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서정시 해설과 감상1 - 미당의 장 ////미당의 장(章) ........김동원 시인
麝香 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베암…
을마나 크다란 슬픔으로 태여났기에, 저리도 징그라운 몸둥아리냐
꽃다님 같다.
너의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든 達辯의 혓바닥이
소리잃은채 낼룽그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눌이다. …물어뜯어라. 원통히무러뜯어,
다라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
돌 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麝香 芳草ㅅ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안해가 이브라서 그러는게 아니라
石油 먹은듯…石油 먹은듯…가쁜 숨결이야
바눌에 꼬여 두를까부다. 꽃다님보단도 아름다운 빛…
크레오파투라의 피먹은양 붉게 타오르는 고흔 입설이다…슴여라 ! 베암.
우리순네는 스믈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흔 입설…슴여라 ! 베암.
― 서정주,「花蛇」전문
「花蛇」는『시인부락』2호(1936년 12월 호)에 처음 발표되었다. 미당의 26세 때 출간한 첫 시집『화사집』(1941, 남만서고)의 표제 시이기도 하다. 내가「花蛇」에 물든 건 23세 무렵이다. 징그러운 ‘뱀’의 혓바닥과 ‘스무 살 여자’의 색정적 붉은 입술을, 원죄의식에서 해방된 육정적 관능의 강렬한 이미지와 뒤엉켜놓은 미당의 시안(詩眼)에 홀딱 빠졌다.
그렇게 “아름다운 베암”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마늘모의 대가리를 꼿꼿이 쳐든 채,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뱀의 눈깔에서, 그는 어찌 “꽃다님”의 매혹적인 색기(色氣)를 찾아냈을까. 구약성서에 나온 이래 뱀은 이브를 꼬여내는 간교함의 상징이 됐다. 제임스 화이트(James White)가 찍은 사진인, 알몸의 여배우 레이첼 와이즈(Rachel Weisz)와 무늬 뱀이 뒤엉킨 관능의 포즈는, 그야말로 뇌세적이다. 에덴동산에서 여호아 하느님께서 뱀에게 퍼붓는 심판은 섬뜩하다. “너는 저주를 받아, 죽기까지 배로 기어 다니며 흙을 먹어야 하리라." (창세기 3:13-14)”
불덩이처럼 아랫도리가 뜨겁든 젊은 날의 나는 미당의「花蛇」를 통해, 원죄의식은커녕 오히려 교활한 뱀과 간부(姦婦)의 꾐이 어찌나 황홀했던지. 그것은 추함이 아니라 오히려 미(美)였으며, 욕정이 아니라 “푸른 하늘을 물어뜯는” 원시적 본능의 갈구였다. 시에서 뱀은 ‘저주’이자 ‘유혹’ 그 자체를 상징한다. 아무리 “저 놈의 대가리”를 향해 “돌 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벗어나고자 하나, 끝내는 “石油 먹은듯…石油 먹은듯…가쁜 숨결”에 뜨거운 몸을 맡겨야 하는, 남녀 절정의 양면을 뜻한다. “정신적 육체적 방황, 혹은 보들레르적 방황”(송하선)에서 나온「花蛇」는, 초기 미당이 얼마나 서구적 악마주의에 탐닉했는지 엿볼 수 있는 수작이다.
그런 의미에서「花蛇」는 그때까지 근대시에 머물렀던 한국시단에 현대시의 출발을 알리는, 전위예술을 칠갑한 시니컬한 시의 깃대를 꽂았다. 독시자로 하여금,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자극해 관능의 문을 열게 하고 충동과 유혹의 눈뜸을 자각케 한다. 보들레르가 추구한 암고양이의 색정을 “크레오파투라의 피먹은양 붉게 타오르는 고흔 입설”에 스미게 하는 동시에, “우리순네는 스믈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흔 입설…슴여라 ! 베암.”으로 둔갑시킨, 젊은 애인들의 애무의 시이자, 에로티시즘의 극점에 놓인 절창이다.
