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https://m.blog.naver.com/wonh55/221872501704
삼지연시, '사회주의 이상향'은 어떤 모습일까
프로필
박하
2020. 3. 25. 16:34
이웃추가본문 기타 기능
삼지연(三池淵), 백두산의 관문
그림1. 삼지연 위치 그림2. 삼지연과 백두산 천지-위성지도
<삼지연시 개요>
- 시승격 ; 2019. 12.10
- 면 적 ; 1,326.14km2
- 해발고도 ; 1,381m
- 총인구 ; 31,470(2008) (수용인원: 10만 명 예정)
- 행정구역 ; 10개동 4개구
- 2단계 준공 ; 4,000세대 살림집, 380 공공건물 외 다수, 도시기반시설
- 공항 ; 삼지연공항(활주로 3.3km)
- 철도 ; 삼지연선(혜산-삼지연시)
- 관광명소 ; 백두산, 삼지연, 리명수폭포
- 최종 준공 ; 2020. 10. 10(예정)
삼지연은 백두산 등정의 관문으로 통한다. 행정구역으로 양강도(兩江道), 압록강과 두만강이 시작되는 곳이다. 지난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대통령도 이곳 삼지연공항에 내려 백두산에 올랐다. 삼지연공항에서 백두산 천지까지는 직선거리로 약 30km, 공항에서 장군봉까지 자동차로 이동한 뒤, 장군봉에서 천지까지 10분간 케이블카를 타고 이동했다고 한다.
남북 두 정상이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두 손을 맞잡고 치켜들었던 순간, 가슴 찡한 감동을 느꼈던 기억이 선하다. 이 이벤트는 ‘북한 지역을 경유한 백두산관광’도 조만간 개시되리라는 기대를 갖기에 충분했다.
기존에는 삼지연군이었지만 2019년 12월 10일, 시로 승격되었다. 동시에 이곳을 ‘사회주의 이상향’으로 선포하였다. 우선 의구심이 든다. 세월의 검증을 받기도 전에 지레 ‘사회주의 이상향’이라니? 하지만 ‘당이 결정하면 인민은 따라야만’하는 게 사회주의 북한의 방식이다.
이 글에서는 사회주의 이상향의 실체, 즉 삼지연시를 구성하는 건물들과 주변 인프라, 백두산관광의 플랫폼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삼지연시의 어제와 오늘
그림3. 삼지연시-좌측 상단에 베게봉 스키장
삼지연은 3개의 호수가 있어 그 이름을 얻었다. 백두산 천지에서 남동쪽에 있다(사진 2 참조). 호수의 면적은 남서쪽 끝으로부터 0.36km2, 둘레는 2.3km, 최대 수심은 3.8m이다.
삼지연은 화산분출물과 백두산에서 나온 부석이 곳곳에 쌓여 물길을 막아 자연호가 되었다. 물이 흘러드는 하천도 없고 물이 다른 데로 빠져나가지도 않는 무방수호(無放水湖)이다. 호수는 눈과 빗물, 샘물에 의해서 채워진다.
백두화산대의 영향으로 밑에서 온천이 솟아나기 때문에 삼지연의 평균 수온은 23 °C로 높은 편이다. 1980년 1월에 천연기념물 제347호로 지정되었다 (위키백과).
이곳 삼지연에서 1996년 동계아시안게임을 개최할 예정이었다. 그때부터 삼지연을 동계스포츠 및 국제관광지로 개발하려던 계획이 있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자연훼손과 환경보호를 이유로 중도에 개최권을 반납하고 말았다. 대신 96년 동계아시안게임은 중국 하얼빈에서 개최되었고 북한은 불참한 바 있다. 개최권을 반납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극심한 경제난이었을 것이다. 러시아 연방 해체(1991) 이후, 경제지원도 끊어지고, 김일성주석이 갑작스럽게 사망했다(1994), 1995년부터 경제상황도 곤두박질쳤다. 이후 10년 동안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겪게 된다. 오랜 침묵(?)의 세월을 보낸 삼지연이 이제 부활의 날갯짓을 하고 있다.
삼지연시, 2단계 준공 뉴스
‘더 높이, 더 빨리, 더 황홀하게’ ‘혁명의 성지 삼지연시가 세상이 부러워하는 사회주의 무릉도원으로 일떠섰다’
- 2019 12. 13. 노동신문 / 2019. 12. 20 중앙일보 재인용.
단어 ‘황홀’에 당혹감이 든다. 예전 구호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단어다. 과연 어느 정도일까?
삼지연시 준공식은 지난 해(2019), 12월 3일에 현지에서 열렸다. 유튜브(Youtube)에 ‘Samjiyon’을 검색하면 준공식 장면이 나온다. 준공식장 주위에는 온통 눈이 덮여있었다. 광장에도 도로에도 건물지붕에도 눈이 소복했다. 준공식장 정면에서 도열한 병사들도 안쓰러웠다. 두툼한 군복에 털모자 차림이지만 코끝이 새빨갛게 얼어 있었고, 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의 병사들도 많았다.
그림4. 삼지연시 위성사진 5-1. 도심(구글위성)
왜 한겨울 눈이 소복한 광장에서 준공식을 강행한 것일까? 연말 안으로 (경제제재가 풀릴 걸 지레 예상하고), 외국 관광객들을 유치하려고 그랬을까? 아니면 경제제제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사회주의 이상향’을 준공했다는 사실을 서둘러 홍보하고 싶었던 걸까? 비록 최종 준공은 남았을지라도 3년 남짓 동안 이런 엄청난 프로젝트를 완공했다는 사실은 놀랍기 그지없다.
놀라운 점은 또 하나! 이 도시의 전력 사정이다. 살림집의 난방방식이 전기패널이고, 전기 취사를 자랑한다. 야간에도 불야성처럼 빛나는 도시라는 것인데, 수도 평양에서도 이 정도 전력 공급은 어렵다고 한다.
위성사진과 전경사진들을 보면, 각진 빨간 지붕들이 스위스의 수도 베른 같다(*김정은 위원장은 소년시절 베른국제학교에 유학했다). 규모도 설계도 상상을 초월한다.
필자가 유튜브와 인터넷에서 서핑한 뉴스들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기사를 소개해본다.
#1. 삼지연시는 어떤 모습인가?
그림5. 축하 폭죽쇼(베게봉스키장/ 유튜브 캡처)
-영국 BBC 뉴스(인터넷판), 북한 전문 기자 Colin Zwirko씨에 의하면,
‘드디어 준공된 모습! 깔끔하고 훌륭한 외관입니다. 북한의 어떤 도시와도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아주 독특하고, 아주 화려합니다. 평양이나 여타 도시들의 경우, 관광객들이 주요 간선도로에서 벗어나면 길을 잃을 수도 있지만 이곳 삼지연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느 방향으로 가든 2~3km 정도 거리입니다. 조용하고 걷기에도 좋은 도시이지요.’
#2. 건축공사는 언제 시작했습니까?
-김정은 위원장이 정확히 3년 전(2016)에 삼지연군을 방문했습니다. 당시 처음으로 ‘재건축 프로젝트’를 공표했지요. 삼지연 마을은 재건축 이전에 기존의 건축물이 있었습니다. 이들 건축물 중에 상당수 건물들을 개보수공사를 했고, 낡은 건물들은 헐고 난 뒤, 신축공사를 했지요. 북한 당국의 발표에 의하면, 450개 이상 신축건물이고, 이들 중에는 산업시설, 위락시설도 포함되어 있지요. 획기적인 변화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입주자가 누구인지, 기존 주민들과 새롭게 입주하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인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는 상태입니다.
