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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을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을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통도사 암자 순례길
광주매일신문 2016. 06.21(화) 19:34
경부고속도로를 달려서 통도사로 향하는데, 동쪽을 향해 가파르게 솟아 있는 영축산이 ‘큰바위얼굴’ 같이 다가온다. 고속도로에서 보면 길게 영축산 북쪽으로 펼쳐지는 능선은 잔잔해 보이지만 대부분 영남알프스라 불리는 1,000m가 넘는 고봉들이다.
우리는 통도사IC를 빠져나와 영축산 남쪽자락으로 흘러들어간다. 통도사로 들어가는 산문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사찰순례를 시작한다. 통도사의 가람배치는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 등 세 영역으로 이루어져있다. 하로전에서는 영산전(보물 제1826호)을 중심으로 극락보전과 약사전이 마주보고 있다. 하로전 영역은 이 세 개의 불전과 만세루가 삼층석탑(보물 제1471호)을 에워싸고 있는 형국이다.
불이문을 통과하여 중로전 영역에 들어서니 정면으로 대웅전이 바라보인다. 대웅전 앞쪽에 관음전, 대명광전(보물 제1827호), 용화전, 개산조당과 해장보각, 세존비각 등이 중로전을 이루고 있다.
상로전은 통도사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영역으로 대웅전과 금강계단(국보 제290호). 응진전, 명부전, 삼성각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통도사 대웅전은 웅장하면서도 J자형의 특이한 외관을 하고 있다. 이 건물에는 면마다 각기 다른 이름의 편액이 붙어 있다. 동쪽의 대웅전, 서쪽의 대방광전, 남쪽의 금강계단, 북쪽의 적멸보궁이 그것이다.
대웅전 뒤쪽에는 금강계단(金剛戒壇) 불사리탑이 있다. 석종형 불사리탑에는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모시고 온 부처님의 정골사리를 봉안하였다. 그래서 금강계단 앞에 세워진 대웅전에는 불상이 없다. 대웅전 유리창을 통하여 정교하고 화려한 불단 위에 모셔진 금강계단 불사리탑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통도사는 19개의 산내 암자를 두고 있다. 통도사를 중심으로 불국토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들 암자를 찾아 떠나는 길이 ‘통도사 암자순례길’이다. 통도사 암자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서운암에 들어서자 5천여 개에 이르는 항아리가 인상적이다. 질서있게 정렬된 항아리들은 맞배지붕을 한 서운암 전각들과 어울려 소박하고 부드럽다.
서운암에는 통도사 수좌인 성파큰스님이 흙을 빚어 직접 구운 삼천도자불상이 있다. 우리는 삼천불상 앞에서 삼배를 올린다. 절을 통해 나를 낮추고 상대방을 공경하는 생활을 다짐한다. 서운암에서 산비탈을 따라 10여 분 올라가니 전망이 확 트이면서 산 중턱 넓은 터에 장경각이 자리를 잡고 있다. ㅁ자형 건물로 이루어진 장경각에는 성파스님이 11년 동안 도자기판 16만장을 만들어 인쇄한 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다.
대장경을 가슴에 담고 장경각 앞에 서니 영축산 줄기가 드넓게 펼쳐진다. 대장경에 들어있는 부처님의 말씀이 저 산에 다 들어있는 듯하다. 영축산 아래로는 인간세상이 바라보인다. 부처님의 말씀이 저 인간세상에서 실현되라는 의미일 것이다.
서운암을 나서 옥련암으로 향한다. 암자로 가는 길은 붉은 적송과 활엽수들이 울창하여 그윽하고 고요하다. 옥련암에 들어서니 소나무 두 그루가 어깨를 기대어 산문을 대신한다. 오늘 암자순례에서는 암자마다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기로 하였기에 옥련암 법당에서도 삼배를 한다. 삼배를 하고나서 후불탱화에서 눈길을 멈춘다. 탱화는 대부분 그림으로 그려지는데, 옥련암 법당의 후불탱화와 내부벽면의 탱화는 목각이다. 옥련암 목각탱화는 250명에 이르는 아라한을 무형문화재 목아 박찬수 선생이 3년 6개월에 걸쳐 완성한 작품이다.
