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시샘이 남아 있지만 경북 울진의 동해바다와 숲은 봄기운으로 가득합니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바람에 실려오는 기운은 따듯하고 포근합니다. 이번 여정의 주제는 봄입니다. 쪽빛 동해바다를 따라 달리는 울진 관동팔경길이 그 하나입니다. 길은 파도와 솔숲, 바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들로 한없이 아름답습니다. 쭉쭉뻗은 금강송이 위용을 자랑하는 숲에 자리한 불영사와 불영계곡이 또 하나입니다. 오동통 쫄깃쫄깃 살 오른 대게와 붉은대게(홍게), 문어, 줄가자미 등 봄맛도 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뿐인가요. 후포항 등기산 스카이워크는 바다위를 걷는 길입니다. 투명한 유리 아래로 푸른 동해바다를 볼 수 있어 바다 위를 걷는 묘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성류굴과 온천욕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눈도 즐겁고 입도 즐거운 울진으로 이른 봄맞이 여정을 떠나봅니다.
봄을 보다-해파랑길 관동팔경코스를 달리면 봄이 따라온다
울진의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봄은 어느새 다가와있다.
해파랑길은 동해를 박차고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친구삼아 걷는다는 뜻을 지녔다. 부산 오륙도에서 시작해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장장 770㎞나 이어져 있다. 이중 울진 구간은 23~27코스로 78.3km에 이른다. 동해안의 절경과 바닷사람들의 굴곡진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관동팔경길은 울진군 산포리 망양정에서 평해읍 월송정에 이르는 25km 구간이다. 동해의 절경을 따라 이어지는 관동팔경길은 일상에 치여 살아가는 이들에게 소박하고 아늑한 소항의 풍경이라는 눈부신 선물을 건넨다.
망양정은 왕피천이 동해와 합류하는 망양 해수욕장 부근 언덕에 있다. 망양정 회식당 바로 옆 계단을 따라 솔숲에 굽이굽이 올라서면 날듯이 정상에 자리한 망양정의 자태가 펼쳐진다. 정자에 오르면 주위 송림에 둘러싸인 언덕 아래로 바다로 흘러드는 왕피천의 모습과 망양 해수욕장의 백사장 그리고 망망대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옛날부터 해돋이와 달구경을 하는 곳으로 유명했다.
망양정에서 내려오면 산포4리에서부터 해안길이 시작된다. 바다에는 거북바위와 촛대바위 등 다양한 형태의 바위가 있고 맞은편 낮은 지붕의 마을이 정겹게 자리하고 있다.
평해중학교 뒷담길을 따라 돌며 만나는 근사한 숲은 평해 황씨의 문중숲이다. 울창한 소나무와 정자, 그리고 잘 가꾸어진 연못이 있다. 작은 휴게소에서부터 월송정길이 시작된다. 입구에 선 중건비를 지나 월송정에 오른다. 아래로 소나무가 있고 멀리 바다가 보인다. 조상들의 이야기가 묻어있고 추억을 담아내던 시간들이 멈춰져 있다.
관동팔경길 중 하나인 월송정의 앞바다
정자에 앉아 걸어온 바닷길을 그려본다. 바다와 나무와 바람이 들려준 이야기들이 오롯이 눈앞을 지나간다. 월송정앞 백사장에는 이른봄을 즐기는 사람들이 밀려오는 파도에도 즐거워 한다.
봄을 담다-초록기운에 깨어난 불영계곡과 금강송 어우러진 불영사
불영사는 경주 불국사의 말사로 조계종 제11교구다. 651년 신라시대인 진덕여왕 때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현재는 비구니 스님이 수행하는 사찰이다. 일주문을 지나 쭉쭉 뻗은 금강송과 바위산이 어우러진 절경을 감상하며 1km쯤 걷다 보면 불영사에 도달한다. 이 길은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관광지 99곳'에 포함됐다.
연못에 비친 불영사가 고즈넉하다
불영사 입구엔 마치 거울처럼 불영사 풍경을 비추는 연못이 자리한다. 이 연못에 부처 형상의 바위 그림자가 연못에 비친다고 해 불영사라 불리게 됐다.
대웅전 입구에 거북이 두 마리가 목을 내어놓고 있는데, 몸통이 대웅전 내부 천장에 작은 형태로 들어가 있다. 불영사가 하도 화재로 소실되기가 빈번하자 거북으로 화기를 누르려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두었다. 그래도 화재가 계속되자 대웅전 내부에 몸통을 넣었다. 희한하게 몸통이 자리한 이후로는 불이 나지 않았다.