#3. 건축공사에 무엇이 얼마만큼 들어갔습니까?
-도시 건설에 얼마나 공사비가 투입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국제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상태에서 건설공사가 시행되었고, 또한 단기간에 준공을 했다는 사실은 북한 당국이 이 프로젝트를 얼마큼 중요하게 여겼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경제제재 동안 자원 부족, 고급 건축자재 조달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건축공사를 강행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예정된 공기(工期)를 맞추기 위해 강제노동까지 불사했다는 증거도 있습니다.
#4. 왜 이 프로젝트가 중요한가요?
그림6. 삼지연 주택가 6-1. 옥외 빙상장, 6-2. 베개봉 스키장(삼지연스키장은 별도)
-가장 먼저 백두산과의 접근성입니다. 백두산은 성스러운 산인 동시에, 김정은 위원장의 아버지 김정일의 탄생지로 알려져 있지요. (*김일성의 항일운동 성지, 백두산밀영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필자 주), 또한 김정은 위원장이 2019년 신년사에서도 ‘삼지연을 사회주의의 이상향’으로 만들겠다고 공표한 바 있습니다. ‘조선노동당과 인민군대, 그리고 전체 인민이 합심으로 삼지연을 현대판 산악도시의 모델, 사회주의 이상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이번 삼지연시의 준공은 보다 큰 계획의 일부분입니다. 전체 공정을 3단계로 보면, 이번 준공은 2단계이고, 2020년 10월에 전체를 준공할 예정입니다. 위성사진에 의하면, 스키 슬로프 인근의 호텔 건물들은 아직 공사 중이고, 또한 시내버스 운행도 시행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따라서 이번 준공 행사는 나머지 겨울 동안 스키장 등 시운전을 하고, 또한 최종 준공 이전에 국제적으로 홍보하는 차원인 셈이지요. (*<그림 6, 6-1, 6-2>를 보면, 미완의 꿈, 동계올림픽을 겨냥한 것일 수도 있겠다. -필자 주)
▶550석 삼지연호텔 골조 준공
그림7. 삼지연호텔 골조공사 완료
도심에 550석 규모 삼지연호텔의 신축공사가 있었다. <그림 7>을 찬찬히 훑어보면, 호텔 신축공사의 면면을 알 수 있다. 그 중 세 가지 사실에 주목해 보자.
첫째, 호텔의 객실 수가 550석이다.
서울 소재 ‘호텔 신라’의 객실 수가 464석인데 비하면 그 규모가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다. 물론 대상 고객은 북한 주민이 아니라 백두산관광이나 삼지연 스키장을 찾을 외국관광객들이다.
둘째, 골조공사 완료를 축하하고 있다.
‘550석 호텔 골조공사를 결속한(완료한) 려단안의 전체 지휘성원 동지들과 전투원동지들을 열렬히 축하한다.’
<그림 7>의 우측 안내판의 문구이다. 말하자면 전통건축공사의 경우, 대들보를 올릴 때하는 상량식(上梁式)인 셈이다. 문구에서 ‘려단안의 지휘성원과 전투성원 동지들’은 건축공사를 전담한 군부대원들을 지칭한다. 북한에서 건설공사는 전적으로 군부대가 담당한다. 건설공사를 전투로 삼는 공병대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시공속도와 품질을 강조한다.
건물 전면의 구호들을 보면, 맨 위에 ‘단숨에’가 눈에 띈다. 김정은 체제가 등장한 이후, ‘천리마속도’가 ‘만리마속도’로 변했다. 속도를 강조하다 보면, 품질이 희생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품질도 강조한다. ‘천년책임’, ‘만년보장’, ‘자력자강’ 등이다. 북한에서 건설공사를 전담하는 군인들은 일급 기능공들이다. 이들은 국가적 프로젝트에는 언제나 반복적으로 동원되기 때문에 기량이 놀랄 정도로 뛰어난 편이다. 그러나 혹한기에 강행한 공사에서 과연 품질이 보장될 지는 미지수다.(우리나라의 경우, 동절기 공사중지 기간을 준수하고 있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북한의 건설공사는 군인들이 전담한다. 강성노조도 없고 준법투쟁도 전혀 없다. 상명하복의 지휘체계에다 따로 인건비가 들지 않는다.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남한의 건설기술과 북한의 공병대가 합작한다면 천하무적이 아니겠는가.
백두산 관광과 인프라
그림8. 사진8. 2015년 백두산천지의 필자
‘백두산 뻗어내려 반도 삼천리/ 무궁화 이 강산에 역사 반만년/ 대대로 이에 사는 우리 삼천만/ 복되도다 그 이름 대한이로세 (하략)
- 대한의 노래/ 이은상작시/ 현제명 작곡
백두산, 하면 저절로 떠오르는 동요이다. 이슬람교도들에게 메카의 의미처럼 한민족에게 백두산은 성산으로 통한다. 우리나라 사람이면 일생에 한번은 백두산에 올라천지를 보고 싶을 터. 필자도 지난 2015년 여름, 중국을 통해 백두산에 올랐던 적이 있다.
중국에서는 백두산을 창바이산(長白山)으로 부른다. 연중 120만 명 정도가 창바이산을 찾는다. 만약 북한이 백두산관광을 개시한다면, 남한 사람들이 연중 10만 명쯤 찾을 것으로 예상한다. 백두산관광은 일찍이 노무현 대통령 당시 남북이 합의했지만,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백두산 관광이 활성화되려면 우선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급선무이다. 삼지연 시의 인프라를 살펴보자.
▶삼지연공항 확장 건
그림9. 삼지연공항의 남북정상 그림10. 혜산-삼지연 철도 준공
지난 해 남북정상회담 당시 대통령이 백두산에 오를 당시(2020. 9. 20), 평양 순안공항에서 삼지연공항으로 내렸다. 공군 1호기는 보잉747 기종인데 활주로 길이가 짧고(3.3km) 폭도 좁아서 공군2호기로 교체했다고 한다. 외국 관광객들을 불러오려면 최소한 보잉 747기가 이착륙이 가능하도록 활주로를 확장해야 한다. 다음으로 여객터미널도 확장해야 하고, 백두산으로 오르는 도로 폭도 현대식 아스팔트도로로 개보수를 해야만 한다. (*2005년 7월, 노무현 정부 때, 도로포장용 피치 8,000톤을 제공, 도로 및 활주로 포장을 지원했음. )
▶혜산-삼지연선 철도 개통
그림11. 백두산 발전소 기념우표
지난 2019년 10월 15일 혜산-삼지연선이 개통되었다(사진 10 참조). 백두산 관광을 육로로 할 때, 이 철도를 이용해야 한다. 본래 삼지연선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산 원시림을 벌목하여 혜산까지 운송하기 위해 부설된 철도이다. 당시 혜산은 압록강 뗏목 운송의 시발점으로 압록강 상류 최대 도시였다. 지금은 ‘혜산=밀수도시’ 또는 ‘혜산=탈북의 최후 관문’으로 통한다. (*혜산에 대해서는 졸저 『북한의 도시를 미리 가봅니다』 2019. 10. 가람기획, 참조바랍니다.)
