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 나그네 연길 안까이
산지니시인선 021
박태일 시집
쪽 수 : 296쪽
판 형 : 127*188 / 양장
ISBN : 979-11-6861-188-7 03810
가 격 : 17,000원
발행일 : 2023년 11월 3일
책 소개
연변살이 고투에 바치는 그리움과 추억의 걸음걸음,
연변에 터를 닦은 이들의 삶을 시에 녹이다
지역에서 소외되었던 문학 전통을 되살리는 연구를 이어 온 박태일 경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의 일곱 번째 시집 『연변 나그네 연길 안까이』가 출간되었다. 『옥비의 달』 이후 9년 만에 출간되는 이번 시집에는 연변을 소재로 한 101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국내 지역뿐만 아니라 몽골, 도쿄, 중국 연변 등 재외지역 문학 연구에도 힘써 온 저자는 북한 문학 관련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연변에 오고 간 20여 년의 세월 동안 그곳에서 보고 느낀 바를 이 시집에 담았다. 1991년 처음 연변 땅을 밟은 저자는 그 이후로 심도 있는 북한 문학 연구를 위해 부지런히 연변을 오갔다. 2015년 연변에서의 연구년을 보내고, 이후 틈틈이 연변을 찾으며 북한 문학 연구를 지속해 온 것이다.
시인은 ‘연변 나그네 연길 안까이’라는 제목이 가리키는 것처럼 연변으로 이주하여 오랜 시간 그곳에 터를 두고 살아온 나그네(남편)와 안까이(아내), 즉 연변 땅의 평범하고도 소박한 주변 사람들의 삶을 따스한 시선으로 포착해 내었다. 작품에서는 연변 체류 기간 동안 시인이 실제 다녔던 헌책방, 수상시장 국밥집, 부르하통하(연길 시를 가로지르는 강변) 등이 등장해 생생한 연변의 풍경을 그린다.
시인은 연변을 고향으로 둔 이들이 겪은 고투와 비통에 죄책감을 느끼며 그 빚진 마음을 시로 풀어냈다. 시집은 총 다섯 개의 부로 구성되어 연변 사람들의 일상부터 연변의 역사유적지, 항왜투사, 조선족 이민사 등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흐르고 있는, 연변 사람들이 겪어 온 역사의 줄기를 훑는다.
이번 시집은 재중겨레 문학사회의 비평가인 전임 연변대학교 김관웅 교수가 풀이를 덧붙임으로써 박태일 시인의 작품을 폭넓게 이해하도록 돕고, 국내 독자에게 다소 낯설 수 있는 연변 지명과 역사를 일러준다. 연변 사람들의 정체성을 품은 역사는 이제 시인이 써내려간 그리움과 추억의 옷을 입고 우리 곁에 자리한다.
유적지에서 회억하는 역사 속 ‘그날’들
부여, 옥저, 고구려 그리고 발해까지 지금의 연변 땅에는 한국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묻혀 있다. 그중에서도 시인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발해 역사를 회고한다. 발해 제3대 문왕의 딸 정혜 공주의 묘소를 찾은 시인은 “정혜 열여덟 스무 살 즈음에는/어떤 그리움에 뒤척였을까”(「정혜 공주와 거닐다」) 자문한다. 또 “1922년부터 1945년까지 크작게 다섯 차례나 왜놈들 손을/탔다”는, “찌그러진 깡통같이 차이는”(「중경성 엉겅퀴」) 발해 옛 도읍의 모습은 후대에게 발해 역사의 한 파편을 전해 준다.
한국이 국권을 강탈당했던 시기, 연변은 광복 운동의 성지였다. 연길 마반산에서 시인은 “장군”이자 “초인”으로 이름 떨친 “구미 선산에서 태를 받아 1942년 초여름/만주벌에서 숨을 지운 서른셋”(「마반산을 달리다」)의 독립운동가 허형식을 떠올리고, “왜놈 영사관에 끌려가 눈알을 뽑히고 간까지 잃은 뒤/그 참상에 양잿물로 숨을 끊은” 항왜투사들을 “핏빛 노을의 흑점”(「잠자리 날아 나온 곳」)의 기억으로 추모한다.
