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계획
늘 12월이 되면 어서 해가 바뀌길 기다립니다. 해가 바뀌길 기다리는 마음은 지금도 데이트를 앞둔 젊은 시절처럼 설렙니다. 해가 바뀐다고 제 인생이 특별하게 좋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해가 바뀌길 기다리는 것은 항상 새해가 오기 전에는 새로운 계획을 세워 놓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계획이라는 것이 어디 여행을 떠나거나, 운동을 시작한다거나, 술을 줄이겠다는 계획 같은 것이 아닙니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어떤 책을 쓸까?’ 하는 것이 제 계획입니다.
새해가 밝으면 바로 원고 작업에 매달리고,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3월입니다. 올해도 1월과 2월은 제 달력에서 사라졌고, 이 칼럼을 쓰면서 3월이 되었음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그동안 써 두었던 '문예창작 실기' 원고를 3월 말까지 퇴고할 예정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문예창작 방법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초고를 완성하고, 퇴고 과정에서 이론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입니다. 충분히 문예창작을 할 수 있는 사람들도 이론을 앞세우면 딜레마에 빠져 중도 포기하게 됩니다. 하지만 초고가 완성되어 있으면 퇴고 과정에서 미진했던 부분들을 충분히 보완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문예창작 교육 현장에서는 빵의 반죽만 가지고 작법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빵은 아무리 반죽이 잘됐더라도 오븐에 구워야 먹을 수 있습니다. 설령 반죽이 잘못되었다 해도 오븐에 구우면 맛이 없을 뿐이지 먹을 수는 있습니다. 시를 쓰든, 소설이나 수필을 쓰든 ‘완성’을 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음악이나 미술 같은 예술 장르는 실기 중심으로 교육이 진행됩니다. 하지만 문예창작은 유독 이론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교육 현장에서 흔히 하는 말은 "문예창작이 정신세계를 다루는 장르라서 일괄적인 실기 교육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써라’가 아니라 ‘쓰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충분히 단체 교육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모더니즘을 쓰는 작가 교수가 서사 소설을 지도할 수 없고, 서사 소설을 쓰는 작가 교수가 모더니즘 소설을 지도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갑니다. 음악을 전공하면 최소한 음악 학원을 운영할 수 있고, 미술을 전공하면 미술 학원을 열어 배운 것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예창작을 전공한 학생들은 졸업 후 편의점이나 휴대전화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예창작 교육의 구조적인 문제가 학생들의 미래를 결정짓고 있는 것입니다.
문예창작 교육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점은, 문예창작이 예술의 한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예술의 하위 개념으로 취급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시, 소설, 수필에서 말하는 문학적 요소들이 예술적 차원을 갖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예술의 기본 원리를 알고 문예적으로 접근하는 것과 문예적 접근으로 예술을 논하는 것은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3월 말까지 퇴고할 책은 총 5권입니다. '예술과 문예', '시 창작', '소설 창작', '수필 창작', 그리고 '동시와 글짓기'로 각각 360~370쪽 분량입니다. 그중에서도 '예술과 문예'는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 책을 쓰면서 다시 한번 문예창작이 예술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제 지론이 옳았음을 확인했습니다.
퇴고 과정은 단순한 문장 수정이 아니라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입니다. 초고를 완성하는 것은 작가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담아내는 일이지만, 퇴고는 독자의 시선에서 글을 바라보는 과정입니다.
좋은 문장을 만들기 위해 단어를 다듬고, 흐름을 조정하며, 전체적인 구조를 점검합니다. 그 과정에서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수정할 기회가 생깁니다.
문예창작 교육이 실기 중심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창작이 곧 예술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예술은 이론적으로 접근하는 것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습니다. 그림을 배우는 사람은 직접 붓을 들고 그림을 그려야 하고, 음악을 배우는 사람은 악기를 연주해야 합니다. 문예창작 또한 직접 글을 써야 하며, 그 과정에서 기술과 감각이 발전합니다.
따라서 문예창작 교육은 기존의 이론 중심 수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창작 과정에서 실습을 강조하고, 학생들이 자신의 글을 직접 분석하고 퇴고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또한 다양한 문예 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도록 교육 과정을 구성해야 합니다. 서사 중심 소설과 모더니즘 소설을 가르치는 교수가 각각 분리되어야 한다는 기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수진 또한 다양한 창작 방식에 대해 연구하고 교육 역량을 갖추어야 합니다.
저는 퇴고하는 과정 속에서 문예창작의 본질을 다시금 깨닫고 있습니다. 창작은 단순히 감성적인 활동이 아니라, 철저한 기술과 노력이 결합된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비로소 한 편의 작품이 탄생합니다.
3월이 지나고 나면 저는 또다시 새로운 글을 구상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다시 초고를 쓰고, 퇴고를 거쳐 완성할 것입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더라도, 매년 새해가 오면 저는 다시 글을 쓰겠다는 다짐을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문예창작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별빛같은 나의 사랑아 - 피아노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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