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바람 이해인
숲과 바다를 흔들다가
이제는 내 안에 들어와
나를 깨우는 바람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를 키워놓고
햇빛과 손잡은
눈부신 바람이 있어
가을을 사네
바람이 싣고 오는
쓸쓸함으로
나를 길들이면
가까운 이들과의
눈물겨운 이별도
견뎌 낼 수 있으리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사랑과 기도의
아름다운 말
향기로운 모든 말
깊이 접어두고
침묵으로 침묵으로
나를 내려가게 하는
가을바람이여
하늘 길에 떠가는
한 조각구름처럼
아무 매인 곳 없이
내가
님을 뵈옵도록
끝까지 나를 밀어내는
바람이 있어
나는
홀로 가도
외롭지 않네.
- 이해인 -
이해인(본명 이명숙) 수녀, 시인
출생 1945년(강원도 양구) 소속 성베네딕도수녀원
(수녀) 학력 서강대학교대학원 종교학 석사 수상
2007년 천상병 시 문학상 1998년 부산여성문학상 경력
2000년 부산가톨릭대 지산교정 인성교양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