연변 이민자가 풀어놓는 생애 굽이굽이
1860년대부터 1930년대 초반에 걸쳐 일본은 만주를 중국 관내의 병참 기지로 삼기 위해 한반도로부터 대량의 “개척민(开拓民)”을 들여왔다. 그러나 “말이 좋아 개척이지/항왜 반만 광복군 기세 싸그리 태우고 지우기 위해/엮고 처올린 이른바 개척민 마을”로 이민 와 낯설고 물선 연변 살이는 녹록지 않다. “고향이 그리워 울고 배가 고파 울고/약 한 첩 침 한 번 써보지 못한 채 죽은 핏줄 상여에 실어/보내”는 “타향살이 설음”(「깽그랑 깽깽 문 여소」)을 농악과 탈춤으로 잊어 보기도 한다.
한 개척민은 연변 조선족으로서 연변 땅에서 살아온 세월을 구구절절 소상히 읊는다. 이들은 “박달나무도 쩍쩍 갈라지는 추위”에 “1947년돈가 1948년도에는 장질부사”를 겪고, “1950년 6월 25일에 조선전쟁”이 터지기도 앞서 “벌써 조선에 다 나가 매복해” 동족상잔이라는 비극마저 겪는다. 굶주림과 전염병,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이제 나이가 들어 ‘조선’이 아닌 ‘한국’을 오가며 지난 세기 고난을 기구한 운명 아래 덮어둔다. “아버지는 여기서 산소 내고/우리는 이제 묘 안 써/날리삐야”(「내가 지은 옥수수는 고개 치벋고」)겠다는 조선족 사내의 말에서, 뼛가루처럼 그들의 역사 또한 훗날 흩어져 없어지고 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가 깃든다.
조선바람 한국바람, 정체성과 유대의 끈
1960년대 초반부터 중국의 조선족 사이에서는 이른바 ‘조선바람’이 크게 불었다. 당시 대약진 운동과 농촌의 집단 농장화 등으로 먹고사는 것이 힘들어진 이들은 조선으로 건너와 장사를 하고, 학업에 매진했으며 때로는 망명지로 조선을 찾기도 했다.
이러한 조선바람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국바람’으로 바뀌었다. 2000년대로 넘어와 한중수교 이후 거세진 한국바람에 “수원 평택으로 아들 며느리 떠나고” 중국에 남아 “두 손자 재울”(「점등」) 조부모의 황혼 육아는 연변 조선족 가족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일상이 되었다. “지금 마을에 조선 사람 마이 삽니꺼”라는 시인의 물음에 한 조선족은 “몃이 업소 다 한국 갓소”(「저 낭기 내 기요」)라며 한국바람으로 인해 공동화(空洞化)되어 버린 쓸쓸한 농촌사회를 알려 준다.
조선바람에서 한국바람으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연변 나그네와 안까이들의 생활도 변화한다. 이제는 “사드 탓에 사단이 난 걸까/서울 텔레비전 가마가 끊겼다”며 한국 방송을 보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는 이들. “와이파이만으로 한국 생방송”(「사드를 위하여」)을 챙겨 보는 그들의 정체성은 과연 중국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한국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한국 방송 시청이 일상의 활력이 된 조선족의 모습에서 연변 조선족과 모국 사이의 정신적 유대는 시간이 흘러도 녹슬지 않고 여전히 이어져 있음이 드러난다.
저자 소개
박태일
1954년 경남 합천군 율곡면 문림리 태생.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마쳤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미성년의 강」이 당선하여 문학사회에 나섰고, 『열린시』 동인. 시집으로 『그리운 주막』, 『가을 악견산』, 『약쑥 개쑥』, 『풀나라』, 『달래는 몽골 말로 바다』, 『옥비의 달』을, 연구·비평서로 『한국 근대시의 공간과 장소』, 『한국 근대문학의 실증과 방법』, 『한국 지역문학의 논리』, 『경남·부산 지역문학 연구 1』, 『마산 근대문학의 탄생』, 『유치환과 이원수의 부왜문학』, 『시의 조건, 시인의 조건』, 『지역문학 비평의 이상과 현실』, 『경남·부산 지역문학 연구 4』, 『한국 지역문학 연구』를, 산문집으로 『몽골에서 보낸 네 철』, 『시는 달린다』, 『새벽빛에 서다』, 『지역 인문학: 경남·부산 따져 읽기』를 냈다. 그 밖에 『두류산에서 낙동강에서: 가려뽑은 경남·부산의 시 1』, 『크리스마스 시집』, 『동화시집』, 『소년소설육인집』, 『무궁화: 근포 조순규 시조 전집』 들을 엮었으며, 김달진문학상·부산시인협회상·이주홍문학상·최계락문학상·편운문학상·시와시학상을 받았다. 2020년 정년을 맞아 한정호·김봉호가 엮은 박태일 관련 비평집 『박태일의 시살이 배움살이』가 나왔다. 현재 경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이다.
