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문화재청 블로그 기자단 황이새입니다! 이제 한 해의 마지막인 12월도 끝으로 달려가고 있는데요. 그런 만큼 날씨도 더욱 쌀쌀해지고 있습니다. 역사와 문화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우리 모두 이런 추위를 이겨내는 것은 어떨까요? 오늘은 영화 2편을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해보고자 합니다. 바로 영화 '한반도'와 '해적'이 되겠습니다.
그럼 다 함께 출발해 볼까요
^ㅡ^ △ 영화 한반도 포스터 ⓒ네이버 영화 '한반도'검색
'한반도'라는 영화를 아시나요? 2006년 개봉된 영화로 대한제국 국새의 존재여부와 그로 인해 벌어지는 가상 에피소드를 다룬 이야기 인데요. 마냥 픽션이 가미된 영화라기보다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영화이기에 우리에게 좀 더 많은 메시지를 주는 듯 합니다. △ 영화 해적 포스터 ⓒ네이버 영화 '해적'
지금 소개해드리는 영화는 '해적'입니다. 줄거리는 대충 이렇습니다. "전대미문 국새 강탈 사건으로 조정은 혼란에 빠지고, 이를 찾기 위해 조선의 난다긴다 하는 무리들이 바다로 모여든다! 바다를 호령하다 졸지에 국새 도둑으로 몰린 위기의 해적들은 국새를 삼켜버린 고래사냥에 나서고, 건국세력들에게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위 두 영화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국새'라는 주제를 선택했다는 것인데요. 그렇다면 과연 우리들은 국새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있을까요?
흔히들 '국새'는 잘 몰라도 '옥새'는 많이 들어봤을텐데요? 옥새란, 나라의 도장을 말하는 국새의 일종으로 중국 진(秦)나라의 시황제(始皇帝)가 화씨지벽(和氏之璧)으로 만든 옥새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옥으로 만든 국새라는 뜻입니다.
고대 중국의 왕들은 금으로 만든 인장을 사용하였습니다. 진시황제 때 ‘화씨벽(和氏璧)’을 얻어 천자의 인장을 새긴 뒤부터 역대 황제들이 옥새(玉璽)를 권위와 국권의 상징으로 삼아왔는데요. 우리 나라의 경우 고려·조선 시대에는 국인(國印)·새보(璽寶)·어보(御寶)·대보(大寶)라 하여 왕의 인장이 국새로 간주되었다. 이것은 국왕의 권위와 정통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사대·교린의 외교 문서 및 왕명으로 행해지는 국내 문서에 사용되었다. 왕위 계승 시에는 전국(傳國)의 징표로 전수되었기도 했습니다. 또, 왕의 각종 행차 시에는 그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 행렬의 앞에서 봉송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부여에서는 일찍부터 ‘예왕지인(濊王之印)’이라는 국인을 사용하였습니다. 삼국시대에는 분명한 기록이 없으나, 중국과의 외교 문서에 역시 국인을 사용하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고려시대에는 1172년(명종 2) 금나라에서 금인을 보낸 것을 비롯, 요·원·명나라 등에서도 여러 차례 고려왕의 인장을 만들어 보내왔는데요. 1370년(공민왕 19)명나라 태조가 공민왕에게 보낸 금인에는 ‘고려국왕지인’이란 인문(印文)이 있습니다.
