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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 기황후 貢女 奇皇后
“모진 비바람에 쓸리고 할퀴어 마모된 돌멩이가 더욱 야물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34
“평부사와 연제의 모략과 반역 행위는 죽어서도 갚지 못할 대역죄인 바, 그 둘에게 ‘사지거열형’을 내리시어 백성들에게 본을 보이시고 폐하의 위엄을 높이시기를 신 등은 적극 권하옵니다.”
황제는 마른기침을 삼켰다. 누명을 쓰고 죽어가야 했던 형제들과 억울하게 돌아가신 아버지, 선황제. 그로 인해 그동안 받았던 모진 압박과 고통을 생각한다면 제 손으로 직접 사지를 잘라 죽인대도 분이 풀리지 않건만. 선뜻 마음이 동하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황제가 잠시 답을 늦추는 동안 재상들의 성화가 이어졌다.
“폐하, 더는 심념하실 일이 아니십니다.”
“윤허하시옵소서.”
그리고 그들의 성화에 황제는 대답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연제와 평부사의 형 집행에 앞서 황후의 처분 역시 논해야질 않는가.”
“그 문제라면 더욱이 폐하께서 신경 쓰실 바가 없습니다.”
진 대인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옛날의 그가 그러했듯, 제자를 대하듯 한 부드러운 표정으로 황제를 보며 말을 이었다.
“외람되긴 하오나, 이미 ‘황후’라는 이름이 과분한 여인이지요. 대역죄를 지은 연제의 여식이 아닙니까.”
재상들은 차마 입에 담지 못한 단어들을 서슴없이 입에 올리는 진 대인을 향해 뜨악스런 표정을 금치 못하며 황제의 눈치를 살폈다. 황제의 표정은 그리 달가워 보이지 않았지만, 입을 열지 않은 채 듣고만 있었다.
“물론 신 등은 황후께 동등한 형을 내리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그 부분을 참작하시어 그들이 합당한 대가를 치를 수 있는 벌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참조하겠소. 그러나,”
황제는 많은 재상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황후에 대한 나의 처분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그대들에게 다른 이의가 없기를 바라오.”
“하교하소서.”
“연제와 평부사의 형은 그대들의 뜻대로 진행하되, 황후는 대도에서 가장 먼 도시로 보내 종신토록 유폐시킬 것을 명한다.”
그 후의 반응들은 황제가 예측했던 그대로였다. 잠시 술렁이던 재상들은 곧 벌떼처럼 웅성거리는 소리를 내며 황후에 관한 그의 결정이 옳지 않음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녀가 연제의 딸이라는 점을 논외로 하더라도, 황권에 대한 실질적인 야심은 그녀가 가장 컸다는 점으로 보아 동등한, 혹은 그 이상의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외쳤다. 그들은 황제가 의식불명인 동안 황후가 실권을 잡았던 것을 예로 들어가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황후에게 찾아가 꼬리를 흔든 그대들 역시 태장으로 다스리겠다고 해야 그 입들을 다물텐가.”
재상들의 입이 한 순간 다물어지며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양 서로의 눈치들만 살핀다.
“짐은 새로운 황후를 맞이하여 그와 함께 원 역사상 가장 번영하고 평화로운 치세를 펼쳐 보일 것이다. 그것을 지켜보는 것이 황후에게는 가장 가혹한 벌이 될 것이다. 이것이 짐이 선택한 벌이다.”
“하, 하오나 폐하..!”
“그들의 형에 대한 것은 이것으로 마치겠다. 이 이상 이의가 있다면 황제궁으로 독대를 청하도록.”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서야 황제의 결단에 반기를 들어 독대를 청할 배짱 있는 재상은, 현재로썬 전무했다. 황제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미간을 좁히며 한 손으로 이마를 괸다. 그리고 장내가 잦아들자 곁에 선 고 환관에게 눈짓을 보냈다. 고 환관이 내려가 정전의 문을 열었다.
“그동안 비어있었던 ‘지원’의 지위를 회복시켜 앞으로는 궁정조직과 별도로 짐의 개인적인 호위를 두기로 하였으니 그리들 알라.”
“‘이우겸’이라 하옵니다.”
