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閑談)
겸손(謙遜)-공(功)을 자랑하지 않는 겸손
이정암(李廷菴-1541~1600-조선 선조 때의 공신-호,사류거사/四留居士)이
52세로 황해도 초토사(剿討使)로 임명 받아 서해안의 연안에 도착하니
그 곳에는 의병 5백명과 성민 2천여명이 성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정암은 분충토적(奮忠討賊)이라는 깃발을 성 위에 걸어 놓고, 성곽을
보수하고 군량을 확보하는 한편 병기를 정비하여 성의 수비태세를
가다듬었습니다.
몇 일 후 왜장 구로다가 5청명의 대군을 이끌고 왔습니다. 일부에서는
싸움을 포기하고 후퇴하자는 참모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정암은
"내가 죽을 곳은 이곳뿐이다. 초토사(剿討使)의 직분을 맡은 자로서 적과
싸우다 죽는 것이 나의 임무다. 적이 무서워 떠나겠다는 자는 말리지
않을 테니 지금 떠나라."
이처럼 결연한 의지에 힘 입어 500 의병이 5000 왜군을 나흘간의 격전
끝에 물리치고, 승전보고를 올고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올렸습니다.
'以二十八日圍城以二日解去(이이십팔일위성이이일해거)'
(적이 8월28일에 성을 포위했다가 9월 2일에 포위를 풀고 돌아갔다.)
이렇게 짤막한 보고서를 본 조정은 적을 물리친 공을 자랑하지 않는
그 겸손함에 감탄하였다고 합니다.
<채근담>에 악이 드러난 자는 재앙이 적고, 악이 숨어 있는 자는
재앙이 깊으며, 선이 드러난 자는 공로가 적고, 선이 숨어 있는 자는
그 공로가 크다고 했습니다.
첫댓글 지신의 공적을 드러내지 않아야 하고, 또한 이를
알아주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