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안은 다행이 한산했다. 짜증과 피곤이 교차된 얼굴로 창가 쪽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미연은 신경질 적으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단축 버턴을 누른다.
‘고객의 사정으로 인하여 전화기가 꺼져있는 상태이오니....’
정현을 기다리는 시간동안 수십 번은 족히 들어야했던, 그래서 히스테리마저 일으키게 만드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무미건조한 기계음에 다시 한 번 짜증이 밀려 온 듯 거칠게 핸드폰 폴더를 닫은 미연은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요번 미연이 생일은 기대해도 좋아’
정현은 며칠 전부터 미연에게 은연중에 이런 말을 자주 하곤 해서 기대아닌 기대를 잔득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 생일을 기회로 청혼할 거라고 귀띔 해준 정현이의 남동생의 얘기를
듣고 가슴 졸이며 오늘이 오기만을 기다린 자신이 한심스럽기만 할 따름이라 자책하며 약속
장소에 나오지도 않고 하루 종일 전화기를 꺼놓고 연락 한 번 없는 정현의 무책임한 행동을
이해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실망을 하고 있고, 그래서 잔득 화가 나있는 상태다.
어두워진 거리 풍경을 건성으로 흘리며 멍하니 차창 밖을 바라보던 미연은 뭔지 모를 싸늘한 느낌이 목뒤부터 휘감고 지나는 걸 느꼈지만 자신의 기분 탓 이라 생각하고 mp3꺼내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악~ 뭐야”
갑자기 버스가 급브레이크를 밟자 차안의 승객들은 저마다 앞으로 쏠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버스 안 가득 소란 한 기운이 감돌았다.
“기사! 뭐하는 거야?”
“졸면서 운전해요?”
도로는 한산했고 급브레이크를 밟을 만한 상황도 아니었기에 승객들은 하나같이 운전사에게 한마디씩 던지며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기사는 요지부동 승객들의 거친 말에 아랑곳없이 아무 일 없는 듯 운전에 열중이다.
미연은 듣던 음악을 잠시 멈추고 여전히 엄습해있는 서늘한 기온을 느끼며 소란스럽기만 한
버스 안을 휭 둘러본다. 급정거로 인해 귀에서 떨어진 이어폰을 다시금 귀에 꽂고 mp3를 만지작거려 보지만 정작 플레이를 누르진 못하고 있다. 뭔가 이상하다. 정현의 일로 신경이 곤두서서 맘이 상할 대로 상해서 그런가보다 했었는데 온 몸을 감싸 도는 서늘한 느낌이 장난 아니게 강하게 느껴진다.
‘뭔가 이상한데...’
전엔 느끼지 못한 온몸을 싸늘히 감도는 기운이 점점 더 강하게 느껴지자 미연은 소스라치듯 온몸을 흔들어본다. 그때였다. 버스 안 불이 순간 꺼지더니 켜지기를 반복한다. 그리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트로트 음악이 끊기더니 소름 끼치는 잡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이~씨~ 기사 뭐야 이거~!”
“엄마.. 무서워..”
승객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부모와 같이 탄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한 아이가 겁에 질려 울기 시작하자 버스 안은 서서히 알 수 없는 공포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기사양반 차 좀 세워!”
급기야 몇 몇 승객이 하차를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기사는 여전히 아무 일 없다는 듯 핸들을 잡은 손을 놓지 않고,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나머지 한 손으로 기어를 변속 시킨다.
“아..씨~ .. 말이 말같이 안 들려..?”
스피커에선 여전히 소름 끼치는 소리가 울려나오고, 그 소리 보다 더 기분 나쁜 표정으로 서른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운전석을 향해 씩씩 거리며 걸어간다. 그때 끽 하는 바퀴 마모되는 소리와 함께 버스가 우측으로 거칠게 기운다. 승객들은 다시 한 번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우측으로 쏠리는 몸을 바로 잡으려 안간힘을 쓴다. 기사를 향해 걷던 서른 초반의 남자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몸이 기움과 동시에 뒤로 나둥글었다.
“이런... 개새끼가...”
넘어진 몸을 일으킨 남자는 욕지기를 퍼부으며 기사를 향해 득달같이 달려갔다. 그러나 기사의 운전석에 다 다르지 못하고 무언가에 쿵하고 부딪치듯 허공에 그대로 넘어지고 말았다. 마치 운전석 둘레에 방화벽이라도 쳐 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어머... 어디로 가는 거야..?...”
