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여자축구를 보았습니다.
FIFA 월드컵 17세 이하 여자축구였습니다.
그것도 결승전이었습니다.
갑자기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휘돌며 물컹한 덩어리같은 것을 만들었습니다.
우리 여자축구가 이토록 커다란 사건을 일으키며 성장하는 동안 잠만 자고 있었던 것처럼 깨어보니 세상은 달라져 있었습니다.
이렇게 편안한 자세로 저들이 화려하게 골문을 가로지르며 어쩌면 한 수 위의 일본을 상대로
역전보다 더 기막힌 중거리슛이 포물선을 그리며 그물망을 흔들 때, 그 때부터 이미 눈물이었습니다.
저 2002년에 우리의 축구역사가 새로운 고지에 섰을 때, 그때 흘린 감동의 눈물은 벅찬 희열의 뜻이었습니다.
한 장면 한 장면 되감아 수천번 외운 보람처럼 잊히지 않을 감동이었습니다.
그토록 당연한 남자축구의 인기에 비해 여자축구가 이번에 보여준 감동은 이전의 그것과는 다른 종류였습니다.
비인기 스포츠의 설움, 이런 말보다 더 혁신적인 어떤 말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그것도 가장 나이 많은 선수가 18살. 그 어린 몸으로 이국의 땅에서 동양의 새로운 물결처럼
한,일 여자축구가 그라운드를 누빈 것에
그것도 무수한 파죽지세의 공격을 온몸으로 막으며 물러서지 않고 3-3 평형을 지키며 연장전까지 치르는 동안,
그 냉혹한 승부의 120분은 한창 어린 여자아이들이 감당해야 하는 시간치고 너무나 가혹해 보였습니다.
승부차기. 그만큼 가슴을 철렁이게 하는 스포츠의 잔혹함이 또 있을까요?
이미 마음은 우리가 우승을 하지 않아도 다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우리 붉은 여전사들의 손을 들게 해 주었습니다. 풋내기 소녀들이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그토록 인기있는 남자축구가 4강, 아니 4강보다 더한 16강에서 자축하는 그 기간동안
태어나고 아장아장 걷고 학교를 다니며 공부를 하고 이제 갓 성년의 나이로 접어드는 그 짧은 기간만에
아니, 유수한 독일의 여자클럽축구와 숫적으로 얼마나 비교되는지 그 숱한 흥미로운 비교대상에서 완전 자유로워지며
완전한 개체로 우뚝 서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순간의 tv는 많은 것을 한꺼번에 묻고 있었습니다.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은 여자 핸드볼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줌마들의 투혼이 낳은 감동을 받고 태어난 우리 딸들의 <우생순>은 1위보다 더한 2위의 서러운 감동을 뛰어넘는,
그 통한의 눈물을 되갚아주는 상징들로 가득차 보였습니다.
이긴 딸도 진 딸도 모두 그 서러운 초록의 들판에서 내용만 다른 눈물을 뿌릴 때,
나와는 너무도 상관없는 이 딸들의 기록에 겨워 끝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습니다.
장하다는 말보다 기특하다는 말보다 너희들이 도대체 왜 사람을 울리고 그러니, 그런 짠한 눈물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붉은 여자축구의 우승행진곡이 울려퍼지는 차창 너머로 언뜻언뜻 누르스럼하게 익어가는 들판의 가을노래가 섞여 들었습니다.
완벽하게 붉고도 노란 가을여행이 설레며 다가오고 있었으니, 우리의 버스는 어느덧 목적지에 다다랐습니다.
3시간에 가까운 여자축구의 눈맛을 이으며 붉은 혓바닥같은 꽃무릇이 의도적이어도 살갑게 산행 초입부터 안겨 옵니다.
꽃무릇을 지천에서 만나리라는 작은 흥분이 나작한 산에서 폴폴 피어 오릅니다.
배맨바위.
그 옛날 바닷물이 이곳까지 흘러들었다는 증거처럼 배를 매었다는 배맨바위는
보는 자리마다 모양이 달라지는 신기로움과 해학적인 맛을 안겨주는 바위였습니다.
할미가 웅크린 모습과 닮아 할미바위라고도 한다지만, 멀리서 보면 거북도 되고 이마에 혹이 달린 못생긴 강아지도 되는데
가까이 다가가면 눈감은 코끼리가 되어버립니다.
그나저나 참 신비롭습니다. 과거 그 어느때 지축이 흔들리기 전에, 이 곳으로 바닷물이 넘실대고
바위는 퇴적암으로 이 지나간 연도를 새기고 있다니...세상은 오랫동안 이런 업적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선운산은 원래 도솔암. 백제때 세운 선운사가 유명해지면서 그 산의 이름도 선운산으로 바뀌었다 합니다.
