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 mind(vivaṭa citta) 걸림 없고, 덮이지 않고, 열려 있고, 드러내는 마음.
光明想을 作意하는 三昧수행.
idhāvuso, bhikkhu ālokasaññaṃ manasi karoti, divāsaññaṃ adhiṭṭhāti
yathā divā tathā rattiṃ, yathā rattiṃ tathā divā.
iti vivaṭena cetasā apariyonaddhena sappabhāsaṃ cittaṃ bhāveti.
ayaṃ, āvuso samādhibhāvanā bhāvitā bahulīkatā ñāṇadassanapaṭilābhāya saṃvattati.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는 광명상(光明想, āloka-saññā)을 마음에 잡도리합니다.
낮에 [광명을 보는 것]처럼 밤에도 [광명을 보고]
그런 밤처럼 낮에도 [광명을 보는] 낮의 인식을 확고하게 합니다.
이처럼 열리고 덮이지 않은 마음으로 빛을 가진 마음을 닦습니다.
도반들이여, 이런 삼매 수행을 닦고 많이 [공부]지으면 지와 견을 획득하게 됩니다.
‘‘Pabhassaramidaṃ, bhikkhave, cittaṃ. Tañca kho āgantukehi upakkilesehi upakkiliṭṭhaṃ.
Taṃ assutavā puthujjano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Tasmā ‘assutavato puthujjanassa cittabhāvanā natthī’ti vadāmī’’ti.
비구들이여, 이 마음은 빛난다. 그러나 그 마음은 외부로부터 온 번뇌들에 의해 오염되었다.
배우지 못한 범부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마음을 닦지 않는다고 나는 말한다.
vivaṭaṃ amatadvāraṃ 불사의 문을 열었노라.
iti bhagavā tasmiṃ parisati suvaṇṇavaṇṇaṃ kāyaṃ vivari.
이렇게 세존께서는 말씀하시고 그 대중에서 황금색 몸을 드러내셨다.
“iti kho, bhikkhave, vivaṭo mayā khemo maggo sovatthiko pītigamanīyo, pihito kummaggo,
ūhato okacaro, nāsitā okacārikā.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나는 평화롭고 안전하고 기쁨을 주는 길을 열었고 나쁜 길을 막아버렸고
미끼를 없앴고 꼭두각시를 제거했다.
cetovivaraṇasappāyā 마음을 여는데 도움이 되는
mukhaṃ vivaritvā 입을 벌려서
“channamativassati, vivaṭaṃ nātivassati.
tasmā channaṃ vivaretha, evaṃ taṃ nātivassatī”ti.
[오염원의 비는] 덮인 것은 흠뻑 적시지만
열린 것은 흠뻑 적시지 못한다.
그러므로 덮인 것을 드러내라.
그러면 그것을 흠뻑 적시지 못한다.
“satañca vivaṭaṃ hoti, āloko passatāmi.
santike na vijānanti, maggā dhammassa akovidā.
참된 자들에게는 열려 있고
보는 자들에게는 광명이지만
법에 능숙하지 못한 자들은
가까이 있어도 알지 못하도다.
“manañcāvuso, paṭicca dhamme ca uppajjati manoviññāṇan”ti? “evamāvuso”ti.
“yo cāvuso, hetu, yo ca paccayo manoviññāṇassa uppādāya,
so ca hetu, so ca paccayo sabbena sabbaṃ sabbathā sabbaṃ aparisesaṃ nirujjheyya,
api nu kho manoviññāṇaṃ paññāyethā”ti? “no hetaṃ, āvuso”.
…
마노와 법을 조건으로 마노의 알음알이가 일어납니까?” “그렇습니다, 도반이여.”
“마노의 알음알이가 일어나는 원인과 조건이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그 어떤 식으로도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남김없이 소멸해버린다면 그런데도 마노의 알음알이를 천명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도반이여.”
“imināpi kho etaṃ, āvuso, pariyāyena bhagavatā akkhātaṃ vivaṭaṃ pakāsitaṃ —
‘itipidaṃ viññāṇaṃ anattā’”ti.
“도반이여, 이러한 방법으로 세존께서는
'이런 이유로 이 알음알이는 무아다.'라고 말씀하시고 드러내시고 설명하셨습니다.
ācikkhati deseti paññapeti paṭṭhapeti vivarati vibhajati uttānīkaroti.
알게 하고 가르치고 천명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확하게 한다.
tasmiṃ kho pana senāsane therā bhikkhū viharanti
bahussutā āgatāgamā dhammadharā vinayadharā mātikādharā;
te kālena kālaṃ upasaṅkamitvā paripucchati paripañhati —
‘idaṃ, bhante, kathaṃ, imassa ko attho’ti;
tassa te āyasmanto avivaṭañceva vivaranti anuttānīkatañca uttāniṃ karonti
anekavihitesu ca kaṅkhāṭhāniyesu dhammesu kaṅkhaṃ paṭivinodenti.
그 거처에는 많이 배우고 전승된 가르침에 능통하고 법(경장)을 호지하고 [율]장을 호지하고
논모(論母, 마띠까)를 호지하는 장로 비구들이 머물고 있다.
그는 자주 그들에게 다가가서 묻고 질문한다.
