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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de black
재건이 집의 초인종을 조용히 눌렀다. 그러자 익숙한 벨소리와 함께 인터폰에서 한 남성의 소리가 들렸다. 어제, 케이가 들었을 법한 목소리였다. 묘하게 하이텐션인 목소리였다.
재건이 인터폰을 향해 말했다.
“해결사 사무소에서 왔습니다. 왜 왔는지는 잘 아실 테니 문 열어 주시죠.”
[아, 역시 해결사 사무소 분들이시군요. 문은 열려 있습니다. 들어오세요.]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 그는 분명 웃고 있을 것 같다. 재건은 어재 케이의 이야기를 듣고 대충 예상했다. 그 - 한태형의 형은 분명 눈치를 체고 있다고. 묘하게 신상을 캐묻는 질문들, 그러면서도 자신은 한정된 정보 외에 다른 것은 전혀 주지 않았다. 단, 자신이 무엇인가를 안다는 뉘앙스만 풍기면서….
“들어가자.”
재건의 뒤에서 리아에게 말했다. 리아는 반쯤 경직 된 얼굴로 웃으면서 주먹을 쥐었다. 돌아가면서 파르페라도 하나 사먹으려고 모아놓았던 돈인데…. 지금이라도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심정의 리아였다. 아직도 자기한테 택시비 내라고 한 데에 삐져 있나…. 재건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재건이 일부러 뒤를 돌아보지 않자, 리아가 한숨을 쉬었다. 절대로 못들은 척 하는거다. 결국 리아는 나중에 택시비를 돌려받기로 하고, 주변을 빙 둘러보았다.
“연소 - combustion”
리아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마치 빛이 증발하는 것 같은 현상이 태형의 집 전체에서 일어났다. 미세한 빛의 알갱이들이 아래에서 위로 떠오른다는 것만 제외하면, 분명 이 풍경은 눈이 오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한 장면과도 같았다. 재건은 이런 리아의 마력 운용 스타일에 어김없이 감탄하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마력은 자연력을 ‘상쇄’시키는 용도로 사용하지, 자연력을 ‘연소’시키는데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자연력을 상쇄시키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힘의 마력을 가해야 하지만, 리아의 연소법은 조그마한 마력을 불꽃으로, 그리고 그 수배 이상의 자연력을 연료로 이용해 획기적이라 할 만큼 마력의 소비를 줄이는 것이었다. 물론, 눈에 너무 띈다는 단점이 있기도 했지만…. 어쨌든 이것만큼은 리아만의 독자적인 마력 운용 방법이었다. 그리고 이 눈에 띄는 신비를 재건은 언제나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곤 이후 몇 가지 수식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그러자 주변의 공기가 미묘하게 바뀌어간다. 결계라도 친 것인지, 방금 전에 느꼈던 공기의 감촉과는 이질적인 느낌이 든다. 재건은 리아에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무슨 싸우러 가는 것도 아니고…. 일반인이랑 이야기 하러 가는 건데 이렇게 열을 올릴 필요 있어?”
리아가 자신의 이마에 맺힌 땀을 주머니의 손수건으로 조신하게 닦았다. 그러곤 재건에게 한심하다는 듯이 답했다.
“그러니까 스토킹이나 당하는 거야. 좀 긴장 좀 하고 사시지. 만약에 팀 펠레스가 네 뒤에서 칼이라도 갈고 있었으면 어쩔 뻔 했어?”
재건이 자신의 실수에 조금은 부끄러운듯이 얼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바보냐, 살의랑 기척이랑은 다른거야.”
리아가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조금은 진지한 얼굴로 재건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늘어져 있다고 말하는거야, 바보야.”
리아는 그렇게 툭 쏘아붙이고는, 그대로 대문을 지나가는 것이었다. 재건도 조금은 반성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너 소희한테는 어디까지 이야기를 들은거야?”
재건이 리아가 귀찮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리아가 아까 전부터 묘하게 달라붙는 것이었다.
“전부. 노트에 11월 27일부터 일지가 적혀 있었다는 것 까지.”
참 자세하게 들으셨네. 재건이 리아에게 떨어지라는 일종의 신호로 몸을 살짝 비꼬았다. 그러자 리아가 약간은 불쾌하다는 듯이 재건을 쳐다보았다.
“왜, 내가 귀찮아?”
“응.”
재건은 솔직한 심정을 말했다. 걷기 불편하다.
“츤데레라는 거야, 바보야.”
“그럼 대문 앞에서는 뭐였는데.”
“츤, 인가? 그 빽빽거리는거. 거 왜, 츤츤하니까 뭔가 고집 있어 보이잖아?”
