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생명에 대한 연민, 존재에 대한 사색
15년 동안 쓴 시들을 묶었다는 이 시집의 도처에서 거듭, ‘착한 이승하’를 찾을 수 있다. 20여년 세월 정신병원, 교도소, 구치소, 요양원 등지를 찾아다니며 그가 할 수 있는 가능한 일을 다 하고 있는 이승하. 그는 그 일을 ‘봉사’라고 하지만, 왠지 갑의 냄새가 나는 ‘봉사’든, ‘동참’이나 ‘연대’든, 그것은 어쨌거나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실천이다. 두 달도 2년도 아니고 수십 년이면 이것은 장난이 아니다. 실천하는 이 앞에서는 누구나 말을 멈추고 그 실천의 세월 앞에서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승하는 시인으로서보다도 ‘한 인간’으로서 탄복하게 된다.
목차
제1부 나무, 생명
벌목
고사목을 위하여
聖나무 앞에서의 목례
가로수와 노인
포도주 예찬
할머니의 청국장
나무 앞에서의 기도
방화
산불
물의 반란
툰드라의 아침
바다직박구리는 지금 어디를 날고 있을까
돌탑 앞에서
여자의 젖가슴에 대한 생각
봄날 풍경
아름다운 부패를 꿈꾸다
나의 똥과 오줌
한강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병 나은 뒤
그 사슴의 눈
눈
제2부 문명, 죽음
새들은 죽어도 묘지가 없다
물에서 뭍으로
고래들은 왜 집단자살하는가
고래들, 사람의 배로 사라지다
전화
해창갯벌에 와서 바다를 보며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
허리케인 카트리나
컴퓨터
사람들 사이에서 사라진다
인공합성바이러스
인간 복제
인간의 마을에 또다시 밤이 온다
다 함께 울다
하비에 이어 어마가
다시, 기를 세우며
황사바람 속에서
저녁 식탁에 오른 것들
이 세상에 낙원은 어디뇨
지상의 남은 날들 1
지상의 남은 날들 2
제3부 인간, 아픔
지상의 남은 날들 3
지상의 남은 날들 4
지상의 남은 날들 5
병마에 대한 기억
비창 제3악장
말과 침묵
비닐 탈출
검노랑해변쇠맷새를 아십니까
부화장에서
송전철탑 아래서
뇌에 관한 연구 1
뇌에 관한 연구 2
투견장에서
소가 싸운다
짖지 않는 어느 개의 죽음
염치
지하로 내려가는 다섯 사람
시베리아 횡단열차
간이역에서 내리다
내 마음의 실크로드
바이칼 호수에 두고 오다
알흔 섬 가는 길
우정의 글 '생태시'는 다시 발명되어야 한다
저자 소개
저 : 이승하 (LEE,SEUNG-HA,李昇夏)
1960년 4월 19일 하루 전날 경찰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경북 의성군 안계면에서 태어나 김천에서 성장했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에 입학한 해에 10·26사태와 12·12사태가 일어났다. 1년 간 휴학한 뒤 복학하자마자 광주에서의 참상을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고문 정국을 다룬 시로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4·19 때 발포경관이었던 아버지와 5·18 때 진압군으로 광주에 투입된 아들의 이야기를 써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됐다. 10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쌍용50년사』, 『쌍용건설30년사』, 『현대건설50년사』 같은 책을 썼다. 한국시인협회 사무국장과 한국문예창작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이후로는 한국문예창작학회 창립 멤버가 되어 세계 여러 나라를 순방하며 문학과 시에 대해 발표했다. 이때 각 나라 생태환경의 실태를 직접 눈으로 보게 되었고, 이후 한국의 상황을 가슴 아파하면서 시를 썼다. 한국시인협회 사무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문예창작학회 회장, [문학나무], [불교문예], [문학 에스프리]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대한민국문학상 신인상, 지훈상, 시와시학상 작품상, 인산시조평론상, 천상병귀천문학대상, 편운상, 유심작품상(평론 부문) 등을 수상했다.
시집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폭력과 광기의 나날』, 『뼈아픈 별을 찾아서』,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감시와 처벌의 나날』, 『사랑의 탐구』,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생명에서 물건으로』, 『인간의 마을에 밤이 온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시선집으로 『공포와 전율의 나날』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무를 태운 공초 오상순』, 『청춘의 별을 헤다: 윤동주』,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집 떠난 이들의 노래-재외동포문학 연구』, 『욕망의 이데아-창조와 표절의 경계에서』,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등이 있다.