‘혜산-삼지연 철길이 건설됨으로써 혁명의 성지 삼지연 땅의 천지개벽에 보다 큰 활력을 부어줄 수 있게 되었으며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혁명사적지를 찾는 답사자들의 편리를 원만히 보장하고 (중략)
험준한 산발과 협곡을 꿰지르며 수십㎞ 구간에 뻗어 나간 혜산-삼지연 철길은 조선 혁명의 발원지인 백두대지에 사회주의 이상향을 일떠세우려는 우리 인민의 불타는 충성심과 견인불발의 투쟁 기풍이 안아온 고귀한 창조물‘이다.
- VOA 2019. 12. 3 기사 재인용.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 20년 건설 역정
삼지연시에 전력을 공급하는 곳이 바로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이하 백두산발전소)이다. 명칭에 ‘청년영웅’이 들어가는 곳은 군인들이 단기간에 돌격대처럼 동원된 공사이다. 대표적인 시설로 ‘청년영웅도로’로써 ‘평양-남포 간 왕복 10차선 고속도로’(42km)가 있다. 본래 백두산발전소는 20여 년 전에 착공되었지만 그동안 경제사정이 나빠 공사 진척이 지지부진했다. 그러나 김정은 시대에 드디어 준공을 맞았다.
‘청년돌격대원들은 방대한 공사를 반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끝내였다’고 전했다. 그리고 "백두산영웅청년 3호발전소까지 완공됨으로써 백두산지구를 혁명의 성지로 더 훌륭히 꾸리고 양강도 안의 경제발전과 인민생활향상에 필요한 전력수요를 원만히 보장할 수 있게 되였다"고 강조했다. - VOA 재인용.
이곳 백두산발전소는 그동안 1호기(5만kw), 2호기(2만kw), 3호기만kw)로 도합 10만kw이다. 단위 출력을 작게 한 이유는 어느 한 곳이 고장 나더라도 전면 가동중지를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어떤 전문가는 삼지연시의 성공 여부는 전적으로 백두산발전소에 달렸다고 한다.
▶백두산 화산의 폭발 가능성
그림12. 영화 <백두산> 포스터
백두산 화산은 폭발할 것인가? 전문가들 중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학자가 일본인 화산전문가 다니구찌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2019년까지 68%, 2032년까지 폭발할 확률이 99%라고 한다. 2019년은 무사히 지나갔지만 2032년까지는 불과 12년이 남아있다.
이런 주장에 의거한 영화가 ‘백두산’이다. 초반부 실감나는 폭발 장면과는 달리 갈수록 비약이 심해 몰입도가 떨어졌다. 하지만 백두산 화산 폭발에 대한 경고는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북한 당국 역시 백두산 화산의 폭발 가능성을 몰랐을 리 없다. 알고도 삼지연시 프로젝트를 강행했다면 어떤 저의가 있었을까?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삼지연에서 들쭉술을 마실 날
그림13. 삼지연시 야경 - ‘더 화려하게’ 구호에 걸맞다.
평양의 초고층단지 려명거리, 미래과학자거리, 원산갈마지구의 해안관광호텔단지, 마식령스키장, 세포등판기지, 삼지연시 등등. 김정은 정권이 주도한 대형 프로젝트들이다. 모니터의 입장에서 보면, 투자만 있고 회수가 없다는 점이다. 또한 종전의 ‘천리마속도’ 대신 ‘만리마속도’로 건설했다. 이는 단순히 시공속도만 빠른 게 아니라 투자비도 고속으로 투입되었다는 뜻이다. 설령 이 프로젝트에 중국자본이 가세했다 할지라도 투자금 회수가 무기한 미뤄진다면 언제까지 버틴단 말인가? 설상가상 우한 발(코로나19) 돌발 악재까지 터지고 말았다.
청년영웅들이 피땀으로 이룩한 사회주의 이상향, 식량난도 땔감걱정도 없는 사회주의 무릉도원! 그러나 준엄한 세월의 검증이 기다리고 있다. 조만간 백두산관광이 개시되어 ‘투자의 선순환’ 기적이 일어나기를! 삼지연호텔에서 백두산 들쭉술을 마실 그날이 어서 오기를 기대해 본다.▴
#1
#2
#3
#4
#삼지연
#백두산
#삼지연공항
#백두산발전소
#백두산화산
#백두산화산폭발
#화산폭발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
#들쭉술
#백두산관광
#삼지연호텔
#베개봉스키장
#삼지연스키장
9편 해주(海州), ‘제2 개성공단’의 가능성을 묻다
출처: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wonh55&logNo=221876267500&targetKeyword=&targetRecommendationCode=1
프로필
박하
2020. 3. 27. 16:35
이웃추가본문 기타 기능
2차 핵담판 결렬과 해주
▲ 그림1. 해주의 위치(ASIAPRESS)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김동환 작시)’ 이 노랫말처럼 봄바람은 남쪽에서 불어온다. 그런데 올해는 북녘 땅에서도 봄바람이 불어올지 모른다? 올해 초부더 그런 기대가 한껏 부풀어 올랐던 게 사실이다.
아시다시피 지난 달 27~28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던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지만 결과는 ‘2차 핵담판 결렬’로 끝났다. 직히 말해 미북정상회담에 대해 김칫국부터 마신 사람들이 디 한둘이었겠는가? 결렬 원인이야 미북 양측의 입장에 따라 다르고, 해석의 차이도 분명 아전인수 격일 것이다.
그렇다고 남북경협에 대한 기대마저 다시 꽁꽁 얼어붙어야 할까? 그건 결코 아니다. 남북경협 재개 항로에 암초가 나타났다고 하여 항해를 중도 포기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따라서 북한도시열전 역시 도시 탐구를 지속하기로 한다.
<해주시 개요>
- 海州, Haeju
- 황해남도 도청소재지(1954 이후)
- 면적 : 206.9 km2
- 인구 : 273,000명(2008)
- 행정구역 : 26개동, 5개 리
- 연평균기온 : 10.7〬
- 주요산업 : 시멘트, 제철, 조선, 제지, 화약 등,
수산업(연평도 어장)
- 주요 산업시설 : 해주시멘트공장, 종합기계공장
(주요자원 : 석회석)
- 주요 인프라
철도 : 황해청년선(해주-사리원 100.3km), 옹진선(해주~옹진). 배천선(해주-은빛) 등 / 항만 : 국제무역항, 북한 서해함대기지 인천-해주 간 거리 110km
▲ 그림2. 해주 시내 전경
이번 호에 소개할 도시는 해주이다. 해주는 조선조의 5대 도시였다. 한양, 평양, 전주, 개성, 해주 순이었다. 조선 후기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 이유는 한강과 예성강 하구 경기만과 해주만이 바닷길로 열려있었고, 농산물과 수산물도 풍부했기 때문이다. 해주의 위상은 남북 분단과 함께 180도로 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닷길이 막혀버렸고, 해주가 북한 해군의 주력 서해함대기지로 변했기 때문이다.
한동안 잊혔던 해주, 그 해주에서 봄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과연 해주는 제2의 개성공단이 될 수 있을까? 어떤 이는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개성공단 재개도 오리무중 속인데 제2 개성공단이라니, 하고 말이다. 물론 북한 비핵화와 관련, 유엔 제재의 해제가 선결조건이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어떤 변화부터 개시될까? 최우선으로 개성공단 재개와 금강산 관광 재개가 이뤄질 것이다. 그 다음 단계는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일테면, 경제특구로 지정된 꼭짓점의 도시들, 나선, 신의주, 함흥, 원산 등과 함께 주목되는 도시가 해주이다. 어떤 이는 ‘왜 해주인가?’ 하는 의문을 가질 것이다. 여기에 대한 답변으로 다음 사항을 인용해 본다.