그럼 지금은 데레데레냐? 재건은 츤과 데레가 합쳐져서 츤데레가 되었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에 황당해 하면서 거실의 소파에 앉았다. 그러자 리아도 그 옆에 찰싹 붙어 앉았다. 오고가는 대화만 음소거 하면, 둘의 모습은 영락없는 연인이었다. 그 때였다. 언제 부터인지 모르게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는 태하가 있었다.
“앉으시죠. 차는 뭘로 드릴까요.”
태하의 목소리에 재건과 리아는 깜짝 놀라서 뒤를 쳐다보았다. 도대체 언제부터 자신들의 뒤에 있었던 것일까 하고 둘은 놀란 표정으로 생각해보았지만, 상식적으로 거실로 자신들을 안내 한 사람이 태하라는 점에서 그가 자신들과 한 공간에 있다는 것은 당연했다. 둘은 그렇게 납득했다.
“달콤한 것보다는 씁쓸한 게 좋겠군요. 녹차 한 잔 부탁드립니다.”
능글 능글 웃으면서 태하는 리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리아는 그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흔히 말하는 영업용 스마일이라는 것이었다.
“홍차로 부탁드립니다.”
태하는 알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현제, 거실에는 재건과 리아 둘만이 남아 있었다. 재건이 리아에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작은 목소리로 태하가 눈치 체지 못하도록 말을 걸었다.
“그래서, 어때 보여?”
리아는 조금은 얼굴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전형적인 사기꾼 스타일이네. 옷 스타일부터 목소리와 말투까지 어느 곳 하나 ‘일치’하는 곳이 없어.”
인간에게는 분위기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나이, 성별, 직업이나 자라온 환경 등에 의해서 각각의 분위기가 섞여서 무수히 많은 형태를 띤다. 그것이 분위기. 즉, 개성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남자에게서는 개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어느 것이 진짜 개성인지를 알 수가 없다.
한 사람에게 개성이 많다는 말을 쓰지는 않는다. 개성. 그것은 그야말로 개인의 특성이라는 말이다. 한 눈에 보고 판단 할 수 있는 그의 분위기. 그런데, 이 인간은 이러한 우리의 상식을 뒤엎기라도 하듯이 무식한 것 같으면서도 똑똑해 보이고, 맹할 것 같으면서도 날카로워보인다. 모든 것이 가짜. 무엇이 진짜인지 분간 할 수 없다.
재건은 미간을 찌푸렸다.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어서는 다음으로 진행이 되질 않는다. 재건은 지금 1초 간격으로 성격을 바꾸는 미친 왕과 교섭을 해야 하는 사신단과 같은 것이다.
“리아. 너도 소희처럼 사역마와 감각 공유 가능해?”
재건이 리아에게 미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역마의 감각공유는 그렇게 간단하지도 않을뿐더러 전혀 다른 기관을 억지로 끼워맞춰 수행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굉장히 힘든 일이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리아에게는 소희처럼 부채 안에 사역마를 담아서 데리고 다니는 신묘한 일 따윌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우선 주변에 풀어놓은 사역마 중 가장 가까이에 있는 녀석을 이 곳으로 불러오는 것부터 시작해야한다. 그 작업부터가 힘든 것이다.
“할 수는 있어. 하지만 싫어.”
리아가 정색하며 말했다. 역시나, 하고 재건은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든 저 남자에게서 확증을 잡아야 한다. 어설프게 찌르면 오히려 당한다. 재건은 그렇게 생각하고 거실을 필사적으로 둘러보았다. 지금 자기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정보수집이었다.
집의 거실은 넓었다. 다른 집과는 다르게 이곳의 거실은 가운데가 움푹 파여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계단과 같은 형태를 띄고 있다. 주로 가운데의 공간에서 가족들이 모이거나 손님을 접대하는 듯 했다.
어쨌든 이 가운데 공간을 조금 더 묘사해보자. 아래에는 꽤 고급스런 양탄자가 깔려 있다. 양탄자의 가운데에는 넓은 유리탁자가 놓여 있고, 그 유리탁자를 빙 둘러서 소파가 놓여 있다. 그리고 소파가 놓여있지 않은 유리탁자의 정면에는 거리를 두고 설비를 완벽히 갖춘 대형 tv가 놓여 있다. 자신의 집에 있는 tv보다 1.5배는 더 넓어 보였다.
그리고 다시 유리탁자의 위를 바라본다. 그 위에는 가족 사진이 있었다. 꽤 단란한 가정의 모습. 앞에는 부모, 그리고 양 옆에 아들. 모두 웃고 있다. 그 옆에는 꽃병이 있다. 꽃병 아래에는 자그마한 글씨로 ‘엄마 사랑해요, 큰아들이’라고 적혀 있었다.
