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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보문학카페.
'자유게시판'에는 임정민 님의 '섬 속의 섬 강화 석모도 '보문사'...마애불 해상관음성지에서 여름나다'
여행기가 게재되었다. 현장을 알 수 있도록 사진도 곁들였다. 정말로 좋은 체험기이다.
나는 오래 전 위 석모도에 다녀온 적이 있다.
내 고교 여동창생의 카페에서 검색하여 아래처럼 퍼서 올린다.
강화도 석모도는 너무나 멀어
아침 10시에 서울 송파구 잠실에서 출발하여 88올림픽대로를 타고 김포 쪽으로 내달았다. 언제나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舊道가 한없이 이어지는 김포를 거쳐서 강화 제1교인 강화대교를 건넜다. 뭍에서 섬으로 연결된 대교를 건넜더니만 오른쪽에 '강화도 인삼마트' 건물이 보였다. 널널한 주차장 뒤편 마트에서 홍삼사탕 여러 봉지를 샀다.
안양대학교 쪽으로 좌회전하여 오랫동안 달렸다. 목적지는 외포리선착장.
선착장에 도착한 시각은 13 : 00. 잠실에서 선착장까지 무려 3시간이 걸릴 만큼 주말의 토요일 아침에는 차량이 무척이나 많이 밀렸다. 주말에는 강화도 섬여행을 꺼려해야 할 이유인 교통체증이었다.
외포리선착장에서 매 30분마다 한 척씩 뜨는 철부선(카페리호)에 승선했다. 선상 이층 선실 안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선실 밖 난간 후미에 몰린 승객들은 새우깡을 공중으로 내던졌다. 백여 마리도 넘는 괭이갈매기가 끼륵거리며 선미를 악착같이 뒤따랐다. 승객이 던지는 새우깡에 길들여진, 물고기를 잡아먹는 본래의 야성을 잊어버린 갈매기는 쪼잔하게도 새우깡을 날쌔게 낚아챘다. 새우깡 몇 봉지로도 갈매기와 함께 한 섬여행. 갈매기는 무료로 연출하는 전속 사진모델. 카페리호는 10분 뒤에 석모도 석포선착장에 도착.
주차장을 벗어난 길가에 차를 정차했다. 횟집에서 점심밥을 먹었다. 칼국수(한 그릇 5,000원)와 회덮밥(한 그릇 8,000원).
차는 왼쪽의 좁디좁은 시골길을 달렸고, 차창 너머로 보이는 바다 경치는 아름다웠다.
민머루해수욕장 안내간판이 보이기에 샛길로 접어들었다. 드넓은 염전 한가운데에 직선으로 난 외길. 염전이 논으로 경지정리된 것 같다. 민머루해수욕장은 고개 너머 아래에 있었고, 가파른 고갯길을 새로 널찍하고도 번듯하게 내고 있었다.
3년 전 여름철. 군 입대를 코앞에 둔 막내아들을 달랠 겸해서 이 섬에 들어왔을 때에는 허름한 민가 몇 채뿐이었고, 모든 게 어수선해 보였다. 어쩌면 촌티가 나서 순박해 보이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여느 관광지역 못지않게 탈바꿈하고 있었다. 번듯하게 잘 지은 서구형 펜션 여러 채가 전망 좋은 곳을 다 차지했고, 서해바다를 바라보는 산 중턱에도 펜션이 계속 들어서는 듯했다.
3년 전 흙먼지만 풀풀 날리던, 좁디좁았던 주차장도 이제는 제법 깔끔했으며 부지도 널널했다. 시멘트 포장을 아직 하지 않았는데도 예전에 비해 모든 게 편리하게 정리되고 있었으며, 변화하는 모습의 실체를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예컨대 화장실도 깔끔하게 새로 지었고, 펄갯벌을 탐사한 관광객을 위해 발을 씻도록 화장실 앞에 세면대를 두어 개 설치했다.
