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가볍지 않다
걸프전쟁이 한창일 때, “내가 죽지 않는다는 보장만 있다면 전쟁 구경만큼 재미있는 것이 없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1990년부터 1991년까지 이어진 걸프전은 CNN에 의해 24시간 전황이 실시간 중계되었고 전 세계 사람들은 안방에서 영화를 감상하듯 전쟁을 지켜보았습니다.
사실 전쟁 구경은 1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14년 8월 독일군이 벨기에를 침공했을 때, 브뤼셀의 시민들이 직접 전쟁을 보기 위해 근처 고지대로 올라가기도 했고, 프랑스에서는 시민들이 자동차를 타고 전장으로 이동해서 구경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고 참상이 드러나면서 구경꾼은 사라졌다고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전쟁의 특성 중 하나는 드론에서 촬영된 전쟁 영상을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일부 러시아 군인들은 드론을 따라 투항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어떤 군인은 마지막으로 담배 하나만 피우고 싶다며 담배에 불을 붙이는 모습과 담배 몇 모금을 빤 후 드론에서 폭탄이 투하되는 모습까지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드론을 피해 달아나다가 어찌하여 드론을 낚아챈 러시아 병사가 드론이 터지면서 사망하는 모습도 공개되었고 전사한 것으로 보이는 파병된 북한군과 그 옆에 드론을 피해 나무에 엄폐한 또 다른 북한군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 중에 아직도 눈에 밟히는 장면은 드론을 향해 담배 한 대만 피우겠다는 러시아 병사의 모습입니다. 영상을 보면 이 병사는 이미 부상을 당해 전투 능력이 없어 보였는데 왜 굳이 폭탄을 투하해서 죽였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전투 중에는 죽이고 죽을 수 있겠지만 부상으로 낙오된 병사는 포로로 잡아서 치료를 해주는 것이 제네바 협정을 지키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담배를 다 피우자 드론에서 폭탄이 떨어지면서 영상이 끝납니다.
이 장면이 보도된 뉴스들을 보면 마치 드론을 조종하는 병사가 아량을 베풀어 죽기 전에 담배를 피울 수 있게 했다는 뉘앙스를 풍깁니다. <“마지막 담배 한 대만…” 무장 드론 본 러 병사의 손짓>이 뉴스 영상의 제목입니다.
전장 속, ‘죽기 전 마지막 담배’라는 강렬한 스토리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만 이 이야기의 결말은 자비 없는 차가운 죽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대부분의 뉴스는 병사의 죽음보다 마지막 담배 한 모금에 더 집중을 했고 이를 보는 사람들 역시 영화 감상하듯 사망 직전 군인이 선택한 흡연 모습을 보았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미디어를 통해 우리가 너무 쉽고 흔하게 죽음을 접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영화를 통해 사실보다 더 사실적인 잔인한 죽음의 장면을 너무 자주 보게 된 탓일까요? 보여주는 쪽도 고민없이 죽음을 전달하고 보는 쪽도 죽음의 순간을 감상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미디어에서 죽음의 순간을 보도하는 것에 대해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금기시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죽음이 가벼워지고 자주 접하는 소재가 되어버린 느낌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죽음의 영상이 강렬할수록 영상 자체의 이미지로 인해 전후 맥락이 소홀히 다뤄지는 경우도 생깁니다.
베트남 전쟁 중 촬영된 ‘사이공 처형 사진’이 그 예입니다. 전쟁 중 즉결 처형이었지만 처형을 담당한 응우옌응옥로안 장군은 악마로 비쳤고 처형을 당한 응우옌반렘은 그가 저지른 범죄 행위와 상관없이 단순한 피해자로 각인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 사진을 찍은 에디 애덤스(Eddie Adams)는 1969년 퓰리처상을 수상했지만
이 사진으로 곤란을 겪은 응우예응옥로안 장군에게 직접 사과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죽음의 장면을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윤리적으로 적절한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미디어에서는 수많은 죽음이 독자 또는 시청자의 궁금증을 해결한다든가 아니면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한다는 이유를 달면서 소비되었습니다. 그 결과 대형참사의 순간이나 전쟁에서 군인이 전사하는 장면이 대중매체에 여과없이 등장하고 뉴스가 소비된 이후에도 클릭 몇 번으로 유튜브에서 참혹한 순간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죽었는데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다시 마지막 담배를 피웠던 러시아 장병의 경우 이 모습을 보는 유족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과연 유족이 “우리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줘서 고맙습니다.”라고 말을 할까요?
아니면 “우리 아들이 마지막으로 담배를 피울 수 있게 시간을 줘서 고맙습니다.”라고 얘기할까요? 이 영상이 훈훈한 미담으로 소개되려면 부상당한 군인을 적군이든 아군이든 가리지 않고 치료를 해주고 살려서 집으로 보내야 했던 겁니다.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러시아도 “우크라에 영광을”을 외친 저격수 올렉산드로 마치예우스키를 포로로 여기지 않고 즉결 처형한 것으로 보입니다. 전쟁을 하면서 서로 원한이 깊어지면서 당사국과 당사자들은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힘들 때도 생길 수 있습니다만,
이를 보도하는 다른 나라 언론들은 보다 진중하게 중심을 잡고 전쟁을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전쟁을 그저 흥미로운 뉴스 거리로 생각하는 경우를 너무 자주 보게 됩니다. ‘마지막 담배 한 개비’를 간절히 원했던 러시아 병사의 죽음은 그래서 너무 가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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