‘남북은 해주지역과 주변지역을 포괄하는 경제특구건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선박의 해주 직항로 통과 들을 합의하였다.’ - 출처 ;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발표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의 제5항.
이 조항을 충실히 반영한 것이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그림 5)’이다. 자세한 내용은 본론에서 살펴보기로 하고, 우선 해주의 뿌리, 도시 내력을 살펴보는 게 순서이다.
해주, 그 명성의 내력
▲ 그림3. 해주목 지도(1872)
해주는 고려 태조 때 처음으로 지명이 정해졌다고 한다. 이후 고려 성종2년(983)에 전국에 십이목(十二牧)을 두었는데 해주목도 그 중 하나였다. 고려 현종 때는 4도호부 중 하나인 안서도호부를 두었고, 고려 고종 때 다시 목으로 환원하여 조선에 계승되었다고 한다.
황해도는 조선8도 중 하나였다. 1417년부터 1954년까지 그 명칭이 유지되었다. 황해도는 황주와 해주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들었다. 1954년 북한의 행정구역이 황해북도와 남도로 개편되면서 해주는 황해남도의 도청소재지가 되었다. 지리적으로 본다면, 재령강과 예성강을 경계로 황해남도와 북도가 갈라졌다. 황해북도의 도청소재지는 황주가 아니라 사리원시가 되었다.
해주는 풍수 명당이다. 해주목의 고지도(그림 3)를 보면, 배산임수(背山臨水)에다 좌청룡우백호의 명당임으로 금세 알 수 있다. 북쪽으로 수양산(899m)을 등지고 있다. 조선 세조의 왕자 시절 군호인 ‘수양대군’도 여기서 딴 것이라고 한다. 다음으로 중앙에 해주목(海州牧)으로 두고 양 날개인 좌청룡 우백호에 안산인 남산을 넘어 해주만을 끼고 있다. 해주는 재령평야와 연백평야 덕분에 북한 최대의 곡창지대이다. 재령평야의 젖줄, 재령강이 있고, 연백평야는 해주만과 예성강 하구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해주 시내는 남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광석천과 신광천이 흐른다. 지리적 입지를 단적으로 말한다면, 해주는 수양산을 비롯한 산맥으로 둥그렇게 감싸있고, 강을 통해 해주만과 열려있다고 할 수 있다.
해주는 농경시대 기준으로 최고의 자급자족 도시인 풍수명당일 순 있다. 하지만, 마을을 빙 두른 산맥은 모진 북풍은 막아주겠지만, 교역시대에는 물적 유통과 사람의 이동을 막는 장애가 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산맥은 도로망, 철도망의 개설을 가로막을 뿐만 아니라 발전소로부터 송전선로망의 연결까지 어렵게 한다는 점이다.
▲ 그림4. 심사정 ‘구곡담도’
풍수 명당에는 인물 역시 특출한 법이다. 해주 출신 역사의 인물을 꼽으라면, 백범 김구, 안중근, 장길산 등을 들 수 있다. 김구 선생은 10대 후반, 해주에서 동학농민운동에 투신했고 동학군 선봉대를 이끌었다. 황해도 대표단으로 뽑혀 충청도 보은으로 가서 제2대 동학교주 해월 최시형으로 만나기도 한다. 안중근은 해주부 수양산 아래, 해주 토호의 후손이다. 할아버지 안인수는 진해현감을 지냈고, 해주 일대에서 미곡상을 경영하여 상당한 부를 축적했다고 한다. 황석영 소설 『장길산』의 주인공들은 다들 해주, 강화도, 개성, 연평도 출신들이다.
해주는 일제강점기 황해도 쌀 수탈의 항구로도 유명하다. 일제에 의한 한반도 쌀 수탈 물량의 순위로 따진다면, 첫째가 부산항이다. 부산항은 낙동강 상류 상주평야에서부터 하구 김해평야에 이르기까지 이들 낙동강 수계에서 생산한 쌀들이 집결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군산항이다. 군산항은 금강과 동진강 수계의 평야들, 하구의 김제평야와 만경평야의 쌀들이 군산항으로 집결했다. 다음으로 인천항은 한강과 예성강 수계에 있는 평야들에서 생산된 쌀들이 집결했다. 해주의 재령평야, 연백평야에서 생산된 쌀들도 1930년 이전에는 인천항으로 실어 날랐다. 1930년 1월 이후에는 황해도의 쌀들은 모두 해주항에서 일본으로 실어 날랐다. 그동안 일제는 해주 용당포항을 근대 항만으로 조성했기 때문이다.
또한 해주는 수산항으로도 유명했다. 해주만과 서해안에서 잡은 수산물들이 해주항으로 집결되기에 수산항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해주는 전국 최대의 조기 산지로 유명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도 해주 특산물로 조기를 소개하며, ‘남쪽 연평도에서 나고, 봄과 여름에 여러 곳의 고깃배가 모두 이곳에 모여 그물로 잡는데, 관아에서 그 세금을 거두어 나라 비용에쓴다’고 언급되어 있다. 그 연장선에서 해주는 1940년대 당시, 전국 조기 생산략의 80%에 이를 정도로 명성을 날렸다고 한다.
해주는 1990년 대 고난의 행군 시절에도 타 지역은 아사자가 속출했던 데 비해 비교적 피해가 적었다고 한다. 해주는 곡창지대와 수산항을 겸비했던 덕분이 아니겠는가.
해주는 율곡 선생의 고산구곡가로도 유명하다.
‘고산의 아홉 굽이 못을 사람들이 모르더니,/풀을 베고 집을 지으니 벗들이 모두 모여드네./ 무이구곡을 생각하며 주자를 배우리라.//고산구곡담(高山九曲潭)을 사람이 모르더니,/ 주모복거(誅茅卜居)하니 벗임네 다 오신다./ 무이(武夷)를 상상(想象)하고 학 주자(學朱子)를 해오리라.(하략)’
고산구곡은 해주 수양산 기슭 석담(石潭)의 아홉 구비 시내이다. 율곡 선생이 43세 되던 해(1578/선조11)에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을 당시, 고산구곡의 풍광을 읊은 10수 연시조가 곧 고산구곡가이다. 이는 중국 남송 시대, 주희가 무이산 속에 은거하여 후학들을 가르칠 때 지었던 노래 '무이구곡가(도가)'를 고스란히 본을 삼았고, 그 영향은 조선조가 끝날 때까지 그 영향은 면면히 이어졌던 것이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자면, 주자의 무이구곡가는 주자학에 경도된 조선선비들의 정신적 메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율곡 선생하면 외가가 있던 강릉의 오죽헌이나 파주의 화석정을 떠올리는 게 상식처럼 되어 있다. 하지만 조선조 선비들에게 해주 고산구곡의 명성은 오죽헌과 화석정의 그것보다 몇 곱절 더했다고 한다.
