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산마루로 올라
오월 둘째 수요일은 내가 사는 집을 리모델링에 착수한지 사흘째였다. 공사가 시작되기 전 세간들은 모두 현관 바깥 비상계단으로 옮겨 놓고 몸만 빠져 나와 사림동 원룸에 임시 거처를 마련해 두 밤을 보냈다. 그새 이틀 밤은 일과를 마치고 원룸에서 저녁 식사 후 공사 현장으로 들어가 거실에 둔 컴퓨터를 켜 일기를 남겼는데 사흘째는 시공자가 인터넷 선을 뽑아버려 난감하다.
환경이 낯선 거처에서 날이 밝아오길 기다려 아침을 해결하고 방을 나섰다. 사림동 창원천 상류에는 노랑꽃창포가 시퍼런 잎줄기를 불려 노란 꽃을 피웠다. 금계국도 화사한 꽃잎을 펼치는 즈음이었다. 가뭄으로 수량이 줄어둔 웅덩이엔 어린 물고기들이 팔딱거리면서 물 위로 튀어 올랐다. 퇴촌교를 건너 교회와 학교를 지나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로 들어 경비원과 인사를 나누었다.
간밤에도 잠시 머물렀다만 인부들이 작업을 시작하기 전 현장을 한 번 더 둘러보고 나왔다. 같은 아파트단지 꽃대감 친구와 밀양댁이 가꾸는 꽃밭을 지나 반송시장 노점에서 김밥을 두 줄 마련했다. 아파트 리모델링으로 짐을 꾸리느라 등교하지 못한 자연학교로 갈 생각이었다. 벗이 푸성귀를 가꾸라고 소개해준 텃밭에 나가느라고 근교 산자락으로 오를 틈을 내지 못하기도 했다.
창원실내수영장 맞은편으로 나가 북면 감계 신도시를 거쳐 온천장으로 가는 17번 버스를 탔다. 동정동에서 천주암을 지나 굴현고개를 넘어간 외감 입구에서 내렸다. 동구 밖에서 달천계곡 들머리를 지나 남해고속도로 창원터널 곁으로 오르니 허옇게 핀 아카시꽃이 바람에 일렁이니 향긋한 향기가 번졌다. 벌통에서 날아올 꿀벌들은 몸살을 하듯 날개짓이 빨라지는 계절이 다가왔다.
단감농원에는 이른 아침 아주머니들이 수분이 끝난 풋감 꼭지를 솎아주는 손길이 바빴다. 이즈음 북면 일대 단감과수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모든 과수는 적과를 해주지 않으면 과일의 크기가 작아 상품성이 떨어져 영농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다. 단감농원 울타리 찔레나무는 하얀 꽃이 피어 절정이었고 숲으로 드니 국수나무와 때죽나무도 꽃을 피웠다.
가랑잎이 삭은 부엽토가 쌓인 오솔길에서 싱그러운 신록이 뿜어낸 음이온을 흡입하면서 양미재로 올랐다. 고개 못 미친 너럭바위에 앉아 명상에 잠겨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쉼터에서 일어나 등산로를 벗어나 숲속으로 들었다. 철이 좀 늦었다만 허리를 굽혀 쇠어가는 참취와 바디나물을 뜯어 모았다. 양미재를 비켜 양목이고개로 가는 산마루로 오르다가 더덕도 한 뿌리 찾아내 캤다.
산마루로 오르니 발아래 온 산천이 녹색의 향연을 펼쳤다. 구룡산이 백월산으로 뻗어가는 잘록한 화양고개 너머 주남저수지와 진영 신도시 아파트가 아스라이 보였다. 산마루를 넘어 작대산 트레킹 길에서 숲을 지나 계곡을 내려섰다. 전에는 바디나물과 참취가 더러 자랐는데 몇 해 사이 생태계가 달라져 개체수가 적어 비비추만 몇 줌 뜯었다. 까실쑥부쟁이도 예전보다 덜 보였다.
가뭄 속에 석간수가 실핏줄처럼 가늘게 흐르는 바위더미에서 배낭의 김밥을 꺼내 비웠다. 소진한 칼로리를 충전해 계곡을 누볐으나 더 채집한 산나물은 많지 않았다. 이제 어디로 나아갈지 진로를 정해야 했다. 계곡을 내려가면 석산을 개발하는 레미콘공장이 나와 피해야 했고, 숲을 헤쳐 작대산 트레킹 길과 합류하려니 정글이 만만하지 않아 내려왔던 양목이고개로 다시 올라갔다.
양목이고개에서 중방마을로 내려가다 옹달샘에서 목을 축이고 숲을 빠져나가니 향토사단이 이전하면서 쓸모가 없어진 사격장은 택지를 조성해 아파트를 짓고 있었다. 감계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타서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 건너편 무학상가로 갔다. 꽃대감 친구와 돼지껍데기로 맑은 술을 비우는 사이 주인 아낙은 산나물로 전으로 부쳐 나왔고 뒤이어 퇴직 선배가 합석했다. 22.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