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강둑을 걸어
오월 둘째 금요일 새벽녘 임시 거처를 정한 사림동 원룸에서 리모델링을 하는 아파트로 가봤다. 실내 공사 현장은 어수선했고 거실의 컴퓨터를 켰더니 부팅은 되었으나 인터넷과 문서 편집은 불가했다. 사용 중인 컴퓨터는 공사와 무관하게 노후화되어 나타난 장애였다. 생활 속 남겨가는 글을 워드로 입력할 수 없어 창원대학 앞 pc방을 찾아 두 시간 가량 걸려 전날 일기를 썼다.
이후 pc방을 나와 서둘러 길을 나서 마산역에서 가까운 동마산병원 앞으로 향했다. 지난 일월부터 내가 퇴직에 즈음해 트레킹에 동행하길 바라는 문학 동아리 회원과 일정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지난 사월엔 을숙도와 다대포를 다녀온 여정이었는데 이번에는 남강 하류에서 남지까지 걷기로 예정했다. 동행한 회원은 중년 여성 세 분으로 자연스레 내가 길 안내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하루 소풍을 가듯 가벼운 배낭을 짊어진 우리 일행은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을 출발해 의령 지정 두곡리로 가는 농어촌버스를 탔다. 나는 대중교통에 익숙했으나 나머지 세 분은 자차를 이용하다 드물게 타 보는 농어촌버스였을 테다. 서마산에서 칠원을 거쳐 함안 대산 면사무소를 지난 구혜에서 내렸다. 구혜는 남강 하류로 의령 지정면으로 건너가는 송도교를 앞둔 강마을이었다.
이방인이 된 우리는 한적한 시골 마을 앞을 지나 강둑으로 오르니 지리산에서 발원한 남강이 진주를 거쳐 낙동강에 합류를 앞두고 사행천으로 구불구불 흘렀다. 강둑에는 이즈음 자주색 꽃이 피는 등갈퀴가 뒤덮여 장관이었다. 하얀 찔레꽃도 지천으로 피어 진한 향기를 뿜어 나비들이 팔랑거리며 날았다. 남강은 4대강 사업에서 제외된 구간이라 갯버들은 자연 상태 그대로 무성했다.
남강 하류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곽재우가 왜적과 맞서 최초로 승리했던 거름강으로 기강, 또는 기음강으로 불리는 데였다. 적포와 박진에서 흘러온 낙동강 물소리는 웅장했고 샛강이 되어 합류하는 남강의 물소리는 고요해 두 갈래 나누어진 물길에서 다른 소리가 들리다가 만나는 곳이 기음강이었다. 홍의장군 곽재우의 보덕각과 손인갑 부자의 충절을 기리는 쌍절각이 바라보였다.
장암배수장에서 보건진료소를 돌아가다 뽕나무에 달린 오디가 익어가고 있어 몇 개 따 입안에 넣기도 했다. 원호를 길게 그린 둑길엔 이맘때 피는 금계국이 노란 꽃잎을 펼쳤다. 너른 장포 들판은 수박농사를 짓는 비닐하우스단지였다. 쉼터에서 커피와 캔 맥주를 비우고 뚜벅뚜벅 걸으면서 떠오른 시상을 놓치지 않고 시 구절을 다듬고 또 다듬는 치열한 작가 정신을 보인 이도 있었다.
장포 제방이 끝난 화개지맥 북단의 용화산은 강물이 휘감아 흐르면서 벼랑을 이루었다. 산책 데크를 따라 가니 함안 조 씨 문중에서 세운 합강정엔 은행나무가 세월의 연륜을 나이테로 보태갔다. 노거수 느티나무가 버틴 반구정에는 서울에서 낙향했다는 중년 사내가 아흔 일곱 살 부친을 봉양하며 꽃밭을 가꾸었다. 일행은 전망이 탁 트인 정자에서 풍성한 상추쌈으로 점심을 들었다.
점심 식후 반구정을 되돌아 나가니 중년 사내가 꽃밭에서 김을 매다가 청정 지역 머위를 잘라 주어 고마웠다. 임도를 걷는 길섶에는 여전히 찔레꽃이 만발했고 넝쿨딸기가 빨갛게 익어 가던 길을 멈추고 따 먹기도 했다. 한 달 남짓 지나면 선홍색으로 익을 산딸기도 무리 지어 자랐다. 능가사를 앞둔 용화산 벼랑의 데크를 따라 올라 함안차사 유래담에 나온 노아의 무덤을 둘러봤다.
쉼터에서 차를 마시고 철교를 걸어 남지로 갔다. 일제 강점기 건설된 남지철교는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트러스트 구조물이 끊겼고 철골에 포탄으로 생긴 구멍이 보였다. 남지터미널에서 마산행 버스를 타서 합성동에서 창원으로 돌아오니 성근 빗방울이 떨어졌다. 무학상가의 한 식당으로 들어 생선구이로 맑은 술잔을 비우면서 찰밥으로 소진된 열량을 채우고 나오니 골목이 어두웠다. 22.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