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 작사를 하며
♭♬♮오 나는 약한 나그네요 이 세상 슬픈 나그네/수고도 병도 위험도 없는 내가 가는 그 밝은 곳/나는 가네 내 아버지께……♫♫ ♭♩
복음 성가‘방황하는 나그네’. 슬픈 성가가 아니다. 이 세상은 수고며 병이며 위험 따위가 수두룩하지만 하늘나라는 그렇지 않다는 뜻을 가사는 말한다. 난 이걸 케이블 방송에서 녹화한다. 그리고 내가 죽으면 미사 후 관이 성전을 떠날 때, 영상으로 틀어서 시청(?)하게 할 생각이다.
하지만, 졸고 제목이 대중가요에 관계되다 보니, 어쩌면 저속하게 들릴지 모르는 ‘한(恨)’이 행간마다 섞인다. 참 한 많은 삶을 살아 왔다. 가장 큰 한은 참척(慘慽)이다. 자식을 먼저 저승에 보내는 것을 참척이라 한다.
돌이켜보면 그 한의 대중가요와 더불어 지냈었다. 난 열여섯 번째 가요 콘서트까지 열었을 정도다. 바야흐로 거기 하나를 보탤 참이다.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들르는 TKBN-TV 공간을 우선 겨냥하고 있다. 200곡을 녹화하기로 약속한 방송국이니, 그 정도야 뭐 새삼스럽게 들리지 않겠지. 아니 운만 떼면 방송국에선 얼씨구나 하고 좋아할 것이다.
의기투합한 그 미니 콘서트의 이모저모다, 현수막도 건다. 여남은 곡을 녹화하고 전량(全量)을 유튜브(영상)로 전국에 내 보내는 것은 물론이고. 우정 출연 가수도 섭외해 준단다. 내친김에 고백인데, 난 ‘뜨거운 안녕’의 쟈니리에게 부탁하고 싶다. 서른 개쯤의 객석엔 낯선 사람들을 초대해 앉힌다. 그들에겐 자장면과 탕수육, 소주 등을 대접하면 될 테지.
곡들을 미리 챙겨 본다. 옛날 내가 취입한‘부산 노래’중‘ 해운대 엘레지’/ ‘부산 갈매기’/ ‘용두산 엘레지’/ ‘이별의 부산정거장’ 들 중에서 몇 개를 우선 고르자. Oh Danny Boy는 중학생도 아일랜드 민요니 반드시 부른다. 쟈니리와 쌍벽을 이루었던 정원의 ‘허무한 마음’도 넣고. ‘사단가’며 군가(엄마가 좋아하셨다)도 부른다.‘떠나가는 배’며 O Sole Mio 등 외국 가곡(민요)도.
단 차림새는 약간 달라진다. 군모는 현역 장병들과 똑 같은 것이니 그 원형을 바꿀 수는 없다. 대신 26사단 사령부 근처의 풍광을 찍어 그걸 컴퓨터로 천 조각에다 인쇄한다. 그런 뒤 그것들을 군모 위에 바느질하면 되는 것이다. 내 계급은 영원한 하사이니, 그 계급장을 금으로 도금할 생각이다. 색깔이 약간 바뀔 테니까, 현역과 구분된다. 26사단 기(旗)도 만들어 흔든다. 4년 전 사단장이 건네 준 군번 인식표 두 개도 목에 걸어 내 보이고. 그제 만난 남진의 얼룩무늬 셔츠를 사서 받쳐 입는다. 반은 군인이고 싶다.
난 이제 여생이 얼마일지 모르지만, 대중가요 가사를 창작하고 싶다. 외우(畏友) 이은집 소설가를 사사하리라. 본디부터 나는 뼛속까지 서민이라 대중의 정서를 너무나 잘 아는 것, 그것도 자산이다, 하지만 따로 거기 매달릴 시간이 없으니, 특별한 것을 제외하곤 휴대전화기 메모 공간에 대충대충 두드려 넣는 거다. 그제 한 곡을 만들어 봤다. 제목은 ‘타관에서의 겨울나기’*(1)♩♫♬♯울면서 고향 떠나 타관에 와서/ 십 년 세월 참으며 지내왔건만/ 여태껏 낯설구나 골목조차도/ 오늘도 어김없이 방황하는 나// (2)애당초 귀향일랑 생각 않아서/ 여기서 영원히 눈감겠다고/ 입술을 깨물면서 다짐했었지/ 하지만 이 한겨울 고향 그립다……♯♬♫♩
어쩐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인 34년생‘목포의 눈물’과 멜로디와 박자가 비슷하리라 여겨져서, 악보를 내 손으로 한 번 그려 볼 참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 트로트 가사 하나. 이번 내 소설집의 백미(白眉)라 한사코 우기는‘이등병과 중장(中將)’에 등장하는‘목포의 추억’을 옮겨다 써 보자. *(1)♪♬♮♬타관의 사나이와 목포 아가씨/ 아름답고 끈질긴 인연 따라서/ 사랑을 이뤘으니 축복이어라/ 목포와 모든 타관 한 이웃이다// (2) 유달산 영산강 삼학도 노적봉/ 눈길과 발길로 쌓은 추억들/ 세월은 흘러가도 변함이 없고/ 목포는 영원토록 잊지 못할 곳……♭♫♪
이건 ‘목포의 눈물’ 닮은꼴이 아니라 판박이다. 소설 속에 목포며 이난영, 남진 등이 끊임없이 나오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표절? 전혀 아니고말고. 역시 곡은 따로 붙여야 한다. 한데 난 목포에 가 보지도 않았었다.
난 자타가 공인하는 애견가였다. 미친 듯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죽을 뻔도 더러 겪었다. 한데 근래의 애견 문화를 보니 적이 반감이 생긴다. 서너 날 전, 모부대(母部隊) 26사단에 가려고 양주행 지하철을 탔었다. 전동차 안에서 만든 ‘반려견 타령’이다 *(1)♪♫♭이집 저집 개 소리 요란도 하고/ 너도 나도 애견가라 으스대누나/그래서 개들에게 새 이름 붙여/ 반려견 아니던가 그럴싸하네/ 이만하면 개 팔자 상팔자로다// 하지만 반려견은 수명 짧아서/ 갑자기 다가오는 영원한 이별/ 견디지 못할 만큼 가슴 아프니/ 죽도록 서로가 사랑할망정/ 반려견도 개 아닌가 개로 키우자……♭♫♪
이건 트로트가 될 수 없다. 폴카의 부활? 그게 맞을 거다. 아무튼 내 창작 대중가요 가사는 휴대전화(스마트폰) 메모 공간에 차곡차곡 쌓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