재건은 이번엔 가운데의 공간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꽤 넓은 수납장을 발견했다. 그 곳에는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상장과 트로피로 가득하다.
“꽤 훌륭한 아들이었나보네.”
리아가 조금은 아쉬운 것 같이 이야기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은 효도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으니까. 재건은 솔직하게 감탄했다. 그들은 한 부모의 자랑스런 아들들이었던 것이다. 너무나도 전형적인 엄친아. 수재에, 만능, 착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이상의 아들.
그러다가, 재건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과연 그 아들들에겐 아무런 스트레스도 없었을까. 이 완벽한 아들들은 아무런 고민 없이 행복하게 살았을까 하고.
그건 아니다. 어떤 인간이라도 반드시 스트레스는 존재한다. 심지어 공자도 어린 것들을 보고 화딱지가 나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요즘 젊은 것들은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 화는 스트레스를 푸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니까. 하지만 이 모습을 보니 이 아들들은 부모에게 전혀 거스르지 못한 것 같아 보였다. 물론 이것은 억측이다. 다만, 그런 느낌이 들 정도로 이 집안 전체에서 부모는 아들들을, 아들들은 부모를 사랑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둘 중 하나겠지. 부모 눈에 띄지 않는 다른 데에서 한번 크게 삐뚤어지거나, 속으로 중화시키거나.”
리아가 말했다. 확실히 둘째는 스토커라는 이상한 방향으로 삐뚤어져버렸지. 그럼 태하는 후자의 속성인가?
그렇게 생각해 보니 아까 전부터 느껴지는 애매한 느낌의 정체가 조금은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재건은 납득 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중화하기 위해서인가?”
재건은 다시 한번 그의 언벨런스한 스타일에 대해서 생각 해 보았다. 그래, 어떨 때는 멍청한 게 속 편할 때가 있고, 어떨 때는 똑똑한 게 속 편할 때가 있다. 어떨 때는 선한 것이, 어떨 때는 악한 것이 인생을 사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과 똑같다. 그러니까, 유연하게 산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그리고, 이 유능한 사람은 자신의 분위기를 자유자제로 조절하는 방법을 터득 한 것이다. 타인은 물론, 심지어 자신마저 속일 수 있을 정도로 능수능란하게….
재건은 그렇게 생각하며 수납장에서 고개를 돌리려고 했다. 그 때였을까, 수납장 맨 아래의 작은 서랍 한 칸이 열려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재건은 묘하게 그 곳이 신경 쓰였다. 재건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 수납장을 향할 때였다. 그런 재건을 리아가 말렸다.
“일본 속담에 이런 말이 있어.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는….”
뭔가, 의미가 다르지 않나? 재건은 진지한 얼굴로 엉뚱한 말을 하는 리아를 보고는 조금 어깨의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리아는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신경 써준거냐?”
“시끄러워.”
리아가 딴청을 피웠다. 쑥쓰러운지, 그녀는 고개를 돌린 체였다. 그녀는 약간은 화가 난 목소리로 재건을 향에 말을 내뱉었다.
“사이가 좋으시네요.”
그 뒤에서, 능글맞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하였다.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그는 웃는 얼굴로 찻잔이 올려져 있는 쟁반을 들고 서 있었다.
“언제부터?”
그가 재건과 리아의 앞에 차를 올려놓으면서 말했다. 마치 소설에나 나오는 집사처럼 자세가 우아하다. 재건은 그런 태하를 쳐다보면서 기가 막히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자 태하는 다시 부엌으로 돌아가면서 말했다.
“뭐, 일본 속담 부분부터.”
“꽤 능숙하시네요, 슬그머니 다가와서 남의 이야기 엿들으시는 거.”
리아가 노골적으로 기분 나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태하는 진심으로 기쁘다는 듯이 말했다.
“칭찬 감사합니다.”
리아는 태하가 과자를 준비하는 내내 심각한 얼굴을 짓고 있었다.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을 해?”
리아는 재건을 노려보았다. 정말 둔한 남자였다. 리아는 그냥 그렇게 살다가 죽으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결국은 자비를 베풀기로 했다. 이 남자가 죽으면 곤란한 것은 자신 뿐이니까.
“나 저 남자한테서 기척을 전혀 못 느꼈어.”
재건은 그런 리아의 말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재건은 그게 어때서 라고 반문하려다가, 그녀의 말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소리인지 깨달았다.
현직 용병이 일반인의 기척을 못 느꼈다고?