나는 조무래기따개비가 조금 붙어서 햇볕에 매달려 죽는 해암(갯바위)에 걸터앉아서 멀리 안쪽으로 밀려난 바닷물을 바라보았다. 여러 섬들이 나를 유혹하기에 갯벌과 수평선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텅 빈 마음이 되어서...
바닷가에는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이 많았으나 나처럼 주름진 초로의 늙은이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문득 먼 길 떠나고 있음을 또 깨달았다. 아무도 아는 체를 하지 않는 미지의 세계로 가고 있었다.
민머루해수욕장을 빠져나온 뒤 폐염전 지대를 가로지르는 좁은 직선도로를 달렸다. 차들이 쉴사이 없이 교행했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보문사 쪽으로 조금 달렸더니 우측에 낙가산(落迦山) 보문사 진입로가 보였다. 주차장에는 많은 차량들로 가득 찼으며, 주차료 2,000원, 보문사 입장료도 한 사람마다 2,000원이다.
신라 선덕여왕 4년(서기 635년)에 화정대사가 세운 호국사찰. 가람(伽藍)의 정식 명칭은' 대한불교조계종 나한도량 관음성지 普門寺'.
새로 조성한 듯한 오백나한에 붓으로 붉은 입술과 검은 눈썹을 그려 넣고 있었다. 합장한 자세가 조금씩 다르고 흰색으로 칠한 얼굴 표정도 제각각이다. 붓을 든 사람의 생각에 따라서 나한(羅漢)의 심성도 제각각인 듯했다.
동굴을 더 깊게 넓게 파내서 만들었다는 석굴암 안은 무척이나 넓었다. 회랑 같은 공간에 좌불을 모시고 ... 특이했다.
석불암에서 여불자한테서 작은 책 한 권을 얻었다. 현종스님이 쓴 작은 책 '너와 나의 마음 고향'.
석굴법당 왼쪽에는 가파른 돌계단이 나타났기에 430여 개의 판석으로 된 계단을 힘겹게 올랐다. 커다란 바위는 일명 '눈썹바위'. 절리된 안쪽에 마애석불이 좌선하고 있었다. 높이 9.6m, 폭 3.3m의 거대한 마애석불을 향해서 불자들이 고개를 낮추고 엎드려서 기도를 한다. 시주함, 촛불, 연등, 사람들의 꼬리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기도의 영험이 큰 탓일 게다.
서해바다를 내려다보는 산 중턱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참으로 좋았다. 마애석불까지 오르는 길은 版石 계단. 발복기원을 비는 연등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소원을 담은 사진-쪽지가 연 줄에 매달렸다. 많은 불자들이 엎드려 절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진지했다.
서기 1928년에 주지스님이 마애석불을 조각했다고 한다. 마애(磨崖)는 벽면에 새긴 부처. 마애석불의 구도가 조금 어색할 정도로 안면과 상체가 유난히 컸다. 가슴에 절의 기호가 새겨져 있었다. 조각 솜씨가 무척이나 서툰 게 오히려 더 순박한 맛을 보였다면 지나친 옹호일까? 마애석불에 관해서 더 공부 좀 해야겠다.
가파른 산 낙가산의 암반 아래 좁은 터에 자리잡은 교문사.
좁은 터에 알맞게 배치한 가람(伽藍)의 전경이 산과 바다와의 구도에 잘 어울렸다. 무척이나 아기자기하고 깔끔한, 숱한 내력을 지닌 산사였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범종을 살펴볼 틈새도 없이 나는 귀가를 서둘러야 했다. 오래 머물면서 산사가 주는 고즈넉한 사찰 미를 음미하며 노스님의 율법을 한번 들을 법도 하건마는 하오 늦은 무렵이라서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다.
인생은 끊임없이 뒤로 미루기만 하다가는 하나도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치듯이 오늘도 또한 그랬다.
