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요한계시록 관련 서적들이 단순히 진리를 밝히는 수준을 넘어 독자들이 읽기 쉽게
소설화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총신대학원 은퇴 교수였던 신성종 목사님이 쓴 <내가 본 지옥과 천국>이 그렇고,
송명희 시인이 쓴 <표(칩)>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신성종 목사님을 제외하고는 토마스 주남, 나OO, 송OO 님이 쓴 글들은
하나같이 <환난 전 휴거를 근거>로 진행됩니다.
처음부터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지 않고,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유익할 것입니다.
5–7 나팔 재앙들은 휴거가 어떤 재앙을 통해 어떻게 일어나는지 잘 보여줍니다.
앞 글에서 5-6 나팔재앙들을 다루었기에 간단하게 비교해 보겠습니다.
5-7 나팔 재앙들을 살펴보면, 이곳은 연결되면서도 조금은 분리해서 다루고 있습니다(계8:13).
세 개의 화 재앙으로 재앙이 매우 심각하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 다섯째 나팔 재앙 = 첫째 화 = 황충 재앙
* 여섯째 나팔 재앙 = 둘째 화 = 사람 1/3이 죽임을 당하는 재앙
* 일곱째 나팔 재앙 = 셋째 화 = 일곱 대접 재앙들(계16장)
|
다섯째 나팔 재앙
(첫째 화) |
간격 및 순서 |
여섯째 나팔 재앙
(둘째 화) |
간격 및 순서 |
일곱째 나팔 재앙
(셋째 화) |
재앙의
제목 |
황충 재앙 |
재앙이 순서를
따라서
진행됨
(9:12) |
사람 1/3이 죽임을 당하는 재앙 |
둘째 화,
셋째 화가
<서로연관>
있으며,
재앙의
간격이
매우 짧다
(11:14) |
일곱 대접 재앙들 |
재앙의
시기 |
후 삼년 반 – 적그리스도의 표를 받기 시작하는 시점으로 추정 |
재림이 매우 임박했을 때(재림 직전) |
재림이 일어나자마자 쏟아짐 |
재앙을
받는 대상 |
땅에 사는 자들(8:13)
=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않은 자들 (9:4)
= 성도들을 제외한 모든 불신자들 |
땅에 사는 자들(8:13)
= 죄악들을 회개하지 않은 자들(9:20-21)
= 성도들을 제외한 모든 불신자들 |
땅에 사는 자들(8:13)
= 깨어 있지 아니한 자들(16:15)
= 성도들을 핍박한 모든 불신자들
(16:12-14) |
재앙의
범위 |
온 세계 |
온 세계 |
온 세계 |
재앙의
결과 |
다섯 달 동안 죽지 않고 큰 고통당함 |
사람 1/3이 순식간에 죽임당함 |
영원한 형벌 받음 |
1. 나팔 재앙들이 순서를 따라 진행됩니다.
* 첫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아직도 <이 후에> 화 둘이 이르리로다(계9:12)
명확하게 나팔 재앙들이 순서를 따라 진행됨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첫째 나팔부터 일곱째 나팔 재앙까지는 순서를 따라 일어남을 알 수 있습니다.
2. 여섯째 나팔 재앙과 일곱째 나팔 재앙의 간격은 매우 짧습니다.
*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계11:14)
재앙의 간격을 이래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 곳 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두 재앙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불신자들 가운데서 사람 1/3이 죽임을 당했을 때 그들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사랑하는 자들이 죽었을 때 처음에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지만, 곧바로 분노감이 차 오릅니다.
주님의 재림으로 인한 영원한 형벌을 당하기 전, 마지막으로 회개의 기회를 준 재앙이
여섯째 나팔 재앙입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회개하지 않고(계9:20-21), 오히려 분노를 성도들에게
표출하고자 합니다(계16:12-16).
사람 1/3이 죽은 후 성도들에게 그들의 분노를 쏟아내는 시간적 간격이 매우 짧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사건이 구약성경에 교본으로 나와 있습니다.
애굽에 내린 열 번째 장자의 죽음을 같이 보았으면 합니다.
애굽인들의 통곡소리가 한 밤중에 애굽 전체에서 들립니다(출12:29-30).
처음 이들은 두려워했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떠나라고 재촉했습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나서 보니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노예들을 다 보내고 나면 누가 자신들의 일을 해 줄 것이며,
무엇보다도 자식들을 잃은 그들은 그 분노를 이스라엘에게 쏟아 붓습니다.
* 그 백성이 도망한 사실이 애굽 왕에게 알려지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그 백성에 대하여 마음이 변하여 이르되,
우리가 어찌 이같이 하여 이스라엘을 우리를 섬김에서 놓아 보내었는가 하고,
바로가 < 곧 > 그의 병거를 갖추고, 그의 백성을 데리고 갈새(출14:5-6)
애굽을 떠났지만 얼마가지 못한 이스라엘이(출14:1-4) 이제 극심한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출14:10).