순간 참으로 무언가 놀라웠습니다. 산에 안긴 절이 아름다워 그 산의 이름을 바꿀 수 있다는 어떤 자세에서
이 땅에 수없이 그 이름을 반납한 여인들의 이름이 있었음을 떠올립니다.
어머니의 태반에서 영양을 공급받은 아기가 태어나 이름을 얻고 그 어머니는 본연의 불리워지던 이름이 있었지만
첫아이의 이름에 누구누구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어떤 순환 앞에서, 어쩐지 그 사라져버린 이름앞에
사라져버린 청춘의 이름을 돌려주고 싶은 마음을 생각하다, 짠한 그리움으로 내 어머니 이름을 낮게 불러 보는 것.
실로 용 한마리 지나다녔음직한 용문굴이 나타납니다.
가을은 아직 푸른 이파리 흔드는 단풍만큼 저만치 있지만 곧 가을이 깊어지면 찾고싶을만큼
용문굴 너머는 단풍나무 지천입니다.
도솔암 석가여래상.
원만하고 부드러운 부처의 후덕한 인상이 아니라 어딘지 개성강한 눈매와 도도한 인상을 풍기는 이 석가여래상은
그렇잖아도 후대에 이르러 배꼽 부위에 이른바 갑오농민전쟁의 동학군 비결이 실려 있다는 것으로
그 신비스러움을 더하게 됩니다.
이것을 여는 날 한양이 망하게 된다는 비결록의 예언은 곧, 나라의 쇠락해가는 기운과 민중의 힘이 서린 의지의 표현이겠지요.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한 이서구가 비결책을 내어 보려 했을 때 때마침 벼락이 쳐 더이상 읽어 볼 수 없었고
세월이 흘러 갑오농민전쟁이 발생하기 1년 전, 동학군의 접주 손화중이 꺼내어 어딘가로 사라졌으며
그 주모자들은 역적죄로 사형에 처하였다 하니, 그 비결은 도대체 어디로 갔으며 그 내용이 무엇이었기에 이토록
역적으로까지 내몰려야 했는지, 비결책은 끝나지 않은 전설을 낳게 되는 것으로 일단락 됩니다.
비결책이란 다름아닌 정약용의 <목민심서>와 <경세유포>였다는 것인데
그것은 어쩌면 백성을 하늘같이 섬기라는 당시 민중의 온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입니다.
부부가 손을 잡는 마땅한 행위 중에서
이렇게 수줍지만 당연한 모습은 없노라는 그 뜻이 아름답습니다.
부부가 사진을 찍을 때 어깨를 감싸는 것보다도 서로 허리를 감싸는 것보다도
이렇게 공정하게 손을 잡는다는 그것이
그 지난하던 세월 함께 나이먹어 간다는 그 순연한 가르침이,
이렇게 눈부실 줄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오늘은 꽃무릇을 만나러 가는 산행.
시월이 가까워지는 작은 가을에 가을꽃 꽃무릇이 활짝 피었습니다.
떠나간 님을 그리다 눈이 붉어진 울보 여인이 안스러이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웃으면 이리 될까,
그 처연하게 붉은 꽃들이 가을이면 온 세상이 이별같다는 걸 미리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도솔암을 지나 십여분 나작나작 걷다보면 해맑은 소나무 한 그루 서 있습니다.
옛날 이곳을 장사현이라 이름했다해서 '장사송'이라 불리는데 진흥굴 옆에 있어서 '진흥송'이라고도 한답니다.
장사송은 그 여린 자태에도 600년을 이어온 소나무인데, 그 모습이 가녀린면서도 늠름합니다.
진흥굴.
백제의 스님 검단선사가 세운 백제의 절 선운사에 신라 진흥왕의 이름이 굴에 새겨서라도 존재하는 것 보면
우리나라 이름있는 절 중에 백제의 스님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절은 호남땅에서도 드물다는데
이 역시 우리가 느끼는대로 의상이나 원효도 아니고 자장율사나 도선국사도 아닌, 백제의 절에
신라의 존재감이 그나마 이름에라도 남아야되는, 강자에 의한 기록의 안간힘 같은 건 아니겠지요?
이 고장 출신의 시인 서정주는 <선운사 동구>에서,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만 그것도 작년것만 상기도 남었다 했었습니다.
선운사는 오래된 고찰로서 봐야할 것도 많았고 알고자던 것도 많았습니다.
그 동백나무 철지난 숲도 바로 저만치 있었고 추사 김정희 말년의 최고 명작이라는 백파선사 비문도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 비문에서 추사와 추사 아닌것도 알아보고자 했지만...
어떤 현상 앞에서 꼼짝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고요한 절집에 고막을 울리는 경쾌한 리듬이 발길을 이끌었습니다. 모두 홀리듯 끌려간 곳에
젊음보다 더 한껏 어린 학생들의 현란한 몸짓, 신기에 가까운 흥분된 춤파티가 고찰 선운사에 당당히 울려퍼지고 있었습니다.
