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4일 충실한 그리스도인
우리는 ‘열심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충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주인이 내린 분부를 실행하는 종처럼 주님이 주신 계명을 지킨다. 천주 성자 말씀하신 모든 걸 믿고, 십계명을 다 지키고, 교회법을 준수하고, 교회가 가르치는 윤리적 가르침, 그것이 국가법과 충돌하더라도 교회 가르침을 따른다. 한마디로, 우리는 바리사이들처럼 모든 율법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지켜야 한다. 예수님도 말씀하셨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마태 23,2-3)
바리사이들처럼 계명을 지키면서도 조심하고 주의해야 할 부분은 그것들을 실천하는 마음이다. 예수님은 병적으로 정결례를 실천하는 그들 마음을 아셨다. 그들 마음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했다.(루카 11,39) 그들은 돈을 좋아했고(루카 16,14),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했다.(루카 11,43) 그들이 철저하게 율법을 준수하지만 그들 마음은 그렇게 경건하지 못하다는 걸 예수님은 아셨다. 그들 마음을 꿰뚫어 보신 게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그들의 행동들을 보고 아셨을 거다. 우리에게도 그 정도 분별력쯤은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행동을 보고 그의 말을 믿는다. 그들의 그런 위선적인 모습, 남에게 보여주려고, 남에게 높이 평가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하느님 앞에서 혐오스러운 것이라고 말씀하신다.(루카 16,15)
그런데 잘난체하고 존중받고 존경받기를 원하는 마음이 단죄받아야 한다면 우리 중 거기서 자유로운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보다 우리가 더 그리고 정말로 언제나 주의하고 경계해야 할 것은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마음이다. 성전에서 그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했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루카 18,9-11)
우리 그리스도인은 사랑해야 하는 의무, 다 갚지 못할 빚을 진 사람처럼 사랑한다. 바오로 사도는 말한다.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로마 13,8) 베드로 사도는 “무엇보다도 먼저 서로 한결같이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많은 죄를 덮어 줍니다.”(1베드 4,8) 라고 가르쳤다. 사랑이 곧 구원이다. 평생 교회법을 들여다볼 필요 없어야 한다. 교회법은 영혼 구원을 위한 최소한의 규정들을 모아둔 책이기 때문이다. 내 영혼 구원을 위해 최소한의 것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십계명 중 마음에 들고 할 수 있는 계명만 골라 지킬 수는 없지 않은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잘해주는 건 범죄 집단에서도 그렇게 한다.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지 않은 것, 그에게 조금 더 잘해주지 못한 것,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인색한 것, 나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지 못한 것 등에 가슴을 치며 죄라고 고백하는 이들, 평생 다 갚지 못할 빚을 진 마음으로 사는 이들이다. 그리고 그렇게 힘껏 사랑하고서 끝에는 ‘저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루카 17,10) 하고 말한다. 아, 그리스도인의 삶은 정말 어렵고 또 신성하다.
예수님, 주님의 충실한 종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도 모르게, 선행과 희생이 밥 먹듯 일상이 돼서, 세상 모든 의인이 그러는 거처럼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여기겠습니다. 아니, 세상이 몰라서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 하느님만 보시고 제 하늘나라 장부에 빼곡하게 기록해 두시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얼마 남지 않는 시간 동안 좋은 일을 더 많이 하게 도와주시고 이끌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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