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식 선생님,
빈소도 차리지 않고, 주문진 앞바다에 뿌리고, 다 끝났다는 말에, 우리 시인들...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가족처럼 지낸 세월이 몇십 년인데ᆢ
특히 저는,
시집 해설을 안 써주시기로 유명하신 강우식샘인데 그때,
박제천샘이 어느 교수 시집 해설을 부탁한 게 어젠데 거절했다면서 그래서 아주 곤란하지만,
"그래도 손옥자 건 써줘야지"
하시며 써주셨습니다.
써 주셔서 감사한데,
그 덕에 박샘한테 미움도 받았습니다.
그 밖에 강우식 선생님과의 일화는 너무나 많아 다 쓸 수 조차 없고,
그래서,
49제에 맞춰 시제를 지내기 위해 주문진 아들바위를 찾았습니다.
여기가 아들 바위라고 하네요
고즈넉하고 너무나 아름다웠어요
선생님께서 가신 바다를 바라보고 시제를 했죠.
20명의 시인들이 동참했어요.
숙연한 분위기를 민용태 교수님이 어떻게 좀 해 보려고 했지만,
슬퍼서 선생님의 시 '사행시초'도 잘 읽지도 못했어요 ㅠ
흰 국화꽃에 코를 박고 있는 최영규 시인.
최영규 시인은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는데, 등단시도 아마 꽃씨가 아닌가 생각해요.
그 꽃은 편지봉투 속에 든, 피어날 꽃이고,
이건 바다에 흘러 보내야할 꽃이죠...
우리가 시제 지내는 그 시간 아들 바위에 저렇게 무지개가 떴어요.
누구는 선생님이라고 했지만...
사실 저는 여기 와서
섭섭했던 마음이 좀 누그러 들었어요.
참 편안하고 좋은 곳이었어요.
선생님이 왜 여기로 오고 싶어하셨는지 알겠더라구요.
물론 선생님의 잊지못할 고향이기도 하지만요.
첫댓글 강우식 선생님 수장유언 노래입니다
https://youtu.be/DQzLXk74Jwo?si=gnhHAGxTlBgjnkF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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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곳으로 흘러 영면하셨기를 빕니다!
함께하신 모든 선생님들
고생하셨습니다
가시는 길 외롭지 않고
쓸쓸하지 않으셨겠습니다
다시한번
편안한 영면을 빕니다
그리운 고향에서 평안히 영면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