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 英여왕, 18세 필립공에 빠진 순간
영국 엘리자베스2세 여왕의 남편 필립공의 젊은 시절.
여왕이 공주 시절, 해군대학 사관후보생 그리스 왕자에게
첫눈에 반한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 70년 가까이 국서 자리를 지킨 필립공
99세로 세상을 떠나자 러브 스토리가 회자되고 있다.
굴곡 없는 영국 공주와 비운의 그리스 왕자
1947년 당시 공주였던 엘리자베스2세 여왕과
약혼한 필립공의 모습.
13세의 소녀 릴리벳이 18세의 해군 장교 소개.
필립공은 불운하고 가난하게 자랐지만,
남성적 매력과 출중한 외모로 여성들의 환심을
샀다고 한다.
빅토리아 여왕 후손 어머니 앨리스 공주는 망명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정신병원에 입원 프랑스로 도망간 아버지 앤드류 왕자도 만날 수 없었다.
1935년 그리스 군주제가 복원됐지만 불안 불안한 모습이었다.
필립공은 영국 고든스턴에서 수학하며 마음을 다잡아 갔다.
1937년 누이 세실과 그 가족이 비행기 사고로 모두 사망하는
비극을 겪으면서 또 한차례 시련을 겪었다.
필립공은 왕립 해군사관학교를 거쳐 1939년 해군에 입대했다.
릴리벳을 처음 만난 것도 그 즈음이다.
해군학교에서 최고 생도로 뽑힌 그는 학교를 방문한 릴리벳 공주를
안내했다. 해군 커리어 시작을 앞두고 있었다.
英 해군서 승승장구
1950년 공주였던 여왕과 해군 중위 필립공이 춤을 추고 있다.
필립공은 21세의 어린 나이로 갑판사관 구축함의 지휘관이 됐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지중해와 태평양에서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그는 정말 사랑스러웠다 20대의 필립공을 본 호주 여성들의
반응이었다.
릴리벳은 필립에게 편지를 썼고 그에게서 답장이 오면 화장실에서
몰래 편지를 읽었다.
두 사람은 결국 사랑에 빠졌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반대를 극복하고
각각 20세, 25세의 나이로 결혼에 골인했다.
1947년 11월. 필립공은 왕실의 일원이 되면서 필립 윈저-마운트배튼,
에딘버러 공작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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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에게 姓 못 물려주는 英유일 남자"
1951년 여왕과 필립공 찰스 왕세자와 앤 공주를 안고 있는 모습.
결혼을 결정한 순간부터 필립공의 삶은 포기의 연속이었다.
그리스 왕자의 신분을 포기하고 영국으로 귀화했다.
성(姓)도 영국식인 마운트배튼으로 정했다. 해군 경력도 일찍
포기 했다.
스트레스로 쇠약해진 조지 6세가 세상을 떠나면서다.릴리벳은
1952년 엘리자베스2세 여왕으로 즉위했다.
필립공은 여왕의 대관식에서 여왕 앞에 무릎을 꿇고 신하로서
충성을 맹세했다. 그때부터 필립공은 여왕의 남자'가 됐다.
조지6세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두 사람을 걱정했다고 한다.
필립이 30세에 여왕의 그림자로 사는 게 쉽지 않은 거라 여겼다.
실제 필립공은 즉위 초기 엘리자베스 2세와 많은 일로 다퉜다.
여왕의 남자로 행동해야 하는 일 등이 짜증으로 쌓였다.
그는 친구들에게 "나는 자식에게 성을 물려줄 수 없는 유일한 남자"
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조지6세는 생전 엘리자베스 2세에게 "필립은 뱃사람 같은 사람이다.
한 번씩 파도를 탈 때도 있을 것"이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2015년 커뮤니티 대학의 현판식에 참석 모습.
직설적인 성격으로 설화를 빚기도 했지만, 70년 넘게 여왕의 곁을 지키며
의무를 다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왕에게 직설적인 조언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고, 그리스 왕실의
몰락을 본 탓에 영국 왕실의 현대화를 위해 애썼다.
무수한 행사에도 빠지지 않았다. 2017년 한 행사에 참석한 필립공은 자신을 두고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경험이 풍부한 현판 제막 기계를 보게 될 것"이라는 농담을 남겼다.
영국 왕실 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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