버스는 노선을 이탈한지 오래였다. 여전히 기분 나쁜 음산한 소리는 스피커를 타고 버스 안 가득 울려 퍼지고 있었고, 흥분한 승객들은 운전석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운전기사를 건들지도 못하고, 아까 그 사내와 마찬 가지로 무언가 벽에 부딪치는 것 같이 나가떨어지고, 몇 몇 승객들은 제발 차 좀 멈춰 달라고 애원 하듯 소리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버스 안은 그야 말로 난장판이었다. 운전기사만이 유유자적 너무나 평온한 몸짓으로 운전에만 여념이 없었다. 그 런 기사의 이상한 행동에 더욱 화가 난 승객들은 그를 어떻게든 운전
석에서 떼어 내려 해보지만 마치 운전석 둘레를 무언가 감싸고 있는 듯 그를 건들기는커녕
안 보이는 벽에 막혀 손끝하나 건들 수 없었다.
“야이 미친 새끼야... 빨리 차 세워...”
“어디까지 가는 거야??”
창문은 물론 열리지 않았고. 가지고 있는 각자의 소지품으로 유리창 문을 부수려 했지만 단단한 요철같이 흠집하나 내지 못했다. 마치 작은 요새처럼 버스 안은 단단히 잠겨있었다.
“제발 살려 주세요”
자신의 힘으로 안 된다고 느껴질 때 사람들은 쉽게 현실을 받아들인다.
버스는 어느새 시내를 벗어나 자유로를 달리고 있었다. 무언가 알 수없는 커다란 힘에 묶여
버스 안의 승객들은 겁에 질려 발만 동동 구루고 있을 뿐 어찌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운전사의 뒷모습만 주시하고 있을 뿐이다. 기괴한 음악은 겁에 질린 승객들에 더할 나이 없는 공포를 자아내게 만들기에 충분했기에 버스 안은 기괴한 음악과 기괴한 공포만이 가득 차있었다.
미연은 mp3플레이를 누를까 말까 아직도 정하지 못한 체 빳빳한 뒷목을 한손으로 어루만지며 온몸에 퍼진 싸늘한 기운의 근원을 찾으러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뿐이다. 마치 꿈을 꾸듯 버스 안의 일들이 스크린 영상에 투영되듯 몽한 적으로 보여 질 뿐 이렇다 할 느낌을 주지 못했다. 다만, 가슴 깊숙한 곳에 꿈틀거리는, 그저 꿈틀거리기만 할 뿐 겉으로 들어나지 않는 알 수 없는 공포와 깊은 슬픔이 근원 없는 싸늘한 기운과 함께 뒤섞여 묘한 감정을 만들어 뿐이다.
미연은 굳어버린 듯 끔적 못하던 손을 움직여 가까스로 mp3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빠른 비트의 힙합 음악이 이어폰을 타고 귓가에 들리자 그제서 모든 긴장이 풀어지는 듯 몸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경쾌한 비트와 속사포 같은 랩 음악 귀를 타고 흐르자 악몽 같은 하루가 머릿속을 스친다. 4년간 열애, 25번째 맞는 생일, 그의 청혼을 꿈꾸며 나선 자리에 바람 맞고 처량히 버스에 오르는 자신의 모습이 빠른 비트의 음악과 함께 오버랩 된다.
‘악몽 같은 하루...’
미연은 여전히 서늘한 느낌을 주는 목덜미를 간신히 움직여 차창 밖으로 시선을 옮긴다.
버스는 막 자유로를 벗어나 일산 방면으로 향하고 있었다.
‘도대체 목적지가 어디야’
버스안의 승객들은 버스가 멈추자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차창가로 몰려 목적지가 어딘지 확인하느라 부산하다. 거의 녹초가 된 사람들의 어깨위에를 무겁게 누르고 있는 공포를 떨치기라도 한 듯 다소나마 안도한 표정들이다. 버스가 멈추자마자 운전기사는 운전석에 앉은체 핸들을 놓고 그대로 쓰러졌다. 순간 버스의 앞 뒤 문이 열렸고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열린 문 밖으로 급하게 내리기 시작했다.
