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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고 했던가. 그것에 대해서는 몇 가지 과학적 설이 있다.
상대방에게서 호감을 가지게 하기 위한 방향제, 페로몬. 사람의 피부나 생식기에 주로 분포되어 있는 이 휘발성 물질이 공기를 타고 다른 이성을 자극하면서, 타인으로 하여금 상대에게 자신에게 흥미를 가지게 한다.
사랑은 대뇌의 변연계에서 도파민이라는 물질을 분비하면서 시작한다. 이 단계는 호감의 단계. 상대방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끼는 시기.
그리고 이후에 사랑의 감정이 깊어지면 뇌는 같은 신경전달물질인 페닐에틸아민을 생성해낸다. 연애 초기의 엄청난 열정, 행복감이 자신으로 하여금 ‘사랑만 있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그리고 이 사랑이 절정에 이르면 뇌하수체에서는 옥시토신이 분비된다. 짝짓기, 흥분, 오르가슴, 임신과 출산에 대한 열망, 모성본능과 부성애….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을 관장하는 호르몬.
그리고 최후의 시기에는 엔드로핀이 분출된다. 뇌에서 직접 마약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 합법적 마약을 통해 인간은 사랑을 고통이 아닌 행복이라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래, 사랑이라는 것은 덧없는 것이라고. 단순한 눈속임이라고 여기던 시절이 분명 나에겐 있었다.
“저기, 미안….”
밤 9시. 한 낡은 상가의 2층, 해결사 사무소의 불 만 환하게 켜져 있었다. 번화가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주변은 한적하다. 그래도 낮에는 꽤 모이기 때문인지 가로수에 전등만큼은 반짝이며 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어쨌든 상가 입구. 한 남녀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남성의 얼굴은 꽤 심각해 보였지만, 여성의 얼굴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바로 재건과 리아였다.
재건은 낮에 있었던 일들을 리아에게 설명했다. 그 말들을 리아는 덤덤하게, 아니 오히려 여유로운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어쨌든 재건은 리아에게 사과했다. 고개를 숙이지는 않았지만 미안한 감정은 표정에 들어나 있었다. 그 정도는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자신은 그런 재건과 연비의 연기에 모두 ‘맞춰’준 것 뿐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자신은 훨씬 영악한 여자였다. 리아는 쿡쿡 웃으면서 말했다.
“바보네, 당신. 아직도 나를 그렇게 몰라?”
예상 외의 반응이었을까, 재건은 어안이 벙벙해져선 멀뚱멀뚱 리아를 쳐다보았다. 리아는 그런 재건이 귀엽다는 듯이 볼을 쿡 찔렀다.
“아, 정말 연비한테는 아까운 남자라니까. 역시 내가 반한 남자네. 역시 지금 당장 뺏어버릴까?”
“저기, 리아?”
그녀는 그대로 재건에게 입술을 포겠다. 정말 즉흥적인 행동이었다. 재건은 기분이 좋다기 보다는 약간 불쾌하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재건의 반응이 여전히 재미있는 리아였다. 그녀는 포개던 입술을 때곤 웃으며 혀를 내밀었다.
“이번에 나를 속인 벌이야. 당신이 나에게 거짓말을 했으니, 나는 당신한테 벌을 내리는게 당연하지 않나?”
“이러지마, ‘그날’까지 너와 나는 친한 동료일 뿐이야.”
리아는 웃으면서 말했다.
알고 있다, 라고.
“계약을 위반 할 생각도, 파기 할 생각도 없어. 난 반드시 ‘너의 남자’가 된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잖아?”
리아는 그런 재건의 말에 조금은 슬픈 얼굴을 지었다. 말에 사랑이 담겨있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그가 나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자신과의 계약이 실현 될 때라도 늦지 않다. 그때의 재건은 반드시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 할 것이다. 아니, 지금도 그는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래, 그것이 아니라….
“그렇네…. 아직은 때가 아니네.”
리아는 재건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과거의 자신이 싫어진다. 모든 것을 이용하려 들던 자신이 싫어진다. 어째서 이런 전개가 되어버린 것일까? 리아는 죄책감이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런 거, 치사하다고 하나?”
재건이 리아의 키스에 냉정을 되찾았다. 리아가 하고 싶어 하는 말은 잘 알고 있었다.