백련암으로 들어서는데, 나옹선사의 선시를 새겨놓은 시비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청산을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을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날마다 마주하는 청산이고 창공인데, 나는 탐욕을 벗어놓지 못하고 화를 참지 못한다. 백련암은 조선시대에는 선풍이 뛰어난 선원으로 유명하였다. 환성, 경허, 만해, 운봉, 향곡, 구산 등 큰스님들이 수행한 곳이기도 하다. 백련암 법당에서 삼배를 하면서 탐욕으로 점철된 나를 응시한다.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간 선승들의 삶이 죽비가 되어 나의 등짝을 후려치는 것 같다.
바위와 낙락장송 등으로 절경을 이룬 자장암은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율사가 움집을 짓고 수도했던 곳이다.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는 빗소리가 목탁소리처럼 들려온다. 사명암으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긴 직사각형 연못 가운데에 놓인 다리를 건너야 한다. 연못 뒤로 축대와 담이 있고, 가운데 계단을 따라 오르면 사명암이라 쓰인 산문이 있다. 연못에는 수련이 피어 있는데, 한쪽은 홍련이, 다른 쪽에는 백련이 아름답게 피어 있다. 사명대사는 이곳에 모옥(茅屋)을 짓고 수도하면서 통도사 금강계단을 수호하였다고 전한다.
사명암에서 내려와 언덕을 넘어 자장암으로 향한다. 굽은 듯 곧은 소나무들이 순례객을 자장암으로 인도한다. 자장암 경내에 들어서는 순간 경치 좋은 설악산 어느 암자에 와 있는 것 같다. 커다란 바위 아래에 터를 잡은 위치하며 격조 있는 소나무들만 해도 놀랄 만한데, 암자 앞으로 유장하게 펼쳐지는 영축산의 모습까지 합쳐지니 천하절경이라는 단어가 무색치 않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자연을 닮은 절집을 지었으니 이곳이 바로 극락정토 아니겠는가?
지장암은 자장율사가 통도사를 창건하기 전 바위벽 아래에 움집을 짓고 수도하던 곳이라 의미가 깊다. 신라 진평왕 때 자장이 수도했던 움막은 나중에 회봉스님이 다시 지어 자장암이 되었다. 그 후 여러 차례 중건하여 지금과 같이 정갈하고 아름다운 암자가 되었다.
자장암에는 1896년에 조성한 마애불이 있다.
서축암을 거쳐 극락암에 도착하자 장방형 연못과 연못 위에 놓인 홍교가 인상적이다. 이 연못은 영축산 봉우리가 비췬다고 하여 극락영지라 불리는데, 요즘 같은 여름철에는 하얀 수련이 예쁘게 피어 산 그림자를 대신한다.
극락암은 근현대 고승인 경봉스님이 주석한 암자로 유명하다. 여여문(如如門)을 넘어서면 극락암 경내에 진입한다. 물이 흐르는 듯한 모양의 여여문 글씨는 경봉스님 글씨로 금강경의 ‘불취어상 여여부동(不取於相 如如不動)’에서 따온 말이다. 그 어떤 상(相)에도 걸리지 말고 한결같이 행동한다.
극락암에서 역시 울창한 소나무숲길을 따라 비로암으로 들어선다. 비로암은 이름 그대로 비로자나불을 모신 암자다. 비로암은 통도사 19암자 중에서 멀리 떨어진 백운암을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비로암에서는 주변이 시원스럽게 조망이 된다. 부처의 향기가 바람을 타고 드넓게 펼쳐지는 것 같다.
