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상수역>새빛문화숲(구 당인리발정소)>토정 사잇길>절두산(잠두봉)>가톨릭순교성지>박물관>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역>합정역
마포새빛문화숲(옛 당인리발전소)우리나라 전기산업의 산 역사인 서울화력발전소는:한강에 황토돛배가 오가던 시절인1930년 1호기가 우리나라 최초의 화력발전소로 준공되었다.서울화력발전소는 발전 시 발생하는 증기를 이용하는 열병합발전을 통해 여의도와 동부이촌동, 마포, 반포지역 일대 5만여 세대에 난방열과 온수를 공급하여 개별난방에 따라 발생하는 오염물질 감소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설치된 지 오래되어 노후화된 서울화력발전소는 또 한 번의 대변신을 준비하고 있다국내 최초로 지하800MW급 복합화력발전소를 건설하고,현재의 지상발전소부지에는 시민의쉼터인 공원과 문화창작발전소가 건립되었다
토정 이지암은:조선 중기의 학자이다.본관은 한산호는 수산혹은 토정이며시호 문강이다 신년 초면 누구나 한번쯤은 재미로라도 보게 되는 토정비결을 지었다.마포 강변에 흙으로 언덕을쌓고 아래에 굴을 파서 거처를 하고 위에는 정사를 지어 토정이라고 했는데 평생을 청빈하게 살았다고 한다.마포대교북단의 용강동 마포 유수지 부근이 토정 선생의 집터인데 토정 선생은 자기가 살던 집터가 나중에 주차장으로 변하게 될 것을 알았을까?선생의묘소는 충청남도 보령시주교면에 있다
절두산 순교성지는:한국 천주교회를 대표하는 순교 사적시로 1865년 농인박해 당시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에서 순교하였다.병인박해로 9명의 프랑스 선교사들이 순교하자,이에 대한 업을 등생하며 노랑스함대가1866년9월과 10월에 조선을 침범하였다.조선 정부는 프랑스 함백와의전 후 천주고 신자 들을 이곳에9월과10월에 조선을 침범하였다.조선 정부는 프랑스 함백와의 전 후 천주고 신자 들을 이곳에서 주로 처형하였다.그 이유는 프랑스 함대가 거슬러 올라왔던 한강의 양화진 에서 신자들을 처형함으로써,프랑스 함대의 조선 김밥 책임을 신자를에게 돌림과 동시 에 그 본보기를 보이려 한 것이다.그로 인해 수많은 유명 무명 진자들이 치형된 양화진은 순 교자들의 목이 베어진 곳이라 하여 신자들 사이에서 절두산 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 러나 안타깝게도 이곳에서 순교한 것으로 기록상 확인된 신자수는 29명(무명5명)포함 뿐다.1956년 전국의 천주교 신자들을 대상으로 전개된 순교터 확보 운동의 결과 같은 해 12월에 이곳의 부지를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확보하게 되었다.이후1962년에는 순교 기념탑을 세웠고,1967년에는 병인박해 100주년을 맞아 순교자들의 신앙을 배우고 느끼며 고양하기 위해 이곳에 기념 성당과 박물관을 건립하였다.
1968년에는 병인박해 순교자 24위의 시부제을 맞이하여 기념 성당 지하실에 순교자 유해 안치실을 설치하였다.현재 이곳에는 순교성인 후 27위와 무명 순교자 1위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1984년 5월 3일에는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과 103위 순교자의 시성식 시성식을 위해 한 국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곳을 찾아 한국 순교자들에게 뜨거운 경의를 표하였다.한편 1997년 11월 7일에는 성지가 위치해 있는 양화진· 잠두봉이 국가 사적제399호로 지정되 었으며,2008년 8월에는 성지내박물관의 명칭을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으로 변경하였다
: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의 역사는:조선시대 교통과국방의 요충지였기에 영조30년(1754
년)군진이 설치되었다. 조선 조정은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이 양화진까지 들어 오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이유로 이곳에서 천주교인들을 처형했으며, 그로 인해 절두산 이라는 이름도 갖게 되었다.복음이 선교사에 앞서 전해진 한반도에는,조선의 문호가 개방되고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들어온 1885년 이래 서양 선교사들이 본격적으로 입국하였다.1890년 7월 미국인 의료선교사 헤론이 사망하자 미 공사관은 조영통상수호조약에 의거하여 조선 조정에 묘지를 요구하였으며, 조선 조정은 몇 차례의 담판 끝에 한양에서 멀지 않은 양화진 인근의 땅을 제공하였다. 이를 계기로 양화진에는 외국인 묘지가 조성되었고, 해방 이후에는 주한 미군의 묘지로도 쓰였다.양화진에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복음화와 근대화를 위해 진력한 선교사와 그 가족의 묘소가 있는데, 이들은 복음전파와 성경번역, 교육과 의료 사업, 그리고 당시 조선의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했다.재단법인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재단은 1985년 경성구미인묘지회로부터 양화진 외국인묘지 소유권을 증여받았다. 재단은 양화진을 개신교 성지로 가꾸기로 결정 하고, 1986년 한국 교회 성도들과 재계 인사들의 헌금으로 선교기념관을 건립 했으며, 당시 서울유니온교회로 하여금 묘지를 관리 하면서 선교기념관에서 예배 하도록 했다.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재단은 정부와 서울시에 양화진 일대를 명실상부한 개신교 성지공원으로 조성해 줄 것을 거듭 청원하였다. 그 결과 2003년 서울시와 마포구는 개신교의 양화진외국인묘지와 천주교의 절두산성지를 아울러 '양화진성지'로 명명하고, 두 성지 사이에 양화진성지공원을 조성했다. 재단은 2005년 7월 '한국 기독교 선교100주년기념교회'를 설립하여 양화진외국인묘지와 경기도 용인의 한국기독교 순교자기념관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보존하여 명실공히 개신교 성지로 가꾸는 일을 전담토록 했다. 재단과 100주년기념교회는 마포구청과 협의 하여 이 묘원의 명칭을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으로 정했으며, 관련 규정을 정비 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첫댓글 산머슴님 후기 굿~~입니다 상세히 설명과함께 담아주셔서 오늘길 의미있는 도보를 한것같습니다 빠른걸음으로 후기 담느냐 수고많으셨습니다.
그길 이름이 토정사잇길었군요
길이름이 있는줄 몰랐어요
세세한 설명으로 한수 배워갑니다
반가웠고 수고하셨습니다
산머슴님
해설이 담긴 멋진 후기로 오늘 다녀온
길 역사를 배워봅니다.
새빛문화숲이 당인리 발전소였다는게 신기했지요.
석탄을 나르던 철길과 여리지나무~절두산 순교성지~짧지만 의미있는 걸음 뿌듯합니다. 맛있는 산머슴님표 순대와 번데기도 감사했구요.
호수님 좋은길 열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고등학교까지 용강동에 살면서도 당인리발전소를 못 가 봤는데 호수님 덕분에 잘 다녀왔어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산머슴님, 후기 감사합니다.
당인리 발전소와 절두산 성지길~
모두 처음 가본길 이었어요
산머슴님 자세한 후기 감사드리고 수고 많으셨고
호수님 덕분에 잘 다녀와습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