재건이 숙이고 있던 리아의 턱을 살며시 들어올렸다. 그러고는 다시 리아에게 키스를 했다. 어젯밤, 연비와 했던 장난스러운 키스와는 다르다. 짙고, 훨씬 달콤한 키스. 서로를 탐하는 짐승처럼, 재건은 리아에 대한, 리아는 재건에 대한 열망을 입술에서 입술로, 혀에서 혀로 주고받는다. 흥분, 서로가 서로를 휘감을수록 알 수 없는 분위기가 더욱 고조된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한다고 느낀다. 그러기를 수 분, 둘은 입을 땠다. 서로의 입술에서 서로의 타액이 가는 실처럼 늘어져, 끊어진다. 서로는 상기 된 얼굴로, 사랑의 흥분에 반쯤은 감긴 눈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 모습은 영락없는 연인의 모습이었다. 거친 입김이 서로의 눈 앞을 뿌옇게 만든다.
“난 당신 혼자 치사하게 두진 않아. 우린 공범이니까. 거기에 대한 죄악감은 가지고 있지 않아.”
리아는 그런 재건을 안았다. 품에 안긴 것이 아니다. 재건보다 키가 작아서 그렇게 보일 뿐, 실제로는 그녀가 안은 것이다. 그녀는 한 손을 재건의 머리 위로 올려 작게 쓰다듬는다. 그런 리아를 재건 역시 끌어안는다. 마치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는 것처럼. 그렇게, 쓰다듬는다.
“상대가 연비라도?”
재건도 리아와 같은 슬픈 표정을 지었다. 마치, 세상의 절망을 눈에 담은 것 같이…. 그의 표정은 복잡했다. 어깨 너머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재건은 답했다.
“네가 함께라면.”
유라는 재건이 먼저 집에 보내고 없었다. 지금 해결사 사무소에 있는 사람들은 식구들 외에 한태형 뿐이었다. 물론, 태형은 유라가 해결사에게 스토커 퇴치의 일을 의뢰한 장본인이라는 사실까지는 눈치체지 못한 듯 하다.
태형은 해결사 맴버들의 예상외의 대접에 놀란 모습이었다. 석천시의 괴짜. 그 정점에 선 해결사 사무소 패거리. 소문은 들어보았지만, 실제로 이런 비상식적인 행위를 당해보니 그 충격은 이루어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당신들, 참 느긋하네. 스토킹범인 나한테 차까지 대접하는 거 보니.”
연비가 그런 태형의 앞에 과자가 담긴 작은 접시를 놓았다. 스토킹 당한 피해자들과는 다르게, 그녀는 스토킹범인 태형을 확실히 사무실의 손님처럼 대하고 있었다. 그런 사실에 조금은 불편했는지, 태형은 괜한 찻잔만 노려보고 있었다.
“드시죠.”
그녀 특유의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태형의 귓불을 때린다. 아무리 화가 났더라도 연비의 앞에서 까지 그런 표정을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동경이자, 평생의 연인이니까. 그는 금방 얼굴을 풀고 웃는 얼굴로 연비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그런 모습에 케이나 소희는 실제 상상 했던 것 보다 더 무서운 녀석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10분 정도 지났을까, 연비가 슬슬 바깥의 재건과 리아를 불러 올까 하는 생각에 들고 있던 쟁반을 정수기 옆 싱크대에 아무렇게나 올려두고 문을 나서려는 순간이었다. 재건과 리아가 문을 열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것을 눈치 체곤 태형이 재건을 있는 힘껏 노려 보았다.
“꽤 오랫동안 기다리게 하잖아? 야한 짓이라도 하고 왔나보지?”
재건이 평소의 짜증난다는 얼굴로 태형에게 말했다.
“내가 너냐?”
그는 태형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러자 연비가 재건의 몫의 녹차를 타서 그에게 건내주었다. 그것을 받아 마시면서, 재건이 입을 열었다.
“너, 연비를 스토킹하는 이유가 뭐야?”
“너 같은 악인에게서 연비씨를 지키기 위해서지.”
“그럼 나를 먼저 찌르지 그러냐?”
태형이 한심하다는 듯이 재건을 쳐다보았다. 말이 거칠다. 역시 이런 남자는 연비씨와 전혀 어울리질 않는다.
“그러고 싶지만, 그러면 연비씨가 슬퍼하잖아. 누구보다도 여린 분이시니까.”
재건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연비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천장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연비였다. 재건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태형을 노려보았다.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을까?
