띄엄띄엄 공백기가 있었지만 어느덧 45개 남짓의 학교에 교육경력 8년 여, 호봉은 19호봉이다.
교대동기 살림꾼, 백모양은 벌써 장학사가 되었고 다른 동생들도 교무부장이나 연구부장을 하면서 교감될 준비를 슬슬하고 있다.
며칠 전 흑석동에 있는 블루스톤 사우나에 가서 찜질을 하는데 불현듯 깊은 깨달음이 왔다. 하지도 않은 아동학대로 경찰조사를 받고 피의자 신분이 되었는데 기간제 채용과정에서 범죄경력 조회하면 아동학대 피의자로 수사중이라고 뜰텐데 내가 이것을 어떻게 소명해야 할까? 아니 소명할 수나 있을까? 확정판결 전까지는 무죄로 본다는 무죄추정 원칙은 교과서에나 있는 이야기이고 현실은 그냥 아웃이다.
남자 나이 49, 보통은 안정감있는 생활을 할 수 있는 직위가 박혀있는 명함이 지갑에 들어있을 나이이다. 지난 달 하루 나갔던 길음초 여교감 선생님이 나랑 동갑 토끼띠라 좋아하시던 기억이 난다.
각설하고 이제 기간제 교사로서 정년이 왔다라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럼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라는 당연한 질문에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년의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청산하고 시작했던 반도체 현장일이 난 괜찮았다. 물론 일상생활에서는 흔히 만날 수 없는 유형의 인간들 억지에 힘들기도 했지만 어디 진상이 거기만 있으랴? 솔직히 비정규직 교사를 하면서 학교에서 만난 진상들이 더 많았던것 같다.
찜질방에서 현장 밴드를 이용해 검색을 해서 팀장님에게 문자를 보냈더니 십분만에 전화가 와서 채용되었고 다음주 일요일 천안으로 간다. 삼성SDI 하청업체인데 청주 SK하이닉스에서 했던 배관, 포설, 소방전기를 다 합쳐놓은 자동제어일이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공장자동화설비를 설치하는 것이다.
다른 공종(공사종류)에 비해 연장 작업이 없어서 수입이 높진 않지만 노동강도가 그리 높지 않아 워라밸이 가능하고 장기적으로 할 수 있으며 해외근무도 가능한 일이다.
일단 전화통화상으로 팀장님이 친절하신 분 같았고 직발(삼성전자 직접 발주 계약)업체라 물산(삼성물산 건설사업본부)소속으로 인한 까다로운 간섭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출근 시간도 늦다. 보통 노가대에서 공무원 취급을 받는 몇 안되는 일자리이다.
아무튼 거기는 다 비정규직이니 그로 인한 차별은 없다.
이제 머리 덜 쓰고 몸쓰는 일하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
하지도 않은 아동학대 혐의로 입건된 트라우마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것 같다. 그들의 더러운 발에 더 이상 밟히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졌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올 한해 넉넉한 마음으로 사시길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현장을 잘 지켜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