“너야말로 조금 느슨해져 있는 거 아니야? 방금도 나랑 이야기한다고 조금은 풀어져 있었잖아?”
“그래도 일반인 발소리정도는 감지 할 수 있어! 바보… 아니야? 내가 당신처럼 그렇게 나사가 풀려있느냐고 물어본다면 정말 실례되는 말이야.”
리아는 진심으로 화가 나 있었다. 그녀는 소리 내서 화를 내다가 너무 흥분했다는 것을 눈치체고 목소리를 낮췄다. 재건도 확실히 이상하게 생각했다. 가만히 생각 해 보면 아무런 훈련도, 연습도 하지 않은 일반인의 기척 정도는 아무리 늘어져 있는 자신이라도 충분히 캐치 가능 했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자신들이 이 거실로 안내 받앗을 때부터 이상했다. 태하와 함께 들어왔는데 자신들은 어느새 그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전혀 말이 되질 않았다. 자연스럽게 기척을 숨기지 않은 이상은….
그렇다면 태하가 자신들과 같은 ‘뒷면’의 사람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만약 그가 자신들과 같은 존재라면 적어도 동질감 같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자신들은 그렇게 훈련 받았으니까. 그 정도는 자신 있다. 그렇다면 군대에서 훈련을 받은 자인가.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고등학교때 숨바꼭질 자주 했거든요. 안 잡히려고 피나게 연습 한 결과죠.”
이 쯤 되면 재건도 황당해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고등학교 때 숨바꼭질을 했다는 기행은 재껴두고서라도, 도대체 어떤 숨바꼭질을 했기에 그 넘쳐나는 존재감을 지울 수 있는 것일까. 재건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태하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태하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재건도 그런 태하에게 웃는 얼굴로 응대했다.
“뭐, 이 점은 그렇게 중요한 부분이 아니지. 그건 그렇고 거실이 너무 넓은데…. 난 좀 좁은 공간을 좋아해서 말이야.”
재건은 살짝 열려있는 서랍에 대해서는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그는 조금 더 정보를 모으자는 생각에 태하에게 이야기 할 장소를 바꾸자는 제안을 했다. 그러자 태하는 알 수 없는 미소와 함께 이렇게 말했다.
“그럼, 제 방에서 이야기 하죠. 일단 따라오세요.
그것은 너무나도 정확히 재건이 원하는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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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지금….”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곤 입을 열었다. 겨울이라서 그런지 상상했던 것 보단 평범한 공간이었다. 조금은 실망한 감도 있었지만, 이러한 풍경은 당사자들에겐 특별해 보이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입을 열었다.
“여기가, 당신과 유라씨가 처음 만났던 곳입니다.”
여전히 태형은, 유라라는 이름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 번 더 말했다.
“여기가, 당신과 유라씨가 처음 만났던 곳입니다.”
태형은 여전히 반응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또 한 번 말했다.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마치 다음 역에서의 정차를 알리는 녹음된 안내방송처럼 반복했다.
“여기가, 당신과 유라씨가 처음 만났던 곳입니다.”
여전히 반응이 없다.
지금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것은 알 수 없었다. 다만 짜증이 올라왔다. 알고 있으면 알고 있다, 모르면 모른다고 반응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나는 주먹을 꽉 쥐고 태형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지금의 내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는 전혀 모른다. 나는 주먹으로 태형의 명치를 사정없이 가격했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
아마 나는 그 모습에서 나를 보았던 것 같다. 애써 모든 것에 눈을 돌리고 있던 자신. 아픈 것이 싫어서 모든 것을 객관화 했던 자신. 사랑 하고 있는 자신도, 단순한 사실조차 속이려 했던 나 자신. 그렇게 나와 재건씨는 빙 둘러왔다. 감정을 속여서, 그것을 객관화 시켜서, 그렇게 우리 둘은 빙 둘러 왔던 것이다.
그래, 태형은 유라를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유라를 잊은 것이 아니었다.
유라라는 존재를 단순한 여자아이로 객관화 시킨 것이다.
내가 재건씨를 항상 소장님이라 객관화 하는 것 처럼.
“그렇게 해야 편해 질 수 있으니까.”
그럼, 그 환상부터 깨 줘야 한다.
“오픈 - open"
내 손을 무수히 많은 빛의 띠가 감싼다. 나는 그 띠에 말로써 수식을 입력한다. 그 수식들이 띠의 중앙을 서서히 채워나간다. 그러자 내 손의 팔찌가 묘한 빛을 낸다.