“그래, 네가 스토킹을 하는 이유가 연비를 보호하겠다는 네 나름 숭고한 사명이 있다고 치자. 그럼 연비가 스토킹을 그만두라고 하면 그만 둘꺼냐?”
“아니.”
“즉답이냐….”
재건은 한숨을 쉬었다. 역시 단순히 말로는 교섭이 힘들다. 힘으로 해결 할 수 있다면 진작 그렇게 했겠지.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는 힘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럼, 적당히 당근을 던져줘야겠지. 재건이 연비를 바깥으로 잠시 불렀다.
“아, 그러니까…. 소중한 크리스마스 이브를 저 사람이랑 둘이서 보내라구요?”
연비는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 않는 듯 했다. 세상에 자기 애인을 다른 남자랑 데이트 시키려는 남자친구는 몇 없을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자신의 눈 앞에 있다. 재건도 자신이 입에 내뱉고도 황당했는지 덩달아 말이 없다. 그 둘은 그렇게 10분동안 서로를 쳐다만 보고 있었다.
“그…. 뭐냐, 저기….”
“말씀하시죠.”
연비가 도끼눈으로 재건을 쏘아붙인다. 말에는 확실히 가시가 박혀 있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거대한 가시가.
“뭐냐, 저기….”
“말씀 하시죠.”
“아, 정말! 내 말 좀 들어봐, 끊지 말고 좀!”
재건은 말을 꺼내기가 힘들어 지자 되려 역정을 냈다. 재건의 언성이 갑자기 높아지자 연비도 조금은 놀란 표정이었다. 재건은 마음에도 없는 화를 내면서 말했다.
“미안하지만 이번만큼은 내 말을 들어줘.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러니까.”
그 말을 한 재건도 들은 연비도, 몇 초간의 침묵 이후에는 조금은 침착 해 진 것 같았다. 재건은 자신의 계획을 연비에게 전달했다.
크리스마스 이브. 나는 지금 한 공원에 있다. 분수대 주변, 벤치, 나무 위에서부터 길바닥에 까지 커플이 천지이다. 커플의 종류도 천차만별이다. 인간커플부터 시작해서 지저귀는 종달새 커플, 꼬리 흔들면서 암컷 꽁무니 졸졸 따라다니는 개까지 다양했다. 그 속에 내가 있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나는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성스러운 크리스마스 이브가 아니던가. 이 날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축복받은 밤을 보내야 하는 날 아니던가.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돌아갔는지 모르겠다. 일이 끝나고 나서 재건씨에게 원금, 이자, 이자의 이자, 이자의 이자의 이자, 이자의 이자의 이자의 이자…. 무한대로 그 값을 받아내지 않으면 나의 속이 풀리지 않을 것 같다.
어젯범 전달받은 재건씨의 계획은 간단명료했다. 내가 하루 동안 태형과 데이트를 하면서 그를 ‘갱생’ 시키는 것이었다. 데이트 일정은 간략하게 말하자면 사진부의 주요 활동 장소를 거쳐 학교에 도착 한 다음 그 곳을 안내 받는 것이었다. 내가 맨 처음 재건씨에게서 데이트 일정에 대해 설명을 들을 때는 이 사람도 정말 순진하고 멍청하다는 생각을 했지만(하지만 그런 점이 그의 매력이다.), 이유를 들어보니 꽤 그럴싸했다.
“너, 다른 이성과 3년 동안 같이 지내면서 대화 하나 하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맨 처음, 나는 재건씨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실제로 그 일이 가능했기 때문에 이 사단이 벌어진 것이 아닌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그 말에 대해 보충설명을 요구했다. 그러자 재건씨는 재미있는 말을 했다.
“부자연스럽지 않아? 만약 정말 태형이 유라의 존재가 껄끄럽고 싫었다면 그냥 사진부를 퇴부 하면 돼. 아니면 일부러 유라를 골탕 먹이면 돼. 왜 3년 동안 싫은 얼굴 마주하면서 살아야 하지? 마지막 1년은 부를 유지 시킬 필요도 전혀 없었잖아? 그런데 단 둘이서 부실에서 공부를 했다고? 싫어하는 사람이랑 마주보면서? 거기에 그녀가 무엇을 이룰 때 마다 저 녀석은 유라에게 ‘대단하다’라는 말을 남겼어. 과연 3년 동안 무시 할 정도로 싫어했던 사람에게 빈말로라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이 말이야.”