귀경할 때에는 삼산면 석모리 뒤편을 돌았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곳마다 펜션이 있어서 이국적인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드너른 갯벌, 염전, 쓰러져가는 소금창고, 염전지역이 농경지로 변하고 있었다. 간사지, 염전이 사라지고, 전망이 좋은 곳마다 쉼터인 펜션이 무척이나 많았다. 이국적인 면모로 탈변하고 있었다.
석포선착장에서 철부선을 타고 강화도 외포리선착장으로 되돌아 나와서 마니산 관광단지로 향했다. 화도 상방리 마니산 주차장에 정차한 뒤 숨을 골랐다. 강화도 초지리대교를 빠져나왔다.
많은 어선이 출항을 대기하거나 정박하여 휴식을 취하는 항구. 생선회로 유명한 대명포구가 좌측에 보였으나 너무 늦은 시각이라서 서울로 향해서 달렸다. 88올림픽대로를 탄다는 것이 엉뚱하게도 김포시내 쪽으로 들어왔으니 신월동... 남부순환도로로 직진하여 송파구 잠실로 들어왔다. 방향 한번 잘못 받는 바람에 30분이 더 넘게 복잡한 시내로 빠져들었다. 아무래도 강화도를 몇 번 더 들어가야 길눈이 트일런지.
봄 날씨는 화창했고 해안도로에는 벚꽃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어서 더욱 정겨웠다. 강화도, 석모도의 도로가 외길 수준이라서 그게 아쉬웠다. 왕복 1차선이 주는 묘미는 있으나 숱하게 엇갈리며 교행하는 차 때문에 불안했다. 중앙선을 넘어 추월하는 차도 많았으며, 중앙선을 침범하여 반대편에서 달려드는 대형차도 많았다. 안전운행에 유달리 신경을 더 써야 할 꼬불거리는 시골길이었다. 아름다운 주변경치에 한눈을 팔 수도 없었다. 앞뒤에서 차가 보이면 가슴이 섬뜩 섬뜩했으니 길이 낯설다는 탓만은 아니었다.
서울 잠실에서 당일치기 하기에는 너무나 멀었다. 언제 시간이 나거든 쓸쓸한 바닷가에서 일박하면서 낙조를 봐야겠다.
석포선착장에서는 백세(깡치. 자잘한 조기와 비슷)도 조금 샀다. 장사꾼이 나를 보고는 '값을 깎지 않아서 이쁜 아저씨'란다. 다음에 또 오시라고... 이래서 여행길은 늘 즐겁기만 하다고.
자가용과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철부선(카페리호)는 30분마다 출항하며, 밤 9시까지 운행한다. 왕복 선편이 자주 있어서 섬에 들어가거나 나오기가 무척이나 편했다.
선포선착장에서 교문사로 오가는 버스도 있다. 섬 전체를 일주하는 버스. 사찰 방문과 해명산, 상불산의 입산과 하산 지점이 섬을 일주하는 도로선상에 있어서 등산하기가 편리하다고 한다.
3년 전에는 민머루해수욕장 왼쪽에는 조개 양식장이 뚜렷하게 보였는데 이번에는 무엇인가 빈 듯이 허전함을 감지했다. 해수욕장 안쪽은 무지하게 너른 펄갯벌이 펼쳐졌는데도 이곳은 갯마을 공통의 특유의 조개껍질 등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태고적부터 무너져 내린 바위를 옭아맨 밧줄이 조개 양식장 안쪽으로 길게 줄을 쳐서 구역을 표시하고 있었다.
이번에 보니까 그 밧줄은 낡고 삭아서 닳았다. 진흙이 말라서 표면은 딱딱했고, 발자국조차 거의 남지 않았다. 이렇게 굳은 표면에는 소금기도 허옇게 매달렸다.
