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4편. 봄이 머물라 하네
찰나의 봄이라 했던가. 한낮의 내리쬐는 태양 볕의 온도가 달라졌다. 봄이 머무는 자리에 서서히 여름 기운 밀려드니 왠지 봄을 도둑맞은 것만 같은 요즘, 봄의 끝자락을 잡고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만나본다. 봄을 쫓아 꽃을 쫓아 남에서 북으로 떠나는 유목민부터 다시 인생의 봄을 만난 사람들까지! 헤어지기 아쉬운 봄, 봄이 행복한 사람들과 그 속에 머물러보자!
1부. 미타암에 걸린 봄 - 충북 음성 함박산 아래 자리 잡은 작은 암자 미타암에서 17년째 홀로 수행 중인 운성스님. 승가대학에서 농사를 담당하는 스님인 농감(農監) 소임을 지내며 농작물의 성질과 자연의 이치를 하나하나 터득해온 스님은 산나물 농사를 지으며 사찰음식을 만들어 오고 있다. 깊은 산골짜기라 올해는 봄이 유독 늦게 오는 듯 싶더니 갑자기 날이 풀려 뒤늦은 봄기운이 몰려들었다. 때를 놓치면 먹을 수 없는 산나물을 서둘러 뜯고 가마솥에 데쳐 건나물을 만드느라 구슬땀을 흘리는데, 손 하나가 아쉬운 스님을 돕고자 도반 도겸스님과 선배 지현스님이 보살님들과 함께 찾아왔다. 먼 길 마다치 않고 와준 고마운 이들을 위해 모처럼 솜씨를 발휘하는 운성스님. 오이 속을 파내 파프리카, 무를 채 썰어 넣고 양념으로 잣과 배를 갈아 곁들인 스님만의 오이소박이와 가죽나물 무침과 전, 그리고 스님들을 미소 짓게 한다 해서 승소(僧笑)라 불리는 잔치국수를 내어놓는다. 모든 생명이 돋아나 어우러지는 봄을 제일 좋아한다는 운성스님. 봄의 끝자락, 반가운 이들과 공양 한 그릇을 나눌 수 있어 더 행복하다는 미타암에 걸린 봄을 만나본다. 2부 꽃길 따라 유목 여행 - 아까시나무 꽃이 피는 5월 한 달간 꿀을 따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카라반을 끌고 꽃길 따라 유목 여행을 떠나는 임상희·박미진 부부. 10년째 매년 개화 시기에 맞춰 전남 강진에서 강원도 인제까지 전국을 돌며 이동 양봉을 하고 있다. 5월은 양봉 농가에 가장 중요한 시기로, 이 한 달을 위해 1년을 산다는 상희 씨. 덕분에 남다른 유년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은 학교 수업 대신 자연에서의 배움을 얻고 있다. 아침에 나간 꿀벌이 돌아오는 저녁 무렵까진 가족이 함께 주변 명소를 둘러보고 꽃구경도 하며 틈틈이 여행도 즐기는데! 이동 양봉의 어려움은 한 달 동안 꽃 상태에 따라 남쪽에서 강원도까지 많게는 7번까지 이사를 떠나야 한다는 것. 놀러 다닌다 생각해야지 일한다 생각하면 힘들어서 못 한다는 미진 씨! 아까시나무의 꽃이 지니 서둘러 싱싱한 꽃을 찾아 경남 창녕에서 다음 목적지인 경북 울진으로 이동을 준비한다. 온갖 살림살이와 600만 마리의 벌과 함께 떠나는 한밤의 대이동. 봄을 쫓아 꽃을 쫓아 꿀 따러 다니는 21세기 유목민,
