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평양의 랜드마크, 류경호텔은 언제쯤 개장할까? 프로필 박하 2018. 8. 13. 16:05 이웃추가본문 기타 기능 <기획 취지>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2018)에 이어 남북 교류 기대가 높아가고 있다. 교류의 물꼬를 튼다면 응당 건설 인프라 개선이 먼저다. 낙후된 도로·철도·항만 등의 수준을 단시간에 개선시켜야만 한다. 이들 인프라는 도시와 도시, 나라와 나라를 잇는 관상동맥이다. 북한의 주요도시들은 평양, 개성, 청진, 나선, 신의주 등 5대 도시를 꼽는다. 앞으로 북한 인프라 개발을 위해서는 이들 도시들이 지역별 베이스캠프가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 건설엔지니어들은 그동안 북한 도시들에 대해 너무 무관심했다. 지금부터라도 북한 주요도시들을 예습하는 차원에서 북한 도시열전을 마련한다. 이 글은 정기간행물 '국토와 교통' 2018년 7월호부터 동시 게재됩니다. - 필자주 평양과 류경호텔
▲ 그림1. 류경호텔 전경 남북 사이에 훈풍이 불고 있다. 지난 4월 27일, 5월 26일,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의 영향이다. 지난 6월 12일, 미북정상회담도 싱가포르에서 열렸다. 올해 초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사건이다. 물리적 통일이야 한참 멀었겠지만 남북 간 교류는 급물살을 탈 것 같다. 다만 북핵 문제로 인한 유엔제제가 계속 유효하기에 아직은 모든 면에 한계가 있다. 외교든 비즈니스든 간에 교류는 십중팔구 평양에서 이뤄진다. 그렇다면 평양을 알아야만 한다. 평양에 대해 가장 궁금한 점이 있다. 바로 류경호텔이 언제 개장할까, 이다.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류경호텔의 안부가 가장 궁금하다. 류경호텔은 1987년 착공한 이래, 건설과 중단을 반복하며 숱한 유언비어들을 쏟아냈던 건물이다. 벌써 31년이 경과했는데도 준공 소식은 아직도 들리지 않는다. 2018년 7월 현재, 준공하지는 않았지만 이 호텔은 이미 평양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머지않아 이 호텔은 북한을 대표하는 글로벌 비즈니스 무대가 될 것이다. 그때가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류경호텔의 건설 과정을 살펴보는 일은 시의적절한 이슈라 생각된다. 이를 통해 북한 건설기술의 현주소와 수도 평양의 미래를 전망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평양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아니, 한 번도 가본 적도 없는 평양에 대해 어떻게 소개를 합니까?’ 하고 의아해 하는 분들도 있을 줄 안다. 하지만 답은 ‘네! 북한 땅에 가본 곳이라곤 금강산과 개성뿐입니다. 평양은 아직 안 가봤지만 건설엔지니어 관점에서 소개하는 일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이유인즉, 인터넷 검색으로도 웬만한 자료들은 다 구할 수 있다. 한글 자료들은 부족할지라도 믿을만한 영어 자료들은 널려있다. 또한 구글어스를 통해서도 평양의 구석구석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들 자료들 중에서 옥석을 가려내어 평양의 현주소를 그려내 볼 참이다. (가능한 한 객관적 사실에 입각하여 기술하고, 정치적인 편견은 배제할 작정이다.) 평양의 전후복구사업 <평양 개요> - 평양직할시 ; 수도, 최대도시 - 행정구역 ; 18구 2군 - 인구 ; 약 300만 명(2008) - 면적 ; 1,747.7km2 - 해발 27m - 연강수량 ; 939.8mm - 평양지하철 ; 1973(서울 1974) - 시목 ; 버드나무 - 유적지 ; 안학궁터, 단군릉, 동명왕릉, 을밀대, 평양성, 대동문 - 대학 ;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대학, 김형직사범대학, 국제관계대학 등. - 체육시설 ; 릉라도 5월1일 경기장, 김일성경기장, 평양체육관, 류경정주영체육관, 평양보링장 - 호텔 ; 류경호텔, 보통강호텔, 창광산호텔, 서평양호텔, 고려호텔 등
