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리베카 솔닛 지음 『걷기의 인문학』
걷기의 의미화
중세 시대 걷기는 예수가 걸었던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신앙 체험을 하는 것이었다 한다. 대표적인 십자가의 길은 빌라도의 법정에서 골고다까지, 치마요로 가는 길이다. 또 하나는 십자가 원정 때 일어났던 예루살렘의 사건 현장들을 돌며 기도하는 길이다. 그러나 모든 기독교인이 그 현장을 다 갈 수 없는 법. 하여 교회는 ‘십자가의 길 14처’라는 종교 예술품을 만들어 산책 공간에 배치했고, 신자들은 이 길을 걸으며 상상 체험과 기도를 했다고 한다.
미로도 있다. 성당 바닥에 미로를 만들어 신자들을 걷게 만든다. 신자들은 이 곳을 걸으며 구도자에게 향하는 영혼의 역정(歷程)을 체험한다. 미로는 동서고금 여기 저기 다 있다. 애초에 만든 이의 의도를 따라 사람들이 걷고, 걸었던 사람들에 이어 또 누군가가 걸으며 자기 나름의 의미를 새기는 과정. 그 것이 미로의 기능이었을 것이다.
저자는 ‘길을 따라간다는 것은 먼저 간 사람의 해석을 받아들인다는 것이고, 같은 길을 걷는다는 것은 어떤 중요한 일을 똑같이 따라한다는 것이다.’고 말하다. 우리는 이를 순례라고 말한다. 스페인의 ‘산티아고의 길’, 일본의 ‘시코쿠헨로의 길’이 내가 아는 순례길이다. 풍광과 경치로 이어지며 나름의 역사를 담고 있는 길들도 있다. 이탈리아의 ‘돌로미티 산행길’이 그렇다. 비단 여기만 있겠는가. 의미는 만들면 된다. 우리나라 제주 올레길이나 지리산 둘레길, 서해안의 서해랑길이 그렇다. 포레스트 검프처럼 걷고, 누구를 추모하며 걷고, 사회, 정치운동의 목적으로 걷는다. 많은 사람들의 의미가 쌓이며 이 길은 우리 각 자에게 순례길이 된다.
걷기의 해방학
누구나 맘만 먹으면 걸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9세기 말 유럽의 여인들은 홀로 도시를 걸어 다니면 정숙하지 않은 여인으로 취급당했다. 특히 밤에 다니면 매춘부로 오인 받아 남성들의 험담을 듣고, 추행을 당했다. 심지어 경찰에 붙잡혀 처녀 검사를 받아야 했다.
18세기 말을 살았던 영국 낭만주의 시인 워즈워드 남매는 들판 여기 저기를 목적 없이 걷는다고 가족과 주변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당시에는 그런 행동은 관습에서 벗어난 행동이었고, 특히 여동생은 숙녀답지 않다고 핀잔을 들어야 했다. 워즈워드는 80평생을 살면서 29만 킬로미터를 걸었다 한다. 유럽 낭만주의 시풍의 시작은 바로 일상에서 탈출하는 해방의 걷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걷는 다는 것, 특히 혼자 걷기는 ‘명상과 기도와 종교적 성찰의 중요한 일부분’이었고, ‘사유와 창작의 형식’이었다. 또한 같이 걷기는 한때 혁명의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기도 했다. ‘순례행렬, 보행클럽, 퍼레이드, 행진’이 그 것이다.
책에는 걷기의 해방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고초와 역사가 있었는지 밝히고 있다. 길을 뜻하는 한자 도(道)의 유래만 봐도 그 뜻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마을 밖 길은 고대인들에게 두려움의 존재였다. 맹수와 악령에 의해 자신이 희생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두려움의 존재들을 멀리하기 위해 가축을 희생하고 얻은 머리나, 경쟁관계에 있는 타 부족 사람을 살해하고 취한 그 머리를 들고 마을 밖 길을 나섰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자연스레 걷는 이 길이 최근까지도 자유롭지 않았다는 것은 의외였다. 또한 여전히 지금도 걷기가 자유롭지 않은 경우는 많다. 1970년대까지 보령의 궁동과 갈머리로 바닷가 사람이나 산골사람들이 대천장을 보러 들어올 때 한무리로 들어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바로 동네 왈패들의 해꼬지때문이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 밤거리를 걷는 시민들을 보며 안전한 치안에 감탄을 하곤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며 왠지 어깨가 으쓱한 맘이 들지만, 우리의 걷기가 항상 편안하지는 않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다. 지금도 작든 크든 여러 면에서의 걷기의 해방학은 현재진행형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왜 걷는가
나도 걷는다. 특히 아침 출근길을. 십리 길 정도를 걷는다. 걸음 수로는 약 5~6천보, 대천 천변이 폴리우레탄으로 깔리기 전 흙길일 때도 걸었고, 조그만 한내 콘크리트 다리도 걸었다. 흙 길일 때 주된 길 옆 보조 길이 생기고, 그러다 보조 길이 주된 길이 되면서 주된 길이 사라지는 것도 보았다. 길가 잡풀들이 드잡이로 무성하게 자라다가 장마로 한순간에 쓸어 엎어지는 것도 보았고, 이내 다시 초록으로 뒤덮여지는 것도 보았다. 난 길을 사랑한다. 그 위를 걷는 내 다리 근육도 사랑한다. 내 삶이 끝나는 때까지 계속 걷고 싶고, 내 삶이 끝나도 계속 남아 있을 그 길을 누군가가 계속 걸어가길 소망한다. 리베카 솔닛의 넓고도 깊은 걷기를 따라 읽으며 나의 걷기를 음미해 보았다.
책 익는 마을 원 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