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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마22:1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비유로 하신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성경의 모든 말씀들이 다 비유는 아닙니다.
마22: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마22: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예수님)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사43:15 하나님)과 같으니,
‘그 종’(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을 보내어 ‘청한 사람들을’(신7:6-7 이스라엘 백성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등의 선지자들을 보내어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라고 하였지만, 도리어 핍박하고 미워하고 죽이기도 하며 돌아오기를 싫어하거늘).
마22: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마22:5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마22:6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능욕(凌辱) = 업신여겨 욕보임.
다시 ‘다른 종’(신약시대의 사도)들을 보내며 ‘청한 사람’(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의 소와 살찐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상업차로 가고’(‘세상 일하기 바쁘다’며 듣지 않고),
‘그 남은 자들’(유대교의 제사장, 장로, 서기관 등)은 ‘종’(사도)들을 능욕하고 죽였습니다.(행4:1-3.5:17-18,40-41.7:54-60.8:1-3,14:19)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들이 말세의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게 하여, 하나님께서 성경의 일점일획이라도 어김없이 반드시 이루시는 것입니다.
살전2:14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저희가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나라 사람들에게 동일한 것을 받았느니라.
“‘너희가’(우리나라에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이=교파에 속하지 않고 성경을 좇아 바르게 신앙하는 우리나라의 성도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이스라엘 나라의 남쪽)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예수님의 제자들의 교회)들을 본받는 자 되었으니,
‘저희가’(이스라엘의 예수님의 제자들이) 유대교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교파에 속하지 않고 성경을 좇아 신앙하는 우리나라의 성도들도) ‘너희 나라 사람들’(우리나라의 세상과 벗된 신앙을 하는 교파의 교인들=교파 사상에 물든 기독교인들)에게 동일한 핍박과 고난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마22: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임금’(하나님)이 노하여 ‘다른 나라’(앗수르, 바벨론, 로마 등)의 군대를 보내어 ‘하나님의 종들을’(구약시대의 선지자들과 신약시대의 사도들을)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살랐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을 핍박하고 죽인 이스라엘의 유대교인에게 하나님께서 보수하시고 보복하였습니다.
눅21:20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눅19:43 날이 이를찌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눅19: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종들’(선지자들과 사도들)을 능욕하고 죽인 ‘유대교인’(제사장, 장로, 서기관 등)들이 있는 예루살렘을, 주후 70년경 로마 군대가 에워싸고 공격하였습니다.
이때에 로마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 성과 예루살렘 성전은 불에 타버렸고 약 100만 명의 유대인이 희생되었습니다.
“말세에도 예루살렘이 러시아와 북방의 연합국의 군대들에게 에워싸일 때가 오는데,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의 멸망이 가까운 줄을 기독교인들은 깨달아 알라.”(눅21:20)고 하였습니다.
마22: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이스라엘 백성들은) 합당치 않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기독교인들이 혼인 잔치에 합당치 않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행13:45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하거늘
행13:46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비시디아 안디옥의 ‘온 성이’(성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사도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성경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성경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유대인들)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성경말씀)을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복음을 전하러 가노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성경말씀)을 ‘버리는’(듣지 않는) 기독교인들은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사람입니다.
성경말씀이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고, 자신의 육체의 소욕과 자신이 좋아하는 이 세상의 것들을 좇지 못하게 하며 버리라고 하니,
성경말씀을 듣지 않고 버리는 우리나라의 기독교인들은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는 자들입니다.
마10:37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마10: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육신의 아비나 어미를 ‘나’(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자와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예수님에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예수님=말씀)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않다.”고 하였습니다.
아비나 어미와 아들이나 딸을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혼인 잔치에 합당치 않은 사람들입니다.
아비나 어미와 아들이나 딸을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기독교인들은 예수님보다도 아비와 어미와 아들과 딸을 위하여 살게 될 것이고,
아비나 어미와 아들이나 딸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 기독교인들은 아비와 어미와 아들과 딸보다도 예수님을 위하여 살게 될 것이므로,
예수님께서 “아비나 어미와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하고 세 번 물어 보시면서,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들보다도 예수님을 더 사랑하여 혼인 잔치에 합당한 분들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눅9:61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 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눅9: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창19:26 롯의 처와 같이 세상과 세상의 것들을)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혼인 잔치)에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손에 ‘쟁기’(성경말씀)를 잡고 ‘뒤를’(세상과 세상의 것들을) 돌아보아, 하나님의 혼인 잔치에 합당치 않는 기독교인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잠17:7 분외의 말을 하는 것도 미련한 자에게 합당치 아니하거든, 하물며 거짓말을 하는 것이 존귀한 자에게 합당하겠느냐.
하나님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자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거짓말을 하는 자들은 혼인 잔치에 합당치 않는 자들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성경말씀)을 거짓되게 전하거나 가르쳐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모든 거짓말을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집어넣는다.”고 하였습니다.(계21:8,19:20)
마22:9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마22: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손 = 주인을 찾아온 사람.
이스라엘 백성이 합당치 아니하니 “‘사거리 길에’(마28:19-20 전 세계의 모든 족속에게) 가서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예수님을 믿게 하여 교회로 데리고 오너라).” 한 대,
‘종들이’(전도하는 자들이) ‘길에’(세상의 모든 나라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자리에’(전 세계의 교회들에) ‘손이’(기독교인들이) 가득한지라.
