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눈이 아프도록 글을 읽었다.
내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
남북전쟁에서
먼
이국땅
낯선곳에서 엄동설한과 북풍한설의 매서운 추위와 싸웠던 영웅들
사무실
건물을 수리하시는 분들은 구런다.
대표님
뭔
공부를 그렇게 꼼짝도 하지 않으시고 하시느냐고.
ㅋㅋ
매일
얼음커피와 얼음음료와 사탕이나 과자를 주는데 없으니 쪼끔은 궁금한가 보다.
주는 즐거움
베푸는 행복
유담리
미 해병 제5연대와 제7연대의 전투다.
터키힐
폭스힐이 없어
내가
그린 그림으로 다시
한번 더
원
그림은
대한민국 화랑전투경찰 소대의 기관총이다.
기록
우리는 없다는 것이 슬픈 일이다.
폭풍전야
유담리
동북쪽을 지키던
제7연대 D, E, H중대가 중공군 공격을 받아 사실상 전투 불능상태에 빠지고
유담리
남족을 지키던
제7연대 C, F중대는고립되었다.
이렇게
유담리 제5연대와 제7연대 두 연대는 포위된 것이다.
두
연대장은
더 이상 서진을 중단하고 방어진지를 축소하기로 하고 방어에 돌입한다.(맥아더의 오판이 불러온 대형 참사)
27일 밤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공격은 이후 밤마다 괜과리와 피리를 불며
이때
중공군에게
지휘관 하나만 있었어도
미 해병대는 엄청 어려운 직면에 놓이게 되었을텐데 그게 천운이다.
미 해병
제5연대장이나 제7연대장같은 지휘관이 단 한명이라도 있었으면 섬뜩한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오합지졸
유담리와 하갈우리까지의 보급로를 보호하기 위해
유담리 남쪽 5KM
덕동고개 북쪽 터키힐에 C중대
12KM 지점
덕동고개 남쪽 폭스힐에 F중대가 주둔중이었다.
밤사이
중공군의 포위와 엄청난 공격에 많은 손실을 입었지만 방어에 성공했다.
이들을 구하기 위해
미 해병 제7연대 연대장이 내린 지시는
A, B중대는
유담리에서 터키힐로 내려가면서 싸우고
F중대는
폭스힐에서 덕동고개를 지나 터키힐로 올라오라는 것이었다.
F중대 중대장
윌리엄 바버 대위는 7KM를 북진하는 것이 불가능하여 현 진지 잔류를 요청하였다.
그래도
미 해병 제7연대
A, B중대는 C중대 1소대까지 동원하여
별다른
저항없이 터키힐의 C중대를 구출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F중대가 있는 폭스힐까지 내려가는 것은 사정이 여의치 않아 포기했다.
미 해병1사단 사단장 올리버 스미스 소장은
제5연대는
유담리를 방어하고
제7연대는
유담리에서 하갈우리까지 통하는 도로를 개통시키라고 명령
제1연대는
고토리와 하갈우리까지 사이의 도로를 개통시키라고 명령을 내렸다.
나머지는
공장과 거래처를 갔다와서
오늘
내가 보유하고 있는 종목들은 많이 올랐으면 좋겠다.
이제
웃는 시간이지만
하나
그게 제자리만 찾으면 좋을텐데(용돈이 생기면 계속 추매를 하는 것 이외에는 답도 없는 것 같고)
장진호 전투
미 해병 1사단의 전략적 승리
중공군 제9병단의 전술적 승리
글쎄다.
개인적으로 장진호 전투를 공부해보면 미 해병 1사단의 완벽한 승리같은데
운
천운이다.
쌍방
장진호 동쪽 미 육군 제7사단 31연대 전투단은 스스로 알아서 전멸했으니 할 말이 없다.
미 해병 1사단
제5연대장이나 제7연대장이 단 한명만 있어도
중공군은
수동전투에서 중공군 제124단처럼 흔적도 없이 전멸시켰을텐데
동쪽
서쪽
전투를 보면 눈물이 난다.
유담리 전투에서
대한민국 화랑전투경찰 길원갑 소위의 방어
기관총
미국이면
소대
분대가 다 훈장을 받고 한명 정도는 명예훈장을 받았을 것이다.
더럽고
추잡스런 짓으로
도망만 다니다가 낄끼리
훈장을 받고
호의호식했던 장군들은 하늘에 모든 고무신들도 천벌을 내리지 않았으니 하늘에 고무신들은 스스로 죄를 느껴야 할 것이다.
어리석고
무능한 장군과 장교들
앳된
병사들의 목숨과 피의 대가로
훈장을 받고
진급을 했으니 통탄할 일인데도 그 어떤 년늠도 그 죄를 묻지않고
함께
낄끼리
놀았던 우리 역사다.
역사는
반복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내일은 없다.
힘없는
국민들에게
고통이
따를 뿐이다.
공을
가지는 년늠들
그들을 위해 목숨을 버려야 하고 피를 흘려야 하는 이런 무식한 세상이 너무 싫다.
6월
남북전쟁이 일어났던 날이다.
37선
방어를 했어도
중공군이 국군을 때리면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졌을까?
청천강 전투
현리 전투
무능한 군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