무엇이라 말할까? 몸이 음악을 배우지 못한 사람에게, 저 이름난 사찰에 목탁소리 염불소리도 아닌
이 현대의 어지간한 중년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그래서 경계의 음악이 되어버린 저 현란한 몸의 음악이
사찰 한가운데 '시와 음악이 흐르는 선운사의 가을'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었습니다.
이 놀라운 부조화속에 이상하게 알수없는 기쁨의 샘물같은 것이 샘솟는 것은 무얼까요.
그 고장 아이들이 아마도 몇달을 꼬박 연습했을 화려한 꺾기춤이나 난이도 높은 점프의 실력들 앞에
스님들의 장삼자락이 연신 박수치는 동작들로 흥겨워집니다.
우리가 옛사람이 아니고자 스스로 끊임없는 노력으로 깨어나듯
스님도 옛스님이 아니고자 고치의 틀을 깨고 있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 열정의 가을이 성큼성큼
시대의 문을 열어젖히고 있었습니다. 선운사에 보러간 것은 비단 동백꽃만이 아니었습니다.
젊어지는 선운사, 그 열광의 몸짓으로 지금부터 선운사는 기억에서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천지에 꽃무릇은 붉은 입술 불에 덴 사랑의 열병처럼 가식없이 아름답습니다.
선운사 동구에 꽃무릇 피흘리듯 피어난 자리마다 그 이별의 흔적같은 무늬들은 서럽지 않았습니다.
아침의 버스안에서 그 붉은 여전사들이 FIFA컵에 입맞춤하던 그 뜨거운 순간을 떠올리면
그 날의 선운사 만개한 꽃무릇이 함께 따라나설 것입니다.
그 가식없이 아름답던 딸들처럼 선명하게...
앞으로의 가을여행도 낙엽처럼 정해진 구간없이 발길 닿는대로의 매력을 선사하겠지요.
바람이 부는 방향대로 몸을 돌리면 나를 한없이 태평하게 움직이게하는 어떤 신비스런 힘이 달려 나오고
그 방향을 믿고 따라 가보면 아름다운 고창읍성이 나오는 식으로...
걷는다는 것은 비로소 시작을 한다는 것.
걷는 것에서 호흡이 시작되고 자연에 직접적이고 사람이 결코 대단하지 않다는 것이고
이제까지의 속도전에서 사람이 거둔 것이 실은 자연과는 아무 상관없는 당신들의 성과물이라는 것을
역시 말하지 않으나 느끼는 사람만이 거두어 들이는 겸허한 일임을 알게 하는데
그 좋은 가르침을 걷고 걷다보면 언젠가 알 날이 오리라는 깊은 이 기대.
돌을 머리에 이고
한바퀴를 돌면 다리 병이 낫고
두바퀴를 돌면 무병장수하고
세바퀴를 돌면 극락에 이른다.
돌을 머리에 이고 '성밟기'를 한다는 전설이 이어져 오고있는 고창읍성에서
한쪽으로는 굵은 아름드리 소나무가 충실한 그늘을 이루며 솔향을 품고
간간히 벚나무 잎사귀 물들며 가을바람이 그러하듯 이리저리 흩날리는데
옛성을 휘감는 산들한 기분이 참으로 좋았습니다.
짧은 산행후 비로소 알맞은 양의(혹은 아직도 미흡한) 걷기에 대한 갈증이 그나마 풀리는듯 하였습니다.
구월의 꽃무릇 산행을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찾아갔더니 그 많고 많았던 기다림의 날 어찌 맞춰 이렇게 때마침 피어났는지
비로소 가을이 열리는 듯 해 어쩐지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바람소리에 낙엽 몇가닥이 함께 쓸려가는 소리가 들리듯 할 때 예전처럼 문풍지를 덧발랐습니다.
가을바람 불면 푸르던 것은 자취를 감추고 꽃보다 잎사귀가 붉게 물드는 것에서 덧없는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겠지요.
그 마지막 붉은 꽃이 아마도 꽃무릇일 것 같고 반대로 가을을 여는 시작의 꽃이 꽃무릇일 것도 같습니다.
아무려나, 붉은 가을이 서서히 남하하고 사람들은 들뜬 마음으로 가을산의 정취를 찾아 나설 기대로 들뜨는 계절입니다.
고창 선운사 젊어지는 그 절에서 비록 책에서 안내하던 그 어느 것 하나 못보고 왔지만
어느 절보다 강한 인상을 받은 것은 너무도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마치 우리의 붉은 여자축구의 우승컵이
그 남의 나라 이야기같던 그들만의 축구역사에 우리나라 어린 소녀들이 획을 그었다는 그 사실이,
꼭 꿈의 댓가가 아니라 노력해서 얻은 결실의 댓가였음을, 그 고마움처럼 마음을 덥혀 주었습니다.
가을산이 깊어질 때 다음 산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