‘사회주의 국가의 수도 중에서 평양이 가장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의아했다. 북한의 선전선동전술이 나은 홍보 문구인가, 하고 말이다. 선뜻 이해가 안 되었지만 숱한 자료 사진들을 섭렵할수록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 배경에는 6.25전쟁 이후 초토화되었던 평양이 새롭게 태어날 때, 도시 설계부터 단계적 개발에 이르기까지 계획적으로 시행되었다는 말이다. 이를 증명해주는 글을 아래에 인용한다. 평양시의 본격적인 개발은 6.25 전쟁으로 초토화된 시가지 ‘전후복구사업’ 운동으로부터 출발한다. 1950년대 후반에는 소련식 고층살림집(6층 아파트)을 많이 건설, 주민들의 주택난 해소에 박차를 가했고, 아울러 상습 침수지대인 보통강지역 제방 배수공사의 대역사를 마무리했다. 1960년대에는 대동강 서안(西岸)의 기존 도심지를 재개발하고, 공공시설 확충에 역점을 두었다. 1970년대에는 소위 ‘혁명의 수도 건설’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평양을 시범·선전도시로 만드는데 주력하여 시가지 정비, 고층 대형 건조물, 김일성 우상화 시설 등을 짓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1980년대에는 이른바 ‘국제도시화 작업-세계 유일의 공원도시 조성’을 내세워 각종 대단위 건설사업, 시가지 확장, 불량주택지구 정비, 조경사업, 최신 체육시설, 고층아파트(10층 이상), 대규모 관광호텔(평양고려호텔, 량강호텔, 서산호텔, 류경호텔 등)을 대대적으로 건설하였다. 특히 북한은 제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행사 개최를 계기로 평양시를 대외적으로 선전하기 위해 도시미화사업(재개발 및 환경 정비)에 집중 투자를 하였다. 광복거리, 안골체육촌, 류경호텔(105층, 3,000실), 릉라도 경기장(5·1경기장, 15만 명 수용), 고층아파트 건설 등이 여기에 해당되는데, 특히 만경대 구역 광복거리와 청춘거리에 역점을 두었다. 평양시 서쪽에 위치한 광복거리는 건축면적 400만m2, 건설용지 1,800만m2를 지정, 도로를 100m 폭으로 확장하고 그 주변에 호텔, 체육시설, 고층아파트, 학생소년궁전, 국제문화회관 등을 지어 놓았다. - 출처; 분단 50년 북한을 가다 ①평양, 한국문원, 1995. 평양의 입지조건
▲ 그림2. 평양 조감도
▲ 그림2-1. 평양 위성사진-대동강과 보통강이 합류되는 구역이 건축밀도가 높다. 평양에는 대동강과 보통강이 흐른다.(그림 2, 2-1 참조) 강 좌측에 형성된 중심부를 본평양, 서쪽을 서평양, 그리고 강 건너 동쪽의 시가지를 동평양으로 나눈다. 낮은 구릉과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평야가 많아 농업이 발달했다. 중심지에 위치한 산은 모란봉(96m)이고, 그 동쪽 주변에 대성산(270m)이 있고, 그 북쪽은 청운산(373m)과 용골산(400m)이 있다. 모란봉의 동쪽의 비교적 높은 산지가 시작하는 초입에는 제령산(498m)이 서 있다. 평양은 여름철에는 홍수가 잦았다고 한다. 홍수로 인해 농업피해가 막심했기에 김일성이 직접 지시하여 보통강의 관개공사를 실시함으로써, 홍수 피해를 줄이고 농업이 발달하게 되었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이를 선전하기 위해 보통강 구역에 기념탑이 서있고, 보통강 유원지도 조성하여 시민들이 휴식을 즐기는 명소가 되었다. 1945년 분단 이후, 소비에트연방의 영향을 받은 공공건물들이 많이 들어섰다. 1967년부터는 인구 증가로 인해 신도시 건설을 추진, 다양한 건축물들이 세워졌다. 그 연장선에서 2010년대 평양의 최신 아파트단지인 창전거리의 완공을 들 수 있다. 2012년 6월 평양 창전거리가 완공됐을 때도 김정은은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주었다. 최신 아파트 단지인 창전거리는 ‘북한판 뉴타운’, ‘평양의 강남’이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은은 부인 리설주와 한께 아파트에 새로 입주한 가정들을 방문했다. 나이든 분들에게 직접 소주까지 따라주며 인민의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가꿔 나갔다.’ - 출처 ; 『태영호 증언, 3층 서기실의 암호』, 기파랑, 2018. 5 평양의 고층아파트 단지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다루기로 한다. 이들 고층아파트 건설 이전, 평양의 스카이라인을 바꾼 기념비적(?)인 사건이 있다. 바로 초고층건물 류경호텔의 건축을 들 수 있다. 류경호텔 건설 과정
