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욕이 아닌 굴욕의 3일이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만 20년 넘게 정치를 해온 한 수도권 의원이 지난 3일간(25~27일)의 대정부 질문을 평가한 내용이다. 그는 “민주당이 허접한 실력만 드러냈다”며 “윤석열 정부가 스스로 고꾸라지고 있는데, 왜 우리는 준비도 없이 가서 국무위원들을 띄어줬냐”는 불만도 토로했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169석 압도적 의석을 바탕으로 ‘국회의 시간’만을 별러왔지만, 정작 1라운드인 대정부 질문에선 “헛스윙만 반복했다”는 게 안팎의 대체적인 평가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의 질의를 받고 있다.
3일간의 굴욕, 다섯 장면
①‘1번 타자’부터 헛스윙 :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한동훈 법무장관이 국회 본회의에 데뷔하는 날 첫 질문자로 박범계를 투입했다. 이른바 ‘3M’ㆍ‘이모’ 사건 등 한 장관 인사청문회 때의 굴욕을 씻어내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지만, 결과적으론 “박범계의 참패”(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라는 말이 나왔다.
“오랜만이다”란 인사말로 질의를 시작한 박범계는 “포괄위임금지의 원칙을 아느냐”며 기선제압을 시도했다. 하지만 한 장관은 “너무 기본적인 것이라 말씀하시면 듣겠다”며 말려들지 않았다. 이후 박범계는 “동문서답을 한다”, “틀린 말이고 거짓말”이라고 몰아붙였지만, 한 장관은 따박따박 “전혀 그렇지 않다”고 반박했다.
마침내 박범계가 “검찰총장 없이 검찰 인사를 다 한 선례가 있느냐”고 묻자, 한 장관이 “의원님이 장관이실 때 검찰총장을 패싱하고 인사하신 거로 기억한다”고 역공했다. 그러자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서 박수갈채가 터졌고, 민주당에선 “완패했다”는 탄식이 흘렀다.
사실 민주당 내부에선 이런 장면을 막자는 사전 논의도 있었다. 대정부 질문 전날인 지난 24일, 복수의 민주당 의원이 단체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한동훈을 키워주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수도권의 재선 의원은 “우려를 표하는 사람이 많았음에도, ‘강 대 강’ 대결을 편 건 결국 원내 전략의 실패”라며 허탈해했다.
②법적 논리 부실 : 검찰 출신이 즐비한 윤석열 정부 국무위원들을 ‘법꾸라지’라고 비판해온 민주당이 정작 법 논리 대응에 소홀했다는 불만도 당내에서 나온다. 경찰국 신설 관련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질의가 대표적인 장면으로 거론된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더불어민주당 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답변을 하고 있다.
27일 김영배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을 불러내 정부조직법 34조(행안부 장관 소관 사무)에 ‘치안’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행안부 내에 경찰국을 만드는 건 시행령 쿠데타”라고 쏘아붙였다. 이에 이 장관은 “통과된 대통령령을 한 번이라도 보면 알겠지만, 정부조직법이 아니라 경찰법 및 경찰공무원법에 근거한 것”이라며 “완전히 오해하고 있다”고 받아쳤다. 이후 도돌이표 질의응답이 반복되자, 민주당 내부에선 “법 논리를 깨려면 준비가 더 필요한데 그러질 못했다”(당직자)는 아쉬움이 나왔다.
③음주운전도 못 꺼낸 ‘사후 청문회’ : 국민의힘에서조차 “음주운전 전과자”(박민영 대변인)란 공개 비판이 나왔던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장관, 하지만 야당의 공격은 무디기 짝이 없었다. 박 부총리는 2001년 교수 시절 만취 상태(혈중알코올농도 0.251%)로 음주운전한 이력이 있다.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서동용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27일 박 부총리의 대정부 질문 데뷔 날, 민주당 질의자 6명(한정애ㆍ김성주ㆍ김영배ㆍ전재수ㆍ서동용ㆍ이탄희 ) 중 그 누구도 음주운전 문제를 꺼내지 않았다. 대신에 자녀의 ‘불법 생활기록부 컨설팅’ 의혹을 꺼냈지만, 박 부총리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피해갔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음주운전 의혹으로 코너에 몰릴까 걱정했는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④호가호위 고민정 : 고민정은 25일 대정부질문 마무리 발언에서 윤 대통령을 겨냥, “대통령은 더 이상 문고리 실세 뒤에 숨어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려 하지 마라”고 말해 논란을 불렀다.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린다’는 뜻의 호가호위가 맥락상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와서다. 박민영 국민의힘 대변인은 페이스북에 “호의호식(好衣好食)’을 말하려다 실수한 게 아닌지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