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모임 자리에 나가 술이나 한잔 마시며 떠들었다.
떠들고 있는데 옆자리 앉은 편집인 한 사람이 내 겉옷 소매 끝을 만지작거렸다.
언젠가 나도 흘낏 한번 보긴 했는데... 소매 끝이 나달나달 해져 보기 좀 민망시러웟다.
"하아, 빈티지!"
멋쩍어 입을 활짝 벌리고 웃었다.
"그러네요. 빈티지가 더 잘 어울리세요."
그래, 그렇긴 해.
그참에 얼마 전 일이 생각났다.
부산엘 갔는데, 부산가기 전 빨아 말려 신고간 운동화 밑창이 두쪽 다 떨어져 겨우 앞부분만 븥어 있었다.
빨기 전에 운동화를 물에 좀 오래 담궈 놓았었는데 그때 뭔가 문제가 생긴 듯했다.
운동화는 걸을 때마다 두쪽이 다 훌떡거렸다. 아, 이런 민망함이라니
부산 지인에게 '곤난' 함에 대해 얘기를 털어놓고 강력 즉석 본드 같은 거 파는 데 없을까 조언을 구했다.
그리곤 운동화를 벗어두고 슬리퍼 철이 지났음에도 슬리퍼를 끌고 부산 대로행을 돌아다녔다.
부산 지인의 음식점으로 돌아온 저녁. 그곳 사장님은 손수 내 헌 운동화를 들고 구둣방을 찾아가 말끔히수선해 놓은 것이었다.
걸어도 뛰어도 훌떡거리지 않게 되었다.
"사장님, 고맙습니다!"
덕분에 훌떡거리지 않는 운동화를 발에 꿰고 서울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돌아오면서 내일 당장 새 운동화를 장만하리라 별렀다.
그런데 아직도 그 운동화를 신고 다니고 있다.
터덜터덜 헌 온둥화의 안쪽에 남아있을 사장님의 따뜻한 손기운을 쉬이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터덜터덜 헌 운동화와 언젠가 대학로 제이빔에서 산, 50프로 활인 가격의 카키색 남성용 반코트.
두 가지는 나달나달, 터덜터덜 잘도 어울리고 있다.
그래, 부티보다 빈티가 사람 냄새 나기 십상이다.
결코 옷이나 신발의 구속을 받을 순 없다. 사람이 주는 구속도 만만찮은 세상이다.
나는 오늘도 속 편한 옷에 발 편한 운동화를 꿰어 입고, 신고 속 편하게 살아갈 것이다.
첫댓글 작년 일이 생각나네요.함께 여행했던 사람의 랜드로바가 밑창이 떨어져서 걸을 때마다 혓바닥을 낼름거리는 걸 연상케 하던...그분 역시 본드를 칠하고 노근으로 묶어서 하룻밤을 두었는데, 그것이 마치 걸리버가 소인국에 표류돼 묶여 있던 그림을 떠오르게 해서 얼마나 우스웠던지...늘 양복만 입는 분이라 랜드로바를 신을 일이로 없었는데 어쩌다 신은 것이 그리 됐다나요 그분은 민망해했지만 우리는 재미있었지요.
말끔하게 빨아 말려 신고 간다는 것이 먼 부산에서 그런 낭패를 맞이함. / 관여하고 있는 다른 카페에서 퍼 나른 글임. ^^*
사람이 중요하지 걸치는 것이 더 중요하겠습니까?
감사! ^^
멋진 사람!
^^* 총회 때나 보려나....
멋져부러요^^ 우린 그런 상교샘이 더 매력있어요. 빈티지 의상도 아무나 안 어울리거든요.
호홍! *^^*
아주 좋은 바지... 지난 해 겨울이었나. 경기도 용문장에 몇이 놀러 갔다가 5000원 주고 산, 허리에 고무줄 든 위 아래 주머니가 여섯개 달린 두겹, 그러나 가벼운 카고 바지. 요즘 그 바지 덕을 단단히 보고 있다. 그때 두 벌 살 것을. 어떨지 몰라 한 벌 산 일이 후회막급.
ㅎㅎ 그때 저도 옆에 있었던 거, 기억하시죠?
오브 코오스 ! (영어 되네)