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걸음마를 떼다 / 조미숙
첫눈이 내렸다. 희끗희끗 휘날리던 눈발이 갑자기 정신없이 쏟아진다. 나도 모르게 창밖으로 눈길이 간다. 잠시 설레다가도 착잡해진다. 다시 햇빛이 나고, 날이 흐려지기를 반복한다. 내 마음 같다. 걱정이 앞선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이른 아침부터 학교에 갔다. 오늘은 ㅅ 생태 연구소에서 주관하는 기후 위기 대응 교육 때문에 ㅇ 초등학교에 수업하러 가는데 보조 강사로 전날부터 이틀간 참여했다. 처음에 주 강사 하고 싶은 사람은 신청하라고 했는데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수업이라 손을 들지 못하고 배운다는 생각으로 보조 강사에 지원했다.
생각보다 아이들이 수업에 잘 참여하고 주 강사도 진행을 원활하게 해서 분위기가 좋았다. 겁낼 게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며칠 뒤에 하는 다른 학교 수업에 주 강사 신청을 했다. 그러던 중에 목포 탄소중립 지원센터에서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을 대상으로 강의 할 사람 지원하라고 해서 손을 들었다. 지난번에 하루를 꼬박 투자해서 교육을 들은 결과였다. 짧은 시간 내에 두 가지의 피피티(PPT)를 준비해야 한다. 자신은 없지만 도전하기로 했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난 피피티를 만들어 본 적이 없다. 말 그대로 컴맹이다. 생전 컴퓨터와는 거리가 먼 직업이라 배울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았다. 뒤늦게 겨우 한글 문서만 만들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컴퓨터 교육을 몇 차례 받긴 했지만 쓸 일이 없으니 다 잊어버렸다. 간단한 문서 처리는 가능하긴 하지만 그것도 가끔 골머리를 앓았다. 그럴 때면 아이들에게 금세 잊어버렸냐는 타박을 받아 가며 배웠다.
지난겨울에 오직 줌으로 사용하려고 큰맘 먹고 노트북을 하나 장만했다. 딸들이 쓰던 것을 물려받았는데 켤 때마다 느려서 내 속이 더 터졌다. 그래 기능 좋은 것 말고 기본만 되는 것 사자고 매장에 갔는데 견물생심이라고 비싼 것에 눈이 갔다. 눈 딱 감고 하나 장만했는데 글쓰기를 쉬면서 노트북도 함께 긴 잠에 빠졌다. 집에 책상용 컴퓨터가 있으니 다른 일은 그걸로 해결했다. 그러던 차에 드디어 노트북이 제 일을 시작했다. 요즘은 하루 종일 제값을 톡톡히 한다.
방과 후 컴퓨터 강사를 하는 친구를 토요일 아침부터 불러서 피피티를 만들기 시작했다. 도립도서관에서 오전 내내 낑낑대다가 점심시간에 잠깐 일을 보고 또 오후 늦도록 머리를 맞댔다. 형식은 그 친구의 도움을 받고 내용은 여기저기 지인들에게서 제공받거나 인터넷을 뒤졌다. 방금 한 것도 잊어버려 다시 묻기를 반복해야만 했다. 컴맹에서 탈출하기가 쉽지 않았다. 비록 혼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지만 어떻게든 해낸 게 그저 놀랍기만 하다. 생전 처음으로 유에스비(usb)며 피피티지시기 등도 샀다. 배보다 배꼽이 크지 않을지 걱정이지만 일은 저질러졌다. 함께 애써 준 친구들이 일취월장했다고 추켜세운다. 하지만 집에 와서도 반복되는 실수로 끝없이 전화하고 수정했다. 얼른 글을 써 놓고 또 매달렸다. 지난 주말이 그렇게 갔다.