해주는 1896년(고종 33)에 전국에 13도제가 실시되자 황해도에 속하고 도청 소재지가 되었다. 1940년 일제강점기 당시 개항장으로 지정되었다. 1954년 북한의 관제 정비로 황해남도에 편입되었고, 1973년 국제 무역항이 되었다고 한다. 해주가 신라 이래 황해도의 정치, 경제, 국방의 요충지였고, 2018년 현재도 서해의 요충으로써 그 관성이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서해 평화협력특별지대
▲ 그림5. 서해경제공동특구 구상(인천투데이)
해주는 애당초 남북경협이 거론될 2007년 이전부터 주목받았다. 해주가 남쪽의 경제인들에게 개성보다 먼저 주목을 받았던 이유가 뭘까? 해주는 바닷길로 인천과 지척에 있기 때문이다. 북한 서해안에서 유일한 부동항이고, 인천-해주 항로를 복원할 경우, 이용할 경우, 하지만 북한은 해주 대신 신의주 카드를 내밀었고 우여곡절 끝에 개성으로 결정된 바 있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는 남북 간 교전이 끊이지 않는 서해 NLL해역을 평화수역으로 정해 ▲남북 공동어로 ▲해상평화공원 ▲한강하구 평화생태공원 ▲서해공동경제특별구역 ▲한강하구 공동이용수역 등을 조성하는 계획을 담고 있다.
해주의 인프라
해주는 국제무역항이자 북한 9대 공업지구 중 하나다. 석회석이 풍부하여 시멘트공업이 발달해 있다. 주요 인프라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하 자료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http://www.ndsl.kr/ )
▶철도 및 도로
▲ 그림6. 해주시 철도노선
황해남도의 간선철도로 해주와 사리원 사이에 황해청년선(총연장 100.3km)이 있다. 황해청년선은 경의선에 연결되어 있다. 다음으로 해주와 옹진 사이에 옹진선이 있다. 이중 배천선의 종착역인 은빛이 개성과 불과 수 km 떨어져 있어 이 구간을 연결한다면, 해주항이 개성공단의 수출항 역할도 가능하다. 국도는 개성에서 옹진에 이르는 50번 국도, 재령을 경유하여 사리원에 닿는 국도가 있다.
▶해주항 및 해주공항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한적한 어촌 용당포였다. 1921년 인천-해주 항로(110km)가 개설되었고, 1932년 축항과 부두시설이 건설되면서 2천톤급 선박의 접안이 가능하도록 확장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큰 피해를 입고 1962년 복구되었고 1973년 시멘트 전용항으로 개항되었다. 수출 시멘트 선적을 위해 해주시멘트공장에서 해주항까지 컨베이어벨트가 설치되어있다. 연간 화물처리 능력은 240만 톤, 부두길이 1,348m, 수심 약 10m, 1만톤 급 선박의 접안이 가능하다.
해주공항은 군사기지로 운영되며, 제한적으로 민항의 화물 운송에 이용된다. 활주로 1본, 길이 2,000m가 있다.
▶해주시멘트공장
해주시 용당동에 위치하며 부지면적 50m2이다. 1936년 일제강점기 당시 연산 36만 톤 규모(소성로 4기)로 건설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파괴된 이후 3기만 복구되었다. 특기할만한 사실은 철도 지선인 배천선과 옹진선을 시멘트공장 안까지 연장해 놓았다는 점이다.
해주의 관광자원
▲ 그림7-1. 평양마라톤대회 포스터 ▲ 그림7-2. 북한 주요도시 투어
최근 들어 북한은 외국인 대상 관광에 부쩍 열을 올리고 있다. 물론 체제 선전 겸 외화벌이 목적이다. 일례로 평양국제마라톤대회는 꽤 많이 알려져 있다. 일명 ‘만경대상 국제마라손(마라톤) 경기대회(그림 7-1)로 상금도 6천만 원에 이른다고 한다. 매년 김일성 생일인 태양절(4.15)을 앞두고 열리는데 작년(2018)의 경우, 참가자의 절반인 1천여 명이 외국인이었다고 한다(그림 7-2 참조). 물론 국적이 한국인 사람은 참가할 수 없다.
인터넷에 홍보 중인 관광 상품들은 평양국제마라톤경기 이외에도 다양하다(그림 8-1). 예컨대, 나선시(나진/선봉) 핵심투어, 국제 여성절 투어, 김일성생일 투어, 메이데이(5.1) 투어 등등. 대체로 행선지가 평양 위주인데 평양 이외 지역으로 나선시 관광, 금강산 관광, 신의주 관광, DMZ관광, 원산 관광 등등이다. 이 속에 해주시 관광(Haeju City Extension)도 들어있다는 게 놀랍다. 해주 관광상품은 이름 그대로 ‘해주시까지 확장’이다. 다시 말해, 평양을 방문한 김에 인근(?)에 있는 해주시도 여행을 강추!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해주시는 어떤 상품들을 추천해 놓았을까? 이를 살펴보면, 북한 당국이 해주를 국제관광 무대로 개발하려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부용당(芙蓉堂)
▲ 그림 8. 부용당의 모습
해주의 대표 문화재 중 하나로 부용당(芙蓉堂)을 꼽는다. <그림 8>에 보듯 부용당은 연못 안에 서 있다. 돌기둥 33개를 박고 그 위에 누각을 건립했다. 이 연못은 고려 말 1354년 해주읍성을 쌓으면서 조성한 것이라 한다. 읍성마다 성내에 연못을 두는 것은 화재 시 소방수로 사용할 물을 저장하기 위해서이다.
부용당은 1500년 해주목사 윤철(尹哲)이 최초로 건립한 이후, 퇴락과 중창을 거듭했다고 한다. 건물은 ‘ㄱ’자 평면에 팔작지붕이라 단조롭지 않다, 경회루에 비해 규모는 작을 지라도 연꽃밭 위에 자리하고 있어 훨씬 우아한 풍취가 느껴진다.
▶수양산 폭포
▲ 그림 9. 수양산 폭포
해주시 학현동에 있는 폭포이다(그림 9). 높이 128m로 일명 산성 폭포, 또는 해주 폭포로도 불린다. 예로부터 해주를 대표하는 명승으로 알려져 있다. 폭포 벽이 약간 휘어들어 있어 아래에서는 폭포 전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 같다고 한다. 계절마다 색다른 모습으로 봄이면 진달래, 여름에는 짙은 녹음 속의 폭포, 겨울에는 얼음과 눈에 덮인 빙폭(氷瀑)으로도 유명하다.
