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사]
"넌 얼마나 깨끗하니?" 더러운 잠과 매춘 올림픽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
중세 암흑기에 똑같은 말로 지동설을 주장한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지동설에 대한 자신의 직관直觀을 끝까지 관철시키려다 교황에 의해 화형당한 성직자 지오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이고, 또 한 사람은 정확한 과학적 데이터를 갖고도 "그래도 지구가 도는데..."라는 변명으로 목숨을 부지한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다.
채털리 부인을 작품에 등장시켰다가 극렬한 외설 논란과 검열, 삭제, 사회적 비난 등을 떠안고 쓸쓸히 죽어간 소설가 D. H. 로렌스는 사후 87여 년이 지난 지금 인간의 성적 본성을 문학적으로 탐구해낸 최초의 인물로 숭앙받고 있다.

Lady Chatterley's Lover
|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를 대화가로 만든 것은 평면의 입체화다. 그는 "왜 평면에는 평면만 그려야 하지?"라는 의문에서 출발해 캔버스라는 평면에 사물의 정면과 측면을 동시에 담아내는 입체파의 시조가 되었다.
브루노와 로렌스, 피카소, 이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은 ‘현재에 대한 부정’이다. 부정은 일반화된 긍정에 대한 재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당대를 지배하던 ‘종교적 무지’와 ‘결혼에 억압된 성’, ‘2차원에 갇힌 미술’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봤고, 그 시각으로부터 일반화된 긍정을 부정하며 탈출에 성공한 이들이다. 그리고 대중의 인식을 한 차원 고양시키며 대중을 부정이 긍정되는 자신의 길로 이끌었던 이들이다.
에로티즘을 신비주의의 경지까지 끌어올리느라 철학자 자끄 라깡Jacques Lacan에게 아내를 빼앗기기도 했던 조르쥬 바타이유Georges Bataille 역시 자신의 에로티즘을 대중에 깊이 각인시킨 인물이다.
매춘 올림픽과 ‘현재에 대한 부정’
2017년 대한민국에서는 사실주의와 풍자미술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표현의 자유를 향한 예술가들의 풍자 연대’와 함께 국회에 전시한 이구영 작가의 [더러운 잠]이라는 작품 때문이다.
[더러운 잠]의 원조 모티프는 르네상스기를 주름잡았던 티찌아노 베셀리오Tiziano Vecellio(Titan)가 그린 [우르비노의 비너스](1538)이고, 두 번째 모티프는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의 [올랭피아](1863)다. 그러니까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마네가 베껴서 [올랭피아]가 탄생했고, 그걸 다시 이구영 작가가 베낀 게 [더러운 잠]이다.

[우르비노의 비너스Venus of Urbino]와 [올랭피아Olympia]
|
하지만 마네의 [올랭피아]와 이구영 작가의 [더러운 잠]은 그냥 베낀 게 아니다. 두 작품에는 당대의 사회상이 담겨 있다. 원작인 [우르비노의 비너스]에 누워 있는 인물은 여신 비너스다. 제아무리 ‘신으로부터 인간에게로’를 주창했던 르네상스시대였다 해도 여성의 나체를 캔버스에 옮기는 데 까지는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여신을 마네는 매춘부로 바꿔버렸다. 그가 비너스를 매춘부로 바꿔치기 한 이유는 아무런 죄의식 없이 매춘을 일상으로 저지르는 파리 부르주아 사회를 풍자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제목 자체도 아예 매춘의 대제전을 의미하는 올랭피아Olympia, 즉 매춘 올림픽이다. 올림픽은 그리스 체전에만 있는 게 아니라, 파리 매춘굴에도 있다! 있는 자들의 비리를 고발한 강력한 풍자가 아닐 수 없다.
작품 [올랭피아]에서 전신을 드러낸 매춘부는 깨끗한 척하는 파리 부르주아들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넌 얼마나 깨끗하니?" 하고 원초적 더러움을 던진다. 당연히 뜨끔할 밖에... 그래서 원작인 [우르비노의 비너스]로부터 무려 325년이나 지난 시점에 그려진 작품임에도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파리 부르주아 놈들, 어두운 곳에서는 돈으로 여자를 사서 온갖 더러운 짓 다 하면서도 겉으로는 시를 읊조리고 사교파티를 열며 점잔을 떠는 꼴이라니...
파리 부르주아 사회의 더러운 민낯을 까발린 [올랭피아], 즉 풍자의 전위투사이자 고발정신 투철한 매춘부의 올림픽은, 이후 절친이었던 모네Claude Monet를 거쳐 프랑스 정부가 고가에 구입하면서 마네를 현대미술의 거장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는 당시 적극적인 논쟁주의와 현재를 부정하는 작가주의 정신이 프랑스 화단과 문화의 바탕에 깔려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우리는? 이구영 작가의 작품은?
죽은 작가의 사회에 드리는 권고
이 작가의 [더러운 잠]에 대한 논란이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표현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하지만, 국회에서 이러면 안 된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남성을 발가벗겨서 성적인 모욕을 안겨준 적은 없다"며 에로티즘적인 사유를 들이댄다. 페미니즘feminism의 역설을 보는 것만 같다. 남성 대통령을 발가벗긴 적이 없다고? 있다. 그것도 많다.
또 어떤 애국심에 똘똘 뭉친 이들은 전시되어 있는 [더러운 잠]을 뜯어내어 찢어발기기까지 한다. 절차 따위 안중에도 없는 그들에게서 작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찾아 볼 수 없다. 만일 영국 정부가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원작까지 모조리 없애버렸다면, 스페인 정부가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을 모두 매춘굴로 보내버렸다면, 파리 부르주아 사회가 마네의 매춘부를 갈가리 찢어발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올랭피아]를 사회 풍자와 상업적인 용도에, 심지어 대통령 풍자에까지 이용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아래는 극히 일부의 예일 뿐이다. 미국 부시 전 대통령의 나체부터 감상해 보시기 바란다.

