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예쁘게 염색됐네. 수고.”
사모는 싸해진 분위기를 풀어주려고 붉게 물들인 정연의 머리이야기로 슬쩍 칭찬한다. 정연은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리며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었다. 카운터를 벗어난 사모는 3초간 천장을 훑어보았다. CCTV 네 대가 붉은 불을 깜빡이며 돌아가고 있다. 정연은 붉은 불이 깜빡일 때마다 섬뜩함을 느꼈다. 사모의 몸은 퇴근하지만 붉은 눈만은 이 공간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 같았다. --- p.16
“야, 나 상상했거든. 모태솔로한테 너무한 거 아니니?”
“그런 뜻이 아닌데. 내가 아무리 잡으려 해도 걘 녹아내렸을 거야.”
“왜?”
“중심이 없었어. 자꾸 몸을 내던지려고 했어. 뭘 하고 싶다는 의지 자체가 없었어. 제 몸이 녹아내리는 것도 모르고 말이야.”
“모르겠다. 난 그은 맹탕이라.”
“나쁜 년 아니야. 자기를 지킬 줄 모르는 약한 애였어.”
“좋게 포장하지 마. 넌 버림받고도 몰랐을지도 몰라.”
“오피스텔 걸이라고 알아?”
“아니.”
“오피스텔에서 몸 파는 거.” --- p.105
한 팔로 문고리를 잡고 있던 사장은 여차하면 문을 닫아버리려고 했고 정연과 아빠는 못 닫게 하려고 문을 밀고 있는 형국이었다.
편의점의 사무실과 창고는 합판을 세워 만든 임시 공간이었다. 두 사람의 힘이 문에 함께 실리자 문이 열리는 것이 아니라 평소 흔들리던 벽이 기울며 으지직 비명을 질러댔다. 벽면이 흔들리자 벽에 기대놓은 탄산음료 박스가 옆으로 넘어지고 뚜껑이 터져 물을 뿜어댔다.
탄산수 벼락을 맞은 손님들이 화를 내며 나가버리고 걸레를 든 영준이 달려왔다.
“이젠 기물 파손까지…. 내 참 기가 막혀서.” --- p.125
“이거 말하는 거야?”
“네. 맞아요. 엄마가 아파서 생활비가 없거든요. 알파와 오메가에 취직해서 정말 행복했어요. 미술학원에 갈 수 있다는 꿈을 꿀 수 있었고, 병원에 입원한 엄마의 생활비 걱정을 덜어주었고, 넘어지거나 데일 위험이 없는 일이어서 좋았어요. 그런데, 그런데 사장님. 월급은 주셔야죠. 이렇게 쫓아내고 월급까지 안 주시면 저는 어떡하나요?”
“이따위 종잇조각으로 뭘 어쩌겠다는 거야?”
봉투에서 꺼낸 약속들은 그의 손안에서 북북 찢겼다.
“그걸 찢으면 어떡해요?”
정연의 목소리는 비명에 가까웠다.
“또 고발해. 고발해 보라고. 네가 그 돈을 받을 수 있나 보자.”
--- p.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