수요일에 지역아동센터에서 처음으로 탄소중립 피피티 강의를 하는데, 담당 선생님과 팀장님이 온다고 했다. 처음에는 마침 내가 전래놀이 수업을 나가는 곳이라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참관자가 있다고 하니 그때부터 떨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추워지고 눈까지 오는 날씨처럼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막상 수업을 시작하니 그렇게 떨지 않았다. 팀장은 아마도 초짜라 걱정이 되어 왔겠다 싶었지만,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그동안 이런저런 교육을 듣고 환경 관련 다큐도 많이 본 덕분에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고맙게도 아이들이 대답을 잘해 분위기가 좋았다.
어찌 됐든 첫 수업을 무사히 마치니 다음 주에 ㅁ 초등학교에서 강의할 게 또 내 앞에서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날마다 전쟁 같다. 기존에 있던 다른 수업까지 해치우고 집에 오면 초 죽음이다. 아직 미완성인 피피티를 고치고 또 고쳐 본다. 토요일 오전에 간단한 시연을 하는데도 버벅거렸다. 그래도 지난 시간에 첫발을 뗐으니 걱정은 덜 됐지만 그 아이들의 성향을 모르니 불안하다. 이 글을 마치면 몇 번 더 봐야 할 것 같다.
이래저래 이번 주도 정신없이 보내야 한다. 이틀간 특별 강의, 금요일에 놀러 가려고 뺀 수업 보충, 원래 해야 할 것 등 빽빽한 일정이다. 중간에 몇 번이나 미룬 치과 치료까지 받아야 한다. 거기에 평일 저녁에는 운동, 화요일 저녁은 글쓰기 수업이 이어진다. 목요일까지 한 치의 여유가 없다. 월요일에 작은 딸이 휴가받아 내려오는데 저녁에야 잠깐 얼굴을 볼 수 있겠다. 제주도 다녀오면 김장이 기다리고 있다. 올 한 해가 이렇게 마무리 되어간다.
세 아이 모두 취업에 성공한 것과 식구들 무탈하게 보낸 것이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글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쓴 것도 칭찬할 일이다. 내가 또 이렇게 새로운 일을 하게 된 덕분에 피피티를 배운 것도 한없이 뿌듯하다. 아무래도 이 첫걸음마는 환경교육사를 공부하는 쪽으로 나를 이끌 것 같은 무서운(?) 생각이 드는데 이 일을 어쩌지?
첫댓글 끙끙 앓던 환경 강의를 잘 마치셨군요. 고생하셨어요. 그리고 환경교육사 자격증 취득 끙끙 앓지 말고 새해에 도전해 보세요. 반드시 성공하실거예요. 응원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아이고 애쓰셨어요. 궁하면 통한다고 저도 발등에 불 떨어지고서야 배웠어요. 더 멋진 강연자가 되려면 부지런히 배워야지 어쩌겠어요. 토닥토닥.
히히, 그럴까요?
하나도 무섭지 않은 생각입니다 .힘 내세요. 그리고 계속 도전하세요. 응원합니다.
고맙습니다.
열심히 사시네요. 환경교육사 화이팅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게으른데 열심히 사는 척합니다. 고맙습니다.
첫걸음마를 떼는 과정이 이렇게 생생하고 뜨겁게 느껴질 줄 몰랐습니다.
환경교육사의 길이 열릴 것 같다고 하셨는데… 이미 그 길 위에 올라서신 게 아닐까요?
아이고, 멀고도 험한 과정을 거쳐야 한답니다. 공부에 자신이 없어요.
하하, 수고가 많습니다. 첫걸음마 떼다 전문가 되겠어요. 몇 번 하다 보면 요령이 생길겁니다. 화이팅입니다.
응원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노하우를 전수받아야 하는디요.
선생님 축하해요. 여러 방면에서 기량을 뽐내고 계시네요. 부지런하고 성실한 자세로 생활하시니까 배우고자 하는 것들을 쉽게 익히는 거라 믿어요. 배운 것을 가르치는 것도 대단하시고요. 아이들의 눈빛이 어땠을지 짐작됩니다.
고맙습니다. 아무튼 무사히 마쳤어요. 이젠 발 뻗고 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