▲ 그림3. 류경호텔 개념도 류경호텔은 105층으로 미완성 건물이다. 외관은 피라미드를 닮았지만 평면도를 보면, 삼발이 형식이다. 중심에서 120도 간격으로 3개의 팔이 나와 있고, 위로 올라갈수록 비스듬히 줄어들어 꼭대기로 모인다. 건물은 호텔, 백화점, 오피스 공간 등으로 다목적 복합 건물이다. ‘류경(柳京)’이라는 이름은 평양의 별칭이다. 대동강 강변에 버드나무가 많아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이 호텔 뿐만 아니라 평양에는 ‘류경’이란 이름이 붙은 건물들이 많다. 그만큼 평양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름이라고 한다. 류경호텔은 1987년 착공한 이후, 1992년에 골조가 완성된 뒤에 건설 중단되었다. 1991년 러시아연방의 붕괴와 함께 심각한 경제 위기가 닥쳤기 때문이다. 1992년 골조는 완성했지만 창문공사나 내부 수장공사도 없이 방치되었다가 2008년 공사가 재개되었다. 2011년 외장(외부마감) 공사가 완성되었고, 당시 계획으로는 2012년 김일성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준공 예정이었다. 하지만 실패했고, 2013년 부분 개장을 하겠다고 선포했지만 역시 실패했다. 2018년 7월 현재, 완공이 되지 못한 상태이다. 따라서 류경호텔은 미준공 분야 세계최고층빌딩이라는 불명예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 그림4. 골조공사 당시 모습 <류경호텔 개요> - 착공 시기 ; 1987 - 골조 완성 ; 1992 - 준공 시기 ; 미정 - 높이 ; 330.02m - 층수 ; 105층 - 객실 ; 3,000개 - 연면적 ; 360,000m2 - 용도 ; 카지노, 레스토랑, 아파트, 호텔, 백화점 등 - 건축설계 ; 백두산 건축 엔지니어 - 시행자 ; 오라스콤 그룹
▶건축 구조 류경호텔은 높이 330m이다. 평양에서 가장 높고 북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당초 류경호텔은 1989년 6월 평양에서 개최된 세계학생청년축전을 기념하여 개막식 전에 준공을 목표로 착공되었다. 예정대로 준공되었다면 1989년 기준, 세계 최고층 호텔의 영예를 누렸을 것이다. 류경호텔은 3개의 날개를 가졌다. 날개 하나의 길이가 100m, 너비가 18m, 경사각이 70도를 이루고 있다. 3개의 날개는 75도로 상승한 다음, 꼭대기로 수렴된다. 꼭대기 바로 아래층은 원통형으로 8개층이다, 이 원통형 구조는 원반 디스크처럼 회전한다. 원통형 구조 위에는 꼭대기 층으로 6개층이 있다. ▶건설 과정 20세기 냉전시대에는 거대 호텔들이 종종 등장했다. 일례로 1986년 준공된 싱가포르 웨스틴 스탬포드 호텔이 주목을 받았다. 그 호텔은 한국의 쌍용건설에 의해 준공되었는데 당시로선 세계최고의 호텔이었다. 북한은 이 호텔에 자극받아 평양에도 서양 자본을 유치하여 호화 호텔을 짓고자 했다. 또 한 가지 그럴 듯한 건설 배경도 있다. 북한 당국은 1985년 준공된 서울의 63빌딩(높이 250m)에 자극받은 나머지 63빌딩을 납작하게 눌러줄 프로젝트로 류경호텔을 내세웠다고 했다. 이리하여 류경호텔 건설이 야심차게 진행되었던 것이다. 북한 정부는 류경호텔의 신축공사 사업비로는 외자 2.3억 달러(한화 2300억원)를 유치하고, 건물 내에는 카지노장, 나이트클럽, 일본인 라운지 등이 입주하도록 파격적인 게획을 승인했다. 건설회사는 북한의 백두산 건설이 맡았다. 이리하여 1987년 건설공사를 개시했다. 호텔은 19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의 개막 직전에 개장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시공방법의 문제, 건축자재 조달의 지체로 인해 준공이 미뤄졌다. 만약 예정대로 준공되었더라면 싱가포르 웨스틴 스텐포드호텔의 기록을 갱신할 수 있었다고 한다. ▶건설 중단
