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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혁명과 20세기 기술이 던지는 교훈
아랍에 시민 운동의 꽃이 피고 있다.
시작은 튀니지다. 지난해 12월17일, 튀니지 남부 시디 보즈디에서 한 청년이 자신을 불태우는 길을 택했을 때, 정부의 책임에 대한 목소리는 높아지기 시작했다. 결국 튀니지 국민의 움직임은 이 지역 벤 알리의 23년 철권 통치를 끝냈다.
곧 불길은 다른 곳으로 번졌다. 이미 높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그리고 부패한 정부로 시달림을 받고 있던 이집트 국민들의 불만의 둑이 터졌다.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은 정권 교체를 요구하는 시민들로 가득찼다. 그 덕분에 호스니 무라바크의 30년 독재의 막이 내렸다.
이집트는 유럽이 태평양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며, 미국이 선택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중재자다. 서방 국가의 이집트 정치 안정에 대한 강력한 필요와 그를 통해 가능할 수 있었던 무라바크의 통치도 시민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 모든 과정에 인터넷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
위키리크스는 정부가 통제한 언론을 통해서는 결코 알 수 없었던 정부의 부패상에 대해 시민들이 알게 해주었고,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그들이 단시간 내에 수많은 사람들을 일정한 장소에 집결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하버드대에서 경제사학을 가르치는 니알 퍼거슨 교수는 영국 제국사에 대한 그의 저서 ‘제국’에서 대영제국이 건립되는 데는 300년이 걸렸지만 그것이 붕괴되는 데는 30년이면 충분했다고 했다.
그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것은 20세 초반에 있었던 아일랜드의 독립과 그 뒤를 이은 인도의 독립이었다.
이로써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역사도 끝이 나게 됐다.
이처럼 한 국가가 먼저 모범을 보여주면, 다른 국가는 그 전철을 따라 새로운 사회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튀니지와 이집트의 시민들이 보여준 것은 그들만의 교훈으로 그치지 않는다.
이 움직임은 아랍 전역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미 튀니지, 이집트 주변의 예멘과 이란에서 가시적인 대규모 시위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지난 세기의 교훈으로 이번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일어난 일들을 설명하기에는 얼핏 한계가 있어 보인다.
위키리크스, 트위터, 페이스북이라는 21세기의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동안 잠들어 있던 것 같은 이 아랍 땅을 뒤흔든 것을 이 새로운 기술의 변화로 설명하려고 한다.
그것이 ‘트위터 혁명’, ‘페이스북 혁명’ 등을 통해 각종 소셜 네트워크의 이름들이 지난 세기 민주화 혁명의 맥락 속에서 해석되고 강조되는 까닭이다.
이 흐름 속에서 볼 때, 지난 대영제국이 붕괴되는 과정에서의 영웅이 아일랜드의 숀 팬과 인도의 마하트라 간디라면, 이번 아랍 시민운동의 주요한 인물 중 한 명은 구글의 웨일 고님일 것이다.
구글의 지역 임원인 그는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의 시위를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주도했다는 이유로 지난 1월27일 실종됐다가 정부에 의해 구금, 취조 후 풀려났다. 그는 서방 여론과 지역 사회에서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정당과 시민 사회의 지도자가 아니라, 다국적 기업의 임원이 사회 변동의 주역으로 꼽힐 수 있다면 그것은 확실히 큰 변화일 것이다.
그러나 소셜 미디어의 사용이 확대되면 권위주의 정부에 저항하는 시민 운동도 확산되며 점진적으로 민주화도 증대될 수 있다는 낭만적인 장미빛 그림을 그리기 전에, 과연 20세기의 교훈이 21세기의 기술에 대하여 그 실효성을 잃었는지 생각해보자.
사실, 우리가 지난 역사 속에서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증진시켜 줄 것이라고 믿었던 기술은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에 한정되지 않는다. 인터넷을 제하고도 우리는 비행기, 잠수함, 라디오, TV, 영화가 지상에서 전쟁을 종식시킬 것이라 믿었다. 기술사학자인 데이비드 나이는 그 목록에 열풍선, 독가스, 지뢰, 미사일, 레이저 건 등을 포함시킨다.
그 믿음의 근거가 해당 기술이 우리의 상호 의존성을 증대시키었기 때문이든 아니면 그 사용의 결과가 단순히 끔찍해서였든, 다음 사실은 명백하다. 우리는 그 동안 어떤 새로운 기술이 우리의 오래 된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높은 기대를 반복해왔다.
돌이켜 보면 우리의 그 높은 기대에 대해 기술이 우리를 배반해왔던 것은 사실 우리의 믿음이 너무나 막연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기술이 인간의 본성 혹은 사회의 속성을 단기간에 바꿀 수 있는 것이라 믿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기술의 도구로서의 성격은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목적과 동기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냈다.
같은 원자력이 의학으로 사용되어 수많은 인명을 구하기도 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전쟁 무기로 활용되어 우리의 상상을 넘는 수준의 대량 살상을 이끌기도 하는 것처럼.이렇게 본다면, 기술의 긍정적 활용을 위해 인간의 의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20세기의 교훈은 21세기의 개막에도 그 설득력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집트의 소셜 네트워크 사용에 열광한 나머지 우리가 그 중대성을 쉽게 간과하기 쉬운 2011년 1월28일을 기억해 보자. 시민 운동에 대한 정부의 반격으로, 그 후 5일 동안 이집트 전역의 인터넷 사용이 중단됐다.