'존자들이시여, 이것은 어떻게 되며 이 뜻은 무엇입니까?'라고,
그들은 그에게 드러나지 않은 것을 드러내고, 명확하지 않은 것을 명확하게 해주고,
여러 가지 의심나는 법에 대해 의심을 없애준다.
idha, bhikkhave, bhikkhuno ālokasaññā suggahitā hoti divāsaññā svādhiṭṭhitā.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vivaṭena cetasā apariyonaddhena sappabhāsaṃ cittaṃ bhāveti.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광명의 인식[光明想]을 잘 파악하고 대낮의 인식을 확고하게 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열려 있는 마음과 방해받지 않은 마음으로 마음을 밝게 만든다.
“no ce te evaṃ viharato taṃ middhaṃ pahīyetha,
tato tvaṃ, moggallāna, ālokasaññaṃ manasi kareyyāsi, divāsaññaṃ adhiṭṭhaheyyāsi —
yathā divā tathā rattiṃ yathā rattiṃ tathā divā.
iti vivaṭena cetasā apariyonaddhena sappabhāsaṃ cittaṃ bhāveyyāsi.
ṭhānaṃ kho panetaṃ vijjati yaṃ te evaṃ viharato taṃ middhaṃ pahīyetha.
목갈라나여, 만일 그대가 이와 같이 머물러도 혼침이 제거되지 않으면
그대는 광명상(光明想)을 마음에 잡도리하여 '낮이다'라는 인식에 집중하면 된다.
낮에 [광명을 본 것]처럼 밤에도 [광명을 보고], 밤에 [광명을 본 것]처럼 낮에도 [광명을 본다.]
이와 같이 열려있고 방해받지 않은 마음으로 그대는 마음을 밝게 만들어야 한다.
그대가 그렇게 머물 때 혼침이 제거될 수도 있다.
Yo, bhikkhave, chando thinamiddhasahagato thinamiddhasampayutto –
ayaṃ vuccati, bhikkhave, ajjhattaṃ saṃkhitto chando.
비구들이여, 해태와 혼침과 함께하고 해태와 혼침과 결합된 열의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안으로 수축된 열의라 한다.
thinamiddhaṃ pahāya vigatathinamiddho vihāsiṃ ālokasaññī sato sampajāno,
thinamiddhā cittaṃ parisodhesiṃ.
해태와 혼침을 제거하여 해태와 혼침 없이 머물고,
광명상(光明想)을 가져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正念·正知]
해태와 혼침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했습니다.
ahampi sudaṃ, anuruddhā, pubbeva sambodhā anabhisambuddho bodhisattova samāno
obhāsañceva sañjānāmi dassanañca rūpānaṃ.
so kho pana me obhāso nacirasseva antaradhāyati dassanañca rūpānaṃ.
아누룻다들이여, 나도 역시 전에 아직 깨달음을 이루기 전 보살이었을 때
광명을 인식하고 드러난 형색들을 인식했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그 광명은 사라지고 드러난 형색들도 사라져버렸다.
tassa mayhaṃ, anuruddhā, etadahosi —
‘yasmiñhi kho ahaṃ samaye rūpanimittaṃ amanasikaritvā obhāsanimittaṃ manasi karomi,
obhāsañhi kho tasmiṃ samaye sañjānāmi, na ca rūpāni passāmi.
아누룻다들이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온 밤을 혹은 온 낮을 혹은 온 밤낮을
형색의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고
광명의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했을 때에는
광명을 인식하였지만 형색의 표상은 인식하지 못했다.
yasmiṃ panāhaṃ samaye obhāsanimittaṃ amanasikaritvā rūpanimittaṃ manasi karomi,
rūpāni hi kho tasmiṃ samaye passāmi na ca obhāsaṃ sañjānāmi —
kevalampi rattiṃ, kevalampi divaṃ, kevalampi rattindivan’”ti.
내가 광명의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 하지 않고
형색의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했을 때에는
형색의 표상은 인식하였지만 광명을 인식하지 못했다.'”
“pubbāhaṃ, bhikkhave, sambodhā anabhisambuddho bodhisattova samāno
obhāsaññeva kho sañjānāmi, no ca rūpāni passāmi”.
“비구들이여, 내가 깨닫기 전, 아직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한 보살이었을 때
광명은 인식하였지만 형상은 보지 못하였다.
“tassa mayhaṃ, bhikkhave, etadahosi —
‘sace kho ahaṃ obhāsañceva sañjāneyyaṃ rūpāni ca passeyyaṃ;
evaṃ me idaṃ ñāṇadassanaṃ parisuddhataraṃ assā’”ti.
그런 내게 '만일 내가 광명도 인식하고, 형상도 보게 된다면
나의 지와 견은 더욱 청정해질 것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댓글
추석이 다가옵니다.
모든 도반님들이 한가위 달보다 더 밝고 더 맑아서
훤하게 드러내는 마음에서 앎과 봄이 생겨나시길 기원합니다.
이러한 <열린 삼매수행>은 지견이 생겨나게하는 수행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idhāvuso, bhikkhu ālokasaññaṃ manasi karoti,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는 광명상(光明想, āloka-saññā)을 마음에 잡도리합니다.//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는 빛의 인식(āloka-saññā)을 작의합니다. ...그래야 니밋따 빛에 대한 인식을 집법즉멸법(法)에 작의 (意, 일체)하는거랍니다.
근데도 웬... 잡도리가 ...?
ālokasaññaṃ manasi karoti
-> ālokasaññā suggahitā ho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