이후, 1392년에 조선을 건국한 태조는 고려 국새를 명나라에 반납하고, 새 국새를 내려주도록 여러 차례 요청하습니다. 그러나 태조 당대에는 실현되지 않다가, 1403년(태종 3)에 명나라 성조(成祖)에 의해 비로소 ‘조선국왕지인’의 금인이 수여되었는데요. 조선왕조에서는 이것을 대보 혹은 어보라 하여 1636년(인조 14)까지 대중국 외교 문서에만 사용하였습니다. △ 조선국왕지인 ⓒ연합뉴스
그런데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우리가 이렇게 의미있는 문화재인 국새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래 보시는 것처럼 가지고 있는 유물에 대한 온전한 보존이 되지않고 있는 부분이 우선적으로 발견됩니다. △ 선조계비금보, 선조비 옥보 ⓒ네이버
관리의 문제도 문제지만, 더욱 문제인 것은 역대 국왕들의 국새가 어떻게 사라져버렸는지도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사라진 국새를 계속 찾고있는 중인데요. 다행이도 최근 한미공조수사에 의해서 국새들이 몇 점 환수되었는데요. 아래의 사진입니다. △ 황제지보(오른쪽아래), 수강태황제보(왼쪽 위) ⓒ문화재청 제공, 한겨레
2013년 11월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이 현지에서 압수한 조선 왕실 인장들의 모습입니다. 반환되는 인장들은 격과 용도가 달랐는데요. 최고 권위의 국새는 3종입니다. 황제지보를 비롯해 관리임명에 썼던 ‘유서지보’, 왕세자 교육을 맡은 관청인 춘방의 관원에게 내린 왕의 명령서에 썼던 ‘준명지보’가 이에 해당되는 것이죠. 이밖에도 1907년 순종이 ‘태황제’ 존호를 올리며 만든 ‘수강태황제보(壽康太皇帝寶)’를 비롯하여 여러 개인용 인장들을 환수하였습니다.
모든 문화재에는 제작자의 의도와 제작물이 지니는 의미가 부여되어 있습니다. 국새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국새는 "국왕의 권위와 정통성을 상징"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일제와 서구 열강들의 침탈로 위기의 순간을 가지고 있던 대한제국의 고종황제의 국새는 보다 특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 대한제국 고종「황제어새」 (大韓帝國 高宗「皇帝御璽) ⓒ문화재청 △ 대한제국 고종「황제어새」 (大韓帝國 高宗「皇帝御璽) 인면부분 ⓒ문화재청
"조선왕조의 ‘대군주(大君主)’ 고종(高宗)은 이웃 청국, 일본 등과 대등한 국가 위상을 확립하고자 1897년 10월에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재출발하였다. 마치 한(漢)나라가 후한(後漢)으로 이어진 것과 같다는 뜻으로 황제의 연호도 후한의 개창제(開倉帝) 광무제(光武帝)의 연호를 빌려 광무(光武)라고 하였다. 대한제국은 황제국으로서 국사에 사용할 국새(國璽), 어새(御璽), 어보(御寶), 보인(寶印) 등을 모두 새로이 제작하였다." "황제어새」는 1903년 8월 이후 러일전쟁 발발의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일본으로부터 국권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고종황제가 국권을
지키기 위해 비밀 외교활동을 펼치면서 자신의 의사를 표시할 어새를 새로 만들 필요성을 가지게 되고, 기밀 유출 방지를 위해 내대신(內大臣)의
직제를 통하지 않고 황제 자신이 직접 관장하여 사용했기 때문에 휴대 비장(秘藏)하기에 적합한 크기로 제작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문화재청
소개 - 역사의 갈림길에 있었던 고종황제의 국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과 심정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대한민국에도 국새가 있을까요? 당연히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여러가지 국새가 있었답니다.