인터넷 검열에 대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실행력을 갖추고 있는 중국에서도 시도한 바 없는 대담한 결정이었다.
서방 여론의 압력과 오프라인 시위의 지속에 견디지 못해 잠금 장치가 풀리기는 했지만, 소셜 네트워크가 기반을 둔 인터넷을 단번에 무력화시킬 수 있는 ‘킬 스위치’가 존재한다는 것은 놀라움이었다.
더욱이,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은 전화 등의 통신망과 달리 분산형 네트워크이기 때문에 이같은 공격에 안전하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그 놀라움은 더 크다.
이 5일의 공포가 일어날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는 인터넷의 분산형 네트워크라는 기술적 특성이 왜곡될 수 있는 실제적인 사회 구조 때문이다. 특히 이집트처럼 정부 허가에 의해 인터넷 사업이 이루어지는 환경에서는 정부 입맛에 맞는 독점 기업이 인터넷을 관리하는 실정이다.
따라서 그들 사업자를 강압하는 방식으로 정부가 인터넷을 일시적으로 사라지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이번 사건을 통해 교훈을 얻은 것은 전세계의 압제 속에 시달리는 시민들만이 아니다.
정권의 유지와 자신의 안전을 위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자 하는 노력은 권위주의 정부와 독재가들도 하고 있다. 그들도 이번 사건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
인터넷의 적극적인 사용에 맞서서, 그들 역시 좀 더 적극적으로 인터넷에 대한 통제를 행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실 하버드대 버크만센터의 에단 쥬커만을 비롯한 많은 제3세계의 인터넷 검열과 통제에 대한 전문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같은 검열을 회피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물론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다.
위키리크스 사례를 통해 널리 알려진 토르(Tor)를 비롯해서 많은 검열 회피 기술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하버드대 버크만센터가 행한 자체 조사에 의하면, 온라인상의 10억 인구 중에 약 2% 정도만이 프록시 혹은 그같은 검열 회피 기술이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완전히 가능하다는 것은 의미하지 않는다.
검열 회피 기술의 발전과 검열 기술의 발전은 맞물리고 있으며, 제3세계의 상당한 인구가 인터넷 접속이 불가능하거나 가능하더라도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한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카페 내에 경찰을 두고 감시를 행하는 것만으로도 기술적 정교함 없이 충분히 간접적으로 인터넷 검열을 행할 수 있다.
문제는 재정이다. 회피 기술을 통해 인터넷에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는 것은 가상의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ISP)를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파일 공유 기술(P2P)과 같은 방식으로 전세계 인터넷 이용자들이 그 책임과 비용을 나누어 가진다고 할 지라도, 앞으로 폭증할 전세계 수십억 인구를 위한 그같은 인터넷 서비스의 시행은 미국 국방부의 예산으로도 넉넉하지 못하다.
즉 이번에 구글과 트위터가 합작해 이집트 시민들을 도운 것과 같은 방식으로 제3세계 인터넷 이용자들이 검열 장벽을 넘을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은 일시적으로 부분적으로 가능하지만, 전체적으로 총괄적으로는 불가능하다.
검열 회피 기술은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열린 인터넷과 열린 사회를 위한 궁극적인 답이 되지는 못한다.
마지막으로, 이 21세기 기술이 20세기의 교훈을 어떻게 수정할 것인가 하는 점을 두고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은 중국이다.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을 차이나 와이드 웹(China Wide Web)으로 탈바꾼 인터넷 검열 선진국 중국에서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일어났던 혁명을 예측할 수 있을까? 광대한 인터넷 사용과 폭증하는 소셜 네트워크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기술과 서비스만 가지고는 그같은 전망을 예측하기 어렵다.
아랍을 뒤흔든 것은 기술이기 이전에 빵이었다.
높은 실업률, 인플레이션 그리고 부패한 정부가 그들에게 실망이고 분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은 미국 대통령도 부러워할 만한 지지율을 받고 있다.
1979년 개혁개방 이래 가파르게 성장하며 세계 패권 국가로 도전하고 있는 그들 국가, 그들 정부에 대한 자부심은 천안문 사태도, SARS 창궐도, 티벳 시위 탄압도 막지 못했다. 적어도 경제 발전과 그에 연관된 민족주의적 자부심이 유지되는 한,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가 대륙을 흔들 일은 적어 보인다.
소셜 미디어 구루인 뉴욕대 클레이 셔키 교수는 ‘소셜 미디어의 정치적 힘’이라는 최근 포린폴러시 기고문에서 2001년 1월17일 필리핀 마닐라에서부터 2011년 2월 이집트 카이로까지 모바일, 소셜미디어 등 새로운 기술의 도입이 사회 변동의 핵이 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진정으로 기술 결정론에 의한 사회 변동을 설명하고 싶다면, 중국처럼 시장 경제에서 우수한 성과를 보이고 있는 권위주의 국가들이 그들의 정치적 타락상에도 불구하고 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지 설명해야 할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그와 다른 구루들의 침묵은 20세기 교훈이 21세기 기술사에서도 유효함을 보여준다.
인터넷, 소셜미디어의 도래로 시대가 바뀐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아직 그 시대를 맞이한 사회와 인간이 그만큼 변하지 않았다는 것, 그들이 변하는 것에는 기술의 도입을 넘어선 우리의 의지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첫댓글 NSN 소셜네트워크 기술은 인류 문명을 변화 시키는 기초가 될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