해주의 잠재력
그동안 ‘북한도시열전’에서 주요 도시들을 살펴보았다. 소위 꼭짓점 도시들과 항구도시들인 신의주, 나선(나진·선봉), 함흥, 원산, 청진 등이었다. 당초에는 이들 도시들이 여전히 정체된 도시로 생각했지만 그 실상은 놀라웠다. 중국 자본의 투자와 항만 시설 일부 임대가 예상 밖으로 컸다. 이는 중국 동북3성의 ‘차항출해(借港出海) 전략’의 영향이었다. 중국은 유엔 제재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북한에 대한 자신들의 지분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풍문으로 들렸던 ‘북한은 조만간에 ‘중국의 동북4성’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말이 마냥 가짜뉴스로 치부할 수는 없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강 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해주는 어떨까? 그나마 해주는 중국 영향을 비교적 덜 받는 도시로 알려져 있다. 왜 그럴까? 해주는 동북3성과는 거리가 멀 뿐 아니라 북한 해군의 서해함대기지이기 때문이다. 만약 남북경협이 재개된다면, 해주-개성-인천의 3각 경제벨트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 그림 10. 해주-개성-인천 3각벨트
해주는 북한도시들 중 인구 순위로 13위에 불과하다. 하지만 남북경협이 재개된다면, 인천-개성-해주의 소위 3각 경제벨트에 의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그림 10>이 이를 대변해 주고 있다. 3각경제벨트의 활성화, 한강하구 공동이용, 1,2차 연평해전 이후 살벌했던 북방한계선(NLL)이 공동어로수역으로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지난 달 베트남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회담은 결렬되었다. 그렇다고 해주의 잠재력이 훼손되는 건 아니다. 언젠가 남북경협이 재개된다면, 과연 해주는 제2의 개성공단이 될 수 있을까? 관건은 해주항의 항만 시설의 현대화, 또한 전력난의 해결, 도로망과 철도망의 확충이 우선되어야 한다. 남쪽의 건설 회사들이 우선적으로 해주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이 원고는 월간 《국토와 교통》 저널 2019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11편 혜산, 붉은 깃발 아래 장마당은 북적이고
출처: https://m.blog.naver.com/wonh55/221876313129
프로필
박하
2020. 3. 27. 17:02
이웃추가본문 기타 기능
혜산시, 언덕 위 붉은 깃발
▲ 그림1. 혜산시-양강도의 도청소재지
혜산(惠山)은 백두산 아래 국경 도시이다. 지명의 뜻은 ‘은혜로운 산’, 산에 의지하여 살아온 산간 마을이란 뜻이다. 하지만 압록강에 인접한 운하도시이기도 하다. 백두산 기슭에서 아름드리나무를 벌목하여 뗏목을 만드는 곳, 이곳 혜산진이 뗏목의 출발지였고, 그 종착지가 신의주였다고 한다. 이전에는 함경도에 속했지만 1954년 북한 당국의 행정구역 개편에 의거, 량강도로 바뀌었다. 그때 이후 혜산은 량강도의 유일한 시(市)로써 도청소재지가 되었다. 또한 혜산은 한반도에서 가장 추운 도시로써 일명 겨울왕국이라고도 한다.
남한 사람들은 혜산을 잘 모른다. ‘혜산’을 안다는 사람들 중에도 십중팔구는 혜산하면 ‘언덕 위 붉은 깃발(그림 2)’부터 떠올린다. ‘붉은 깃발’은 혜산의 랜드마크이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그렇다. 중국 지린성(吉林省) 창바이 여행 당시, 그 깃발을 본 적이 있다. 압록강 건너 언덕 위, 요상한 붉은 깃발을 목격했으니 말이다.
▲ 그림2. 보천보승리기념탑
‘저 언덕 위에 붉은 저것이 뭘까요?, 건물도 아닌 것이, 탑도 아닌 것이, 붉기는 뉘 시기며 방향 따라 변하는가......’ 일행끼리 스무고개를 한 기억이 있다. 알고 보니, 그건 거대한 붉은 깃발 조각이었다. 공식 명칭은 ‘보
천보전투승리기념탑(이하 보천보기념탑)’이다. ‘보천보’하면 ‘보천보악단’이 먼저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보천보는 악단 이름 이전에 지역 명칭이다. 일제강점기 만주벌을 주름잡던(?) 김일성 유격부대가 압록강을 건너 일본군 진영인 보천보를 급습하여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고 자랑하는 그 현장의 지명이다. 역사적 사실의 검증 여부를 떠나 그 전투는 북한 정권의 뿌리이자 자부심이다. 물론 필자만이 이 ‘붉은 깃발’ 조각을 본 건 아니다. 남북경협이나 통일운동 단체들이 주도한 조중 국경 1,300km 답사에 참가한 이들이라면 이미 상식이기 때문이다.
붉은 깃발이 가리키는 방향은 정북으로 창바이시(長白市)이다. ‘창바이’라는 말은 중국에서 백두산을 일컫는 말이다. 말 그대로 이곳 창바이는 백두산 등정의 관문이다. 필자 역시 2015년 10월 초순, 창바이 시를 경유하여 백두산에 올랐다. 등산을 좋아하는 지인들은 진작 백두산에 올랐다. 하지만 필자는 통일 되면 그때 혜산을 통해 오르겠다고 쓸 데 없는 고집(?)을 피우다가 뒤늦게 올랐던 것이다.
표 1. 북한 인구순 도시목록(2008 기준)
순위
도시명
인구(명)
행정단위
1
평양직할시
2,999,466
직할시
2
남포특별시
983,660
특별시
3
함흥시
768,551
함경남도청
4
청진시
667,929
함경북도청
5
원산시
363,127
강원도청
6
신의주시
359,341
평안북도청
7
단천시
345,875
함경남도
8
개천시
319,554
평안남도
9
개성특급시
308,440
황해북도
10
사리원시
307,764
황해북도청
11
순천시
297,317
평안남도
12
평성시
284,386
평안남도청
13
해주시
273,300
황해남도청
14
강계시
251,971
자강도청
15
안주시
240,117
평안남도
16
덕천시
237,133
평안남도
17
김책시
207,299
함경북도
18
라선특별시
196,954
특별시
19
구성시
196,515
평안북도
20
혜산시
192,680
량강도청
혜산은 북한도시열전의 마지막 선수(?), 열 번째 도시로 소개한다. 물론 20위 이하 도시들도 중요하겠지만 필자가 선뜻 혜산을 고른 배경에는 그동안 숱하게 읽었던 탈북민 수기도 한 몫 했던 것 같다. 바로 탈북자들의 출발지, 절대 다수 탈북자들이 혜산을 통해 국경을 넘었다는 사실이다.
혜산은 변방에 있는 도시지만, 북한 내에서 장마당이 가장 활성화된 도시이기도 하다. 인구순으로 보면 혜산은 북한도시들 중 20위이다(*표 1 참조). 비록 도시 규모는 작지만 역사적으로 보나, 발전 잠재력으로 보나 10위 권 도시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북한도시열전의 열 번째 도시, 마감 주자로 선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혜산, 백두산 관문이자 뗏목 집결지
<혜산시 개요>
- 위 치 : 양강도 북쪽 도시
- 행정구역 : 1954 양강도 신설.
(1954년 이전까지 함경도 혜산진)
- 면 적 : 277km2
- 인 구 : 192,680명(2008)
- 동 25개, 리 4개
- 교 통 : 백두산청년선, 삼지연선, 혜산만포청년선
- 관광지 : 괘궁정, 백두산, 삼지연문화회관 등
주요 자원 및 산업 ; 구리, 철, 마그네사이트 등
- 산 업 : 벌목업, 곡물생산, 직물업 등
- 주요시설 : 혜산방직, 혜산흉관, 혜산종이, 혜산철제일용품공장, 들쭉 가공 등
혜산은 조선조 내내 백두산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홍세태(洪世泰, 1654~1725)가 (대필로) 남긴 백두산기(白頭山記)에 의하면, 1712년(숙종 38) 청나라 대표 목극등 일행과 조선 대표 김 경문 일행이 국경을 정하기 위해 백두산 등정에 나선다. 당시 양측 동원이 인원이 각각 60여 명이었는데, 조선측 일행 중에는 관료, 역관 등을 제외하고도 길잡이 3명, 도끼잡이 10명, 말 41필, 짐꾼 47명 함께 산을 올랐다고 한다. 당시에는 백두산에 아름드리나무들이 빼곡했기에 앞장을 선 노련한 나무꾼이 도끼로 나무를 찍어 길을 내었던 것이다. 백두산 등반기는 홍세태 이외에도 다양한 기록들이 전해온다, 여기서 잠시 1766년 서명응(徐命膺: 1716~1787)이 남긴 유백두산기(遊白頭山記) 일부를 소개한다.