주름하나, 티끌하나 없는 남빛 곤복은 그의 어깨부터 발치까지 미끄러지듯 내려오고 옷섶을 여미고 있는 두 개의 단추는 기린(麒麟)의 문양이 장식하고 있었다. 오른팔에 두른 하늘빛 완장이, 그가 무관 중에서는 여기 자리한 어지간한 문관들과 맞먹는 지위를 가졌음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허리를 굽혀 정중히 예를 갖추는 우겸을 만족스레 바라보던 황제가 그대로 정전을 빠져나갔다. 그 뒤를 고 환관이, 그리고 이어 ‘지원’인 우겸이 뒤따랐다. 어리둥절한 재상들만이 남은 정전은 잠시 그대로 고요에 빠졌다가는 활기를 되찾았다. 재상들 가운데 하나가, 모두가 그렇듯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과 어투로 진 대인에게 묻는다.
“아예 딴 사람이 되신 것 같습니다. 폐하께서 언제부터 저리 독단적이 되셨단 말입니까?”
진 대인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그러나 큰 웃음만은 어렵게 참아내며 그를 향해 말했다.
“저것이 폐하의 본 모습인 것을, 이제야 아셨소이까.”
//貢女 奇皇后//
효궁이 지나치게 술렁였다. 그도 그럴 것이, 며칠간 죄인의 몸으로 누구나가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예상했던 장본인이 돌아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반응들에 호되게 꾸지람을 놓아야 할 상궁들마저 입이 벌어질 정도의 대 사건이었다. 웅성웅성. 은이 사용하던 옛 처소 앞, 수많은 궁인들이 방안을 기웃거리며 수군대기에 바빴다.
“예상 못했던 것도 아니지만, 정말 재밌다.”
“뭐가요. 남은 재주부리는 곰이 된 것 같아 죽겠는데.”
제 자리의 짐을 정리하는 은이 입을 삐죽이며 말하자 언주는 웃음을 터뜨렸다.
“좀 봐줘. 다들 귀엽잖아.”
“귀엽다뇨.”
“미리들 봐 두려는 거라구. 예견된 ‘미래의 안주인’을.”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참...”
은은 얼굴까지 붉히며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고갤 돌려 문 틈새로 저를 들여다보는 수많은 눈들과 마주쳤을 때, 소스라치게 놀라며 먼저 눈을 피해버린 건 그들이었다. 언주는 박장대소를 했다.
“뭘 그래? 거칠 건 다 거쳤고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데. 게다가 폐하께서도 오늘 정전에서 언급하셨다잖아. 새로운 황후를 맞이하시겠다고, 직.접.”
“말씀하셨을 뿐이지 그게 누구인지는 모르는 거예요.”
“이제 와서 발 뺄 것 없대두?”
과히 듣기 싫은 말은 아니었다. 게다가 굳이 아니라고 고개를 돌릴 이야기도 아니었다. 다만 신중해야한다고 마음먹었을 뿐이다. 괜한 기대에 편승해 들뜬 기분이 될까 염려했던 것이다. 변방의 작은 나라에서 온 공녀를 제국의 안주인으로 반갑게 맞아줄 이가 몇이나 될까. 물론 ‘그것’에 목표를 두고 시작한 일이라지만, 기왕이면 모두의 찬사를 받으며 누구의 반대도 없이 정정당당히 드높은 자리에 앉고 싶었다. 그것을 위해 신중하기로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는다. 은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자 언주가 놀라 묻는다.
“어디가게?”
“다녀올 곳이 있어요.”
...
은이 당도한 곳은 후궁이었다. 늘 그래왔듯 후궁은 평온한 분위기였지만 그곳에 들어서는 은을 바라보는 눈들은 무시도, 경계도 아닌 것이어서 좀처럼 적응하기 힘든 분위기였다. 은은 곧장 걸음을 재촉해 소란의 처소로 향했다.
“네가.. 어쩐 일이니.”
피폐해진 얼굴과 잔뜩 움츠러든 목소리로 소란은 은을 맞았다. 방 안에 활기라고는 없었다. 하대를 하며 저를 버러지 대하듯 하던 말투와 눈빛도 없었다. 불과 며칠 전의 제가 그랬던 것처럼, 모든 것을 포기한 모습이었다.
“내게, 사형 선고라도 내려졌니?”
“아니.”
“아니면, 무슨 몰골로 지내고 있는지 잔뜩 비웃어주려고 왔니..?”
웃음 걸린 어투로 물어왔지만 그 말끝에는 공포가 잔뜩 묻어났다. 두려워하고 있었다. 제가 해 온 악한 행동들, 그리고 그 주축이자 근원이었던 평부사가 사지로 내몰린 지금, 제게도 어떤 지독한 형벌이 내려질지 몰라 온 몸으로 떨고 있었다.
