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전쟁에서 승리하여 살이 찐 자

자하가 증자를 만났을 때 증자가 말하였다.
“어째서 살이 쪘소?”.
자하가 대답하였다.
“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살이 쪘소”.
증자가 말하였다.
“무슨 말이오?”.
자하가 말하였다.
“나는 선왕의 의를 보게 되면 영광으로 생각하고, 밖에 나가 부귀의 즐거움을 보게 되면 또 영광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이 두 가지가 가슴속에서 싸울 때는 승부를 알지 못했으므로 여위었지만, 지금 선왕의 의가 승리했으므로 살이 찐 것이오”.
이 때문에 뜻을 이루기가 어렵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이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이기는 데 있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말하였다.
“스스로를 이기는 것을 강强이라 한다”.
주나라에는 옥으로 만든 판이 있었다. 주왕은 교격을 주나라로 보내 구해오도록 했지만, 문왕은 교격에게 그것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비중이 와서 구하자 그것을 주었다. 이것은 교격은 현명했지만 비중은 덕행이 없는 자였기 때문이다. 주나라는 현명한 사람이 뜻을 얻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비중에게 준 것이다.
문왕이 위수에서 태공을 등용한 것은 그를 귀히 여겼기 때문이고, 비중에게 옥으로 만든 판을 준 것은 그 역할을 아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하였다.
“스승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도움이 되는 자를 아끼지 않는다면, 비록 지혜로울지라도 매우 어리석은 것이다. 이를 일컬어 오묘한 진리라고 한다.”.
*한비자(韓非子, 기원전 280~?, 성은 한韓, 이름은 비非인데, 한비라는 이름을 높여 한비자라 부른다)는 춘추전국시대의 유명한 법가사상가로 그가 지은 책이 ‘한비자’인데, ‘한비자’는 군주론과 제왕학의 고전으로 유명하며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죽으면서 어리석기로 알려진 후주의 유선에게 읽도록 한 책이 ‘한비자’였다고 합니다.
*한비자는 유학자인 순자의 문하에서 이사와 함께 학문을 배웠으나, 이사는 자신의 능력이 한비자만 못하다는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고, ‘한비자’가 세상에 나온 뒤 진나라 시황제가 우연히 이 책을 읽고 감동하여 한비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말하여 한비자가 진시황을 만나게 되었는데, 객경 벼슬에 오른 이사는 동문수학한 친구 한비자가 진시황의 총애를 받는 것을 꺼려 그를 모함하여 진시황은 이사의 말을 듣고 한비자를 죽인 후 많이 후회하였다고 전해지고, 한비자는 본래 신하가 군주에게 유세하기 어렵다는 점을 터득하고 난언難言, 세난說難 등 여러 편에서 진언의 방법을 자세하게 말했지만 정작 자신은 죽임을 당하는 화를 피하지 못하였습니다.
*위 내용은 문학박사이신 김원중 교수님이 옮기신 ‘한비자’ 권7 제21편 유로(喩老 : 노자를 비유하다) ‘전쟁에서 승리하여 살이 찐 자’를 옮겨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