비로암에서 마지막 삼배를 올리고서 암자를 나선다. 산중턱을 면사포처럼 뒤덮은 흰 구름은 자유자재하고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빗물이 되어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여행 쪽지
▶통도사에는 19개 산내 암자가 있는데, 이 암자들을 연결해 걷는 길이 통도사 암자순례길이다. 이 중에서 통도사 산문 밖에 있는 4개 암자와 영축산 8부 능선에 자리를 잡은 백운암을 제외한 14개 암자를 순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14개 암자를 순례하는 데에는 11㎞에 6시간 정도 걸린다.
▶가는 길 : 경부고속도로 통도사IC→통도사 이정표 따라 10분 정도 달리면 주차장에 도착한다.
경남 양산 통도사 서운암, 동자승 얼굴처럼 장독대 반지르르…저마다 된장 품고 "나무아미타불"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영남일보 기사 입력 2022-05-13 | 수정 2022-05-13 08:15 | 발행일 2022-05-13
고려 충목왕때 충현대사가 창건…삼천불상 모신 거대한 2층 전각 눈길
성파스님 전국 돌며 장독 모으고 1300년 전 비법 그대로 담근 된장 유명
4월엔 야생화 축제 열리고 5월엔 이팝꽃 온통 흐드러져 '꽃암자' 별명도
매끄럽게 굴곡진 길이 골짜기의 가장자리를 타고 오르면, 정수리까지 청명해지는 솔숲이 커튼처럼 차르르 열린다. 저 아래 골 깊은 곳에는 계류가 흐르고 그 양옆으로 난 밝은 길에는 색색의 연등이 알알이 맑다. 어떤 이는 계곡의 무지개다리에 우뚝 올라섰다. 또 어떤 이는 통도사 일주문 속으로 사라진다. 이제 보이는 것은 완두콩 빛깔의 숲에 가려져 이따금 반짝거리는 계류와, 길과, 담장이나 전각의 작은 조각들이다. 보타암을 지나고 덩치가 꽤나 큰 선원과 율원을 지난다. 그리고 텅 비어 있으나 여전히 경내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산길을 잠시 달리며 서운암(瑞雲庵) 이정표를 찾아 두리번댄다.
◆ '된장암자'로 불리는 서운암
그늘진 샛길로 들어선다. 길 한쪽은 공사 가림막이 긴 벽으로 높다. 수장고를 짓는 중이라 한다. 크릉 크릉 땅을 퍼 올리는 소리가 점점 멀어지는가 싶을 즈음 환한 양지가 열리면서 반드러운 장독들의 도열과 맞닥뜨린다. 그들의 머리 위로 이팝나무 흰 꽃들이 아득히 흐드러졌다. 정신을 차리면 길 가에 작은 연못이 보이고 그 맞은편에 마른 먼지 날리는 작은 주차장과 '서운암 된장'을 판다는 글이 적힌 가게가 있다. 서운암은 '된장암자'로 불린다. 장이 익어가는 독이 무려 5천 여 개다. 이곳에서는 1천300년 동안 스님들이 절 식구들을 위해 장을 담그던 방법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장독대와 연못 사이로 몇 걸음 들어서면 서운암 경역이다. 삼천불상을 모신 커다란 2층 전각이 있고 그 뒤로 선원과 요사 공간이 사립문을 앞에 두고 근엄하리만치 정갈하게 자리한다. "오늘은 열려 있네" 사람들은 열린 사립문 앞에서 기웃대며 활짝 피어난 철쭉꽃을 들여다 볼 뿐 선뜻 마당으로 들어서지 못한다.
서운암은 고려 충목왕 2년인 1346년에 충현대사가 창건했고 조선 철종 10년인 1859년에 남봉대사가 중건했다고 전한다. 옛날에는 초막인 인법당이 전부였는데 근래에 성파(性坡)스님이 현재의 모습으로 일구었다고 한다. 스님은 지난해까지 통도사의 방장(方丈)을 지냈고 올해 한국불교조계종의 제15대 종정(宗正)에 추대됐다.