‘몸이 맘을 안 들어....’
미연은 혼신을 다해 자리에서 잃어 서려했지만 도저히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텅 빈 버스 안, 묵직한 무언가가 어깨를 누르는 것 같은 강한 힘, 미연은 힘을 줄수록 온 몸에 힘이 빠지는 걸 느끼며 창밖으로 간신히 고개를 돌려 본다. 주차장 이곳저곳 사람이 지나는 모습이
보이나 미연에겐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제 갈 길을 가느라 바쁘다. 가족과 함께 놀러온 듯한
꼬마가 잠깐 미연에게 관심을 보이나 이내 흥미를 잃고 부모 품에 득달같이 달려간다.
‘살려 주세요’
목소리는 목 밖으로 나오질 못하고 소멸된다.
오후의 호수 공원엔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나 어느 하나 미연에게나 버스 안 풍경을 관심을
두는 이는 없었다. 눈가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부턴가 왠지 모를 슬픔이 가슴 깊숙이 복받치기 시작했다. 근원 없는 공포와 뒤섞인 슬픔의 감정이 드디어 복받친 것이다. 차창 밖 풍경은 여전한데 눈물로 인해 그 흐려지는 풍경들 미연은 혼신의 힘을 다해 눈물을 참으려 했지만 터져버린 서글픈 감정은 쉽게 추슬러지지 않았다.
순간 지금껏 목덜미를 무겁게 누르고 있던 묵직함이 살아지더니 훅 하는 따듯한 입김이 그의 얼굴을 지나는 걸 느꼈다. 창가에 뽀얀 김이 설이기 시작하더니 김 설인 차창에 글귀가
적히기 시작한다. 미연은 가벼워진 몸을 일으켜 그곳을 빠져나가려다 말고 글귀가 새겨지는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미.
안.
해.
.. 생일 축하해 우리가 처음 만난 곳 .. 이곳에 같이 오고 싶었는데...
내 마지막.. 선물이야... 안녕-
미연은 그때서야 정현과의 첫 만남 장소가 이곳이었다는 걸 기억해냄과 동시에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어찌된 영문인지 머릿속이 복잡하고, 심장은 터져버릴 듯 뛰고 있었다.
한 없이 밀려드는 서글픔, 왼지 불길한 생각이 들자 미연은 그때서 정신이 들었는지 아까부터 울리던 전화 벨 소리를 그제 서야 들을 수 있었다. 전화가 언제부터 울리기 시작했는지 부재중 통화가 10통 넘게 찍혀있었다.
끊어진 벨 소리를 책망하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정현의 동생 정원이었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통화 버튼을 누르는 내내 미연은 차창에 아직 남아있는 글귀를 하나하나 눈에 아로 세기기 시작했다.
‘미안해, 생일 축하해 우리가 처음 만난 곳 이곳에 같이 오고 싶었는데. 내 마지막 선물이야
안녕‘
신호가 가고 수화기 넘어 슬픔에 가득한 정원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린다.
“누나... 전화를 왜 안 받아.... 형... 형이... 사고로 죽었어.. 교통사고로... 여기 병원이니까
흑... 빨리 와...누나 만나러 간다고 그렇게 법석을 떨더니...흑....“
미연은 핸드폰을 쥐고 있던 손을 놓고 버스 이곳저곳을 눈으로 훑는다.
“정현씨! 어디 있어?? 어 말해봐 대답해 보라구 이 나쁜 자식아....”
버스 안 이곳저곳을 미친 듯 두리번거리던 미연은 한참을 그렇게 주저앉아 흐느끼곤
천천히 창문 쪽으로 걸어가 차창에 입김을 불고 무언 가 쓰기 시작했다.
첫댓글 슬프네요 ~ 처음엔 막 무서웠는데 +_+ 건필하세요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낸다는것 너무 힘들고 슬픈일인거 같아요~
아..ㅠㅠ 정말 슬퍼요..ㅠㅠ
히스토리 -> 히스테리, 일상 -> 일산 ^^;
라이미안,가을이77,두리동님.. 답글 감사여~ ^^ 그리고 Deathrasher님이 지적해주신 오타 수정해씀다. 감사~!
우와 감동적이에요ㅜㅜ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