▲ 그림5. 류경호텔 전경 1992년 꼭대기까지 골조공사가 완료되었다. 그러나 돌연 후속공사가 중단되었다. 러시아연방의 붕괴로 인해 최악의 경제난이 닥쳤기 때문이다. 일본 언론보도에 의하면, 그동안 추정 공사비는 7500억 달러(한화 7500억원)로 당초 예산을 2.5배 정도 초과했다고 한다. 이는 북한 GDP의 2%에 달하는 금액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1992년 중단 이후 십년 넘게 방치 상태로 있었다. 이를 두고 영국 BBC는 ‘전체주의 국가의 좌절된 야망의 본보기(the reminder of Totalitarian state’s thwarted ambition)’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1990년대 후반, 한국 주재 유럽상공회의소 소속의 Marcus Noland 씨가 현지를 방문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그 내용이 충격적이었다. ‘이 건물은 수리가 불가능하다. 콘크리트의 강도가 부실할 뿐 아니라 엘리베이터 샤프트도 기울어진 상태이다.’ 달리 말하면, 건물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상태, 즉 부등침하(不等沈下)가 발생했다는 뜻이었다. 2006년 미국 ABC 방송의 보도에 의하면, ‘북한 당국은 류경호텔 같은 대형프로젝트를 수행할 정도의 건축자재 및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이 보도 이후, 북한 당국은 평양을 홍보하는 자료에 류경호텔의 존재를 애써 감추려고 했다. 사진 원판에도 흉물스런 류경호텔을 지웠다고 한다. 건설 초기에는 북한 발행 조선 우표에는 평양의 스카이라인에 완공된 류경호텔이 솟아있었다고 한다. 건설 중단 이후, 세계언론들은 류경호텔의 미래를 두고 온갖 조롱 섞인 말들을 쏟아냈다. ‘유령 호텔’, ;세계최악의 건물‘ 등으로 말이다. ▶공사 재개 2008년 4월, 1992년 건설 중단 이후 16년이 흐른 이후, 이집트 통신회사 ORASCOM GROUP이 공사 재개에 나섰다. 건설 조건은 자신들이 400억 달러를 투입하여 류경호텔을 준공해 주는 대신, 북한 전역에 휴대전화(3G Mobile) 사업권을 받는 조건이었다. 이 계약이 성사되어 건설공사가 재개되었고, 당시 북한 당국은 류경호텔이 2012년에 준공된다고 공포하였다. 준공 시점은 ‘영원한 수령 김일성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 맞춘 것이었다. 2009년 ORASCOM 건설책임자(C.O.O) Khaled Bichara씨는 ‘호텔의 완공에는 별달리 심각한 문제들은 없다. 구조적인 문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겠다. 빌딩 꼭대기 층에는 회전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일도 충분하다.’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2011년 7월, 건물 외장공사가 완료되었다. 외벽의 유리 패널 설치와 꼭대기 통신 안테나도 설치되었다. 2012년 9월, 북한 당국은 고려투어 팜플릿을 제작하면서 처음으로 류경호텔의 내부를 공개하기도 했다. ▶2013 준공 연기
▲ 그림6. 류경호텔 주변 위성사진-호텔 주변은 난개발이 아니라 고도로 정제된 느낌이다. 2012년 11월 국제호텔 지배자로 결정된 Kempinski 씨가 발표했다. 류경호텔은 2013년 중반에 부분 개장할 예정이다. 2013년 3월 호텔은 개장이 연기되었다. 그 이면에는 북핵 문제로 인한 국제 제제, 심각한 경제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2016년 재단장 공사 2016년 후반, 또다시 공사 재개 뉴스가 있었다. 이집트 회사 ORASCOM의 책임자가 북한을 방문했고, 2017년 또는 2018년 진입로 공사와 함께 공사를 재개할 예정이라고 했다. 2018년 4월 기준, 외관에 LED 조명이 가동되고, 꼭대기에는 북한 인공기가 게양되었다. 그때 이후, 2018년 6월 현재까지 개장에 대한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모르긴 해도 남북정상회담, 미북정상회담의 영향으로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가 풀릴 경우, 개장 소식이 들려오리라 예상된다. 류경호텔, 평양의 랜드마크 류경호텔은 착공한 지 벌써 36년이 경과했다. 준공을 아직 못했지만 이 호텔은 이미 평양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류경호텔에 대해 살펴보았지만, 역시 핵심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일테면, 기초설계, 건축구조, 내진 설계, 방재계획, 코어부분 상세 등에 관해서는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달리 말하자면, 정보 공개가 여전히 통제되고 있다는 뜻이리라.