전국을 돌며 장독을 모으고 옛 방식대로 장을 담그기 시작한 것이 성파스님이다. '신분제가 있었던 시절에도 왕족이나 양반, 상놈 할 것 없이 똑같이 사용했던 게 장독이니 우리에게 이만큼 소중한 문화유산이 어디 있겠느냐'라는 것이 스님의 생각이다. 그렇게 독을 모으고 장을 담근 지 10년이 넘었고 지금 서운암의 재래식 된장은 양산시의 특산품으로 지정되어 있다. 성파 스님은 장을 담그는 일 외에도 도자기, 민화, 글씨, 옻 공예 등 많은 예술 작업을 하고 있다. 전통 천연염색인 쪽(葉) 염색기법도 이곳에서 재현된다. 5·6월이면 서운암 일대는 온통 쪽물들인 천 조각들로 아른거린다.
서운암 주위 야산에는 수많은 꽃나무와 들꽃이 때에 맞춰 피고 진다. 그래서 서운암에는 '꽃 암자' '야생화의 보고' '서운암 꽃길'이라는 다양한 이름과 수식이 있다.
◆ 서운암 꽃길
장독대 오른편으로 난 오솔길로 들어선다. 늙은 모과나무 아래에 금낭화가 낭창거린다. '서운암의 4월은 금낭화, 5월은 이팝나무'라는 말이 있다. '꽃 암자'라는 명칭도 있고 '야생화의 보고'라는 수식도 있고 '서운암 꽃길'이라는 이름도 있다. 이처럼 많은 호칭은 2000년부터 성파스님이 암자 주위 야산에 100여 종의 꽃나무와 들꽃 1만 포기를 심기 시작하면서부터라 한다. 이후 봄부터 가을까지 때에 맞춰 복사꽃, 할미꽃, 벌개미취, 참나리, 붓꽃, 은방울꽃, 비비추, 애기똥풀, 산철쭉, 꽃창포, 하늘매발톱, 황매화, 불두화 등 각양각색의 꽃들이 피고 진다. 금낭화가 피어나는 4월에는 야생화 축제를 열기도 한다.
지금은 확연히 이팝나무의 시절이다. '하얀 눈꽃'이라는 학명처럼 이팝나무 흰 꽃이 사방에 쌓여 흩날린다. 하얗고 따뜻한 꽃눈을 헤치며 산을 오른다. 동그란 연못을 지나 불두화가 피기 시작한 길 끝에 샤스타데이지와 철쭉으로 뒤덮인 언덕바지가 나타난다. 경 읽는 소리가 아주 낮게 들려온다. 자유로운 풍경 소리는 그보다 더 또렷하다.
장경각 앞마당에는 두 개의 커다란 수조가 있다. 수조에는 국보 285호인 반구대 암각화와 국보 147호인 울산 천전리 각석이 옻칠과 칠기로 재현되어 잠겨 있다.
장경각 안에는 도자기로 만든 대장경이 봉안되어 있다. 도자판의 크기는 가로 52㎝, 세로 25㎝, 정확한 경판의 수는 16만3천장이다.
◆ 16만 도자대장경과 물속의 그림
언덕 위는 아주 너른 대지다. 시야는 통도사 골짜기를 지나 멀고 먼 곳으로 활짝 열려 있다. 거기에 장경각이 자리한다. 사각의 중정을 가진 장경각에는 도자기로 구운 팔만대장경이 봉안되어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층층으로 빼곡히 쌓인 대장경 판에 압도된다. 그들 사이로 난 좁은 통로는 이리 저리 꺾이고 이어져 마치 만(卍)자의 미로를 헤쳐 나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대장경을 도자기로 굽는 일은 1991년부터 시작되었다. 제자 5명, 기술자 20여 명과 함께 밤낮 없이 경을 새기고 뜨겁게 구웠다. 숱한 실패를 거듭했다. 그리고 2013년 장경각 불사를 마무리했다. 도자판의 크기는 가로 52㎝, 세로 25㎝, 정확한 경판의 수는 16만3천장이라고 한다. 길고 긴 구도의 불사에는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았다. 중정을 가득 메운 대낮의 빛이 커다란 창의 격자살을 뚫고 들어와 경판의 가장자리를 밝힌다.