상희 씨 가족의 달콤한 여행을 따라가 보자. 3부 소랑도랑 썸타네요 - 5월이면 다시마 수확으로 섬 전체가 들썩이는 전남 완도의 작은 섬 소랑도! 30여 년간 군인으로 살다 퇴역 후 고향 소랑도로 돌아온 유희동 씨는 섬의 열혈 이장으로 다시마 철이 돌아오면 덩달아 바빠진다. 고향 소랑도에서 딱 3년만 살자는 남편의 약속에 낯선 섬 살이를 시작한 아내 김연신 씨. 올해 3년째지만 30년이라 했다며 남편 희동 씨는 전혀 떠날 생각이 없어보인다. 아내의 마음을 붙잡기 위한 남편의 필살기는 소랑도가 내어준 풍부한 자연산 해산물! 부부의 전용 마트인 무인도에는 손만 뻗으면 늦봄 물오른 소라, 해삼이 지천이다. 잡는 재미는 물론 섬이 주는 풍족한 식재료로 밥상을 차리며 요리하는 재미까지 알게 됐다는 연신 씨. 그 매력에 계속 살아도 좋지 않을까 마음이 점점 기운다는데. 직접 청석굴이라 이름 지은 소랑도의 숨은 명소 해식 동굴에서 기분 전환도 하고 푸르른 바다를 배경 삼아 절벽에서 봄 소풍을 즐기며
소랑도에서 3년만 살지 30년을 살지 썸타는 중인 부부의 오월을 만나본다. 4부 배낭에 담은 봄 - 20kg 배낭 둘러메고 어디든 떠나는 중년의 백패커 김켈리씨. 대치동에서 학원 강사로 일하며 세 아이를 키우느라 바삐 살아온 그녀는 나에게 주는 선물로 올봄 3개월간 통영 섬을 여행하며 노(老)테크 중이다. 그녀의 노후 준비 노테크는 다름 아닌 행복한 기억을 모으는 것! 나이 들어 움직이지 못할 때 그 행복한 모습을 두고두고 볼 수 있도록 여행과 비박을 즐기며 영상으로 기록해두고 있다. 선선한 바람과 바다, 초록빛 숲이 우거진 봄은 섬 트레킹하기 좋은 계절, 이번에는 그녀가 욕지도로 떠난다. 좌부랑개 마을 포차에서 노부부를 만나 욕지도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한다는 고등어회 한 접시 맛보는데! 봄철에 알이 차는 고등어는 기름기가 빠져 담백하고 쫄깃한 식감이 살아 지금이 회로 먹기 가장 좋은 계절이란다. 배 든든히 채우고 폭신폭신한 땅을 밟으며 섬 트레킹을 나서는 켈리씨. 에메랄드빛 바다가 보이는 출렁다리를 건너 천왕봉 꼭대기에서 텐트를 치고 하룻밤 비박을 즐긴 후 욕지도에서 인연을 맺은 김상헌·한은임 부부를 만난다. 바닷가 절벽 위에 자리한 카페 겸 부부의 집은 수술실 수간호사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 아내를 위해 남편이 4년간 몰래 집을 짓고 정원을 가꿔 선물한 놀이터! 사랑꾼 남편의 노테크 덕에 행복한 노후를 즐기는 부부와 함께 정을 쌓으며
배낭 한가득 행복한 기억을 담은 켈리 씨의 인생의 봄날을 만나본다. 5부 리베와 에녹의 새봄 - 경남 산청 지리산자락에 자리 잡은 아늑한 민박집. 집의 주인은 30여 년간 수도자의 길을 뒤로하고 세속으로 돌아온 리베&에녹 자매다. 30여 년간 봉쇄 수녀원에서 있었던 언니와 활동 수도회 소속으로 어린이집 소임을 맡았던 동생은 둘이서 함께 수도의 길을 이어나가기로 하고 6년 전 수녀원을 나와 산청에 터를 잡았다. 함께 기도하고 마당의 텃밭과 꽃을 가꾸며 갈 곳 잃은 동물 식구들과 새로운 삶을 시작한 자매. 처음에는 숨 쉬는 공기조차 다르게 느껴질 만큼 모든 게 낯설었지만 이제는 세상에 잘 뿌리내렸으니 누구든 쉬어갈 수 있는 곳을 만들어보자 싶어 올봄 민박집을 시작했다. 이사 들어올 때부터 안채는 다른 이들을 위해 비워주자며 창고 방에 짐을 풀었던 자매는 설레는 마음으로 예쁜 꽃을 심고 청소하며 손님들에게 내어 줄 공간을 꾸미고 있는데. 힘든 일도 꽃길이라며 작고 소소한 일에도 웃음꽃이 끊이질 않는
자매만의 오월의 뜨락으로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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