어쨌든 간에 류경호텔은 유엔에 의한 경제 제재가 풀리면 즉시 개장되리라 예상된다. 만약 공식 개장된다면 운영은 순조로울까? 최고층 회전 레스토랑은 과연 제대로 작동할까? 최고층 객실에 수돗물은 제대로 나올까? 등등 시시콜콜한 의문에서부터 내진 성능, 방재계획 등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바라건대 류경호텔이 하루빨리 준공되기를 기대해 본다. 개인적으로 10년 이내에 평양을 방문하여 류경호텔에서 1박을 하고 싶다. 그날이 오면 제일 먼저 회전레스토랑에 들러 느긋한 식사를 즐기며 평양 시내를 파노라마로 즐기고 싶다.▴
첫댓글류경호텔은 당시 최고의 자재와 설비를 장착한 세계최고의 높이와 최고급수준의 건물로 건설하려고 하였지요 그런데 그 계획이 발표되자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 무리들이 연합을 하여 온갖 제재와 방해책동으로 하여 차질이 빚어졌고 결국 오랜세월 동안 중단되였지요
사회주의나라들도 붕괴되고 제국주의 똘만이 무리들이 조선의 사회주의 까지 붕괴시킬려고 피를 물고 달려 들었고 봉쇄망을 겹겹으로 치고 질식시키고 군사적 위협도 최고조에 달했지요 하여 조선은 선군의 기치를 들고 국방력강화에 최우선 힘과 국력을 집중시켰지요 그리하여 방위적무력에서 공격적무력으로 체질을 완전히 바꾸었고 결국은 핵무력을 완성하였지요
첫댓글 류경호텔은
당시 최고의 자재와 설비를 장착한 세계최고의
높이와 최고급수준의 건물로 건설하려고 하였지요
그런데
그 계획이 발표되자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
무리들이 연합을 하여 온갖 제재와 방해책동으로 하여
차질이 빚어졌고 결국 오랜세월 동안 중단되였지요
사회주의나라들도 붕괴되고
제국주의 똘만이 무리들이 조선의 사회주의 까지
붕괴시킬려고 피를 물고 달려 들었고
봉쇄망을 겹겹으로 치고 질식시키고
군사적 위협도 최고조에 달했지요
하여
조선은 선군의 기치를 들고 국방력강화에 최우선 힘과
국력을 집중시켰지요
그리하여
방위적무력에서 공격적무력으로 체질을 완전히
바꾸었고
결국은 핵무력을 완성하였지요
핵을 들고 삼키려고 달려드는 미국과 국제반동들과의
싸움이 최우선으로 중차대한 것이지
105층호텔이 국가와 인민의 안전을 지켜주는 것은
결코 아니지요
시간이 되고 여력이 되면 그런것 정도는
아무 때고 마무리를 하면 되는거니까
우선 순위에서 뒤에 있을 뿐이지요
뭐 언제인가는 완공이라는 희소식이 나오겠지요
헐 만리마시대에 무려 2년전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