내 너를 찾어왔다…叟娜. 너참 내앞에 많이있구나 내가 혼자서 鐘路를 거러가면 사방에서 네가 웃고오는구나. 새벽닭이 울때마다 보고싶었다… 내 부르는소리 귓가에 들리드냐. 叟娜, 이것이 멫萬時間만이냐. 그날 꽃喪阜 山넘어서 간다음 내눈동자속에는 빈하눌만 남드니, 매만저볼 머릿카락 하나 머릿카락 하나 없드니, 비만 자꾸오고… 燭불밖에 부흥이 우는 돌門을열고가면 江물은 또 멫천린지, 한번가선 소식없든 그어려운 住所에서 너무슨 무지개로 네려왔느냐. 鐘路네거리에 뿌우여니 흐터저서, 뭐라고 조잘대며 햇볓에 오는애들. 그중에도 열아홉살쯤 스무살쯤 되는애들. 그들의눈망울속에, 핏대에, 가슴속에 드러앉어 叟娜 ! 叟娜 ! 叟娜 ! 叟娜 ! 너 인제 모두다 내앞에 오는구나.
― 서정주,「復活」전문
무릇 예술의 세계는 태고무법(太古無法)이다. 화가이거나, 시인이거나, 그 어떤 선객(禪客)일지라도, 이 우주의 그물에 걸림이 없어야 천하 명작을 만난다. 화폭 속에서 붓의 ‘한 번 그음’을 통해 화가는 뭇 존재의 신묘를 드러내듯, 시인 역시 오로지 일점 언어를 찍어 우주를 한 점 우주씨앗 속에 그 뜻을 응축한다. 서정주의「復活」은 한 점 언어로 언어 밖의 이승과 저승의, 저 무한량의 우주 상상의 극점까지 그 시적 외연을 순식간에 팽창시켰다. 스물이 되기 전부터 미당은 오로지 사유의 고갱이를 ‘영원성’에 두었다. 영원성이란 너가 나이고, 나가 너인 법화의 세계, 삼라만상 일체가 모두 하나 속에 수렴되는 처음도 끝도 없는 연화묘법(緣化妙法)의 세계이다. 이따금 신들린 사람처럼 미당은 시 행간 속에서 귀신같이 시어를 부린다. 그는 시에 대해 “영원히 사람들에게 매력이 되고 문제 꺼리가 될 수 있는 내용을 골라 써야 한다. 그러니 그러려면 한 시대성의 한계 안에서 소멸되고 말 그런 내용이 아니라 어느 때가 되거나 거듭거듭 문제가 되는 그런 내용만을 골라” 써야 한다고 갈파했다. 대저 예술은 “법이 없음을 가지고 법이 있음을 창조하고, 법이 있음을 가지고 모든 다양한 법을 꿰뚫어 버릴 수 있는 것”(석도화론1-1, 김용옥 역, 통나무)이다.
「復活」은 화사집에 들었다. “부활은 지금까지의 순나(純裸)의 미의 형성을 노렸던 작품들이나 육정적 방황의 노래들에서는 전혀 그 유례를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한번 가선 소식 없던 그 어려운 住所”로부터 “鐘路 네거리에” 부활한 ‘叟娜’를 통하여, 미당은 뒷날 많이 보이고 있는 윤회 사상의 전조를 보이고 있다.” (송하선) 그렇다.「내리는 눈발속에서는」,「因緣說話調」,「冬天」,「無의 의미」등의 일련의 작품 군(群)들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색(色)이 풀리어 공(空)이 되고, 공(空)이 모여 색(色)이 되는 그 오묘한 불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정수를, 미당은 약관 무렵 이미 훤히 꿰뚫었다고나 할까.
