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뻐하는 김담희
나는 처음에 이 책을 봤을때 프랑켄슈타인하면 생각나는 크고 초록색 피부에 머리에는 못이 달린 괴물이 생각나서 그 이야기인가 싶었다. 처음에는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아서 재미가 없었는데 읽다보니 점점 빠져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공부에 대한 열정과 실력이 뛰어난 물리학자이다. 그리고 자신이 한 생명을 창조해내겠다는 욕망이 있었다. 결국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약품과 자신의 살점으로 거대하고 아주 흉측한 괴물이라는 존재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자신이 만들어낸 존재로 인해서 동생과 가족처럼 생각했던 보모를 잃게 되었고, 소중한 친구 헨리와, 아내 엘리자베스를 모두 잃게 된다. 나는 이 과정들을 통해서 사람이 사람의 가능성 이상을 원하는 잘못된 욕망이 어떤 일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선과 악의 개념이 없고 사람을 해치지도 않았던 괴물의 거대하고 흉측한 겉모습만 보고서 성급하게 판단해 괴물을 내쫓고 공격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편견과 차별에 대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빅터가 만들어낸 괴물은 그저 괴물이라는 흉측한 존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욕망과 편견, 모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
윌턴의 물음에 괴물은 자신이 무언가를 뉘우칠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한다. 선과 악이 무엇인지는 알게 되었으나 왜 선을 행해야하고 악을 행하지 말아야 하는지는 알지 못했고, 빅터의 동생 윌리엄을 죽이고 그의 주변 사람들을 죽였지만 스스로 그것이 잘못이라고 뉘우치지는 않았다. 나는 어쩌면 이것이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괴물의 창조자이자 어머니와 아버지 같은 존재인 빅터가 그 모든 것을 책임지고,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빅터가 괴물을 보고 놀라 도망치지 않았더라면 빅터의 동생이 죽고,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이 책은 깊게 생각해보면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욕망의 결과를 깨닫게 되었고 인간의 편견과 모순에 대한 비판도 느낄 수 있었다.
기뻐하는 님. 책을 면밀히 읽고 시간 흐름에 의문을 품으며 그 의문을 풀어간 과정이 흥미로웠습니다. 기뻐하는 님의 의문 덕분에 우리반에서 이 작품에 대해 더 깊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생각의 물꼬를 틔어준 기뻐하는 님에게 감사를 보냅니다. 이 작품을 통해 욕망, 편견, 모순에 대해 생각했다니 훌륭합니다. 그동안 많이 성장했어요. ^^
슬기로운 민시은
공동학습 시간에 몰입독서를 하며 프랑켄슈타인의 나머지 부분을 다 읽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었지만 마지막 결말을 보고나니 왠지 모를 허무함과 회의가 몰려왔다.
사람들은 늘 신의 영역에 도달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 것 같다. 성경에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기 때문에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었고, 바벨탑을 쌓아 하나님께 도전하려 한다. 이 책의 주인공 빅터 프랑켄슈타인 역시 새로운 생명체, 자신보다 월등하게 뛰어난 인간을 만들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실험을 감행한다. 하지만 그가 창조해낸 것은 인간의 돌연변이에 가까운, 거대하고 흉측하게 생긴 괴물. 즉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프랑켄슈타인이었다. 그는 자신이 창조해낸 끔찍한 괴물을 버리고 도망치지만 결국 그에게 붙잡혀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나둘씩 잃게 된다.
애초에 빅터가 실험을 하지만 않았어도 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책에서 빅터는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의도는 악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괴물 역시 마찬가지였다. 빅터의 동생과 동생의 약혼자, 빅터의 아내와 어린아이까지 제 손으로 죽이면서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자신의 아버지인 빅터가 그에게 양심, 선과 악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양심을 모르는 괴물이나 자신의 행위가 잘못됨을 알면서도 정당화하는 인간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인간의 의도가 선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악한 결과를 가져온다면 그것은 인간의 욕망인 것 아닐까? 어쩌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했던 빅터의 모습이 괴물과 같았고,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고자 했던 괴물이 더욱 인간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분명한 것은 겉모습은 모든 것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만약 괴물이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준 노인과 살았더라면 괴물은 나은 삶을 살지 않았을까 싶었다. 때로는 눈을 감아야 더 잘보이는 법이기 때문이다. 많은 질문거리를 던져주는 책이었던 것 같다.
슬기로운 님. 선과 악, 욕망에 대한 생각이 의미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그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장 9절. 선함 역시 하나님께 달려있기에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삼아야 바른 길로 인도받을 수 있을 거예요. 때로는 눈을 감아야 더 잘보인다는 말은 위의 기뻐하는 님의 '편견, 차별'과 연결해 의미지을 수 있습니다. 수업시간에 더 깊이 나누어 보아요.