나는 이 때 까지도 재건씨의 말을 완벽히 이해 할 수 없었다. 그래, 그러니까 재건씨는 유라씨의 기억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걸까? 나는 여전히 의문사를 내 눈에 담고 재건씨를 바라보았다. 나는 재건씨에게 내가 내린 결론에 대해 말하였다.
“그럼 유라씨의 기억이 잘못된겁니까?”
재건씨는 한숨을 쉬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곤 반문했다.
“아니, 유라의 기억은 틀리지 않아. 물론 100% 맞는 이야기라고 장담하기는 힘들지만, 거의 90%는 사실이라 보면 되.”
“그럼 도대체….”
재건씨가 계속해서 말을 했다.
“분명 한태형은 유라를 싫어하진 않았어. 그럼 유라를 정말 ‘없는 존재’로 여겼느냐? 그건 아니야. 한태형에게 있어서 유라는 분명 ‘있는 존재’야. 실존한다고. 그의 시아에는 분명 유라라는 존재가 있어. 만약 한태형에게 유라가 정말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남이라면, 유라가 전교에서 1등을 했을 때, 100M 경주에서 1등을 했을 때, 전교 부회장이 되었을 때 각각 ‘굉장하다’는 말을 해 주었을까? 그녀가 무엇을 하든 그건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지 않나?”
“그건 논리적으로 비약이 지나치네요. 일주일에 몇 시간 정도 이라고는 해도 한 부실에서 같이 지내는 사이입니다. 재건씨의 말대로 한태형이 유라씨를 싫어하지 않았다면, 그 정도 잡담은 충분히 할 수 있지 않나요?”
재건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이 그 말이야. 한태형은 유라에 대해 관심이 ‘전혀’ 없는 것 같이 보여. 그녀를 싫어하든, 좋아하든지 상대와 자신이 같은 공간에 계속 지낸다는 것으로도 인간은 타인에게 아주 약간의 흥미라도 가지게 돼. 특히 한태형은 사교성이 뛰어나고 매사에 적극적이야. 그건 유라의 말이나 케이의 말에서 확인 할 수 있지. 그런데 같은 부원과 3년 동안 단지 ‘굉장하다’는 세 마디만 나눌 수 있을까?”
나는 짜증이 났었다. 재건씨가 했던 말은 모두 ‘일부러 유라씨를 무시했다.’는 말 뿐이다. 그러니까, 한태형이 일부러 유라씨를 무시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 진 것 아닌가. 나는 재건씨에게 말장난 하지 말라고 화를 내려다가, 문득 이야기를 처음으로 다시 되돌려보기로 했다.
재건씨는 맨 처음에 뭐라고 말했지?
3년 동안 같은 공간 안에서 한 마디도 대화를 나누지 않고 살 수 있냐고 물었었다.
그러면서 다음에는?
한태형은 유라씨를 싫어하지 않았다고 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한태형은 일부러 유라씨를 무시했다고 했다.
여기에, 부족한 것. 부족한 것이 있다.
왜? 왜? 왜?
왜? 한태형은 유라씨를 무시했는가. 싫어하지도 않으면서 무시 할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그 결과, 재건씨는 한 가지를 확인하기 위해 나에게 태형과 데이트를 해보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재건씨는 이 것 만큼은 확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단서가 너무 적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일부러 나의 시선을 피하는 것이 정말 자신은 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한 번 해 볼 만 한 가치는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는 재건씨의 부탁을 받아들인 것이다. 물론 초코 파르페 10컵은 그에 대한 보상으로 받기로 하고.
그러니까, 이 데이트의 진짜 목적은 바로 ‘한태형이 유라를 좋아했다는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 이었다.
정확히 손목 시계의 시침이 10을 향했다. 광장에는 청량감을 느끼게 하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데에엥~ 데에엥~
그 종소리가 나의 머리를 강하게 강타하는 것 같다. 뇌수가 진동하는 것 같다. 미칠 것 같다. 아니, 벌써 미친건가….
하아, 나는 다시 한숨을 쉰다. 재건씨 이외의 사람과 데이트라니, 생각 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자신의 스토커와 데이트라니….
집에서 나오기 전, 리아 언니는 여자아이의 데이트는 중요하다며 나를 2시간동안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재건씨랑 데이트 간다고 했을 때는 반쯤 누워서 손만 흔들었던 주제에…. 덕분에 나는 지금 내 생애 유례 없는 꽃단장을 하고 있었다.