여섯째 나팔 재앙 역시 그것이 끝난 후 얼마 되지 않아(속히 - 계11:14),
적그리스도와 악인들의 반격이 시작됨으로 마지막 일곱째 나팔 재앙(주 재림)으로 연결됩니다.
* 원수가 말하기를, 내가 뒤쫓아 따라잡아, 탈취물을 나누리라,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내 욕망을 채우리라,
내가 내 칼을 빼리니 내 손이 그들을 멸하리라 하였으나(출15:9)
계시록을 읽는자와 듣는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들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습니다(계1:3)
읽는 자와 듣는 자들은 깨어나서 그 말씀대로 지킬 것이기 때문입니다(계22:7)
온 세계에 임한 재앙 즉 불신자들 가운데서 1/3이 죽임을 당하는 일이 일어나면,
그 때가 성도들에게 가장 큰 핍박이 일어나는 시간이 되며,
그러므로 성도들을 구원하기 위해 주님의 재림이 곧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휴거는 성도들이 당하는 가장 긴박한 상황에서 가장 멋진 주님의 선물이 됩니다(계15:2-4, 계16:12-16, 계19:17-21)
*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출14:10)
히브리서 기자는 고난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위로합니다.
*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자기를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9:28)
첫댓글 무천년은 종말론을 정립하는데는 이론적으로 구조 자체가 상당한 약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형제님이 쓰신 무천년 안경으로는 인, 나팔, 대접재앙은 해석이 불가능 할 정도입니다
개혁주의 종말론을 완성하시려면 역사적 전천년에다 무천년의 훌륭한 영적해석등과
세대주의의 시대구분 정도는 적용 할 정도의 안목을 갖으셔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은환님은 완전한 역사적 전천년을 지지 하시는 분 같습니다
역시 세대주의의 시대구분이나 무천년의 영적해석은 배제 하시는 것 같습니다
상징을 무시하는 세대주의 문자적 해석에 치우친 나머지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 하는 분들이 간혹 있없습니다
무천년이나 세대주의 공히 인, 나팔, 대접 재앙을 제대로 해석 적용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보입니다
상징으로 봐야 할때는 문자로 보기 때문에 성경의 문자만 주장하여 어색한 촌극이 벌어집니다
성경이 의도하며 전달하는 말씀을 잘 못받아들이면서 추상적으로 흘러갑니다
형제님은 일단 개혁주의 정통신학은 역사기 전천년입니다
초대교회부터 전통으로 내려 왔습니다 역사기를 일단 정립하시고
다음 문제는 그때 저절하게 적용하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무천년은 사변주의의 사생아입니다
외국 물이 들은 합리적인 사고의 결과물입니다
또한 설교에서도 귀납법, 스토리 텔링등 아주 사변주의인 인본주의가 버려 놨습니다
개혁주의 산실인 총신신대원졸업하신 분들은 무천년이 70~80%입니다
사도 요한의 제자들인 속사도, 교부시대에서 초대교회까지 100% 역사적 전천년입니다
문헌으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영적 눈이 어두워져서 인본주의 사변신학에 묻혀서 쿨~쿨~ 잠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형제님은 잠에서 깨어나서 정도를 걸으십시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성경관을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집니다
님께서는 알던 모르시던 세대주의 전천년 성경관입니다
학계에서는 일단 세대주의는 도태되었습니다
잔존하는 지지자 정도입니다 물론 약간의 변화는 있겠지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성경적인 개혁주의는 종말론에서 무천년을 지지하여 잠들어 있기에 징조에 둔감합니다
상대적으로 세대주의가 한때 각광을 받을 때 징조에 민감 했기에 한국교회가 여과 없이 받아들인 결과입니다
이제는 각성하여 세대주의가 설 곳이 없습니다
무천년도 잠에서 깨어 역사적 전천년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렇게 안하면 종말의 반드시 속히 될 일인 계시록 시대는 그들과 무관하기 때문입니다
성경공부 모임을 한지 18년 되었습니다.
처음 몇 년간은 이렇게 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하는 마음이었는데,
한번두번 쌓이면서 더 깊이 고민하고 더 말씀을 알려고 기도했던 추억들이 떠오릅니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이런 만남이 모두에게 유익이 되길 소원합니다.
카페를 운영하며 수고하신 카페지기님과
대화를 나누는 모든 분들께 감사하며
더 귀한 용사들이 되기를 잠시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스터디 모임을 추천합니다.
조지 휫필드나 웨슬리 형제등이 활동했던 홀리 클럽은
세계적인 부흥운동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지만,
먼저 개인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터준것도
우리 신앙의 좋은 본이라 볼 수 있습니다.
형제님, 지금도 잘 하시고 계시리라 믿지만
어느 곳에 있든지 현실에 충실한다면
혼자가 아닌 두세명이라도 스터디 모임을 한다면
훗날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마저 안될 때
인터넷으로도 할 수 있으니
쉬지말고 도전 해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