책 속으로
조선족 한족 핏줄기 경계가 있기는 한 것인가
나라가 무릎을 꿇을 때마다 변강으로 월경으로
흐르다 밟혀 찢겼던 울음
산다는 일은 이리도 무심한 헛걸음인데
저물녘 쓰레기통 뒤지는
저 그늘의 행색이야말로
변강의 꼭뒤라 할까.
_「변강이라는 말」 중에서
살아 가도 죽어 가도 인연 없을
웃대 고향이지만
그 물빛 그 산천 한번 울며 섬기고 접네
울 할베 살아와 다시 만난 듯
울 할메 돌아와 다시 안긴 듯.
_「살아 가도 죽어 가도」 중에서
나는 마음속 대한사람 한 마디를 빗발처럼 세우며 자랐을
어느 소년 청년을 생각하니
인민공원으로 소돈대로 오르는 길은 한달음이나
내려서는 길은 어느새 한 세월이다.
_「나는 마음속 대한사람」 중에서
두만강이라거니
콩이 잘돼 콩이 넘치는 강이라는 뜻인가
콩밖에 될 게 없는 땅이란 뜻인가
너머 넘어온 사람 얼마든가 두만강
먹을 게 없어 넘고
나라 빼앗겨 남 땅에 살 수 없어 넘고
먼저 넘어온 핏줄 만나러 넘고
_「용을 낚는 사람들」 중에서
차례
시인의 말 하나
제1부
밤기차 | 보시 염소 | 조양천 | 개산툰 구월 | 굼벵이는 굼벵이 | 점등 | 모녀 | 근들이술 | 굴뚝은 이긴다 | 련화와 제비 | 흥안 진달래 | 바키 | 하늘 걸음 | 감기에 몸살 | 노래 다리 | 변명 | 눈그림자 | 연길은 영결이다 | 입추 | 이른 봄
제2부
부암촌 바라보며 | 소영진 종점 | 변강이라는 말 | 이면주 | 유리창 | 입추 온면 | 사드를 위하여 | 하늘 다리 | 진주도 정가라니 | 달라지지 않는 것 | 감자전 | 신촌 봉선화 | 살아 가도 죽어 가도 | 류순기 | 막걸리 | 깽그랑 깽깽 문 여소 | 귀향 | 내가 지은 옥수수는 고개 치벋고 | 명태는 찌고 | 마반산을 달리다
제3부
연길 아다다 | 도서관 | 도서관 공놀이 | 홍옆은 떠다닌다 | 소탕 개탕 | 천녀 분녀 | 헌책방 | 병풍산 | 석현진 | 콩나물은 | 팔도에서 | 팔도천주교당 | 두만강 내려다보며 | 진달래식당 | 방천 | 회룡봉 옥피리 | 근황 | 갈아타기 | 왕청 | 호객 | 붕우가
제4부
오그랑죽 | 돈화 메뚜기 | 정혜 공주와 거닐다 | 이도백하 | 두만강 두만강 말 마라 | 나는 마음속 대한사람 | 우리 오늘 사긴 지 한 달 | 로인 아파트 로인 모집 | 심장병에 강복 | 풍습골병에는 | 사나이 격정 웨치라 | 내 삼 년 된 당뇨병 | 광제산 | 여러분에게 | 아침시장에서 | 설뫼 한 바퀴 | 부르하통하 | 룡정 종점 | 잠자리 날아 나온 곳 | 연길역 | 자진모리 까치 | 려산
제5부
돌솥밥 | 화룡에서 흰술을 | 손벌초 | 중경성 엉겅퀴 | 불 꺼진 창에 | 저 낭기 내 기요 | 머리카락 | 산조 저 김좌진의 딸 | 콩콩 | 취나물 | 사과배 | 연길 | 동행 | 양반다리 | 용을 낚는 사람들 | 섬 | 아침 | 두만강 건너온 레닌
풀이: 시로 쓴 연변실록-김관웅(문학평론가)
붙임: 연변 시집을 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