언니는 헤어스타일의 경우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고 하면서 따로 손을 대지 않았다. 다만, 조금 더 윤기나게 만든다며 머리를 감을 때 평소에는 신경도 쓰지 않던 트리트먼트까지 해가면서 오랫동안 욕실에서 죽치고 앉아 있어야 했다. 이후에는 빗질, 드라이, 빗질, 드라이, 고데기 조금 ,빗질 빗질 빗질 빗질 빗질….
얼굴도 마찬가지. 어린아이가 화장을 많이 하면 오히려 매력이 반감된다며 가벼운 파운데이션과 립스틱 약간 바르고, 마스카라로 속눈썹을 조금 짙게 했을 뿐이다.
문제는 옷이었다. 언니는 검은색 셔츠와 붉은 색 가죽 미니스커트로 조금은 캐주얼한 코디를 하고 싶었나 본데, 그렇게 하면 내가 추워서 견딜 수가 없다. 결국 한참을 싸우다가 타협을 본 것이 하얀색 니트옷에 귀여워 보이는 베이지색 미니 플리츠 스커트, 그리고 붉은 색 가죽 핸드백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전형적인 베이지색 더플코트를 입었다.
하아…. 귀여운 걸까? 재건씨와의 데이트 때와는 다르게 긴장이 된다. 이대로 실망하고 돌아가 줬으면 할 정도였다.
그렇게 자괴감에 빠져 있을 때였다. 멀리서 누군가 손을 흔들면서 뛰어오고 있었다. 바로 태형씨였다.
“연비씨~, 기다리셨죠!”
아니요. 전혀 안 기다렸습니다. 소개팅에서 폭탄을 만났다는 상황이 바로 이런 상황이 아닐까? 물론 이 생각이 내 입 밖으로 나오면 주변의 부러운 시선을 보내는 여자들에게 몰매를 맞아도 할 말은 없겠지. 그러니까 지금은 입을 꾹 닫고 억지로 웃고 있는 것이다.
두고 보자 노재건….
아마, 지금 쯤 연비는 열심히 한태형과 데이트 중이겠지. 별 수 없다. 힘내라, 화연비.
그렇게 생각하는 나는 지금 택시의 안이었다. 바로 옆에는 리아가 피곤한 듯이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로 곤히 자고 있다. 아련히 풍기는 샴푸 향기. 왠지 포근한 이 상황에서 나는 조금씩 상황을 정리해갔다. 확신은 없지만 한태형은 유라를 좋아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지난 3년 동안 그녀를 무시했는가. 그리고 어째서 유라의 발언과는 달리 스토킹 노트는 11월 27일이 그 시작인가.
그리고….
아니,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된다. 키워드는 의외의 장소에 있을 확률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다시 한태형의 집을 들리는 것이다. 그곳에는 분명, 케이와 소희가 놓친 힌트가 숨어 있음에 틀림없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창가 너머를 바라보았다. 이제 슬슬 다 온 듯 했다. 나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다 왔습니다. 5천 2백원 입니다.”
그 말과 동시에, 나는 옆의 리아를 깨웠다. 그리고 반쯤 눈을 감고 있는 리아에게 이렇게 말했다.
“택시비는 네가 내라.”
하아, 나는 한숨을 쉬었다. 오늘 한숨 쉰 횟수는 벌써 358번. 숨이 차서가 아니라, 그냥 혼이 빠져나가는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쉰 것이다.
공원 기념비 앞.
“연비씨. 여기가 저희 사진부가 처음으로 단체사진 찍은 곳입니다. 사진부 전통이라고 하더라구요.”
페밀리 레스토랑 ‘비너스’.
“연비씨, 여긴 사진부 1학기 토론회 개최 장소입니다.”
석천강 부두.
“여기서 여름방학 특집을 위해서 사진부 배 석촌 수영대회를 열었었죠.
석천 대교.
“정말, 그때 형이 여기에 고무줄을 묶고는 번지점프를 하자고 해서 모두들 얼마나 긴장했는지….”