마른 펄갯벌에는 이따금 게-구멍이 보였는데 구멍 속에 숨은 게와 갯지렁이가 살아 있는지, 아니면 죽은 것인지의 구별이 전혀 안 되었다. 이상하게도 펄갯벌이 죽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썰물 간조 시간대가 너무나 긴 탓인지도 모르겠다. 근본적으로 자연생태계가 교란되는 느낌이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문득 영종도 국제공항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영종도 국제공항을 준설하면서 여의도 60배 쯤의6,000만 평 갯벌을 막는 바람에 해수면의 흐름이 꺾인 탓으로 여겨진다.
강화도 동막, 동검도의 갯벌에 진흙이 년간 4cm 높이로 쌓여서 갯벌이 죽어간다는 학회의 보고가 있었다. 년간 0.4cm 정도 쌓여야 할 진흙이 열 배로 쌓이면 조개가 질식 패사한다고 한다. 혹시 민머루해수욕장 남쪽 조개 양식장도 이런 현상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3년 전 방문했을 때와 무척이나 다른 갯벌 현상이었다. 민머루해수욕장에 더 들러서 자세히 관찰해야겠다.
영종도 간척사업, 방조제 건설사업, 대단위 공단에서 내뿜는 오염물질 등으로 인근의 서북부 해안과 갯벌에 생태변화가 심각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내지 못했다. 또 대단위 화력발전소에서 내뿜는 석탄재가 바닷물에 유입되어서 쌓이고, 화력발전소에서 흘려 내보내는 뜨거운 물 때문에 해양 생태계에 교란이 생기는 듯한 불안감이 꼬리를 문다.
갯벌의 변화, 폐장되는 갯벌 양식장, 밀려드는 관광객이 내버리는 쓰레기, 해안지방의 무모한 난개발(관광객 유치용)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나, 아내, 큰딸, 작은아들과 함께 강화도와 석모도에 다녀왔기에 더욱 소중한 하루였다.
2009. 4. 18. 토요일.
4. 19, 일요일에 쓴 일기.
중학교 동문 친구와 분당 영장산에 등산하는 바람에 글 다듬기가 지연되었다.
피곤하여 글 다듬기도 귀찮고....
나중에 보완할까? 조금 피곤한다. 운전을 너무 오래 한 것 같다. 꼬불탕거리는 시골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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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1. 8. 19.
오후에 서울 송파구 잠실에 있는 서점 3곳이나 들러서 '역사부도', '지리부도'를 검색했으나 조회가 되지 않는다.
추가로 구입해서 고대 세계사, 최근의 국제정세에 따른 지리/위치의 변경 등을 더 공부하고 싶었으나 책이 없다는 데야...
잠실역 인근의 서점에서 고대인류학 책을 뽑았더니만 중고 책값이 13,000원이다. 책 두께가 두툼하나 주머니가 가벼운 나한테는 비싸다. 눈 딱 감고는 귀가했다. 나중에..
한국국보문학카페에서 임정민 님이 올린 강화도 석모도 여행기와 사진.
나도 다시 섬여행 떠나고 싶다는 욕심이 출렁거린다. 고교 여동창생의 카페에서 내 글을 검색하여 여기에도 옮긴다.
아쉽다. 그 당시에는 퇴직하여 시골로 내려가서 어머니와 함께 살기 시작했던 터라.. 서울 근교의 여행은 접어야 했다.
아흔 살 어머니와 둘이서 시골에서 살자면.. 더우기 그 어머니는 치매초기.. 자꾸만 치매가 심해지고. 나는 점차로 여행을 접어야 했다. 내가 수저로 밥을 떠서 드렸던 어머니와는 몇 해 함께 살았고, 그 어머니가 저너머의 세상으로 떠난 지도 7년째이다. 나는 그 이후로는 여행을 제대로 못한다. 왠지 모르게 자꾸만 지쳐가기에...
내일은... 비뇨기과에 들러서 전립선비대증 검사를 받고는 약을 타야겠다.
나날이 키와 몸무게가 줄어들고, 기력도 줄어들고... 무릎연골은 닳아서 통증은 더욱 심해지고..
한때 ... 오랫동안 도보여행을 한 후유증도 포함될 게다.
2021. 8. 19.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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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