출판사 리뷰
지난 10년 동안 시인은 두세 달에 한 번은 반드시 요양병원에 갔다고 한다. 서너 달에 한 번은 교도소나 구치소에 갔다고 한다. 세 달에 한 번, 재소자들의 100여 편 수필을 읽고 심사하는 일을 7년째 해오고 있다. 정신병원에는 30년째 면회를 다니고 있다. 인간에 대한 연민의 정을 담아 『감시와 처벌의 나날』을 냈고 이번에는 생태환경에 대한 시를 모아서 시집을 묶어냈다. 아래는 시인이 쓴 산문의 일부이다.
몇 달에 한 번씩 인간의 생로병사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인간의 일생, 별의 일생, 나의 노후, 별의 노후를. 시간은 미래를 향해 직진하는가 영원 회귀하는가. 지구상에 생명체는 어떻게 생겨나서 번식하고 생존하게 되었는가. 지구도 달도 태양도 수명이 있는가. 언젠가는 폭발하는가. 소멸하는가. 『지구에서 사라진 동물들 Lost Animals』을 보니 이런 대목이 나온다.
“ 1600년 이후, 오늘날까지 분명한 기록이 남아 있는 절멸 생물 종의 수는 알려져 있는 것만 해도 726종이나 된다. 그 가운데 포유류는 59종으로, 현재 절멸 위기에 처해 있는 포유류는 505종에 이르러 있다. 절멸한 포유류의 대부분이 1900년 이후 1백년 동안 집중적으로 사라진 것들이다.”
18년이 지난 지금, 505종 중 100종 정도가 사라졌다. 최후의 한 마리가. 21세기에 들어서서는 멸종하는 동식물의 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는데(어폐가 있는 말이지만) 우리 인간이 지구 마지막 날까지 살아남을 동물의 종인가. 바퀴벌레보다도 메타세쿼이아보다도 더 오래 지구상에 남아 있게 될까. 나도 저 할머니들처럼 요양병원에서 생의 말년을 보내게 될 것이다. 내 아버지, 어머니처럼 암 발병 4개월 만에 세상과 이별하게 될 수도 있다. 두 분은 유언도 하지 못했고, 병원 중환자실에서 한밤중에 눈을 감았다. 즉, 아무도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나는 화장을 할 텐데, 유골함에 넣어져 납골당에 안치되면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을지.
문병을 가면 이런 생각을 하며 귀가하게 된다. 하지만 일단 귀가하면 현실의 온갖 복잡다단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기에 시간과 죽음, 지상의 삶과 사후, 생명과 우주에 대한 일은 잊고 지낸다. 시를 쓰려고 하면, 불현듯이 요양병원에서 보았던 할머니들의 모습이 한 분 한 분 떠오른다. 나도 곧 저렇게 될 것을. 시간 앞에 장사 없고 죽음 앞에 용사 없거늘. 그래서 성경이며 불경을 꺼내 읽게 된다.
중학생 때 본 [십계]라는 영화에는 모세가 홍해를 열어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성경 출애굽기 제12장에서 15장까지의 내용이다. 성경에서도 가장 극적인 장면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째서 살려 달라고 내게 부르짖고만 있느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앞으로 진군하라고 명령을 내려라. 그리고 지팡이를 들고 네 손을 바다 위로 내뻗어라. 그러면 바다가 갈라지리라. 그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다 한가운데를 마른 땅처럼 건너게 되리라.”
우리나라 진도 앞바다가 그렇듯이 성경의 이 장면은 기적이라기보다는 신기한 자연현상이다. 하지만 영화의 장면이 연상되어 성경을 읽을 때면 신이 난다. 쫓아가던 애굽의 병사들이 떼죽음을 당하는데도 말이다. 화엄사상과 정토사상의 융합을 꾀한 의상(625?702)의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를 30구 210자로 요약한 『법성게法性偈』에는 좋은 말이 많이 나온다.
一中一切多中一 하나 안에 모든 것이 있고 모든 것 안에 하나가 있다.
一卽一切多卽一 하나가 곧 모든 것이며 모든 것이 곧 하나다.
一微塵中含十方 하나의 먼지가 곧 우주 전체다.
無量遠劫卽一念 한량없는 시간이 곧 한 생각이다.
一念卽是無量劫 한 생각이 곧 한량없는 시간이다.
初發心是便正覺 처음 발심이 곧 깨달음이다. (초발심으로 살아라.)
生死涅槃常共和 생사라는 중생의 세계와 열반의 세계가 늘 함께 어울린다.
나 자신 시방 먼지에 지나지 않는 존재이고, 때가 되면 먼지로 돌아갈 것이다. 그래서 시를 쓰면서 생명과 우주의 신비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보게 된다. 지금은 시를 쓰고 있지만 억만년 동안, 혹은 그 이상 침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