나는 어째서 이 귀중한 크리스마스에 자신의 팬을 자칭하는 스토커의 추억이야기를 들어야 하는가를 고고이 흐르는 석천강의 흐름에 의식을 집중하며 그 이유를 다시 한 번 더 떠올려 보았다. 제기랄, 역시 재건씨 때문이 아닌가. 그래도 일단은 의뢰다. 프로는 프로답게 행동해야지. 나는 흥미 없다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다시 태형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이 때 까지 들은 이야기들. 단체사진을 찍을 때의 에피소드, 토론회, 수영대회, 번지점프를 가장한 투신자살미수 사건…. 특이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들. 소소하지만 풍성한 이야기들. 단 한순간, 단 한명의 행동도 빠뜨리지 않고 그는 추억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 속에는 유라라는 존재도 당연하다면 당연히 그 내용 안에는 ‘들어 있지 않았다.’
즐겁게 추억을 이야기하는 태형을 보며 조금은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나에 대한 것을 제외하고는 지극히 정상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그는 나를 좋아하는 것일까. 나는 그것을 우선 태형에게 물어보았다.
“뜬금없습니다만, 왜 저를 좋아하시게 된 겁니까?”
태형이 조금은 놀란 것 처럼 나를 쳐다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질문이 오늘 처음으로 내가 태형에게 먼저 건 낸 말이었던 것이다. 그는 조금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조금은 기쁜 얼굴로 말했다.
“당신은 날개를 달고 있으니까요.”
무슨 문학적인 표현이냐…. 잘난 것을 자랑하는 것인지, 아니면 80년대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것인지 어쨌든 닭살 돋는 멘트를 그는 서슴없이 던졌다. 나는 순간 태형을 그 멘트 던지듯이 이 강 아래로 강제투신시키는 시나리오를 떠올렸다.
“날개?”
나는 그 문제의 함축적 표현에 보충설명을 요구했다.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자유요. 뭐든 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잖아요?”
“딱히 그렇지는….”
태형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연비씨는 대단해요. 자유…. 저희가 가지고 있지 않은 그것. 적어도 저희들 학생의 눈에 당신은 그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살죠. 그것에 매료된 거에요.”
나는 조금 당황했다. 남들 시선에 자신은 자유로워 보였던 것 일까. 그런가…. 확실히 남들의 눈에는 그것이 자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자신이 누군가에게서 대단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자신은 이 사회에서 소위 말하는 ‘불량 청소년’이다. 자유롭게 사는 것이 아니라, 멋대로 사는것이다. 세상의 입장에서는 학교도 다니지 않고, 왠 남자랑 동거나 하며 빈둥빈둥 사는 그런 불결하고 나쁜 아이이다. 이 사회에서 당연시 여겨지는 대학 진학에는 전혀 관심 없다. 부모가 없으니 저렇다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결국엔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남자 하나 낚아서 돈이나 뜯어먹으며 살겠지. 이곳에서 6개월간 나는 언제나 그런 말을 들으며 살아 왔던 것이다. 그런 내가 타인의 동경이라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태형이 조금은 겸연쩍은 듯 볼을 긁었다. 나는 그런 태형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아, 이제 슬슬 학교로 향할까요?”
겨울치곤 꽤 기분 좋은 바람이 대교를 향해 불어왔다. 나는 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조심스레 유라에 대해 물어보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 때였을까, 내가 입을 열기 전에 태형이 먼저 입을 열었다.
“즐겁지 않으신가요?”
언제부터 들켰던 걸까. 태형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난관에 기대어 서 있던 태형의 얼굴은 조금은 슬픈 빛을 띄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또 다시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어째서 내가 죄책감에 빠지지 않으면 안 되지? 그는 나의 스토커고, 내가 그와 같이 있는 것을 기분 나쁘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가 나에게 전혀 상대가 안 된다고 할 지 라도, 이것은 엄연한 기분상의 문제이다. 그런데도 나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 소년에게 상처를 주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일단은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당신이 저에게 품는 마음은….”
“동경이라고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내 말을 끊고 그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사랑입니다. 지금 저는 슬프지만, 당신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 만으로도 기쁘니까요.”
나는 태형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분명히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과 다르다. 그래, 뭐랄까…. 사랑스러워하면서도, 안절부절 못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엇인가를 아쉬워한다. 흠이 있는 컬랙션을 바라보는 수집가처럼 조금은 못마땅하다. 그래,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있는 힘껏, 그리고 단호히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알 수 있다. 사랑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눈이 말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그는 나를 사랑하고 있지 않다.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 것이다.
어색한 공기가 나와 태형의 사이에 맴돌았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거리를 걷고 있었다. 높은 담에 담쟁이 여럿이 얽여서 벽을 타고 있었다. 겨울이지만, 담쟁이는 여전히 벽에 매달려 있었다. 그도 그럴 테지, 그들은 벽이 없으면 살아 갈 수 없는 존재이니까.