땅의 바닥에 하늘의 징조가 가득 나타나듯, 죽음의 뒷문을 열면 ‘부활’의 앞문이 나오는 법이다. “그날 꽃喪阜 山넘어서 간다음 내눈동자속에는 빈하눌만 남드니, 매만저볼 머릿카락 하나 머릿카락 하나 없드니, 비만 자꾸오고… 燭불밖에 부흥이 우는 돌門을열고가면 江물은 또 멫천린지,” 왠지 나는 이 시구에서 영원히 시를 짊어지고 우주를 돌고 돌아야만 하는 미당의 예언자적 숙명의 고독한 영혼을 본다.
시는 관념과 추상성을 감각적 언어로 만지게 할 때 본질에 닿는다. 미당은 “무지개”를 통해 죽은 ‘너’의 현신을 시각적 이미지로 단순화시켰다. 마치, 죽음과 부활을 옆 동네나 다녀오듯 그 시적 대상을 놀랍도록 간략하게 축약해 버무린다. 이것은 어쩌면, 畵聖 김홍도가 대상의 치밀함을 버리고 붓으로 쓰-윽 쓰윽 몇 번의 그음만을 통해 형상의 뜻만 취하듯, 미당 역시, “鐘路네거리에 뿌우여니 흐터저서, 뭐라고 조잘대며 햇볓에 오는애들. 그중에도 열아홉살쯤 스무살쯤 되는애들. 그들의눈망울속에, 핏대에, 가슴속에 드러앉어 叟娜 ! 叟娜 ! 叟娜 ! 叟娜 ! 너 인제 모두다 내앞에 오는” 그 열렬한 ‘죽음 속 부활’의 찰나를 절묘하게 빚었다.「復活」은 이후 미당 시에서는 찾기 힘든 스물을 질러가면서 분출한 불길이요, 불현 듯 공중에 코드를 꼽고 접신된 듯 빠른 리듬과 급격한 감정의 반복을 통해 시적 호흡을 가파르게 끌어올린 작품이다.
괜, 찮, 타, ……
괜, 찮, 타, ……
괜, 찮, 타, ……
괜, 찮, 타, ……
수부룩이 내려오는 눈발속에서는
까투리 매추래기 새끼들도 깃들이어 오는 소리, ……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 ……
폭으은히 내려오는 눈발 속에서는
낯이 붉은 처녀아이들도 깃들이어 오는 소리, ……
울고
웃고
수구리고
새파라니 얼어서
운명들이 모두다 안끼어 드는 소리. ……
큰놈에겐 큰 눈물 자죽, 작은놈에겐 작은 웃음 흔적,
큰이얘기 작은이얘기들이 오부록이 도란거리며 안기어 오는 소리. ……
괜찮타, ……
괜찮타, ……
괜찮타, ……
괜찮타, ……
끊임없이 내리는 눈발 속에서는
산도 산도 청산도 안끼어 드는 소리. ……
― 서정주「내리는 눈발속에서는」전문
1955년 미당의 나이 40세 때 정음사에서 출간된『서정주시선』속 20편의 명편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이다. 6·25 전쟁이라는 비극과 좌절, 정신착란과 자살미수 사건을 겪고 나온 이후에 쓴 이 작품은 “그의 원숙한 통찰력이나 인간적인 담담한 깨달음, 그리고 죽음이나 한을 초극한 자로서의 생에 대한 강한 긍정적 자세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그의 시는 지상적 삶에 머무르지 않는다. 현세를 초월하여 이승과 저승, 영원과 찰나, 지상과 천상을 아우르는 시세계를 보여준다. 다시 말하자면, 그의 육신은 지상적 현세적 삶을 살았지만, 그의 영혼은 우주적 삶을 살았고, 이승과 저승을 꿰뚫는 삶” (송하선)을 살았다.
비극은 한없는 측은지심을 유발한다. 시인은 삶의 즐거운 곳보다 타인의 서늘하고 상한 진물이 배여 나오는 곳에서 시의 광맥을 깨낸다. 전쟁 중 죽은 수 백 만 명의 아까운 생령들의 목숨은 어디로 흩어진 것일까. 겨울 하늘 무수히 내려오는 흰 눈이 마치 미당에게는 안타깝게 죽은 혼령들의 얼굴로 환치된다.