올랭피아 풍자1 - 조지 왕의 휴식(Man of Leisure, King George)(2004)

올랭피아 풍자2 - 입셍로랑YSL ⓒYSL S/S1999 by Mario Sorrenti

올랭피아 풍자3 - 베이컨 올랭피아Bacon Olympia

올랭피아 풍자4

올랭피아 풍자5
|
위 올랭피아 풍자1 작품에는 미국의 부시 전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이 등장한다. 그렇지만 가족이 입장하는 시립박물관 사정상 전시목록에서 제외되었을 뿐, 사회적으로 별다른 이슈가 되지 못했다. 남성 대통령을 발가벗겼다느니, 국가 원수를 성적으로 조롱했다느니 하는 논란도 없었다.
또한 우리는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모니카 르윈스키와 맺은 부적절한 관계가 들통 났을 때, 미국의 풍자미술 작가들이 가능한 한 도발적인 의도로 얼마나 강렬한 풍자를 해댔는지 이미 알고 있다.
풍자할 테마theme에는 어떠한 제한도 없어야 한다. 남녀는 물론이고, 대통령까지 포함해서 모든 사회 현상이 풍자의 대상이다. 그래야 르네상스시대부터 지속적으로 발전해 온 현대미술이다.
이번 [더러운 잠] 논란에서 관철되어야 할 질문은, "누가 정치적으로 옳은 판단을 내리고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왜 미술계는 침묵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미술 작품에 대한 판단이 정치인과 정치평론가, 정치 채널 등 온통 정치권에서만 재단되고 있기에 하는 소리다. 작품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은 작가의 의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품이 파시즘의 도구로 전락해 정치적으로 악용될 여지는 당연히 차단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받고 있는 의혹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그러나 최소한 표현의 자유를 표방하는 작가의 풍자 의도는 어떤 경우에도 매장당하지 않아야 하고, 그러려면 화단과 작가들이 침묵의 사슬을 끊어내고 나서야 한다. 그들이 문화적 권위라는 더러운 잠에 흠뻑 빠져 있지 않다면 말이다. 제 식구 자기가 지키지 않으면 누가 지키나?
가수 조영남 대작 사건에 대해서는 들불 일어나듯 하던 작가들이, 이처럼 사실주의와 풍자미술이 정면으로 대결하는, 어쩌면 한국 미술사의 중요한 한 획으로 자리매김 할지도 모르는 국면에서는 어찌 이리도 침묵으로 일관하는가? 조영남이 작가들의 밥그릇 관행을 폭로라도 해서 그런가? 아니면 [더러운 잠]의 이구영 작가가 권위의 주류가 아니라서 그런가? 그것도 아니라면 정치적인 비난이 귀찮거나 두려워서인가?
이번 논란이 정치적으로 어떻게 발전할지, 국민과 여론을 어떻게 양분해갈지는 관심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죽은 작가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죽은 화단에서는, 더군다나 제 식구 하나 감쌀 마음이 없는 화단에서는, 어떠한 새로운 작품도, 사조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에서, 화단에 엄중히 권고한다.
"혹시라도 문화적 권위라는 더러운 잠에 빠져 있다면, 하루속히 깨어나 미술에 어두운 일반 국민들을 위해 헛소리라도 한 마디 하라!
ⓒ 중앙일보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