◈국새의 날인 위치와 글자체 국새는 ‘대한민국’의 네 글자를 한글로 하되, 가로로 새긴다. 글자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자체로 한다. - 국새규정 -
◈대한민국 국새 변천 현황 △제1대 국새(1949.05.05 ~ 1962.12.31) ⓒ행정자치부
? 크 기方2寸 (6.06×6.06㎝) ? 재질,중량銀 ? 규 정국새규정(대통령령 제83호)〔’49. 5. 5〕
? 관리기관 ①총무처 ②국무원 사무국 ③국무원 사무처 ④내각사무처 △제2대 국새(1963.01.01 ~ 1999.01.31) ⓒ행정자치부
? 크 기正方形 (7×7㎝) ? 재질,중량銀, 2.0㎏ ? 규 정국새규정(각령 제643호)〔’62. 4.10〕
? 관리기관 ①내각사무처 ②총무처 △제3대 국새(1999.02.01 ~ 2008.02.21 / 2010.11.30 ~ 2011.10.21) ⓒ행정자치부
? 크 기正方形 (10.1×10.1㎝) ? 재질,중량金합금, 2.15㎏ ? 규 정국새규정(대통령령 제16096호)〔’99.2.1〕
? 관리기관 행정자치부 △제4대 국새(2008.02.22 ~ 2010.11.29) ⓒ행정자치부
? 크 기正方形 (9.9×9.9㎝) ? 재질,중량金합금, 2.9㎏ ? 규 정국새규정(대통령령 제20641호) 〔’08. 2.22〕
? 관리기관 ①행정자치부 ②행정안전부 △제5대 국새(2011.10.25 ~ ) ⓒ행정자치부
? 크 기正方形 (10.4×10.4㎝) ? 재질,중량金합금, 3.38㎏ ? 규 정국새규정 (대통령령 제23236호) 〔’11.10.25〕
? 관리기관 안전행정부 <제 5대 국새 인영>
현재 사용하고 있는 제5대 국새는 2010년 9월부터 전문가 간담회, 국민 여론조사, 공청회 등 전문가 및 국민의 폭넓은 의견을 수렴하고, 2010년 11월 각계 전문가로 국새제작위원회를 구성하여 국새제작에 들어가 2011.9월 제작을 완료하고 2011년 10월 25일부터 사용하고 있다. 국새는 가로, 세로 10.4cm 정사각형이며 무게는 3.38kg으로 국새의 존엄성과 권위·위엄을 높이기 위하여 기존의 국새보다 크게 제작하였다. 국새 내부를 비우고 인뉴와 인문을 분리하지 않고 한 번에 주조하는 중공일체형(中空一體型)으로 제작하였다. 국새의 재질은 금, 은 구리, 아연, 이리듐으로 구성하였으며, 희귀금속인 이리듐을 사용함으로서 합금 성분 간의 조직을 치밀하게 하여 균열을 방지하였다. 인문(印文)은 ‘대한민국’을 훈민정음체로 각인하였다. 인뉴(印紐, 손잡이)는 쌍봉(雙鳳)이 앉아있는 자세로 날개와 꼬리부분은 역동적이며 봉황의 등 위로 활짝 핀 무궁화를 표현하고 있다. △제5대 국새 인뉴, 국새 인영 ⓒ행정자치부 △3대 국새가 사용된 모습 ⓒ행정자치부 얼마 전 부산시립박물관에서는 ‘대한제국 국새 특별전’이 개최되었습니다. 특별전에는 박근혜대통령이 오바마대통령에게서 직접 넘겨받은 대한제국 국새와 인장 9과등이 전시되었습니다. 어제와 오늘을 막론하고, 품격 있는 나라는 그 스스로의 가치를 뽐내려 했습니다. 근대 이전의 국가들은 그 권위를 부여하기 위한 수단을 사용했는데 국새가 그 대표적인 케이스라 할 수 있다. 대한제국 국새 역시 마찬가지로 고종황제께서 자주독립의 의지와 대한제국 왕실의 권위를 표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반시민들은 국새와 옥새를 구분하지 못하는 등 국새에 대해 전혀 무관심한 태도를 가지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심지어 대한민국에도 국새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국새는 도장의 형태를 지니고 있지만, 일반적인 도장과는 달리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한제국의 고종이 국새를 따로 만든 것도, 이성계가 조선의 국새를 새로이 한 것 역시 국가의 권리와 정통성을 상징하고 권력이양의 징표로 담아내고자 하였던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역대 왕조와 그 국새를 아끼고 사랑할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새를 사랑하며 관심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우리 문화와 역사를 지키고 아껴나갈 원동력은 여러분의 관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생각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제6기 문화재청 대학생 블로그기자단 황이새 기자(dlto0909@naver.com)
*참고자료 네이버 지식백과(http://terms.naver.com/) 네이버 영화(http://movie.naver.com/movie) 문화재청
행정자치부 |
출처: 문화재청 공식 블로그 원문보기 글쓴이: 문화재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