괜, 찮, 타, ……
괜, 찮, 타, ……
괜, 찮, 타, ……
괜, 찮, 타, ……
왜 미당은 1연을 세로쓰기로 시어 하나하나에 쉼표(,)와 말줄임표(……)를 독백조로 썼을까. 그것은 무량무량의 눈송이가 천지사방 점점이 흩어져 수직방향으로 내려오고 있는 동시성을 암시하며, 온 가슴으로 낱낱이 껴안아 죽은 자를 위해 살풀이를 하겠다는 시적화자의 푼푼함의 발로이겠다. “수부룩이 내려오는 눈발속에서는 / 까투리 매추래기 새끼들도 깃들이어 오는 소리, …… ”를 통해,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서 억울하게 죽은 어린 귀신들에게 화자는 무당의 신 내림으로 초혼(招魂)한다.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 ……”의 보통 빠르기의 어조와 수평적 시어 배치는, 어린 귀신, 처녀 귀신은 물론 시적 화자 스스로에게 전쟁에 대한 상처의 위로와 화답에 대한 내적 치유의 소리다.
2연의 “울고 / 웃고 / 수구리고 / 새파라니 얼어서 / 운명들이 모두다 안끼어 드는 소리. ……”는 ‘흰 눈’의 온갖 다양한 의태를 죽은 혼령들이 몸 바꿔 내려오는 시법과 버무려 미당만의 육화된 기막힌 언어 부림이다. “시는 궁극적으로 신(神) 집힌 자의 沒我的 언어이다. 신 집히지 않은 자의 언어는 그 언어가 아무리 세련되고 높은 수준의 것이더라도 단순한 도구적 대상으로써의 언어에 그칠 뿐”(원형갑)이다. 마치 살아있는 언어의 살결과 미묘하게 움직이는 시어의 보이지 않는 뉘앙스까지 한꺼번에 미당은 그 생기를 다 잡아냈다.
괜찮타, ……
괜찮타, ……
괜찮타, ……
괜찮타, ……
1연의 “괜, 찮, 타, ……”와 3연의 “괜찮타, ……”는 왜 시의 호흡이 반대일까. 흰 눈의 떨어지는 속도가 3연에 이르면 긴박해 지기 때문이다. 청산에 떨어지는 흰 눈의 촉각적 이미지와 그 ‘소리’인 청각은 공감각의 묘를 불러일으킨다. 미당의 시재(詩材)는 가히 천부적이다. 천재란 “예술에 규칙을 부여한다. 천재는 독창적이어서, 미리 존재하는 규칙에 따르지 않는다. 그는 예술에 자신의 규칙을 부여한다. 천재의 규칙은 후세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지만, 그걸 논리 법칙처럼 일반화, 개념화할 수 없다. 그건 일회적인 규칙이라서 배우거나 가르칠 수도 없다. 실제로 천재들 자신도 자신들이 어떻게 작품을 만드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예술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예외적인 재능(천재)의 산물” (진중권,『미학오디세이 1권) 이다. 미당은 “사회의식 · 역사의식 · 정치의식 면에서는 낙제생” (송하선) 이었지만, 천재를 넘어 시공을 초월한 국민 시인으로써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꽃밭은 그 향기만으로 볼진대 漢江水나 洛東江上流와도 같은 隆隆한 흐름이다. 그러나 그 낱낱의 얼골들로 볼진대 우리 조카딸년들이나 그 조카딸년들의 친구들의 웃음판과도 같은 굉장한 질거운 웃음판이다.