장경각 앞마당에는 두 개의 커다란 수조가 있다. 왼쪽 수조에는 국보 285호인 반구대 암각화가 잠겨 있고 오른쪽 수조에는 국보 147호인 울산 천전리 각석이 잠겨 있다. 꼭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하다. 아름다워서 몸서리가 난다. 우주처럼 까만 바탕은 삼베다. 전통 방식으로 직조 된 두꺼운 삼베에 열두 번 넘게 옻칠을 하고 또 삼베를 붙여 옻칠하기를 여러 번 거듭해 도자기처럼 단단한 바탕을 만들었다. 그 위에 나전칠기 기법으로 반구대의 고래와 거북, 천전리 각석의 기하학 무늬와 문자 등을 구현했다. 7천년 전의 동물들이 선명하게 살아 있다. 신석기에서 신라시대로 이어지는 시간이 별처럼 반짝인다. 두 작품 모두 물에 잠겨 있지만 옻칠은 방부성이 강하고 접착력도 강해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 역시 성파 스님의 작품이다. 제작 기간만 꼬박 3년이 걸렸다. '일하며 공부하고, 공부하며 일한다.' 성파스님의 생활신조다. 샤스타데이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풍경 소리는 끊임없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Tip
55번 대구부산고속도로 부산방향으로 가다 밀양 분기점에서 14번 밀양울산고속도로 울산방향으로 간다. 서울주 분기점에서 1번 경부고속도로 부산방향으로 가다 통도사IC로 나가면 된다. 통도사를 거쳐 임도를 따라 1㎞ 남짓 더 올라가면 서운암이다. 서운암에서 장경각까지 임도로 400m 거리다. 차를 타고 올라갈 수도 있지만 '서운암 꽃길'로 오르기를 추천한다. 통도사 입장료는 성인 3천원, 청소년 1천500원, 어린이 1천원이며 주차비는 2천원이다.
양산 통도사 자장암 금와보살(금개구리)
통도사 금개구리는 통도사 자장암(암벽 구멍)에 살고 있다고 전해지는 금와보살(금개구리) 설화로, 불심이 깊은 불자에게만 보인다는 믿음이 함께 전해집니다.
설화는 자장율사가 바위에 구멍을 뚫어 개구리를 살게 했고, 이후 금개구리가 길조나 소원 성취와 연결되어 기도·참배 대상이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통도사 금개구리 설화 핵심
금개구리는 자장암 법당 뒤 암벽에 있는 구멍(금와공)에 살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설화에 따르면 개구리는 몸이 청색, 입이 금색이며 벌처럼 보이기도 하고, 산문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불심이 깊은 불자에게만 보인다는 전승이 있어, 금와보살을 친견하려는 의미로 기도·참배가 이어집니다.
전승과 전해지는 모습
설화는 자장율사가 석간수 옆 암벽에 손가락 크기 구멍을 뚫고 개구리를 살게 했다는 내용으로, 이후 금와보살(금개구리)로 불리며 길조가 생길 때 나타난다고 전합니다.
또한 금개구리는 계절·시간에 따라 색이 변하고, 여름엔 뜨거운 바위 위를 뛰어다닌다는 묘사도 함께 전해집니다.
방문 팁
자장암은 통도사 19암자 중 하나로, 관음전 뒤쪽 암벽에 금와공이 전해지는 장소로 소개됩니다.
실제로 금개구리를 보지 못한 방문자 경험담이 많아, ‘금와보살을 친견’하는 마음으로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통도사 부속암자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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