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거예요. 우리가 그냥 드린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만남의 역사가 일어나는 현장이 예배 현장이라는 거예요.
바라고 소망하는 것은 저와 여러분들이 예배를 드릴 때에 그냥 내가 찬송드리고 말씀을 듣고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깊이 만나는 은혜의 자리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참된 예배는요.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될 것. 이 예배 가운데 우리 주님이 함께하고 계신다.
할렐루야 오늘 이 드려지는 예배 가운데 오늘 내 자리와 함께 우리 주님이 동행하고 함께하신다. 이 사실을 먼저 고백해야 하는 것이죠. 아브라함이 번제를 드릴 때 숫양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아시고 이미 미리 준비하셨다.
여러분 따라서 예배는 내가 하나님 앞에 드리기 위해 준비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더불어서 뭐가 중요합니까?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어떤 일을 하시는가도 중요한 거예요. 나는 하나님께 무언가 했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반응도 없다면 우리의 예배는요 고쳐져야 할 예배가 됩니다.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의 예배를 완전하게 만드실 수 있도록 부족한 것들을 채우시고 함께하셔서 역사하며 온전한 예배로 드려질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일하심을 보는 것이죠. 따라서 여러분 예배드릴 때마다 우리가 기도해야 될 것은 하나님 예배 가운데 나에게 임재하여 주시어서 내가 온전한 예배자로 설 수 있도록 부족한 부분을 채우시고 함께하셔서 능력 있는 예배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러분 이 기도가 예배 가운데 임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요 우리의 예배 가운데 피로를 채우시는 거예요.
열왕기상 18장에 보니까 엘리야가 갈마산에서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을 합니다. 바엘 선지자들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하늘에서 불이 내리지 않아요. 하지만 엘리야가 기도합니다. 기도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번제를 태웠다는 것이죠.
여러분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예배의 주인이 되신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았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건이죠. 그 예배 가운데 하나님이 친히 임재하셔서 불로 나타나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경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여러분 본문의 주인공 아브라함도요. 이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그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옆에는 계시는데 나하고 상관없는 그이 안 되잖아. 이 분이 나와 함께 연합되어서 함께 교제하면서 이렇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을 믿고 경험하는 것 과 동시에 무엇이 필요하냐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은혜를 경험하는 자리가 되어야 된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순종하여 헌신했을 때 하나님이 뭘 준비하셨어요? 양을 준비하셨어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은혜죠. 여호와 이대 하나님께서 준비하셨다. 출애굽기 16장에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이요. 광야를 보내면서 광야의 교회를 세월 그곳에서 하나님과 만남이 왔어요. 하나님이 인지하시잖아요. 그런데 그의 여정 가운데 어떤 일들이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하시는 은혜를 경험하고 광야의 예배자의 삶을 살았던 것이죠. 하나님께서 그들이 있는 그 자리가 예배의 자리가 될 때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그 놀라운 은총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오늘날 예배도요. 그냥 예배로 끝나지 마시고 우리의 피로가 채워지는 예배의 시간이 되길 주님 할렐루야 나의 기도의 제목도 그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내가 바라고 소망하는 하나님께서 공급하시고 채우셔서 우리의 삶의 현장 가운데 나타나는 여러분. 그런데 이 만남의 예배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믿음과 연관이 됩니다. 여러분 이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어떤 은총이 있냐 하면 내 믿음에 대한 확증의 자리가 됩니다.
여러분 앞서서 아브라함이 아들에게 했던 이야기가 뭡니까? 하나님께서 준비하실 것이다라고 이야기했잖아요. 이것은 아브라함의 어떤 고백입니까? 믿음의 고백이잖아요. 하나님께서 준비하실 거야라고 아들에게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가서 아들을 잡으려 했더니 뭐가 있었습니까? 여호와 일의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양을 보게 되었어요. 그러면 이 믿음의 고백이 지금 모리아산에서 어떻게 나타난 거예요? 폭증으로 나타나는 것이죠. 여러분 믿음으로 내가 예배의 자리로 나아갔을 때 그 믿음이 내 삶의 현실로 나타나는 확진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예배가 되는 것이죠. 소망하는 것은 저와 여러분들의 예배가 우리의 믿음이 증명되어지는 예배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내 믿음의 고백으로 나왔던 이 예배의 자리가 하나님께서 찾아와 주시고 만나주시고 공급하시면서 하 내 믿음의 고백이 이렇게 나타났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그러한 증거의 예배, 그 복된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 더 깊이 교제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여러분 예배는 나의 노력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노력도 있어야 되지만 우리 주님이 함께하셔서 역사하셔야 돼요. 그래서 그 간절한 소망이 저와 여러분 가운데 있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저와 여러분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예배자로 세워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의 키워드 세 단어를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순종 인식 그래서 한번 따라 해볼까요? 순종의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헌신의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만남의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저와 여러분 이 세 단어를 기억하셔서 하나님과 더 깊은 교실 아브라함의 온전한 예배가 우리의 예배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