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니 춘곤증이겠지, 얕보다가 큰병나요
요즘같은 봄철에는 견디기 힘든 게 있다. 바로 피로감이다. 낮은 낮대로 피곤하고, 밤은 밤대로 힘겹다. 이런 징후가 나타나면 흔히 춘곤증을 떠올린다. 그러나 일시적인 환경부적응증을 뜻하는 춘곤증과 만성피로증후군은 증상이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르다. 만성피로증후군은 한마디로 아무리 용을 써도 떨치기 어려운 피로감이 지속되는 질환이다. 이 때문에 일상에서의 집중력이 떨어져 업무 효율이 낮아지는가 하면 각종 안전사고를 초래하기도 한다.
# 만성피로증후군은
충분한 휴식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는 피로감과 무력감, 우울감 등의 증상이 6개월 이상 지속되면 만성피로증후군으로 본다.
일상적인 피로는 휴식을 취하면 쉽게 회복되지만 만성피로는 휴식을 취해도 피로증상이 사라지지 않고, 두통·수면장애·근육통·우울증·과민성 대장증후군·알레르기 같은 신체 증상이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원인은 다양하다. 먼저, 신체적 질환이다. 수개월 동안 피로감이 계속된다면 당뇨나 갑상선질환·간질환·신장질환·종양·감염증·심혈관질환 등이 있는지 검진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또 스트레스가 누적되거나 흡연과 음주·운동부족·환경오염에 의한 중금속 축적·호르몬 및 영양 불균형 등이 원인일 수도 있다. 이 중 호르몬 분비가 비정상적이면 스트레스가 가중되어 피로감 등 다양한 질환이 생길 수 있다. 특히 남성호르몬인 안드로겐의 수치가 낮거나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의 농도가 비정상적일 때 만성피로를 겪기 쉬우며, 여성은 프로게스테론 수치가 낮으면 우울증상 및 피로감이 심해질 수 있다.
또 다른 원인은 간 손상이다. 만성피로의 20% 정도가 간 때문에 생긴다. 간은 정맥(간문맥)을 통해 들어온 혈액 속 노폐물을 걸러 분해하는데, 간 기능에 이상이 있으면 피로물질이 제대로 분해되지 않아 만성피로가 나타난다. 만성 간염 환자가 금방 피로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간 수치만으로 만성피로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갑상선 기능 이상도 만성피로를 부른다. 갑상선 기능항진증은 체내 에너지를 너무 빨리 소진시켜서, 기능저하증은 몸에서 생성되는 에너지 자체가 모자라서, 만성피로의 원인이 된다.
심신이 피로감을 느끼면 부신피질에서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분비돼 신체를 보호한다. 따라서 정상적인 신체를 유지하려면 충분한 수면과 적절한 영양을 섭취해 부신이 건강하게 해야 한다. 스트레스가 지속돼 부신이 과도하게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하면 불안감·불면증·면역력 저하로 인한 염증 및 알레르기 반응 등이 나타나는데, 여기에 다시 스트레스가 가해지면 부신의 기능 회복에 문제가 생겨 더 이상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분비되지 않게 되고, 덩달아 세포의 기능이 떨어지면서 피로감·두통·근육통·우울·불안·수면장애·소화장애·알레르기·관절통·생리불순과 잦은 염증 등의 증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나 만성적으로 지속된다. 이 단계를 만성피로 상태라고 본다.
# 얼마나 많은가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대개 10% 정도의 높은 유병률을 보이며, 이 중 30∼40%는 다른 원인질환을 갖고 있다. 젊은층에도 만성피로를 겪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직장인들의 경우 10명중 7명꼴로 만성피로를 앓는 등 높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한 조사결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경쟁 사회 속에서 과도한 업무로 인한 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만성피로증후군은 남자보다는 여자에서 높게 나타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최근 만성피로증후군 환자를 조사했더니 여성이 15만1,735명으로 남성(10만2,289명) 보다 48.3%나 많았다.