나는 묘하게 감성적으로 변해 있었다. 흔히 말하는 문학소녀라고나 할까, 어쨌든 나에게도 그런 부분이 있었던가 보다. 나는 필사적으로 벽에 매달려 있는 담쟁이를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저기, 지금 어디로 가시는 건가요?”
태형은 당황한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그도 그럴 테지. 나는 태형에게 학교로 향하기 전에 단 한곳,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오늘 같은 날, 반드시 재건과 다시 한 번 들리자고 생각했던 곳이었다.
내가 천천히 걸어갔다. 나는 태형의 앞에서 그를 이끌었다. 그는 영문을 모른 체 나의 뒤에서 따라오는 것이 전부였다.
나는 여기에서 확실히 말할 것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
당신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
그것이 멋대로 나에게 반했다고 주장하는 남자에 대한 나의 의무인 것이다.
그런 상념에 빠져 있을 때였다. 나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 보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았다.
한적한 거리. 왠지 팔이 길어 보이는 벛꽃 나무 가로수. 붉은 벽 전체를 덮은 싱싱한 담쟁이. 옆에는 관리가 잘 되어있지 않은 가드레일. 그 앞에는 육교가 떠오른다. 육교 아래로 붉은차 한 대가 달려온다. 위에는 나를 죄인처럼 질책하는 것 같은 태양이 있고, 그 주변에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분명 건너편의 한 여성과 그녀가 몰고 있는 유모차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무런 감흥 없는 목소리로.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은 부러운 것 같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태평한 사람들.’
그 때 였을까. 봄바람이, 나의 챙이 달린 모자를 가져간 것이다. 새하얀 아가씨 모자는 흩날리는 벛꽃잎처럼 펄럭이면서 바람을 타고 날아간 것이다. 아, 나라는 사람이 이런 불찰을. 나는 끌고 있던 캐리어를 놓고 분명 그 모자를 쫓았다. 마치 날아가는 풍선을 잡으려는 어린아이처럼 나는 달렸던 것이다.
그리고….
“어이, 이거 네꺼냐?”
그렇게, 그와 나는 다시 한 번, 첫만남을 가졌다.
나는 다시 눈을 떴다. 지금은 겨울. 주변의 가드레일은 이번 시의 정책에 의해서 완전히 철거되고 새로 새워졌다. 벽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담쟁이들은 많이 야위어, 그 싱싱함을 잃었다. 그 잎사귀 위로는 이불이라도 덮었는지 서리가 서려 있었다. 거리가 새로워져서인지, 사람도 예전보다 많았다. 하늘은 뿌옇다. 나를 찌르는 것 같은 태양의 빛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바람도 불지 않는다.
하지만, 그와 나에게 이곳은 최초의 장소였다. 그래…. 절대 잊혀질 리 없는 장소였다.
“이곳에서 전 재건씨와 만났습니다.”
데이트하다 말고 다른 남자의 이야기를 듣는 태형은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분노에 일그러져 있을까, 아니면 슬픔에 젖어 있을까. 그것은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사실을 그에게 전하는 데에는 전혀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그래, 이때까지 느꼈던 것은 미안함이 아니라 책임감이었던 것이다. 마음에 없는 데이트를 해 주겠다고 말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아니라, 당연한 사실을 말해주지 않은 데에 책임감을 느낀 것이었다.
“전 재건씨를 좋아합니다.”
꽤 차분한 어조로 태형이 물었다.
“전 차인건가요?”
나는 대답했다.
“그렇네요. 이럴 때 찼다고 말을 하나요?”
나는 몸을 돌려 태형을 바라보았다. 태형은 꽤나 침착한 표정이었다.
“꽤 쇼크를 받을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태형이 조금은 어색하게 웃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걸요. 연비씨가 딴 남자 생각하고 있다는 거요.”
“그 생각, 저도 하고 있었어요. 태형씨.”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느꼈다. 태형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나를 좋아한 적이 없었다.