세상에 이렇게도 타고난 기쁨을 찬란히 터트리는 몸둥아리들이 또 어디 있는가. 더구나 서양에서 건네온 배나무의 어떤 것들은 머리나 가슴팩이뿐만이 아니라 배와 허리와 다리 발ㅅ굼치에까지도 이뿐 꽃숭어리들을 달었다. 맵새, 참새, 때까치, 꾀꼬리, 꾀꼬리새끼들이 朝夕으로 이 많은 기쁨을 대신 읊조리고, 數十萬 마리의 꿀벌들이 왼종일 북치고 소구치고 마짓굿 올리는 소리를 허고, 그래도 모자라는 놈은 더러 그 속에 묻혀 자기도 하는 것은 참으로 當然한 일이다.
우리가 이것들을 사랑할려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무쳐서 누어있는 못물과 같이 저 아래 저것들을 비치고 누어서, 때로 가냘푸게도 떨어져내리는 저 어린것들의 꽃닢사귀들을 우리 몸우에 받어라도 볼 것인가. 아니면 머언 山들과 나란히 마조 서서, 이것들의 아침의 油頭粉面과, 한낮의 춤과, 黃昏의 어둠속에 이것들이 자자들어 돌아오는 - 아스라한 沈潛이나 지킬 것인가.
하여간 이 한나도 서러울 것이 없는 것들 옆에서, 또 이것들을 서러워하는 微物 하나도 없는 곳에서, 우리는 서뿔리 우리 어린것들에게 서름같은 걸 가르치지 말 일이다. 저것들을 祝福하는 때까치의 어느것, 비비새의 어느것, 벌 나비의 어느것, 또는 저것들의 꽃봉오리와 꽃숭어리의 어느것에 대체 우리가 행용 나즉히 서로 주고받는 슬픔이란 것이 깃들이어 있단 말인가.
이것들의 초밤에의 完全歸巢가 끝난 뒤, 어둠이 우리와 우리 어린것들과 山과 냇물을 까마득히 덮을 때가 되거던, 우리는 차라리 우리 어린것들에게 제일 가까운 곳의 별을 가르쳐 뵈일 일이요, 제일 오래인 種소리를 들릴 일이다.
― 서정주,「上里果園」전문
1955년『서정주 시선』에 수록된 이 시는 빛과 어둠의 황홀 속에 태어난 오천 년 한국 시사의 최고 산문시로 칭송된다. 6·25 전쟁이라는 뼈저린 비극을 딛고 난 이 후에 쓰여 진 불혹의 초극의지가 담긴 작품이다. 한반도의 핏줄 한강과 낙동강을 중심으로 펼쳐진 온갖 군상들의 눈물과 외로움과 찬탄과 기쁨을 넘어 어린 것들에게 민족과 인간 중심의 원형이 무엇인지 따뜻한 체온으로 다가선다. 이 빼어난 시는 그 유장한 내재율의 흐름에도 경탄하거니와 시어 속 묻어놓은 지혜의 빛은 참으로 미당 시의 고봉이 아닐 수 없다.「상리과원(上里果園)」은 비감과 희망이 버무려져 시의 밑바닥에 깔렸다. 어둠이 산 자를 땅에 묻기 전 우리가 후손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지, 오늘날 혼동 속에 살아가는 한국인에게 뼈 깊이 새겨 성찰하도록 가르친다. 특히 자연물을 의인화한 온갖 시법이 다 무르녹은 시「上里果園」은 한국인이 생을 걸어가다 꼭 한번은 만나야할 이상적 이데아를 ‘공동체적 관점’에서 탁월하게 제시했다. 시 전편을 휘감고 돌아가는 한반도의 포근한 산천의 기운도 기운이거니와 모든 돌아가는 것에 대해 하늘에 겸허히 알리는, 저 마지막 행에서 보이는 “별”과 “종소리”에 뻗친 천지 윤회의 불교적 카타르시스는 언어의 주술사가 아니면 빚을 수 없는 솜씨다.