겨우내 얼었던 불영사계곡이 봄기운에 잠을 깨어났다. 한 여행객이 계곡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불영사를 나와 불영사계곡으로 간다. 불영사 계곡은 근남면 행곡리에서 금강송면 하원리까지 15㎞에 이르며 기암괴석과 맑은 계곡물이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한다. 지난 79년 명승 제6호로 지정됐으며 피서지로, 드라이브 코스로도 인기가 높다. 계곡이 한눈에 보이는 두곳의 전망대(불영정 선유정)를 비롯 의상대, 부처바위 등 눈과 카메라에 담고싶은 절경이 가득하다.
수직으로 일어선 절벽 사이로 봄기운에 깨어난 계곡물이 우렁찬 소리를 내며 흘러간다. 군데군데 세워놓은 정자나 휴게소에 가면 웅장한 협곡을 굽어보는 맛이 훌륭하다.
봄을 먹다-살 오른 대게와 붉은대게, 문어, 줄가자미회 등 봄맛가득
제철맞은 울진대게가 가마솥에서 먹음직스럽게 익었다.
쫄깃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인 대게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곳이 후포항이다. 국내 최대 대게 주산지인 이곳은 해마다 2~3월이면 대게를 맛보려는 이들로 북적인다. 올해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축제는 취소됐다. 하지만 겨울추위에 맛을 키운 대게는 통통하게 살이 올라 미식가들을 유혹하고 있다.
대게는 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다. 몸통에서 뻗어 나온 8개의 다리 마디가 마른 대나무를 닮아 대게라고 불린다. 울진대게의 고향은 후포항에서 동쪽으로 23㎞ 떨어진 왕돌초 일대다. 바닷속에 왕돌초로 불리는 거대한 암초가 있다. 사실 울진대게든 영덕대게든 다 여기서 잡는다.
대게는 찜통에 통째로 쪄내거나 탕으로 먹는다. 대게는 열을 가할수록 살이 질겨지고 짠맛이 강해져 단순한 요리법인 쪄서 먹는 게 좋다. 후포항 왕돌회수산에선 전통가마솥에서 쪄내는 대게와 홍게로 유명하다. 특히 주인장의 넉넉한 인심과 정직함에 한 번 찾은 고객은 평생고객으로 남는다. 가마솥에서 쪄낸 맛은 일반 찜통에 쪄낸것보다 감칠맛이 더있다. 쟁반에 수북이 쌓아놓은 대게 다리 하나를 떼어낸 후 마디를 부러뜨려 당기면 껍질 속에서 반들반들한 하얀 속살이 나온다.
게 몸통부분은 참기름 몇 방울 떨어뜨려 뜨끈뜨끈한 밥과 비벼 먹으면 별미 중 별미다. 붉은 대게로 불리는 홍게도 있다. 살이 오른 홍게는 대게 못지않게 맛이 좋아 미식가들로부터 인기가 높다. 지난해까지 홍게는 대게의 절반가격에 먹을 수 있었지만 올해는 홍게값이 많이 올라 대게와 비슷해졌다.
울진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은 후포 등기산 스카이워크
대게 말고도 문어숙회와 자연산 줄가자미회도 이맘때 꼭 맛봐야 한다. 바닷속 신선함이 입 안으로 들어올 때 그 맛은 한 마디로 '감동'이다. 후포항에서 대게를 먹고 커피 한 잔 생각난다면 등기산 스카이워크 아래 해안도로에 있는 '커피 한모금'을 추천한다. 노랑해바라기가 그려진 빨간색 트레일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귀맑은탕, 문어숙회, 줄가자미회, 비빔짬뽕, 해산물, 대게다리를 쪄서 말린 해각포(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죽변항의 부두즉석횟집에선 맑은 아귀탕을 내놓는데 뽀얀 국물이 비리지 않고 감칠맛이 난다. 또 죽변 재래시장에 자리한 '제일반점'은 최근 울진에서 가장 유명한 중국집이다. 오징어, 양파 등의 야채를 고추기름과 함께 볶아낸 양념을 면이나 밥 위에 얹어 먹는다. 호불호가 있지만 적당히 맵고 자극적인 맛이 끌린다. 망양정회식당의 해물칼국수는 홍합과 조개, 그리고 사람당 한 개씩 가리비를 올려준다. 말 그대로 봄바다를 냄비 안에 오롯이 담아냈다.
여행메모
가는길 :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풍기IC를 나와 36번 국도를 타고 영주와 봉화를 거치면 울진 서면이 나온다. 여기서 불영계곡을 지나면 후포항이 가깝다. 영동고속도로 강릉에서 동해고속도로를 이용해 7번 국도를 타면 후포읍까지 바로 갈 수 있다. 상주-영덕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볼거리 : 기암괴석을 관찰하는 재미가 솔솔한 성류굴(사진)을 비롯해 후포항의 랜드마크인 등기산 스카이워크, 왕피천, 금강소나무길, 백암,덕구온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