그는 단순히 나를 ‘동경’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과 전혀 다른 존재는 멋있고, 대단해 보이는 것 처럼. 남자아이들이 tv만화를 보고 따라하는 것 처럼, 여자아이들이 소꿉놀이를 하는 것 처럼…. 일종의 동경. 어쩌면 그는 정말 전형적인 팬이었을지도 모른다. 학교도 다니지 않고, 하고 싶은 데로 자유롭게 사는 나는 어쩌면 19년 동안 학업과 기대라는 창살로 이루어진 우리 속에 갇혀, 그리고 앞으로는 이때까지 보다도 더 많은 창살에 갇혀 살 수 밖에 없는 그들에게 있어선 우상일지도 모른다. 일탈이 멋져 보이는 이유가 바로 새로운 경험, 자유가 있기 때문 아닌가.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의 우상이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이곳에 오면서부터 6개월. 해결사 사무소에서 의뢰를 해결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학생들에게 노출되었고, 그러한 동경이 싹튼 것이다. 나도 저렇게 살아보고 싶다. 공부도, 대학도 모두 잊고 살고 싶다고. 그러다가, 공연이라는 우연한 계기에 팬클럽이라는 것이 생겨 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나를 분명 대체제로 생각 했던 것이다. 무엇은가를 채우기 위한 대체제. 자기 자신의 상처에 바를 연고로써 나를 선택 한 것이다. 동경을, 사랑이라 자기 자신을 속이면서까지.
내가 말했다. 무미건조하게. 화가 난 것이 아니다. 당연한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일부러 말에 감정을 싣지 않았다.
“태형씨도, 따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죠?”
태형은 시선을 돌렸다. 그러더니, 나에게 말했다. 조금은 곤란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럼, 차인 쪽에서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될까요? 일단 연비씨도 해결사 사무소 직원이시니까요. 의뢰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나는 침묵했다. 그것을 긍정으로 받아들일지, 부정으로 받아들일지는 그의 몫이다. 그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두근거림…. 두근거림을 찾아주세요.”
그 후, 태형은 나에게 여러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이야기들 속에도 유라씨의 존재는 전혀 없었다. 이렇게 정확히 한 글자의 오차도 없이 그녀의 존재를 이야기 속에서 지우고 있으니 연비는 재건씨의 추리가 틀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그의 말을 끝까지 믿고 따라가 보기로 했다. 아니, 사랑중인 소녀의 감을 믿고 따라가고 있다. 하지만 태형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몇 번은 노골적으로 유라의 존재에 대해서 물어보기도 했지만, 그는 그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완전히 무시당했다.
“아, 복도를 좀 보고 싶어요.”
나는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그녀와 만났던 곳에서 부터 차근차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우선 나는 유라씨와 태형이 처음 마주친 그 복도에 가 보기로 했다. 분명 그녀의 말대로라면 3층에서 왼쪽 끝이라고 했다. 그 곳에 가면, 태형은 반응하지 않을까? 나의 뒤에서 그렇게 애타게 찾고 있던 그 여자아이와 마주하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저, 이곳은 아직 공사가 덜 돼서 별로 볼 게….”
여러번 온 적이 있었다. 그래서 유라씨의 설명을 듣고 단번에 위치를 알 수 있다. 나는 태형의 손을 억지로 잡아끌고 때 쓰는 어린아이마냥 그를 끌고 다녔다.
3층으로, 그 복도로….
이번이 마지막 도박이다. 하지만, 나는 반드시 성공 할 것이라 믿는다.
순정 만화 같은 시작을 했으면, 스릴러가 아니라 로맨스로 끝나야지.
그러니까 그 곳으로….
그 만남의 장소로….
작가말
안녕하세요. 노크라입니다. 오늘은 발렌타인데이라서 그런지 주변에 초콜렛이 많네요. 다만 사먹어야 한다는게 문제지만요.
이야기는 점점 끝을 향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조금은 씁쓸한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되었군요. 남은 3화는 쭉 이런 분위기일 겁니다. 그리고 엔딩은 해피엔딩이 좋겠네요. 하지만 저는 속이 검으니까 결국 둘 다 죽는다는 불행한 결말이 기다릴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그건 계속해서 지켜보시는게 좋을겁니다.
어쨌든 초콜렛 이야기를 해보죠. 여러분들 발렌타인데이는 즐기셨나요? 전 무려 초콜릿을 2개나 받았습니다. 누구한테 받았냐구요?
어머니와 저 자신한테요.
비참해지니 그만 합시다. OTL
그럼 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노크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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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말 그대로 결말은 쓰는 저도 예측불가능이라는 말입니다 ㅋ.
아직은 엔딩 후보 중에 하나 일 뿐이니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언제나 읽어주셔서 감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