“전면 해방 - all liberation"
팔찌가 마치 녹은 것 같이 나의 손에서 땅으로 흘러 내렸다. 하지만, 땅에 닫지는 않는다.팔찌가 녹아 형성된 빛의 액체는 아래에서 위로 서서히 어떤 형태를 이루어 다시 재결합해간다. 심플한 기둥의 형태 그러다가 두 개의 가지로 나뉘어, 그들이 다시 분열해서 나선 형태로 서로를 얽는다. 그 나선이 만들어 낸 공간의 한 가운데에는 영롱한 빛을 내는 구체가 자리한다. 그리고 그 주변을 무수히 많은 빛의 나선이 감싸고돈다.
“기억을 외면 한다면, 현실로 보여줄 뿐.”
쓰러져 있는 태형의 앞으로, 나는 천천히 걸어갔다.
언니 언니, 이제 슬슬 나의 차례 아니야?
시끄러워. 이번엔 네가 할 수 있는 일 따원 없어. 나는 그렇게 마음속의 사념에게 지껄이고 지팡이로 땅을 힘껏 내리 찍었다. 그러자 무수한 수식이 나열되어 있는 마법진이 학교 전체에 걸쳐 광범위하게 펼쳐진다. 나는 그 중앙, 이 모든 마법진의 핵이 되는 중추에 서 있다. 나는 우선 주변에 거대한 결계를 쳤다. 그리고 나와 태형에게 대인용 인식 장애 마법을 걸었다. 이로써 모든 조건이 갖춰졌다.
이번에야말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주문을 외웠다.
“반복 - repeat"
지팡이를 둘러싸고 있던 빛의 나선이 빠르게 가속해서 사방에 퍼졌다. 풍경이 변한다, 겨울에서 가을로, 가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봄으로. 1년 전, 2년 전, 3년 전으로 세월이 빠르게 뒤로 돌아간다. 마치 비디오를 되감기라도 하듯이 자신의 옆, 태형의 옆으로 무수히 많은 사람이 지나간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를 알아 체지 못한다. 그러기 위한 인식 장애 마법이었다. 적어도 접촉만 피한다면 이 일이 끝날 때 까지는 문제가 생길 걱정은 없다.
그렇게 수많은 인과가 나와 태형의 옆을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쓰러져 있는 태형이 눈을 떴을 때, 나의 옆으로, 그의 옆으로 한 소년과 소녀가 스쳐지나간다. 나는 그들의 방해가 되지 않게 몸을 피했다. 상황파악이 전혀 안 되는 태형을 둘의 궤적에 장애물이 되지 않게 구석으로 치웠다. 그리고 태형이 소년과 소녀의 엇갈림에 주목하도록 그의 얼굴을 손으로 단단히 고정시켰다.
“여기가, 당신과 유라씨가 처음 만났던 곳입니다.”
작가말
안녕하세요. 노크라입니다. 작가말을 쓰기 전에 참고로 말씀 드리자면 이 글은 원래 '판타지'가 그 장르입니다. 그러니까 '얼라! 갑자기 이상한 마법이 나왔어!' 라고 생각하시면서 놀라지는 말아주세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겨 주세요. 만약 프론티어의 마법에 대해 궁금하신분은…. 복잡하니까 리플로 알고싶은 부분만 알려주세요. 아니면 올려져 있는 설정집을 찾아주세요!
어쨌든 이 글이 완결 될 때 까지는 black, white 두 사이드로 이야기를 나눌겁니다. 시점이 3인칭 1인칭이라는 소소한 차이도 있습니다만, 우선 side black은 재건과 리아의 시점. 즉 모든 사건의 전말을 파해치는 내용이라면, side white는 조금은 연비가 태형에게 유라라는 존재를 되찾아주기 위한 내용입니다. 물론 black에서는 약간은 거무튀튀한 이야기, 그리고 사실을 알아내는데에 있어서 마법은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white편은 사랑, 태형의 심리에 관한 이야기로, 온갖 판타지적 요소가 들어가는 편입니다. 이렇게 나눠 놓는게 아마 읽는 사람이 편할 것 같아서 이렇게 썼습니다. 추리물을 좋아하시면 black편에 집중해서, 사랑이야기를 좋아하시면 white편에 조금 더 신경을 써서 읽으시면 될 겁니다.
그럼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노크라였습니다!
ps. 츤데레는 새침하다는 츤츤과 부끄럽다는 데레데레가 합쳐진 싫은 듯 트집 잡고 화내지만 사실은 애정을 품고 있음이라는 뜻의 일본어 단어입니다. 모르시는 분들이 있으실 것 같아서 적어놓습니다. (대표적인 캐릭터가 둘리의 고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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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 앞으로를 기대해 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