‘검천을 따라 상류의 남쪽 언덕에 이르렀다. 혜산의 백성들이 먼저 막사를 지어 놓고 삼나무를 베어 들보와 기둥을 세우고 자작나무 껍질을 벗겨 지붕을 덮고 또 삼면에 보루를 세웠다. 산에서 구한 것인데도 비바람을 막을 수 있었다. 만약 남쪽 백성들에게 이 일을 하도록 한다면 한 해가 끝날 때까지도 쉽게 할 수 없을 것이다. 부엌일 하는 사람이 점심밥을 내왔는데 밥상에 큰 물고기가 반찬으로 올라왔다. 물고기 이름이 여항(餘項)인데 맛이 달고 좋았다, 그물로 잡은 것이 아니라 앞 냇가에서 때려잡은 것이라고 한다. (중략) 산길은 구불구불하여 앞에 가는 사람은 위에 있고 뒤에 가는 사람은 아래에 있게 되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황천 같고 위를 쳐다보면 구천(九天)이다. 우박과 가랑비를 만났으나 이내 그쳤다.(하략)- 『조선시대 선비들의 백두산 답사기』 중 ’서명응 편‘ , 혜안, 282쪽, 1988.
다음으로 1926년 여름, 최남선(崔南善, 1890~ 1957) 일행 200여 명이 백두산 등반에 나서는데 당시 혜산진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혜산진이 (惠山鎭) 첨사 시절에도 100호에 미치지 못하던 작은 강촌(江村)이었는데, 시방(1926) 천여 호의 큰 고을을 이루고, 수비영(守備營)에 자혜의원(慈惠醫院)에 영림창분사(營林廠分司에 드높이 솟은 여러 집채들이 즐비하게 됨이 놀랍다면 놀라운 발전이다. 그러나 일본인 거주자 백여 호 가운데 영업자란 것의 거의 대부분이 요리업자 매춘업자임은 아무리 뗏목일의 중심지라도 좀 심한 현상이었다.’-최남선 『백두산 근참기』, 55. 경인문화사, 2013.
1930년 7월, 민세 안재홍(安在鴻 1891~1965)의 백두산 등척기(정민 옮김/해냄)에는 압록강에서 뗏목을 탄 이야기도 나온다.
‘급한 여울에 떠내리는 떼(뗏목)가 빠르기 살과 같은데, 뛰는 거품이 눈을 뿜고 구비진 여울을 바삐 돌 때 떼꼬리가 석벽을 부벼 와닥닥 몸부림을 친다. 먼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며 내려가는 가는 급류에는 잠긴 바위들이 물결 속에서 눈을 어지럽게 한다. 춤추는 어룡의 떼가 사람들에 놀라 상류로 쫓기는 듯 벙벙한 깊은 개를 지나면 유유하고 탕탕한 정취가 비길 데 없다. -안재홍 지음, 정민 옮김 『백두산 등척기』, 166쪽, 해냄, 2010.
이처럼 일제강점기 당시에도 혜산은 백두산에서 벌채한 나무들의 뗏목 출발지였다. 뗏목의 목적지는 압록강 하구 신의주였다. 1926년 최남선이 혜산진에 이르렀을 당시, 혜산진은 뗏목 사업의 번창으로 민가가 무려 천여 호에 달했다 한다.
혜산진과 괘궁정(掛弓亭)
▲ 그림3. 괘궁정
괘궁정은 ‘활을 걸어놓은 정자’라는 뜻으로 혜산진성 남문의 문루였다. 1631년에 세워졌다. 혜산진성은 조선시대 초에 갑산도호부 산하였고 1421년에 개축 후 진성이 된후, 1657년에 크게 확장했다고 한다. 그 둘레가 약 1,470m이다.
괘궁정의 이름에서 보듯, 이곳은 양반들의 유흥장소가 아니라 국경 너머 오랑캐들을 감시하는 전망대이자 전쟁 발발 시 장대(將臺), 즉 전투지휘소라는 뜻이다. 괘궁정은 2019년 4월 현재, 북한 보물52호로써 국방 유적으로 잘 관리 중이라 한다.
영화 『량강도 아이들』
▲ 그림4. 영화 포스터
때로는 영화 한 편이 책 열 권 보다 낫다. ‘백문이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이라는 말 그대로다. 영화 『량강도 아이들』은 가슴이 훈훈해지는 영화다. 보기 전에는 일말의 불순한 선입견이 있었지만 영화 시작과 함께 시시때때로 폭소를 터트리고, 코 끝이 찡해지다 보면 어느새 몰입이 되고 만다. 영화의 리얼리티를 높인 것은 탈북 출신 정성산 감독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혜산과 지린성, 상부상조?
▲ 그림5. 혜산시 구글위성지도
량강도는 이름 그대로 두만강과 압록강을 곁에 두고 있다. 물론 두 강은 중국과 경계이다. 또한 백두산이 솟아있고, 주변으로는 함경남도, 자강도, 함경북도에 접해 있다. 북쪽 건너편이 지린성(吉林省) 창바이시 창바이 조선족 자치현이다.
2000년대 이후, 탈북민들의 70% 이상이 이곳 량강도 출신이라고 한다. 그들은 예외 없이 혜산에서 압록강을 건너 창바이시로 탈출했다고 한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건너편이 조선족 자치주이기 때문이다. 그곳에 가면 말이 통하고, 동포애가 흐르기 때문이다. 통계에 의하면, 탈북민의 70% 이상이 여자라고 한다. 여자가 남자보다 용감해서 그럴까? 진짜 이유는 중국 동북 3성의 과도한 성비 불균형이 원인이라고 한다. 결혼적령기 신붓감의 절대수가 부족하다고 한다.
그 원인이 뭘까? 70년대 이후 중국의 ‘1자녀 낳기 운동’의 결과, 2010년대 현재, 중국은 결혼적령기에 있는 청춘남녀들의 성비가 무너졌다고 한다. 남자 초과, 여자 절대 부족 현상으로 무려 3천만 명 정도의 여성이 부족하다고 한다. 남초 현상이 가장 심한 지역이 동북3성이라고 한다. 량강도 아가씨들이 목숨을 걸고 압록강을 건너 창바이시에 도착하기만 하면, 말이 통하고 조선족 중매쟁이의 주선으로 일종의 계약 결혼도 할 수 있다고 한다. 실제 탈북민 수기 중에는 중국 현지인과 결혼 후, 그곳에서 살다가 다섯 살 된 사내아이와 함께 탈북에 성공한 여자의 수기 ‘『그래도 살아 남았다』, 한은미, 조갑제닷컴, 2015’를 읽은 적이 있다. 말하자면 량강도와 지린성의 창바이시 조선족 자치주 사이는 상부상조인 셈이다. <그림 5> 구글위성지도에서도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동일 생활권임을 알 수 있다. 밀수에서부터 배우자까지 서로 간에 부족한 부분을 메꾸며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삼수갑산, 백두산 가는 길
량강도에는 삼수군도 있고, 갑산군도 있다.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먹고 나 보자’란 속담 속의 그 삼수와 갑산이다. 삼수와 갑산은 개마고원의 중심부에 위치한 심심산골로 조선조 중죄인들의 단골 유배지였다. 일례로 고산 윤선도는 일흔(70)이 넘은 나이에 삼수군에 위리안치(圍籬安置) 유배를 갔다가 운 좋게 귀향을 했던 인물이다.