연구하는 정재훈
이번주 책은 메리셸리의 유명한 SF소설인 ‘프랑켄슈타인’ 이다.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소재는 여기저기에서 흔히 들을 수 있다. 우리는 보통 프랑켄슈타인 하면 머리 양쪽에 못을 박아둔 괴물을 생각하는데, 사실 원작에서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이 아닌 괴물을 만든 박사의 이름이다. 원작에서는 괴물의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어찌됐든, 프랑켄슈타인의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친구인 헨리와 함께 잉골슈타트라는 대학이 있는 도시로 떠나게 되고, 그곳에서 빅터는 생물학을 공부한다. 왜 하필 생물학이냐, 그 이유는 빅터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빅터는 생명에 관해서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어렵게 교수 한명을 설득해 강의를 듣고, 공부에 엄청난 열정을 보이며, 자신만의 실험실도 만들게 되었다. 하지만, 빅터는 공부하면 할수록 점점 이상한 것에 눈이 뜨기 시작했고, 곧이어 생명을 창조해 내기로 한다. 몇날 몇일을 화학공식만 붙들고, 마침내 찾아낸 공식을 통해 실험을 시작했고, 자신의 살점을 도려내는 아픔까지 감수하며 실험을 진행했다. 그것이 바로 괴물의 탄생이였다. 하지만 프랑켄슈타인은 그 과정을 보지 못하고 쓰러졌고, 다행히 헨리의 도움으로 4일만에 깨어나게 됬다. 10일정도를 더 쉰 후, 빅터가 실험실에 다시 갔을 때 드디어 빅터와 괴물이 만나게 되었다. 빅터는 너무 놀라 칼로 괴물의 손을 찌르고 헨리에게로 도망쳐 휴식겸 여행을 가게 되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때는 이미 괴물은 탈출했고, 동생도 살해당했다. 후에는 괴물이 결국 복수를 다짐해 헨리, 엘리자배스까지 살해해 빅터는 평생을 괴물을 쫓다 결국 사망하고 만다. 줄바꿈 마지막 장면을 보면 죽은 빅터에게 괴물이 지금까지의 일을 사과하려다 하지 못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는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책에서 이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서로를 너무나도 증오하지만, 결국 서로는 아버지와 아들과 마찬가지인 셈인데, 마지막에서야, 빅터가 죽고 나서야 비로소 화해를 하려는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안타까우면서도 감동적이였다. 참 오묘한 감정들을 담고 있는 책인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연구하는 님. 줄거리를 자세히 정리해 주셨어요. 짝짝. 이 정도 줄거리라면 감상은 더 길어야합니다. ^^ 연구하는 님의 말처럼 원작에서는 박사인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의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았죠. 자신이 만든 피조물의 존재를 부인하며, 피하기만 하다가 서로를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모습에서 우리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사실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둘의 관계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끄집어 낸 부분이 좋습니다. 더 나아가 뒷 부분에 둘의 관계를 깊이 다루었다면 더 풍성한 감상이 되었을 듯합니다.
자신있는 김준호
프랑켄슈타인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인 SF라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굉장히 재미있었다. 이 책의 줄거리를 잠깐 소개하자면 프랑켄슈타인이 동물이 전기를 통해 잠깐의 움직임을 보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기로 사람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궁금증이 생기게 되었고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살점을 떼어 실험을 했고 그 결과 괴물을 만들게 되었다. 하지만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이 흉측하게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도망치게 되었고 다른 곳으로 가게 된다. 하지만 그 괴물이 프랑켄슈타인의 사촌을 죽이고 그 괴물이 자신의 동반자를 만들어 달라고 하였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모든 주변인들을 죽이게 된다. 그리고 프랑켄슈타인은 지친 나머지 병에 걸려 죽게 된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사람을 만들려고 노력해도 절대로 우리가 생명을 탄생시키지는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만이 생명을 불어넣어 주실 수 있으시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뛰어넘지 못하는 것이고 하나님과 동등하게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을 우리가 해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언젠가는 저런 괴물이 탄생할 수도 있는 것이고 결국에는 바벨탑과 같지 모든 것이 다 무너질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생명을 창조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하나님이 만드신 섭리를 깨트리는 행위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을까 싶다.
자신있는 님. 하나님의 자리에 결코 오를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인데 인간은 아담과 하와 때부터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어리석은 모습으로 살고 있네요.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노력을 바벨탑으로 연결한 점도 좋습니다. 지난 주에 이 원고를 가지고 함께 교정을 보았는데요, 그것을 참고해 다시 한번 교정하셔야 합니다. 이런 훈련이 좋은 문장을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