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년 청마의 해가 밝았다. 용마처럼 새로운 시대를 여는 주역이 되고 말의 강인함과 생동감으로 밝은 미래를 열어가길 기대한다. 말의 해 말띠 지명 이야기를 통해 그 속에 담긴 도민의 소망과 사연을 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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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수를 기다리는 용마
지명은 역사를 품고 있다. 그리고 메시지가 있다. 도 전역에 넓게 분포하는 ‘애기장수와 용마’이야기는 ‘새 세상을 꿈꾸는 서민의 정신’을 웅변한다.
장군봉, 칼산, 투구봉, 말무덤에는 아기장수의 꿈이 서려있다. ‘말구리재’ ‘말고개’에는 새시대를 준비하던 용마의 비극과 울음이 있다. 지배계층의 억압 밑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던 민중의 역사체험을 형상화하고 있다. 춘천지역엔 신동면 증리의 아기장수 전설, 서면 금산리 장수전설이 있다.
‘말구리재’ 지명은 ‘말이 굴러서’ 지어졌다. 골짜기마다 전해오는 사연들을 들춰 보면 대부분 옛날에 사람이 말을 몰고 가다가 고개에서 굴러떨어져 죽었거나, 말이 굴러떨어져 죽은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용마가 울며 구르거나(평창 장평리 말구리재), 용마가 울기도(평창 화의리 마랑골) 한다.
원주 운암리 ‘용암말’ 지명은 마을 앞산이 용마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평창 계촌리 ‘용마봉’은 산의 형세가 용마와 닮았다. 용마는 아기장수를 기다린다. 그 속에서 면면히 전해져온 ‘아기장수 전설’은 누구에게나 낯익다. 범상치 않은 장사 기질을 타고난 아기장수, 부모는 그 사실을 감격스러워하는 한편 두려워한다. 자칫 역적으로 내몰려 집안이 멸족될까 우려하는 마음에서다. 전설 속 아기장수들은 모두 그 부모로부터 죽임을 당하거나 자진해 죽음을 선택하거나 심지어 일본인들에 의해 죽기도 한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바로 용마(龍馬)다. 눈부신 갈기를 휘날리며 홀연히 등장하는 용마는 ‘내가 태울 장군은 어디 있는가, 이미 죽었단 말인가’하고 애통해하며, 아기장수를 따라 죽거나 가뭇없이 사라지기 일쑤다. ‘용마가 나타나 울고 사라졌다’는 지명이 도내 곳곳에 산재한다.
역설적으로 인재가 마음껏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을 기원했던 아기장수 전설 속에서 말은 영웅의 출현을 예지했던 상서로운 징조요, 충절과 기개가 충만한 동물로 그려진다. ‘장사 나면 용마 난다’는 옛말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 재미있는 말지명 이야기
말과 관련한 지명 중 일부의 유래에 대해 알아본다.
◇ 철원 와수리 말서당고개(아리랑 고개)
옛날에 평산 신씨 문중 사람이 전쟁터에 나가 싸우다 전사를 했는데 그가 타고 다니던 말이 목을 물고와 고개에 서 있어 장사를 지낼 수 있었다고 한다.
◇철원 마현리
말고개에서 유래된 마을 명칭으로 옛날에 말을 몰고 가던 사람들이 하도 고개가 높아 말을 타고 가다 정상에서 쉬어가는 경우가 많아 말고개라 했다. 다른 유래는 임진왜란 당시 왜 장교가 군졸을 대동하고 말고개를 넘어 화천 방면으로 가던 중 천불암 앞을 지나가게 되자 말을 끌던 안내인이 “이 곳은 신성한 곳이니 말에서 내려 돌아가야 한다”고 했으나 왜 장교는 이 말을 무시하고 말 위에 오른 채 지나갔다. 말이 달라붙은 듯 꼼짝하지 못하자 장교는 움직이지 않는 말에게 화를 내며 장검으로 목을 베어버렸다. 장교는 말의 피를 천불암에 뿌렸고, 결국 왜 장교는 계곡으로 떨어져 죽게 됐다. 많은 왜군들은 이곳을 지날 때 계곡으로 떨어져 죽었다.
◇철원 백마고지
이름만 들어도 슬픔이 차 오르는 곳. 바로 철원군 동송읍 백마고지이다. 높이 395m로 그리 높지 않은 산이나 6·25때 전략적 요충지였다. 전쟁 막바지 10일간 주인이 스물 네번이나 바뀌었다. 한마디로 불꽃튀는 격전장이었다. 수많은 호국의 영령들이 이곳에서 산화해 갔다. 격전이 끝나갈 무렵 백마고지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황폐한 땅이 되어 버렸다. 그 처참한 몰골을 보고 ‘마치 백마가 드러누운 모습 같다’고 해 한 미군병사가 ‘white horse hill’이라 부른 것이 ‘백마고지’가 됐다. 혹은 외신기자들이 수많은 조명탄의 투하와 하얀 낙하산 천에 뒤덮인 산의 지세를 보고 붙였다는 설도 있다.
◇춘천 말탕개미
마승감·마현을 말탕개미라고 불렀다. 향교끝에 있는 마을이다. 향교 앞을 지나갈 때 반드시 행인은 말에서 내려 걸어가야 했다. 향교 앞으로 나 있던 고갯길은 향교 앞으로 말을 타고 가서는 안된다는 뜻으로 말고개·마현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삼척 마평동(馬坪洞)
말과 상관 없이 말이 붙은 지명도 있어 이채롭다. 삼척 오십천의 홍수를 방지하기 위해 관에서 나무를 베는 것을 금지시킨 ‘들어가지 못하게 말린 들(禁山坪)’이 와전돼 ‘말들’이 됐고 이것이 지금의 ‘馬坪’이 됐다.
◇홍천 말바위
홍천군 내촌면 화상대리 살벼울과 응골 사이를 흐르는 내촌천 가운데 바위가 말바위다. 원래 모양이 말모양과 흡사했으며 응골쪽을 보고있는 형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응골은 농사가 잘 안 되고 살벼울은 농사가 잘 되자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말머리가 응골쪽을 향하고 있으니 응골쪽의 풀·양식은 입으로 뜯어 먹고 그것을 궁둥이로 살벼울에 베푼다는 말이 돌았다. 응골쪽 사람들이 한밤중에 몰래 그 바위를 두쪽으로 부쉈더니 그해부터는 양쪽 마을에 풍년이 들었다고 한다.
■ 말 지명 54개+α
국토지리정보원이 전국의 지명을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전체 150만여개 중 말과 관련된 것은 744개이고 그중 도내에는 54개가 말과 관련된 지명이라고 밝혔다.
마을 33개, 산 7개, 고개 13개, 계곡 1개이다.
홍천 마곡리 ‘말골’은 옛날에 말을 키웠던 곳이고, 영월 도원리 ‘말굴이’ 마을은 조선 태종이 말을 타고 가다 떨어진 곳이다.
횡성 상창봉리 ‘삼마치고개’는 옛날 삼한시대 병마주둔지였다. 원주 귀래리 ‘질마재’는 말의 안장같이 생겨 주민들이 붙인 이름이다.
강릉 금진리 ‘기마봉’은 산이 말을 탄 사람의 형태 같다고 해 붙여졌다.
삼척 중봉리 ‘건마람’은 산세가 건마음수형으로 건평이라 하다가 발음이 건마람으로 변했다.
이동명 sunshine@kad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