마22:11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쌔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마22:12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세마포 = 성도들의 옳은 행실(계19:8).
유구무언 = 변명이나 항변할 말이 없음.
‘임금’(하나님)이 ‘손’(기독교인들)을 보러 들어올쌔 거기서 ‘예복’(세마포=흰옷)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말씀하시기를,
“‘친구여’(믿는 자여), 어찌하여 ‘예복’(세마포)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이미 ’구원‘(영혼 구원)을 받았다.’고 하며, 성경말씀을 좇아 바르게 신앙을 하지도 아니하였으면서 어떻게 여기에 들어왔느냐.”라고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었습니다.
마22: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예복을 입지 않은 자의=성도들의 옳은 행실을 하지 않은 자의)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마13:49-50 풀무 불)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바깥 어두움’(풀무 불)에 들어가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마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7: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불법(不法) = ‘하나님의 법’(성경)대로 하지 아니함.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지자’(목사와 부흥강사) 노릇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였지만,
‘하나님의 법’(성경말씀)대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법이 아닌 ‘불법’(사람의 계명=교파의 교리와 세상 철학과, 세상의 정치와 경제에 대한 이야기와, 예화집에서 뽑은 예화 설교 등)을 교파의 교인들에게 가르쳐서 올바르게 신앙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교파의 목사들과 교인들이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목사와 부흥강사) 노릇하며, 귀신을 쫓아내며, 권능을 행하였지만,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목매어 죽인 것’(개고기), ‘피’(선짓국, 돼지 피가 들어간 순대 등), ‘우상의 제물’(제사나 고사 지낸 음식)을 먹고, ‘음행을 하고’(행15:20,29), ‘성경’(하나님의 법)을 좇아 신앙하려고 애쓰는 성도들을 함부로 『이단』이라고 비방하고 판단하였으니,
하나님 앞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이 외에도 우리나라의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법’(성경)대로 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계명’(교파의 교리와 교파 목사들의 거짓된 설교 등)과 자신의 생각과 육체의 소욕을 좇아 많은 불법들을 행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목사와 교인인 자신들이 불법을 행한 것은 생각하지 않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지자’(목사와 부흥강사) 노릇도 했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내어 병도 고쳤고,
또 예수님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였는데도, 이런 ‘지옥’(불못)에 나를 보내다니 너무나 억울하고 분하다.”고 하며,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은 ‘불신자’(세상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고 뭐고 아무 것도 없고 끝이다.”, “하나님은 없다.” “천국이 있기는 어디 있느냐.” “하나님을 믿느니 내 주먹을 믿으라.” 등의 이런 말을 하다가 죽었으니,
슬피 울며 이를 갈 이유가 없습니다.
이를 가는 사람은,
그래도 자신의 생각으로는 “하나님께 열심히 충성하고 봉사하였는데 나를 이런 ‘지옥’(불못)에 집어넣다니,
너무나 억울하고 분하다.”는 기독교인들인 것입니다.
마22: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예수 믿고 교회는 다녀도 ‘하나님의 말씀’(성경말씀)을 듣지 않고 버린 ‘기독교인들은’(청함을 받은 자들은) 많되,
‘하나님의 말씀’(성경말씀)을 좇아 성도들의 옳은 행실을 하여 ‘예복’(계19:8 세마포)을 입고 천국에 들어가는 ‘기독교인들’(택함을 입은 자들)은 적습니다.
소탐대실(小貪大失) =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것을 잃음.
기독교인들은 ‘작은 것’(이 세상의 것)을 탐하다가 ‘큰 것’(천국=하나님의 나라)을 잃는 미련한 자들이 되지 아니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할렐루야!
전 화: 010 – 2821 - 5588
부족한 종 전대복 올림
첫댓글 눈이오네 첫댓글 18:06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는 의를 말합니다.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것을 말함이지 행위를 말함이 아닙니다.
행위로는 의롭게 될 수없기에 행위로 깨끗한 세마포를 만들어 입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옳은 행실인 깨끗한 세마포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님의 대속을 믿는자의 의로움이 되어주십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죄뿐인 죄인이어도 믿음으로 얻은 의, 즉 하나님의 의때문에 성도들을 의롭다 여겨주시고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한 것이지 성도들이 죄안짓고 착하게 살아서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어도 행위로 의롭게 되지 않습니다.
죄인인데 믿는 자는 의롭다 여겨주심, 옳은 행실이 없는데 믿는 자는 옳은 행실이 있다고 여겨주심인 것입니다.
그것은 믿는 자는 하나님께 죄사함과 의롭다함과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믿는 자가 죄를 짓고 사는 죄인이어도 하나님께 죄사함과 의롭다함과 구원을 얻었기에 의롭다 여겨주시고 옳은 행실만 있는 의인으로 여겨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과 행위를 살펴보세요, 그것이 빛나고 깨끗한 성도들의 옳은 행실인 의의 세마포란 말입니까?
성도들의 옳은 행실인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것을 말하는 것이지 행위를 말함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어도 죄를 짓고 사는 죄뿐인 죄인된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