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閑談)
우애(友愛)-형제간의 불화로 고구려는 망했다.
연개소문(淵蓋蘇文- ?~666-고구려 재상)은 의표(儀表)가 당당하고
기상이 대담하며, 성품이 포악하여 모두들 두려워했습니다.
그는 수나라가 살수에서 을지문덕에게 당한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수나라의 뒤를 이은 당나라가 언젠가는 공격해 오리라는 것을 예견
하고 부여성에서 발해에 이르는 천리 장성을 영류왕(榮留王-고구려
27대 왕) 11년(628)에 쌓았는데 이 때 백성의 원성이 대단했습니다.
연개소문의 성품에 견디다 못한 여러 중신들이 연개소문을 죽이고자
임금과 밀의한 것을 알고 642년 영류왕이하 반대파 중신들 100여명을
죽이고 영류왕의 조카를 왕으로 추대 보장왕(寶藏王-고구려 28대 왕)
이라하고 그는 스스로 막리지(莫離支)가 되어 독재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강성했던 고구려도 연개소문이 죽은 지 2년도 안되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막리지가된 장남 남생(男生)은 동생 남건(男建), 남산(男産)
이 자신을 제거하려 한다는 소문만 믿고 서로 싸우다가 남생(男生)이
당나라로 도망을 가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절호의 기회로 나당연합군(신라는 '김유신', 당나라는 '이적'이 지휘)
대군을 보내 고구려를 협공했습니다. 항전 끝에 평양성이 함락되고,
마지막 왕 '보장왕'은 항복했습니다. 668년 고구려는 멸망했습니다.
당나라는 고구려 땅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해 지배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고구려 유민들은 이에 저항했고, 이후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 세력을 모아 698년 발해를 건국하여 고구려의 전통을 계승했습니다.
첫댓글 형제간도 성인이 되고 가정을 꾸리고 나면
우애를 챙기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만, 서로
양보하고 배려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