특히 여성의 만성피로증후군은 세대별 원인에 뚜렷한 차이가 있다. 40대 이상 여성이 경험하는 만성피로는 집안일이나 육아, 가족관계 등으로 생기는 스트레스성이 대부분이다. 이에 비해 20대여성이 겪는 만성피로는 심한 다이어트나 불규칙한 식사 때문에 생기는 비타민 미네랄 부족 같은 영양상태 불균형이 주원인이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문진과 함께 혈액검사와 엑스선촬영을 통해 다른 질환을 가졌는지를 점검한다. 여기에서 특별한 이상이 없으면 전자체액분석검사(ECS)와 타액 호르몬검사로 부신 상태를 파악하는 한편 세포 영양과 대사상태, 에너지 상태를 점검, 인체의 균형상태를 확인해 진단한다.
만성피로증후군은 대체로 몸의 불균형 상태가 오래 지속되므로 단시간에 치료 효과를 보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의사와 상의해 스트레스 관리와 영양 및 호르몬의 균형 유지, 잘못된 생활습관 교정 등 복합적인 방법을 일상적으로 잘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 바람직한 관리는
만성피로를 완화하려면 피곤하게끔 짜여 있는 근무 행태, 건전하지 않은 생활습관, 우울하거나 불안한 심리 상태와 만성적인 스트레스 등 현재의 환경을 바꾸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항상 피로한 사람은 검사를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평소 생활습관을 곰곰이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만성피로환자 중에는 수면습관이나 직업상의 이유 등으로 수면시간이 절대 부족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업무상 접대 등을 이유로 이틀에 한 번 이상 술자리를 갖는 습관, 지속적인 흡연도 피하는 것이 좋다.
남성들은 보통 30대 초반까지, 여성들은 출산하기 전까지는 최상의 건강을 누리기 때문에 잦은 음주, 흡연 등 나쁜 습관에도 별 피곤함 없이 지내올 수 있었으나 나이가 들수록 피로감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술 마신 다음 날 점점 깨기가 어렵고 휴일엔 아무리 늦잠을 자도 피곤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육체적인 업무의 강도가 낮더라도 스트레스가 많고 걱정거리가 있어 늘 긴장하고 있다면 심한 피로감이 오기도 한다. 또 이 같은 환경이 육체적인 과로나 나쁜 습관과 어우러지면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만성피로 탈출은 물론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건강을 지키려면 어렵더라도 매일 약간씩의 운동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아파트를 한 바퀴 뛰거나 집에서 윗몸일으키기 등을 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직장에서 받는 어쩔 수 없는 스트레스는 이미 정해진 근무 시간의 환경이기때문에 본인이 바꿀 수 없는 것이지만 스스로 개선할 부분은 교정하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주변에는 피로회복을 위해 비타민제나 각종 영양제를 맹신하는 이들도 많다. 물론 평소 앓고 있는 병이나 임신ㆍ흡연ㆍ다이어트 등 내 몸의 상태에 따라 적절히 선택하는 것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비타민을 지나치게 자주 복용하면 인체가 항상성을 유지하려고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이준규 의학칼럼니스트· 보건학박사
만성피로 예방법
만성피로 예방에는 충분한 휴식과 수면이 기본이다. 최근 영국 워릭대학의 프란시스코 카푸치오 박사는 “하루 적정 수면시간은 7시간이며, 수면시간이 6시간에 못 미치면 심장병과 뇌졸중에 의한 사망률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또 햇볕을 쬐며 산책을 하거나 간단한 식후 산보, 어깨나 허리·등 근육을 풀어주는 스트레칭도 혈액순환을 도와 피로감을 덜어준다.
식생활에서는 무엇보다 제철 음식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봄에는 인체의 신진대사가 활발해지면서 비타민 소모량이 늘기 때문에 냉이, 달래 등 비타민이 많은 봄나물을 충분히 먹어주는 게 좋다. 비타민A가 많은 냉이는 피로감 회복을 돕고, 달래는 숙면에 도움을 준다.
미역·다시마 등 미네랄이 풍부한 해조류도 피로회복에 좋다. 커피 등 카페인 음료 대신 전통차를 권한다. 구기자차에는 피로회복에 좋은 비타민과 필수 아미노산이 많고, 매실차에 들어있는 구연산은 피로물질인 젖산 배출을 도와준다. 과음과 흡연, 인스턴트식품이나 탄산음료는 가능한 한 피하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