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과 함께 읽는 진공眞空 대사 비문
-윤동재
원주 흥법사 진공 대사 비석을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
흥법사로 가야 하는 줄 아시지만 천만에요
한창 잘 나갈 때는 1만 평에 이르는 큰 절이었고
선 수행을 닦고자
수백 명의 스님이 찾아왔다는 흥법사
절집이 폐사 되면서 이것저것 모두 도난당해
거북이가 등에 지고 있던 진공 대사 비석 깨어진 채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지요
도당 유학승으로 귀국하자
고려 태조의 왕사가 되었고
입적하자 고려 태조가 시호를
진공眞空이라 내린
바로 그 진공 대사 비석 앞에
나 오늘 옷을 여미고 섰지요
그러나 아이고 답답 한문 범벅
진공 대사 비석
국립중앙박물관을 드나드는 사람들 눈도 있고 해서
머리를 숙이고
자세히 들여다보는 척했지요
비문 글자는 황제이면서도
당대의 명필로 알려진
당 태종 글씨를 집자했지요
진공 대사가 고려 태조의 왕사여서
당 태종 글씨를 집자했나?
이왕지사 격을 맞출 것 같으면
당 태종이 좋아했다는
서성書聖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할 것이지 말이지요
하기야 왕희지 글씨는 당 태종이 죽으면서
자기 무덤에 다 갖고 갔다지 않은가?
그러니 당연히 남아 있는 게 없지요
왕희지를 좋아한 당 태종이니
당 태종의 글씨를 집자한 건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한 것과 같지요
꿩도 먹고 알도 먹은 셈이고
도랑 치고 가재 잡은 셈이지요
그런데 부처님도 한문 공부는 소홀히 하신 건지
나와 함께 비문을 읽으시며
식은땀을 줄줄 흘리시지요
비석의 가운데 부분은 없어져 버렸는데
그걸 채워가며 읽는 게
한문을 읽는 것보다 더 수월하다고 하시지요
부처님은 비문 내용을 제대로 다 알려면
진공대사 비석 귀부와 이수가
그나마 온전히 남아 있는
원주 흥법사 절터에 가면 된다고 하시지요
거기 가면 바람과 햇살이 빠뜨리지 않고
하나하나 잘 알려줄 거라고
눈가의 웃음으로 일러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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