삼수갑산(三水甲山) 내 왜 왔노 삼수갑산이 어디뇨 / 오고 나니 기험(奇險)타 아하 물도 많고 산첩첩(山疊疊)이라 아하하// 내 고향을 도로 가자 내 고향을 내 못 가네/ 삼수갑산 멀드라 아하 촉도지난(蜀道之難)이 예로구나 아하하// 삼수갑산이 어디뇨 내가 오고 내 못 가네/ 불귀(不歸)로다 내 고향 아하 새가 되면 떠가리라 아하하(이하 생략)
- 김소월 詩 ‘삼수갑산’ 일부
‘촉나라 가는 길은 푸른 하늘에 오르기보다 더 어렵구나(蜀道之難難於上靑天)’, 이배택의 ‘촉도난’이란 시다. 소월이 삼수갑산을 이태백의 시에 비기고 있다. 조선조 최악의 유배지, 삼수갑산의 명성은 20세기 중반까지도 전혀 변함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삼지연과 삼지연 공항
▲ 그림6. 백두산 천지와 삼지연 ▲ 그림7. 삼지연 비행장
삼지연(三池淵)은 삼지연군에 있는 호수이다. 백두산 천지에서 남동쪽으로 40여 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세 개의 못을 말한다. 삼지연은 물이 흘러드는 하천도 없고 물이 다른 데로 빠져나가지도 않는다. 호수는 눈과 빗물, 샘물에 의해서만 채워진다. 화산 활동의 영향으로 평균 수온이 23 °C로 높은 편이다. 최근 들어 백두산 주변에서 재폭발을 우려하는 이상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삼지연비행장(三池淵飛行場)은 삼지연군에 위치한 군-민 공용 공항이다. 외국에서 가장 빠른 시간에 백두산관광을 하려면 반드시 삼지연공항을 이용해야 한다. 삼지연공항에서 백두산 천지까지 거리는 서북쪽으로 약 32 km이다. 민항으로는 주로 백두산 관광객들이 이용한다. 지난 2005년에 대한민국이 지원한 피치 8천 톤으로 활주로와 진입로를 보수한 바 있다. 당시 우리 정부이 공항의 개발 및 정비를 위해 90억 원을 지원한 바 있다.
2018년 9월에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고, 그 연장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이곳 삼지연공항을 이용하여 백두산 천지에 오른 바 있다. 그 당시, 삼지연 공항 규모가 작기 때문에 대통령 전용기가 무리 없이 이착륙을 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시각도 많았다.
북한당국은 이곳 삼지연 공항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관광지들을 꾸준히 개발해 왔다. 이명수 폭포, 건창, 백두산밀영, 백두폭포, 백두다리 등. 만약 남북경협이 재개되고, 북한 땅을 통해 백두산 관광이 개시된다면 이곳 삼지연 공항이 북새통으로 바뀔 것 같은 예감마저 든다.
백두산 관광철도
▲ 그림8. 백두산 관광철도(RFA 사진) ▲ 그림9. 백두산 천지 배경(필자 2015. 9)
‘산들 중에서도 으뜸은 백두산이다. 현재는 잠자고 있는 화산의 분화구가 핵심이다. 화산은 1903년에 폭발했고, 지금 다시 깨어날 조짐을 보인다. 이 분화구에 물이 채워져서 하늘호수 ’천지‘가 되는데, 이와 똑같이 신성한 눈 덮인 가파른 산봉우리들이 천지를 둘러싸고 있다. 중국과의 국경선이 호수를 통과하니, 양측에서 이 호수를 방문할 수 있다. 북한 쪽에서의 방문은 힘들고, 사나운 날씨 때문에 오직 여름에만 가능하다. 중국 쪽에서는 연중 내내 사륜구동 도요타 자동차로 목숨이 위태로운 드라이브를 해서 올라갈 수 있다. 근처 마을 젊은 사내들은 두려움에 떠는 관광객의 겁먹은 눈길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남성성을 증명한다. - 뤼디거 프랑크, 안인희 옮김 『북한 여행』, 한겨레출판, 395!396쪽
이 글에서 보듯, 중국은 백두산 관광이 활성화되어있지만, 북한의 상황은 열악하다. 접근로가 열악하기 때문이다. 접근로를 개선하기 위해 전천후 교통수단인 백두산 관광철도를 2018년 현재, 건설 중에 있다고 한다. (그림 8 참조).
북적대는 장마당, 혜산의 미래
▲ 그림10. 장마당 돼지고기 판매(갈렙선교회)
얼마 전 유튜브에서 놀라운 동영상을 발견했다. 바로 <그림 10>의 장면으로 혜산 장마당에서 돼지고기를 판매하는 상황이다. 갈렙선교회에서 제공한 동영상을 캡쳐한 장면이다. 자막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혜산시 만큼은 내륙이지만 물고기(오징어), 돼지, 개, 닭, 오리 등 장마당이 활성화 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냉동육이 아니라 갓 잡은 돼지고기 날고기이고, 개, 닭, 오리 등도 판매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놀라운 점은 상인의 팔목에 찬 금시계와 세련된(?) 앞치마를 보면, 상상초월이다. ‘북한의 주적은 남한이 아닌 굶주림이다.’ 그 말이 이곳 혜산의 장마당에서는 한낱 우스개에 불과했다.
혜산의 미래
▲ 그림11. 보천보기념탑
기념탑에는 그 시대의 통치철학이 담겨있다. 물론 그 도시의 위상도 알 수 있다. 예컨대. 평양에는 횃불을 높이 치켜든 모양의 주체탑이 있고, 이곳 혜산에는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이 있다. 이 탑은 일제강점기 1937년 6월 4일에 보천보군에서 김일성 부대가 게릴라작전으로 보천보 경찰서를 습격하고, 혁혁한 전과를 올린 사건을 기념하고 있다. 1967년 준공으로 높이는 38.7미터, 길이는 30.3미터에 이른다.
혜산의 북적대는 장마당과 붉은 깃발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태풍이 불어도 결코 흔들리지는 않는 깃발, 거대한 붉은 깃발 조각이 가리키는 곳은 어디인가? 백두산이 아니라 얄궂게도 압록강 건너 창바이시다. ‘우리의 살길은 중국을 따라 가는 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혜산의 미래는 혁명기념탑에 적힌 구호가 아닌 것 같다. 사람과 물자가 북적대는 곳, 혜산의 활기 넘치는 장마당에 북한의 미래는 벌써 와있는 것만 같다.▴
<‘북한도시열전’을 마감하며>
지난 해 2018년 7월부터 북한의 10개 도시를 11회에 걸쳐 다뤘다. 평양, 개성, 나선, 신의주, 원산, 함흥, 청진, 해주, 남포, 혜산 순이었다. 선정 기준은 인구순이 아니라 필자 나름으로 남북경협 차원의 가능성이었다. 가급적 정치적 관점은 배제하고, 가치중립적인 건설엔지니어의 시각에서 해당 도시들의 발전 잠재력을 소개하려고 했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 필자 드림
* 이 원고는 월간 《국토와 교통》 저널 2019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첫댓글 부동산으로 망해가며 북조선에 복덕방 세울 꿈꾸는 남조선 천치들...ㅋㅋㅋ
자본의 기레기, 쓰레기가
기레기 본성대로 북의 모습을 기레기화 하여
남발한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