시집『질마재 신화』(1975년) 속의 주옥같은 시편에서도 유추되듯, 미당 시의 요체는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反)'에 집약된다.「상리과원」에서도 엿보이듯 미당은 불교의 윤회, 노자의 도교, 초기 기독의 죄악적 종교관과 사상을 뭉뚱그려 그만의 독자적 시풍을 창조했다. 완벽한 시작품의 원형을 이룬 이 아름다운 걸작은,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상처가 있는 독자가 읽으면 좋다. 곪아 어쩔 수 없이 다 놓아야만 사는 사람, 용서할 수 없는 비극적 삶의 주인공이나 용서할 수밖에 없는 이 땅 위의 모든 한(恨) 서린 사람들은 다 독자가 된다. 무엇보다 동인지『시인부락』을 통해 그자신의 시의 경향을 ‘人生派(生命派)’라고 규정했듯,「上里果園」은 ‘생명의 외경’에 대한 대가적 풍모를 획득한 작품이다. 송하선의 평처럼 “이 시의 광활하고 아름다운 묘사를 기점으로 하여 미당시는 이후 천상적이고 미래적인, 혹은 영원의 시간 속으로 상상의 공간을 확대시켜주는 시적 세계”를 펼친다.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은 눈섭을
즈문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옴기어 심어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 서정주,「冬天」전문
“우리 옛 그림에는 서양화에 없는 여백이란 것이 있다. 그것은 화가가 그림 바탕을 전혀 손대지 않고 그대로 남겨둔 것이다. 현상적으로 ‘나머지 흰 부분’, 화면의 ‘빈 부분’이다. 그러나 여백은 정말 ‘비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여백에는 그려진 형상보다 더 심오한 것이 더 많이 담겨 있다.” (오주석,『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1권) 여백은 궁극적으로 마음의 여백이다. 옛 사람은 우주의 큰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무음(無音)의 저 아름다운 소리 여백은 궁극에 눈으로 보는 소리 바다인 관음(觀音)의 세계를 낳았다. 천지간 생명 가진 형상은 잠시 머물다 끝내 허물리는 헛것이다. 채운다는 것은 무거운 것이요, 무거운 것은 가라앉는다는 것이요, 가라앉는다는 것은 죽음의 줄서기이다. 우주 본래심은 언제나 텅 빈 공(空)이 본체다. 허공은 비어 있어 대자유다.「동천」속에 나오는 그 외로운 새가 나르는 허공 역시 그대로가 화폭 속 한 여백이 된다.
무형이든 유형이든 상(像)이나 물(物)로 꽉 차면, 삶도 망상으로 가득 뒤덮인다. 현대시 백년 사상 한국적 운문 율조를 가장 탁월하게 그렸다는 미당 서정주의「동천」을 만나 보자. “이 시는 미당의 53세 때 제5시집『동천(冬天)』(1968년)의 표제시가 된 작품이다. 전연으로 된 5행 26어절의 단시(短詩)다. 이 시의 ‘눈썹’은 시인의 젊은 어느 날 만난 신비의 대상인 어떤 여성에 그 근원을 두고 있지만, 미당의 초기 시에서부터 후기 시까지 등장하는 이 눈썹은 영원히 다가서지 못하는 그리하여 동경의 대상으로만 있는 이상적인 어떤 대상을 상징 한다”고 송하선은 지적했다.