“네가 저지른 일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연제와 평부사에게는 사지거열형이 내려졌고 지금은 반쯤 정신이 나가있다는 소문까지 퍼져있더라.”
“........”
“그 부른 뱃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는 뜻이 되겠지.”
은의 낮은 목소리에 소란은 두려움 가득한 눈빛으로 제 배를 내려다본다. 아직은 태도 나지 않는, 제 배를 들여다보다가 놀란 듯 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걸터앉아있던 침상에서 내려와 거의 기어오듯 한 자세로 득달같이 은에게 다가와 다리에 매달렸다.
“도와줘...! 아니, 제발 살려줘..! 이렇게 빌게, 꼭 벌을 받아야만 한다면.. 그래야 한다면 아이만이라도 낳게 해 줘! 무슨 벌이든 받을게, 죽으라면 죽을게..! 아이는 아무 죄도 없잖아..!”
“죽긴 왜 죽어.”
은은 제 다리에 매달린 소란을 내려다보며 가볍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천천히 내려앉아 소란과 눈을 맞추었다.
“물론 아이는 낳아야지. 걱정마, 아이는 무사히 빛을 보게 될테니까.”
“..흐흡... 흐흐흑....”
“우린 그냥 예전처럼 지내면 되는거야. 처음 만났을 때처럼. 알았니?”
끄윽끄윽 억지로 울음을 삼키며 소란은 세차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은은 그런 소란을 제 다리에서 떼어놓고 그곳을 등진다. 그녀에게 한 말들은 모두 진심이었지만, 소란의 처소에서 나오자마자 은의 입가에 걸려있던 미소는 모두 사라졌다. 후궁을 빠져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언주와 맞닥뜨렸다.
“얘기는, 잘 됐니?”
“그런 것 같아요.”
“사람 일이 정말 어떻게 될지 한 치 앞도 모르는 거라더니..”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놀라지마.”
어두운 표정의 언주는 한숨을 고르더니 은의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황후께서, 자결하셨대.”
첫댓글 잘보고갑니다...
절망과절정사이 님★ 꼬릿말 감사합니다^^
허헉! 황후가 죽다뇨! 그건 아니될 말씀이신디......ㅜㅜ
햇살따뜻한마루 님★ 황후가 슬픈 선택을 한 것 같네요, 꼬릿말 감사합니다.
황후가 자결을 하다니.. ㅠ_ㅠ.. 슬프군요 !!흐엥..
후안 님★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다음화도 확인해주세요, 꼬릿말 감사합니다^^
황후가 자결을 하다니..... 차라리 황후에게는 유배보다는 가슴 편한 일이긴 할테지만은... 어쨌든 슬프네요ㅠㅠ
유리별미곰 님★ 살아서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라고 생각해서였을까요. 다음화에서 뵐게요, 꼬릿말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별이 님★ 다음화에서 남겨진 누군가의 슬픔도 지켜봐주세요. 꼬릿말 감사합니다.
황후,,,,,,,,,,,,,자결을 하다니......왠지 모르게 슬픔...
포레버영웅 님★ 다음화도 확인해주세요, 꼬릿말 감사합니다.
황제가 긴 인내의 시간을 견디고 마침내 빛을 내기 시작한건 기분 좋지만 황후의 빛이 사라진건 씁쓸하네요...ㅜㅜ 그렇지만 아마도 황후는 황제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거라고 생각해요. 견딜 수 없겠죠. 지킬 것이 없는 사람이니까.
헤르티아 님★ 황후의 외로움이 너무 길었던 탓일지도요. 다음화에서 뵐게요, 꼬릿말 감사합니다^^
왠지..황후다운 결정인거같아요..그냥 이해가 가는거같달까요.. 저두 자주오고싶은대 ㅠㅠ그게잘안대서 ㅠㅠ죄송해요 그치만 항상보고있으니까♡힘내시구 건필하세용!!
ㄴㅏ는찡ㅋㅋ 님★ 알고 있으면서도 괜히 응석 부려봤네요^^ 지켜보고 계신줄로 알고 앞으로도 열심히 써야죠, 꼬릿말 감사합니다^^
황후답네요 ㅋㅋㅋ 이제 슬슬 좋은 전개가 나오나여~~ㅋㅋ
까불지마ㅋ 님★ 다음화도 확인해주세요, 꼬릿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