1968년「민중서관」에서 발행된 이 시집은 “미당시가 이룰 수 있는 완성된 형태의 최상의 언어미학을 창출해내고 있는 작품”으로 널리 애송되고 있다.「동천」은 총 62자(字)로 된 자유시지만 간결하고 고도로 축약된, 겨울 하늘에 펼쳐 논 놀라운 여백미가 압권이다. 한시 형태의 정제된 아름다움이 있는가 하면, 3장 4음보 45자로 구성된 우리 정형시조의 틀을 파격한 외적 율조와 7․5조 민요 가락을 현대시에 버무려 오롯이 살렸다. 항용 우리가「동천」에서 가장 놀라워하는 신비경은 이 시 속엔 분명 ‘달’은 없는데, 오랫동안 수십 번 곱씹어 읊조리면 묘하게도 ‘초승달’ 이미지가 흠뻑 되비친다는 점이다. 이런 시법이 바로 미당의 신묘한 재주다. 보는 형상을 움직여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마음대로 주물리는 신비로운 주술적 언어 감각은 가히 태생적이다. 시어 “고운 눈썹”이란 보조관념을 통해 원관념인 ‘초승달’을 겨울 하늘 화폭 속 한 마리 새와 함께 천년 꿈의 붓으로 멋들어지게 한 폭 한국화로 그려냈다. 미당은 자신의 시「부활」,「내리는 눈발 속에서는」,「인연설화조」속에서도 즐겨 쓴 ‘가시내’, ‘흰 눈’, ‘새와 모란꽃’ 등의 고도의 개인적 상징을 통해, 자신이 드러내고자 하는 어떤 사물의 속성과 특징을 밀접한 관계의 내밀성을 촉발시키는 환유라는 독특한 시적 비유로 대신한다. 이미 미당은, 시「동천」을 읽는 독자들의 머릿속 상상력에 ‘고운 눈썹’의 이미지가 ‘초승달’로 바뀌어 온전히 들어찰 것을 미리 예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국인의 원형미학 속 초승달의 달빛 배경은 얼마나 각별한가. 한겨울밤 동네 개울 위에 걸린 차고 시린 초사흘 달을 사랑하는 소녀의 손을 꼬옥 잡고 보았다면, 그건 아마 전 생애를 통해 기막힌 한 편의 명시이겠다. 초승달의 그 빼어난 허리 곡선을 보라. 누구도 범접하지 않은 처녀들의 희한한 고운 ‘눈썹’으로 상징된, 달빛이 뿌리는 산과 언덕을 따라 내려와 마을로 모아진 수 십 오리의 오솔길은 얼마나 다숩고 정다운가. 옛 사람들은 초승달을 아리따운 미인의 눈썹에 비겨 ‘아미월(蛾眉月)이라고 불렀다. 미당 역시 ’초승달’을 천 년(즈문) 밤 동안 사랑한 이를 위해 꿈속에서 가장 “맑게 씻어서” “하늘에 옮기어” 심었다고 했다.
우리는 ‘옮긴다’라는 시어를 통해 미당의 시인으로서의 진면목을 가늠한다. ‘눈썹’의 이미지를 ‘초승달’로 환유시키는 결정적인 시어가 바로 ‘옮긴다’이다. 이 시어를 통해 비로소 하늘이란 ‘공간’에서 ‘달’의 시간적 시각적 이동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달이 뭔가. 지구의 첫 여자가 아니가. 3만 8천 4백km 밖의 궤적을 따라 그 열렬한 눈빛의 추파를 지구에게 보낸다. 시적 화자의 가장 애틋한 심중은 5행에 박혀있다. 이 세상 가장 고귀한 사랑은 역시, 사랑하는 이를 제 품안에 몰래 감춰두고 아끼면서 비껴 사는 삶일 것이다. “비낀다”는 의태적 표현이야말로 미당 서정주의 삶의 여정과 겹쳐 새삼 뭉클하다. 1944년 12월 9일《매일신보》에 게재한 ‘마쓰이오장송가’ 등을 포함, 이른바 ‘친일시’ 계열의 글을 씀으로써, 그의 일생에 흠결을 남기는 실수”(송하선)를 저질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915년 5월 18일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578번지에서 출생하여, 2000년 12월 24일 향년 86세로 영면할 때 까지, 현대시의 최고봉이었음은 틀림없겠다.
新婦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新郞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新郞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新郞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新婦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다리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곤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四十年인가 五十年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新婦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新婦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新婦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스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 서정주「新婦」전문
미당은 1939년 겨울, 간도성 연길시에 소재한 양곡주식회사지점인 용정출장소 경리사원으로 입사했다가 이듬해 봄에 귀국한다. 그곳에서 친구 (당시 간도성 간부) 의 부친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훗날「新婦」라는 작품으로 오롯이 살려냈다. 1975년 60세 때 출간한 시집『질마재 神話』는, 한국인의 원형적 심상을 고향이야기와 버무려 엮은 미당 절정기의 주옥같은 시편들의 향연장이다.「그 애가 물동이의 물을 한 방울도 안 엎지르고 걸어왔을 때」,「신발」,「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박꽃 時間」,「알묏집 개피떡」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절창들이『질마재 神話』속에는 빼곡하다.
「新婦」는, 저 아득한 안개 속에 사라진 슬픈 형상들을 다 불러 모아 천년 애달픈 사랑의 곡조로 노래한 지훈의「석문(石門)」과 비견된다.「석문」이 천년 비바람 속에 묻힌 한 여인의 바람에 우는 곡(哭)이요, 월인천강 속의 애달픈 무(無)의 울음소리라면, 어리석은 한 남자의 오해로 빚어진 초야의 신혼 밤이 그대로 주검이 된 여자의 한(恨)을 읊은 시가「新婦」다.
간절히 한 생각을 모아 시를 부르면, 우주는 한 편의 명시로 화답하는 걸까. 미당은 매 시편마다 시의 제제를 온전히 장악했다. 시 행간 속에 늘 시적 감각과 사유가 유기체마냥 살아 꿈틀된다. 그의 시를 읽다 보면, 무엇을 쓰려고 집착하지 않는 반면,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하늘이 내린 천명의 소리가 들린다. 아름다움이 있는 가하면 삶의 굴곡이 있고, 시적 허구로 가득 차 있는 가하면 영원성에 닿아있는 그의 무한대의 시적 상상력은 무궁무진하다. 어떻게 한국어에 스며있는 사투리의 어조, 속도, 고저, 음색, 장단, 강약을 그렇게도 미당은 뛰어나게 시 속에 부려 썼을까. 마치 혼자 달 위에서 광활한 우주의 아름다운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듯하다. 한국현대서정시는 미당에 와서야 비로소 그 아름다운 시의 판도라 상자가 한꺼번에 열렸다.
「新婦」의 요체는 유교적 도덕관에 얽매인 조선의 여필종부의 희생과 굴종을 강요당한 한 여인의 한(恨)에서 출발한다. 시점이 3인칭인 것이 특이하다. 마치 이야기꾼이 옛 이야기를 곁에서 들려주는 것처럼 독자들의 귀청을 파고든다. 혼례복인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는 음양의 조화를 상징하지만,「新婦」속에는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한없이 외롭게 앉아 있어야만 하는, 이 땅의 고달픈 여인의 정서로 바뀐다. 왜 신부를 40∼50년 동안 첫날밤 모습 그대로 삭아가게 했을까. 신랑의 무지에 대한 야속함일까, 아님, 조선 양반 사대부의 일방적 허구에 일침을 놓은 것일까. 죽음으로써 정절을 지킨 첫날밤 신부를 통해 미당이 독자에게 일갈하고자 한 뜻은 “매운재” 에 이르러서야 “폭삭” 내려앉는다. 남성 중심 사회의 그 무심함에 희생양이 된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린 조선여인들이, 미당에겐 무척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살아생전 억울했던 원귀의 원(願)을 풀어서 죽은 후에는 원한(怨恨)없이 순수한 생의 근원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 시「新婦」를 통해 그려냈던 것이다.
* 미당은 모두 15권의 시집을 상재하였고, 위의 인용된 시가 수록된 1972년 판『서정주 문학전집』(전 5권), 1983년 판『미당 서정주 시선집』이 민음사에서 간행되었다. 송하선의『미당 평전』(2008년, 푸른 사상)의 일독을 꼭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